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작가 서수경

한국화와 독일 표현주의 이종 교배하는 세계적인 작가

세오(Seo:서수경)
1977년 전남 광주 출생. 조선대학교 졸업.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게오르크 바젤리츠 교수에게 수학. 2004년 발터-헬렌탈 회화 부분상(베를린), 베를린 예술아카데미 총장 특별상(베를린), 2005년 팔켄로트상(베를린), 중국 국립미술관 회화 부문 우수상(베이징), 베를린, 런던, 뉴욕의 주요 갤러리에서 다수의 개인전. 현재 베를린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 중.
“베를린이 그렇게 재미있는 곳이야?” 하고 그녀가 친구에게 반문한다. 우연히 세오가 친구와 만나는 자리에 잠시 끼어 앉아 들은 대화의 한 토막이다. 7년째 베를린에 머물고 있지만, 베를린의 재미있는 곳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전시 준비 때면 하루 평균 16시간씩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니 어쩌면 그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세오의 그림은 세오보다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지만 정작 세오 자신은 작업실에서 나오기 힘들다.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서 그녀가 할애한 시간은 고작 3일. 전시 오프닝을 보고 언론사 인터뷰를 하고 그 다음 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7년 전 독일로 유학을 갔던 학생 서수경은 세오(Seo)라는 이름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어 금의환향했다.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작가의 전시를 중견 작가 위주로 전시를 하던 현대갤러리에서 2년 전부터 준비했으니 그 의미가 각별하다. 한국보다 독일에서 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를 사람들은 ‘베를린 신데렐라’라고 부른다. 끈질기게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호칭이 아닌 것 같아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겉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지요. 사실은 99%의 노력과 1%의 끼가 어우러진 결과인데요, 욕심도 많은 편이고요.”

그는 광주의 조선대학교 회화과를 수석 졸업했고, 베를린 대학을 졸업할 때도 회화 부문 수석상과 총장특별상을 함께 받았다. 이 밖에도 베이징의 중국미술관이 수여하는 최우수 회화상과 독일에서의 팔켄로트상, 블릭악센상 등을 수상하며 전도양양한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미 베를린과 런던, 뉴욕 등 현대 미술계의 중요 도시에서 굵직굵직한 개인전을 했고,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은 ‘신낭만주의 화풍’이라고 이름을 붙이며 그의 작품을 12점 소장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Fight of the Shadow-Catchers, 2005, Acrylic, paper, collage, canvas, 200x290cm ⓒ SEO
그는 사실 신데렐라가 아니라 악바리였다. 한국에서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독일 표현주의에 관심이 많았기에 독일로 날아갔다. 어학과 그림을 동시에 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독일 신표현주의 대가 바젤리츠의 제자가 되고 싶었다. 거꾸로 그리는 인물화로 유명한 바젤리츠는 제자를 선정하는 데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바젤리츠를 찾아가 더듬거리는 독일어로 책을 읽듯이 말했다. “당신에게 그림을 보여 주고 싶다”고. 그러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The Great Thinker, 2007, Acrylic, paper, collage, canvas, 200x280cm ⓒ SEO
그의 악바리 근성이 다시 발휘되었다. 매주 30kg이나 되는 그림을 가지고 갔다. 나중에는 그림을 수레에 싣고 가서 보여 주기도 했다. 눈이 세 개인 사람을 그린 그림을 들고 갔더니 바젤리츠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냐”고 물었다. 그림을 너무 그려 눈병이 나서 사물이 세 개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날 오후 바젤리츠의 조수가 전화를 했다. 바젤리츠를 찾아다닌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The Path to the Ricefield, 2006, Acrylic, paper, collage, canvas, 200x250cm ⓒ SEO

그의 작품만으로 꾸며지는 쾰른의 아트 호텔

바젤리츠 밑에서 공부할 때도 악바리였다. 가장 먼저 작업실에 갔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바젤리츠는 동양에서 온 이 작은 여학생에게 “언제나 너 자신을 잃지 말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는 동양화를 하고 싶어서 독일에 온 것은 아니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였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열정은 남아도는데 사군자만 치려니까 못 견디겠더라고요. 어느 날부터인가 화선지를 죽죽 찢기 시작했어요. 그게 제 성격하고 맞더라고요”라고 말한다. 강렬한 표현성이 담긴 표현주의를 동경했던 그가 독일에서 발견한 것은 색감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었다.

