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이 만난 사람 | 미국의 1700개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 <디 워>의 심형래 감독

영화를 향한 굴하지 않는 집념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알다시피, 심형래는 개그맨이다. 그것도 “영구 없다”를 외치면서 바보 개그를 주로 했던 개그맨이다. 그런 그가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우뢰매>라든가 조악한 공룡 모형이 등장하는 <티라노의 발톱>은 바보 연기를 하는 개그맨으로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심형래가 아동용으로 만든 상업영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계 시장을 겨냥해서 한국적 캐릭터인 <용가리>를 만든다고 떠들고 다녔다. <용가리>의 사전 프로모션에 외국 업체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기사가 터져 나왔다. 국민의 정부 시절 그는 신지식인 1호에 선정되어 대대적으로 광고되었다. 하지만 막상 <용가리>가 공개되자 그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1958년생, 불혹을 넘어 올해 오십이 된 심형래는, 이번에는 <디 워>를 들고 나타났다. <디 워>가 미국 시장에서 2000여 개 가까운 극장을 잡았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도 쉽게 수긍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이번에도 <용가리>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디 워>의 완성품이 시사회를 통해 공개되자 그런 우려는 일시에 날아가 버렸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사전 공개된 예고편이 전부일 거야, 이런 뒷말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디 워>의 시사회가 끝난 후 그는 밝은 회색의 헐렁한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안에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약간 긴장되었고, 시사회가 끝난 후 터져 나온 박수 때문인지 상기된 표정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주먹을 불끈 쥐고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드는 포즈를 취했다. 그의 뒤편에는 “2007년 8월 대한민국 SF의 새로운 신화를 목격하라”는 <디 워>의 광고 카피가 보였다. 나는 동의했다. 분명히 <디 워>는 한국 영화의 테크놀로지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영화였다.

“고맙다. 그동안 되지도 않는 길로 간다고, 무모한 짓 많이 한다고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정말 고생 많았다. 내가 믿은 것은,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열심히 했다. <디 워>가 미국 개봉할 때 극장을 500개만 잡아도 우리나라가 뒤집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1700개 극장을 확보했다. 잘하면 2000개도 가능할 것 같다. 올겨울에는 일본의 500개 극장에서 개봉된다. <디 워>의 컴퓨터 그래픽은 백퍼센트 대한민국 기술로 완성했다.”

나는 KBS-TV의 <파워 인터뷰>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심형래는 여전히 내 눈에는 개그맨이었다. 대화를 할 때도 TV에서 본 그의 바보 연기가 생각났다. <용가리> 시사회 이후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나는 들어주지 않았다. 나 역시 <용가리>를 보고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은 과대포장되었다고 생각했다. 감독 심형래는 함량미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디 워>를 보고 나는 박수를 쳤다.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특히 이무기가 등장하는 컴퓨터 그래픽은 할리우드에 비해서 전혀 뒤처지지 않는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심형래가 감독한 작품들.
<디 워>는 국적 불명의 괴수 영화는 아니다. 전 세계를 겨냥한 애니메이션이지만, 이무기라는 독특한 한국형 콘텐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것이 승부수다. 전 세계적으로 용의 신화는 널리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용이 되기 이전 1000년 묵은 뱀, 이무기 신화가 존재하는 곳은 드물다. <디 워>는 여의주를 얻어서 용이 되려는 이무기의 존재를 중심에 두고 서사를 전개해 나간다. 이 서사를 뒷받침하는 힘이 컴퓨터 그래픽이다. 가령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비교해 봐도 <디 워>의 이무기가 갖는 구체성과 역동성은 단연 돋보인다. 섬세하지 못한 컴퓨터 그래픽의 취약점을 감추기 위해 어둡고 음습한 장면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등장시키던 기존의 양태와는 달리, <디 워>에는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이무기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컴퓨터 그래픽이 들어간 영화가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이것을 실사와 결합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미국에서 촬영할 때도 힘들었다. 네티즌들이 많은 격려를 보내 주었고 그래서 오늘 여기까지 온 것 같다.”

