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전하는 말 |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기남이에게

송복 교수 부부는 수양딸 기남 씨를 아홉 살부터 키웠습니다. 이제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기남 씨는 송복 교수와 가까이 살며 두 아들보다 더 살갑게 지냅니다.
매일 아침 태빈이를 업고 경빈이 우빈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버스 정류소에 서있는 네 모습을 볼 때마다, 경빈이보다 조금 커서 서울 온 그때의 네 모습을 생각한다. 그때 너는 유달리 작았었다. 나이에 비해 너무 작다고 사람들이 모두 말할 정도였지. 너는 무 깍두기를 아주 잘 먹었는데, 그 덕분인지 서울 온 지 1년이 안 돼서 보통 애들처럼 키도 크고 무게도 나갔다. 학교에 넣었을 때 너는 유달리 공부를 못했다. 아주 똑똑했는데 이상하게도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엄마가 열심히 가르쳐도 보았지만 공부에는 별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그것이 우리 집 분위기와 어긋나지 않아서 공부를 못해도 너는 별 어려움 없이 잘 자랐다.

우리 집은 너도 오빠들에게서도 보았듯이 “공부 잘해라”라고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잘 놀아라.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열심히 놀아라”라고만 했지. 기자촌은 바로 산 밑 동네라 너희들 놀기엔 서울서도 최고가 아니었냐. 그래서 너의 두 오빠도 이 동네에 사는 것을 즐거워했고, 너도 즐거워했다. 덕분에 너처럼 두 오빠도 초등학교 때는 성적이 늘 꼬리 부분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공부 못했어도 너는 지금 행복하게 잘살고 있지 않느냐. 초등학교 때 꼬리에 있던 오빠들도 나중엔 미국 유학까지 하지 않더냐. 공부 잘하라고 어머니 아버지가 달달 볶았으면, 지금 너희들이 그렇게 어엿하고 의연한 엄마 아빠가 되어 있겠느냐.

1986년에 찍은 가족사진. 뒷줄 맨 왼쪽이 송복 교수이고, 앞줄 맨 오른쪽이 기남 씨다.
너도 경빈이 우빈이 태빈이 공부 잘하라고 말하지 마라. 그 대신 늘 편안하게 해주어라. 네 남편도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편안히 쉬게 해주어야 한다. 가정은 ‘편안한 것’이 최고다. 편안한 가정에서 자란 애들이 큰사람이 된다. 좀 모자라는 사람도 편안한 가정에서 자라면 자질이 좋아지고 능력이 커진다. 집에만 들어오면 공부하라고 재촉하는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애들은 처음엔 공부를 잘하는 것 같아도 나중엔 공부를 못한다. 편안한 데서 자란 애들이라야 바탕이 좋아지고, 편안한 데서 출근한 남편이라야 일터에서 남보다 갑절의 노력을 한다.

경빈이 우빈이 태빈이가 잘못하는 일이 있어도 꾸지람하지 마라. 애들은 어른의 눈으로 보면 모두 잘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과정이 누구나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가재나 게가 옆으로 비뚤비뚤 가도 결국은 자기 목표점으로 가지 않더냐. 애들 자라는 것이 모두 가재 게처럼 비뚤어지게 가는 것 같지만, 바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 잘못해도 늘 웃으면서 부드러운 말로 가르쳐야 한다.

어머니 아버지는 이제 일흔을 넘겼다. 그러는 사이에 너희들도 잘 성장해서 좋은 엄마 아빠가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너희들에게 했듯이 너희들도 꼭 너희 가정을 ‘편안한 가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편안한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 돈이 많아도 자리가 높아도 편안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집에 들어왔는데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다고 생각해 보아라. 그 남편이 다음 날 일이 잘되겠느냐, 그애들이 학교에서 공부가 되겠느냐. 너는 누구보다 너의 가정을 편안한 가정으로 만들고 있어 어머니 아버지는 너를 볼 때마다 늘 대견스러운 생각이 인다. 고맙다. 앞으로도 늘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 200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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