Colored Mountain, 2003, Acrylic, indian ink, watercolor, paper, collage, canvas, 200x300cm ⓒ SEO
세오에게 잊지 못할 또 한 사람은 베를린 미하일 슐츠 갤러리의 미하일 슐츠 관장이다. 그는 젊은 작가 지원 프로그램의 하나로 바젤리츠, 펭크 등 유명 교수 밑에서 배우는 학생들의 전시회를 열어 준다. 바젤리츠의 제자들 17명이 전시를 했고, 세오의 작품 5점이 모두 팔렸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그는 한 달 뒤 마드리드의 아르코 아트 페어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출품작 12점이 모두 솔드 아웃되었다.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해 곧바로 행사장으로 날아갔는데, 그의 작품에 ‘팔렸다’는 의미로 빨간 딱지가 붙은 것을 보고 마음이 울컥했다. 이 말을 하는 세오의 얼굴에는 그때의 감동이 그대로 재생되는 듯했다. 슐츠 갤러리는 그해 가을 그의 개인전을 열면서 대형 작업실을 마련해 주었다. 재료비 걱정 없이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으니 작품들은 한결 안정적으로 변해 갔다.

그의 그림을 흔히 동서양 작법의 성공적인 이종 교배라고 평가한다. 강렬한 색감과 아크릴은 서양의 것이지만 한지를 병행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세오는 전주의 한지 공장에서 공수해 온 500여 가지 색의 한지를 물감처럼 사용한다. 그중에서도 50장 정도는 직접 염색을 해서 사용하는데, 미묘한 중간색들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색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아주 즐겁다고 한다. 우선 캔버스 위에 밑그림을 그린 뒤 얇은 한지로 한 겹 덮고, 손으로 쭉쭉 찢은 한지를 촘촘히 붙여 나간다. 대여섯 겹의 한지를 바른 후 다시 아크릴 물감을 칠하면 서양화에서 볼 수 있는 깊이감이 만들어진다. 그 위에 동양화의 준법을 이용한 윤곽선을 그려 독특한 화면을 만들어 낸다. 동양화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긴 것이 그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Water Lilies I, 2007, Acrylic, paper, collage, canvas, 100x70cm ⓒ SEO
그의 그림은 그리는 방식이나 내용이나 교묘하게 동서양의 것이 혼합되어 있다. 포도주를 마시고 놀고 있는 젊은이들의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와 우리의 춘화를 교묘하게 섞어 넣은 것이다. 친숙하면서도 낯설고 흥미롭다. 최근에 선보인 수련 연작은 모네의 수련을 연상시키듯 색이 겹치면서 흘러가지만, 목을 길게 뺀 연꽃의 자태는 우리 민화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황금빛 벼가 물결치는 가을날 논의 그림은 고흐의 밀밭과 우리의 농촌 풍경을 동시에 떠오르게 한다. 사색에 잠긴 부처는 여행 가이드 책에서 본 부처상이다. 미얀마인지 티베트인지 국적이 기억나지 않지만 며칠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마침내 그것을 그리게 되었다. 결국 그것은 우리의 반가사유상을 닮은 듯도 한 국적을 알 수 없는 부처상이 됐다. 고요하고 에로틱하면서 세속적인 만족감에 가득 차 있는 웰빙형 부처의 얼굴이다. 국경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림이다.

The Little Thinker, 2007, Acrylic, paper, collage, canvas, 200x280cm ⓒ SEO
“키가 5cm만 컸으면 좋겠어요. 사다리에 안 올라가게요.”

작은 체구로 두세 달씩 걸리는 대형 작품을 하는 작가의 불만 아닌 불만이다. 자신감과 일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세오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번진다. 활동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작품 가격이 열 배 이상 뛰었지만 100여 명이 그의 작품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2008년에는 540억 원 규모로 쾰른에서 지점을 여는 아트 호텔(Art’otel, Park Plaza Hotels Europe 소속)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아트 호텔은 드레스덴, 베를린, 부다페스트 등에 이어 7번째 지점을 여는 것으로, 한 작가의 작품으로 호텔 전체를 꾸민다. 로비부터 레스토랑 객실까지 모두 세오의 작품이 걸리니 거의 개인 미술관에 준하는 프로젝트다. 이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 그가 베를린의 재미있는 곳을 알게 될 기회는 영 없을 것 같다.

사진 : 김선아
  • 2007년 08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912

201912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2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