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선정 ‘올해의 작가’ 정연두

삶과 판타지를 함께 담는 작가

정연두
1969년 진주 출생.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영국 생 마틴 미술대학, 골드스미스 미술대학 석사 졸업. 2001년부터 다수의 개인전과 국내외 주요 단체전. 베니스 비엔날레, 리버풀 비엔날레, 상하이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 참여.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
지난 7월 29일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실에서 댄스파티가 열렸다. 2007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정연두의 전시 의 폐막일 행사였다. 그의 작품인 <보라매 댄스홀>을 배경으로 한 댄스파티는 작품과 현실이 오버랩되는 유쾌한 현장이었다.

<보라매 댄스홀>은 그가 2001년부터 시작한 작품이다. 옛 공군사관학교였던 보라매공원 안에 있는 스포츠댄스 교습소에 춤을 추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① ②이다. 보라매공원은 옛 군부독재의 흔적을 담고 있는 곳이며, 이 지역은 서울에서 이주민의 수가 가장 많은 서민적인 지역이다. 한국체육진흥회가 운영하는 이 스포츠댄스 교습소는 이런 맥락에서 중층적인 의미를 갖는 공간이 된다. 그러나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또 저마다의 춤에 몰입하고 있다. 그는 이 독특한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이 사진 작품을 벽지로 만들고 전시실 자체를 댄스홀 ③로 연출했다. 미술관에 차려진 댄스홀은 관람객들에게 구경꾼이 아니라 ‘당신도 그들처럼’ 댄스홀의 주인공이 되어 보라고 넌지시 주문한다.

<보라매 댄스홀>로 시작된 전시는 <로케이션> 시리즈의 사진들과 <다큐멘타리 노스탤지어> 시리즈로 이어진다. 영화나 드라마의 야외 촬영지를 뜻하는 용어인 <로케이션> 이름이 붙은 사진 시리즈물은 교묘하게 교차하는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멀리 도시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랑데부 하는 선남선녀의 사진 ④이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뭔가 이상하다. 여자 그림자의 방향과 남자 그림자의 방향이 다르며, 남자가 서있는 모래사장에 이상한 구김이 있다. 가만히 보면 남자가 서있는 모래사장은 실제가 아니라 배경막으로 걸려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 ‘가짜’ 세상을 ‘진짜’처럼 보이고자 했을 텐데, 작가는 이 장면이 설정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지오르지오네의 그림 <잠자는 비너스>를 사진 ⑤으로 그대로 옮긴 것인데, 실제 사진으로 옮겨 보니 인공적인 요소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500년 동안 별 의심 없이 보아온 이미지가 사실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① ② 보라매 댄스홀, 사진 인화, 2001.
<다큐멘타리 노스탤지어>도 같은 맥락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매스미디어에서 보는 최종적인 이미지가 얻어지는 과정 자체를 작품화하였다. 댄스홀에 이어 이번엔 전시실을 거실처럼 꾸며 관람객들은 마치 집에서처럼 낡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듯이 영상물을 관람하게 된다. 관객은 편집되지 않은 ‘원본’을 감상하게 된다. 그 ‘원본’에는 영상물의 가장 중요한 장면과 그 영상물을 촬영하기 위해 세트장이 설치되고 치워지는 전 과정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또 옆에는 촬영에 사용되었던 세트가 작품처럼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매우 리얼하다고 보는 드라마가 사실은 무수히 많은 편집에 의해서 만들어진 완벽한 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드라마 세트가 말하는 원천적인 거짓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드라마의 진실성을 믿고 싶어 하는 우리의 소박한 심성이 교묘하게 교차되는 순간이다. 어쩌면 뻔히 다 아는 사실을 관객들이 미술관에서 체험하게 하는 일은 작가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인 카메라에 대한 익살스러운 반성이다. 가장 사실적인 매체인 카메라는 매우 비사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③ 보라매 댄스홀,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설치, 2007.
정연두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것은 사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최고의 권위를 가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는 지금까지 주로 중견 혹은 원로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보다 국외 전시가 많고,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에서 작품이 잘 팔리는 현역의 젊은 작가가 선정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변화하는 미술 환경에 발 빠르게 적응하려는 시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막상 소감을 묻자 그의 반응은 담담하다. “가장 기뻤던 것은 새로운 전시를 선보일 수 있는 멋진 공간이 주어졌다는 거죠. 그동안 구상만 하고 있던 <다큐멘타리 노스탤지어>를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④ 로케이션 #19, 사진인화, 2006.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새로운 매체 실험

