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이 만난 사람 | <접속> <봄날은 간다> 영화음악 만든 조성우

영화음악 만드는 철학박사

그는 철학하는 음악가다. <충족이유율의 기원과 글자 언어>라는, 비전문가들이 볼 때는 무슨 내용인지 짐작도 잘 안 되는 논문으로 연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조성우는 서양 근대철학과 예술철학을 강의하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음악가로 잘 알려져 있다. 급성장한 한국 영화계에서 그의 위치는 매우 독특하다. 영화의 시각적 효과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부수적 요소로 영화음악을 생각하던 고정관념을 깨고, 한국에서 영화음악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든 사람이 조성우다.

그는 1995년 <런어웨이>의 영화음악을 맡은 이후 <접속> <약속> <정사>(1998년) 등 참여하는 영화마다 빅 히트를 치면서 주목을 받았다. 지난 13년 동안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인어공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 등 40여 편의 영화음악을 담당하면서 그는 한국의 영화음악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성우는 내년 3월 개봉 예정인 일본 영화 <강아지와 나의 10가지 약속>의 영화음악도 맡았다. 그동안 한국 영화가 일본이나 할리우드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한 적은 있어도 한국인이 일본으로부터 작품을 의뢰받은 것은 처음이다.

“<봄날은 간다>의 음악을 듣고 매료된 모토키 카츠히데 감독이 음악을 의뢰해 왔다. 일본에서 순 제작비가 45억 원이면 큰 영화다. 배우들도 톱스타 다나카 레나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허니와 클로버>의 카세 료가 출연한다.”

그가 그동안 작곡한 영화음악 CD들.
한국 영화가 히트 음악을 사용하던 데서 벗어나 오리지널 스코어, 즉 창작 영화음악을 의뢰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조성우 때문이다. 조성우의 음악은 서정성이 강하고 따뜻하며 부드럽다. 내러티브 전개의 흐름을 섬세하게 파악하고 캐릭터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음악은, 시각적 비주얼과 절묘한 호흡의 일치를 이루어 내며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조성우를 영화음악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은 연대 철학과 동문인 허진호 감독.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외출>, 그리고 최근 촬영을 끝낸 신작 <행복>까지 허진호 감독의 모든 영화는 조성우가 음악을 맡았다. 이명세 감독과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처음 만난 후 <형사>를 거쳐 최근에 촬영이 끝난 까지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곡을 쓰기 위해 피아노 앞에 혼자 앉아 있을 때가 가장 좋다. 음악이라는 것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일상생활이 힘들 때 음악으로 위로를 받는다. 3년 전 제작비는 많이 들고 음반 시장이 죽어서 회사가 안 좋은 적이 있었다. 직원들을 일부 내보내고 애정이 담긴 녹음실도 처분했다. 그런 순간에도 음악을 만들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인어공주> 등이 그때 만든 작품들이다. 음악을 만들면서 나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맡아

조성우는 작년부터 제천국제영화음악제 집행위원장도 맡고 있다. 그는 제천에서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문화적 경험들을 어떻게 만드느냐, 고민한 뒤 우선 영화제를 법인화해서 운영하고 상임 스태프들을 확충했다. 프라하와 로마에도 음악영화제가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처음인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올해 3회를 맞는다. 올해는 8월 9일부터 14일까지 개최되는데, 음악영화제로서 정체성을 강화하고 제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늘릴 예정이다. 작년에 처음 시행해서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은 영화음악 아카데미와 제천음악상, 제천포럼도 계속된다. 아직 음반을 내지 않은 음악가들이 제천 시내에서 공연하는 거리의 악사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제천시 문화의 거리에서 하는 행사도 늘어났고 제천을 상징하는 의림지에서도 행사를 할 예정이다.

“음악영화제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영화제다. 국제영화제라 국제적 기준에 맞추어 가야 하는데, 제천 시민들의 눈높이도 맞추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시민들에게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린다는 자부심을 주어야 한다. 영화적 재미와 소통의 핵심에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전문화된 음악영화제로 키울 생각이다.”

조성우는 Music과 Film의 머리 글자를 딴 제작사 ‘M&F’를 만들고 영화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이현우 김보경 주연의 <여름이 가기 전에>를 제작했지만 3억 원의 손해를 보았다. 하지만 오기환 감독의 <두 사람이다>와 허진호 감독의 <행복>, 이명세 감독의 이 올가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 외에도 강풀의 만화를 영화화한 유장하 감독의 <순정만화>가 곧 크랭크인할 예정이고 김태용 감독의 <그녀가 사라졌다> 박흥식 감독의 <협녀> 등의 영화도 제작한다. 최근 개봉한 <해부학 교실>도 청어람과 함께 투자했다. ‘M&F’는 외화 수입도 하는데,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다윈 어워드>, 3D 애니메이션 영화인 <히어로>, 장첸과 서기 주연의 <블러드 브라더스> 등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 쪽 일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제작도 하게 되었다. 작가적이면서도 대중적 접점이 있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조성우는 뮤지컬 <대장금>의 음악도 맡았다. 그러나 지금 그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한국 영화음악가들을 위한 집단적 투쟁이다. 선진국에서는 영화음악을 저작권 방식으로 계약하는데 우리는 용역계약이다. 일정한 금액을 받고 음악을 만들어 제작사에 납품하면 끝이다. DVD 판매에 따른, 혹은 영화 상영 횟수에 따른 음악료를 받는 저작권 계약이 이루어져야만 영화음악의 퀄리티가 높아질 수 있다. 용역계약에서 저작권 계약으로 바뀌어야 한국 영화음악의 선진화가 이루어진다는 그의 말은 맞다. 극장 상영으로 끝나는 일회성 음악이 아니라, 재활용을 통해 수익이 창출되어야만 창의적인 음악을 만들 의욕이 생긴다. 그래서 현재 국내의 대표적인 영화음악가 30여 명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같이 음악을 하는 동료들이 내 인생의 목표다. 그들이 좋은 음악을 만들고, 영화음악가가 직업적 가치를 갖게 만드는 게 내 존재 이유다.”

조성우의 꿈은 개인이 아닌 집단적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음악이 예술적인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좋은 음악을 필요로 하는 영화들이 더 나와야 한다. 대중적으로 기획된 상업영화에서는 대중들이 편하게 느끼는 관습적 음악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피아노 앞에 앉은 조성우의 손은 뭉툭했지만 부드러웠고 따뜻해 보였다. 인터뷰 끝날 무렵, 영화 의 녹음 작업을 위해 이명세 감독이 찾아왔다. 그의 스튜디오에서는 영화와 음악이 한몸이었다. 시각과 청각의 황홀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선천성 중이염으로 왼쪽 귀의 청력이 소실되어 프로 음악가의 꿈을 포기하려던 조성우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음악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개인적 삶을 위한 이기적 욕망이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집단적 삶의 행복을 위해 그는 건반을 두들겼다.

사진 : 이규열
  • 200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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