LA 다운타운을 무서운 속도로 휘젓고 다니며 차량과 빌딩을 무차별 파괴하는 이무기의 생동감이야말로 <디 워>를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다. 길이 200m, 높이 9m에 이르는 거대한 이무기 부라퀴가 커다란 입을 쩍 벌리며 혀를 날름거릴 때의 생동감은 한국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성과다. 하지만 영화의 시각적 효과가 관객들의 정서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려면, 설득력 있는 서사구조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이무기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의 초반부는 서사의 기본 얼개를 치기 때문에 조금 지루하다. 그러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이무기의 거대한 몸집이 화면을 지배하면 관객들은 그 생동감에 압도당한다. 마지막 20여 분에 이르는 이무기의 결투신은 긴박감을 자아낸다.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있었던 기자시사회 현장.

한국의 이무기 등장시켜 미국시장 겨냥

“영화를 찍다가 두 번 울었다. 주인공 이든이 어린 시절 골동품상에 갔을 때, 주인이 이무기를 설명하면서 ‘이것은 한국의 전설이다’라는 대사가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컷을 외치고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심형래는 자신의 옷소매로 슬쩍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다시 보여주었다.

“두 번째는 우리말도 잘 못하는 열네 살 먹은 교포 어린이가 촬영 현장에 나를 찾아오더니 영화가 개봉되면 자기 친구 세 명을 극장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하면서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그때 또 눈물이 나왔다.”

<디 워>의 이야기는 디테일이 정치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아서 사건들은 폭력적으로 연결된다. FBI 직원 프랭키(크리스 멀키 분)가 사건을 조사하면서 이든과 세라에게 인류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도 상세 설명이 너무나 부족하다. 500년 이무기 전설의 비밀은 골동품상 잭에 의해서 이든과 세라를 통해 알려지는데 잭의 역할이 분명치 않다. <디 워>의 기본 콘텐츠는 한국적 신화인 이무기를 등장시켜 매력적으로 출발했지만 서사 전개에 있어서는 개연성과 당위성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형 콘텐츠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지만 사악한 이무기 부라퀴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중세 유럽 기사처럼 혹은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것은, 세계화를 겨냥했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이다.

양평동 작업기지에 마련된 프랑스 시가지 축소 모형.
“원래 총 105분으로 편집되었는데 소니에서 90분으로 잘라 달라고 주문이 왔다. 이야기를 자르다 보니까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DVD에는 내가 원하는 컷을 넣어서 디렉터스 컷으로 만들려고 한다. 마지막 엔드 크레딧 올라갈 때 나오는 아리랑은 의도적으로 넣었다. 내가 아리랑을 넣자고 하자 우리 직원들까지 반대했다. 고정관념이 너무 심하다. 차이코프스키나 슈베르트, 모차르트만 세계적이고 우리나라 음악은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웃긴다. 음악감독에게 아리랑을 들려주었더니 굉장히 좋다고 했다.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할 때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이라는 가사하고도 잘 맞는다. 처음에는 슬프고 애절하고 끝은 웅장하게 했다. 한국에서 보면 감동이 약할지 모르지만 교포들은 안 우시는 분들이 없다.”

<디 워>의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우뢰매> <용가리> 등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온갖 비난과 모욕적인 손가락질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꿈을 밀고 나간 감독 심형래의 집념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집념과 노력이 수많은 난관을 물리치고 일구어 낸 값진 결과물이기도 한 <디 워>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감동적이다. 더구나 영화의 마지막 엔드 크레딧이 올라올 때 울려 퍼지는 아리랑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곡이면서 새롭게 편곡되어 이무기의 애잔한 비극적 정서를 극대화하는 데 기여한다.

사진 : 김선아
  • 200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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