‘엘비스 궁중반점’이라는 붉은 중국집 간판이 붙어 있는 그의 작업실. 이 간판은 엘비스 프레슬리와 중국집의 결합이라는 일견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현실에 대한 긍정이라는 그의 자세를 그대로 요약하는 듯하다. 사진, 퍼포먼스, 설치 등 ‘멀티 플레이어’로 그가 행하는 작품의 영역은 일반 관객들에게는 낯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사고는 매우 구체적이고 시선은 따뜻하고 휴머니즘이 넘친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의 시각은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내 사랑 지니>(2001년) 연작도 주유소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신나게 일하고 있는 소녀를 보면서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여러 장소에서 일하고 있는 청소년들과 대화를 시작했고, 그 대화의 끝에 그는 그들의 꿈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실현시켜 주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고등학생은 남극여행이 꿈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그 학생을 남극탐험대와 같은 모습 ⑦으로 찍었다. 비록 배경이 한국의 산이고 이글루는 종이로 만든 것이고 시베리안 허스키 두 마리는 빌려 온 것이지만 말이다. 똑같은 포즈로 서있는 모델들의 모습은 현실의 모습과 꿈의 모습이 교차되어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1960년대 미국 인기 드라마였던 <내 사랑 지니>의 주인공처럼 정연두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꿈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실현시켜 주었다. 그래서 한 외국의 큐레이터는 그를 일컬어 ‘미스터 원더풀’이라고 했다. 자신의 피사체에 공감을 가지고 접근하지만 관찰자의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그의 미덕이다. “판타지가 없는 삶은 건조하고 삶이 배제된 판타지는 공허하지요. 그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⑤ 로케이션 #18, 사진인화, 2006.
서울대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가 카메라를 든 것은 영국의 골드스미스 미술학교에서다. 그는 1970년대 영국 조각에 나타났던 작가들에 관한 논문을 읽고 무작정 영국으로 떠났다. 그가 영국 유학을 가기 전에 한 일은 1993년 12월에 있었던 일본어능력시험을 본 일이었다. 이유는 그전부터 일본어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영국에 가면 영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무작정 떠났던 길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매체로 실험하는 작가가 되었고, 귀국 후 베니스 비엔날레, 리버풀 비엔날레, 상하이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 참여 등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1년에 14~15번 전시를 하는 그의 일정은 작가 자신도 다 기억하지 못할 만큼 빡빡하기만 했다. 올 9월에 미국 애틀랜타대학의 미술관과 사반나의 레드 갤러리 순회전이 있고, 10월 말에는 뉴욕의 티나 킴 파인 아트 갤러리에서, 11월에는 라이프치히의 리만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있다. 그리고 내년 2008년에는 뉴질랜드와 칠레 등지의 중남미 지역 순회전이 있고, 파리에서도 전시가 있을 예정이다.

⑥ 원더랜드 시리즈, 가수가 되고 싶어요, 드로잉, 사진인화, 2004.


⑧ 원더랜드 시리즈, 신데렐라, 드로잉, 사진인화, 2004.
2008년 9월에는 두바이에서 중요한 워크숍이 있다. 이 워크숍에서 그는 레바논의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과 함께 작업할 예정이다. 이는 2004년에 있었던 <원더랜드> 시리즈 ⑥ ⑧의 연장이다. 이 시리즈는 그가 4개월 동안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옮긴 작업이었다.

“아이들을 무시하고 가르치려다가 오히려 제가 배웠지요. 아이들의 세계 속에는 현실의 어른들 세계가 그대로 담겨 있었어요.”

⑦ 내사랑 지니, 다중환등기 상영, 2001-1-1, 2001-1-2.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하는 모습을 그린 아이의 그림 속에는 ‘왕국’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나온다. 정연두는 이 건물을 모교인 서울대 미대의 한 건물에서 촬영했다. ‘간판의 왕국’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사실성도 논리도 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그림을 가장 사실적인 매체인 사진으로 옮기면서, 아이들이 보는 세상에 대한 시선이 전달된다. 전쟁을 겪은 레바논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는 어떤 세상이 담길지, 어른의 입장에서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사진 : 김선아
  • 200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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