B-5085
아버지 새로 입주한 아파트는 B동 5085호
이웃을 둘러보니 동갑내기 꽤 여럿 있고
누님 동생뻘 되는 자들도 잠들어 있다
30㎥ 집들을 분양 받아 똑같은 현관문을 달고 누워 있는 모습은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한결같다 .
살아생전 마음 다하지 못한 산 자들이 흐느끼고 있다
이곳에 누워 계신 아버지는 알고 계신다
새끼들 불효자 소리 들을까 갑갑함 이겨내고 저 좁디좁은 함에 숨죽여 계신 거라고
하늘 가시던 날 죄송한 마음에 큰 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흐느끼다가
한 달이 되어서야
나, 이 작은 아파트 앞에 앉아 통곡을 한다 .
- 20070823 인천납골당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것들
바다, 지팡이, 묵주, 포도, 고무신, 김연자, 폴로 향수, 생명줄, 하느님, 토마토 주스, 라디오, 밀짚모자, 물고기, 대장간, 소리나는 시계….">

아버지에게 전하는 말 | 하늘가신 아버지께

B-5085
아버지 새로 입주한 아파트는 B동 5085호
이웃을 둘러보니 동갑내기 꽤 여럿 있고
누님 동생뻘 되는 자들도 잠들어 있다
30㎥ 집들을 분양 받아 똑같은 현관문을 달고 누워 있는 모습은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한결같다 .
살아생전 마음 다하지 못한 산 자들이 흐느끼고 있다
이곳에 누워 계신 아버지는 알고 계신다
새끼들 불효자 소리 들을까 갑갑함 이겨내고 저 좁디좁은 함에 숨죽여 계신 거라고
하늘 가시던 날 죄송한 마음에 큰 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흐느끼다가
한 달이 되어서야
나, 이 작은 아파트 앞에 앉아 통곡을 한다 .
- 20070823 인천납골당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것들
바다, 지팡이, 묵주, 포도, 고무신, 김연자, 폴로 향수, 생명줄, 하느님, 토마토 주스, 라디오, 밀짚모자, 물고기, 대장간, 소리나는 시계….
생전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가 하늘 가신 지 한 달이 되는 날입니다. 이곳은 삼복 무더위지만 그곳에서는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지요? 아버지 숨결 느껴지는 그곳으로 휙 날아올라가 아버지를 만날 것 같은 날입니다.

7년 전, 아버지 곁에 있기 위해 선재도로 내려온 후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것과 섬에 갇혀 사는 답답함에 갖은 불평을 늘어놓던 저를 아버지는 늘 넉넉한 미소로 받아 주셨지요.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하시면서 “바다만 같아라”라고 하셨지요. 시력을 잃고도 묵묵히 어부로서의 삶을 살아가시는 아버지 곁에서 보낸 7년 동안, 바다를 닮는다는 게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바다에 나가 자연에 순응하며 그물을 거두셨지요. 시력을 잃고도 또 다른 눈으로 보시며 척척 고기잡이를 해내시는 모습은 두 눈 멀쩡한 이 어린 아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한결같다는 것. 아버지는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 끈기와 몸에 밴 습관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 저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 아버지에게서 진실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신께 늘 감사하던 당신이었지만 제 눈엔 아버지의 삶 자체가 훌륭한 성인과 같이 보였습니다.

늘 지나고 나서 후회하며 사는 것이 사람인가 봅니다. 지난해 제가 젊음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지중해로 떠났을 때, 아들의 빈자리가 컸던지 아버지는 뇌경색과 치매로 몸져누우셨어요. 그 후유증으로 이렇게 빨리 이별하게 된 것 같아, 바보 같은 선택을 했던 제 자신 때문에 고통스러웠습니다.

고통 속에 병마와 싸우시기가 얼마나 외롭고 힘겨우셨어요? 아버지를 두고 떠난 것에 대한 후회스러움이 밀려왔지만, 투병하시는 동안 함께 있을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정신이 혼미해져 다른 세상을 꿈꾸는 동안에도 여전히 가르침을 주시는군요.

김연용 씨가 바다에 나가 있는 생전 아버지 모습을 촬영한 사진.
아버지와 이별한 후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무얼 해도 손에 익질 않아요. 아버지가 눈 감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으면서도, 꿈을 꾸듯 지금도 “연용아 밥 줘!” 하는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고요. 방문을 열면 그자리에 누워 계신 것도 같아요. 아버지,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어찌해야 하나요. 제 나이 서른 둘이지만 아직도 이렇게 아버지 품이 그립고 아쉬운데….

왜 그렇게 가셨어요! 난 잘 울지도 못했어요. 울고 싶어도 참고 또 참고 이를 악물고 참았어요. 마음 다해 사랑했던 대상은 헤어져도 슬프지 않은 거라고, 바보같이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자꾸 눈물이 나는 걸 보면 내 마음이 그만큼 다하지 못했다는 증거겠죠. 아버지, 부디 천국의 바다에서 밝은 두 눈으로 마음 가난한 자들에게 희망을 낚아 주는 어부로 살아가시길 빌어요. 아버지의 큰 사랑을 배운 아들은 더 큰 사랑을 잉태하며 다시 아버지를 뵐 그날까지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글쓴이 김연용씨의 아버지 김선호 씨는 인천시 옹진군 선재도의 알아주는 대장장이자 목수였습니다. 미대를 다니던 김연용 씨는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은 후 어부로 살아가는 아버지 곁에 있기 위해 고향 선재도로 돌아왔습니다. 김연용 씨는 2003년, 시력을 잃은 채 고기잡이를 하는 아버지의 삶을 사진과 글로 옮긴 사진 에세이집 《아버지의 바다》를 출간, 잔잔한 감동을 줬습니다. 김연용 씨는 현재 선재도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며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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