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이 만난 사람 | 영화 <황진이> 미술감독 맡은 정구호 제일모직 상무

미니멀리즘 디자인으로 황진이의 내면 갈등 표현했죠

웬 검은색 한복? <황진이>의 타이틀 롤을 맡은 송혜교는 상복이 아닌, 검은색 한복을 입고 있다. 기존의 고정관념에 안주하는 순간, 창조성은 소멸된다. <황진이>는 조선조 최고의 여류명사였던 황진이의 삶을 계급적 갈등에서 바라본 북한 작가 홍석중의 소설을, 장윤현 감독이 영화화한 것이다. <황진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정구호라면, 검은색 한복은 의외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엔딩 크레딧에서 미술감독 이름을 눈여겨 찾아본 것은 이재용 감독의 데뷔작 <정사>가 처음이었다. 정구호, 그는 무채색의 미니멀리즘으로 관객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좋은 영화미술은 그 영화의 주제와 한몸이 된다. 너무 튀지도 않고, 존재감이 없지도 않으면서 때로는 인물의 내면적 갈등까지 소리 없이 드러낸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이재용 감독과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정구호는, 비주얼 영상과 내러티브 콘텐츠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 주었다.

디자이너 정구호로 알려져 있지만, 40대 중반인 그가 지금까지 한 일은 의상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은 요리라고 말한다. 아직 그의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확인할 바 없지만, 그의 말을 믿는다.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유학을 가서 미국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했다. 1996년 귀국해서 카페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그릇, 문구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업을 했고 ‘KUHO’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으며 2003년 제일모직의 상무로 스카우트되면서 관심을 받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 불기 시작한 젠 스타일의 중심에 그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덜한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더해서 걸러 낸 상태”라고 그는 자신의 미니멀리즘을 설명한다. 극도의 장식적인 것은 미니멀리즘과 상통한다는 그의 말을 생각한다면 <황진이>의 작업 역시 미니멀리즘과 통하고 있다. 여성복 디자이너인 남성 디자이너는 자신의 옷을 어떻게 선택할까? 그는 ‘바나나 리퍼블릭’의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개인적으로 영화 <황진이>는 기대 이상은 아니었다. 미술 예산이 <스캔들>의 반밖에 안 돼 아쉬웠다. <황진이>는 겉포장과 스타일로 적은 예산을 극복하려고 했다. 미술하는 사람은 큰 이미지를 보여 주기 원하는데, 너무 타이트하게 화면을 잡아서 아쉬웠다.”

황진이가 기거하는 집의 세트는 커다란 한옥을 실제로 지었다. 안채와 누마루가 완벽하게 잡혀 있는 집인데, 중간 연못을 중심으로 동선을 만들었다. 황진이가 누마루에서 안채까지 가는 방법은 마루를 통해 우물 정자로 가거나, 물을 건너가는 방법이 있다. 관습과 신분이라는 겹겹의 벽 안에 갇혀 있는 황진이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지만, 연출은 거시적 풍경과 미시적 감성을 조화롭게 배치하지 못했다. 그가 <정사>의 아트디렉터로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스태프들은 “프로도 아닌 사람이 이상한 것 하려고 한다”는 등 말이 많았다. 아르바이트 식으로 영화 작업을 시작했지만, 언젠가는 확실하게 자신이 만든 이미지로 꽉 찬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망도 있다.

“나는 아직도 항상 언더라는 생각을 갖고 일한다. 언더의 장점은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실험하고 테스트할 수 있다.”

그가 아트디렉터로 참여한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렬지사>와 <정사>.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요리

제일모직 상무로 입사한 첫 1년 동안은 방황을 했다. 큰 조직에 들어갔으니 이 조직을 따라야 하느냐 하는 갈등이 있었다. 6개월 동안 양복을 입고 다녔다. 그러나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회사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양복을 벗었다. 회사에서도 그의 테두리를 만들어 주고 아이디어를 발산하게 해주고 그것을 지원하는 부서를 만들었다. 자유로운 아티스트들도 일정한 틀이 있을 때 오히려 더 안정적인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중요한 창작을 할 때 그는 목욕을 깔끔하게 한다. 지금은 디렉션을 하거나 실렉트를 하거나 조합을 하는 작업을 더 많이 하지만, 중요한 일을 할 때는 말끔히 집안을 청소하고 목욕을 한다. 그리고 한 번 손을 대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면 10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 하나의 일을 끝내야만 다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행어를 빌려 말하자면 그는 선택과 집중을 잘한다. 많은 일을 하는 그의 위치에서는 꼭 필요한 방법론이다.

정구호는 요즘 생각이 많다. 옷은 계속해서 하고 싶다. ‘KUHO’라는 브랜드는 대중에 가깝게 접근하려고 한다.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 중이다.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5년, 10년 계획을 미리 세운다. 디자이너들은 단순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옷을 판매하고 그 수익이 들어와서 다시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경제관념이 꼭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의 창의성은 그 나라의 경제 시스템이나 정치 문화적 배경과도 연관이 되어 있다. 사회도 진화하는 것처럼, 문화예술도 진화한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디자이너가 더 창의적인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하지만, 내가 아는 한, 창의적 도전은 절대 여유 있는 쪽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가 가장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은 디자이너는 에르메스의 수석 디자이너인 벨기에 출신의 마르탱 마르지엘라다. 또 프랑스 감독 자크 타티의 <플레이 타임>(1967)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한국 영화는 글로벌화 했지만 한국 패션산업은 그렇지 못한 이유가 인적 교류의 부족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디자이너이면서 국내 대기업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지만, “글로벌라이즈에 대한 꿈, 아티스트적인 디자이너에 대한 꿈, 두 가지는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지난 5월 28일 하얏트에서 열린 정구호의 F/W 패션쇼에는 장미희, 이승연, 김지호 등이 참석했다. ‘KUHO’의 마니아들은 의외로 많다. 그는 제일모직에서 출시하는 10개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을 하고 있다. 정구호는 사물의 뒤를 헤아릴 줄 아는 영리한 눈을 갖고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정구호 예술작업의 원형적 이미지, 그의 에너지의 근원적 모태 같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질문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대답을 이어 가던 그는 잠깐 생각을 했다.

“성악을 전공한 어머님이 나를 낳자마자 일본으로 유학을 가셨다. 5년 만에 처음 귀국했을 때 나는 김포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예전에는 김포공항 옥상에 올라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분이 어머님인지 몰랐다. 사람들이 계속 내려오는데 딱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머리를 올리고 옥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빨강색 위빙 가방을 들었다. ‘저 분이 어머님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내 느낌이 맞았다. 그때 트랩을 내려오던 어머님의 이미지가 머리에 박혀 있다. 또 하나는, 미국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할 때, 영어 시간에 어떤 친구가 검정색 양복바지를 입고 왔다. 내가 알고 있는 바지와는 너무나 달랐다. 미묘하게 넓은 통, 미묘한 길이, 정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수업 시간에도 자꾸 그 바지가 어른거렸다. 일본 디자이너 레이카와 구보의 ‘콤덱략송’이었는데, 그 바지 때문에 패션에 빠지게 되었다. 수업 끝난 후 그 바지를 파는 숍에 가서 또 놀랐다. 레이카와는 자신의 숍 디자인까지 직접 했다. 창의성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 5월 말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정구호의 F/W 패션쇼.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떨어진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다가,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그리움의 대상을 확인한다. 그 순간, 정구호는 여성복 디자이너가 되는 숙명을 갖지 않았을까? 모든 욕망은 결핍의 산물이다. 욕망이 풀무질하는 힘이 없다면 성공은 없다. 첫 번째 경우가 정구호 예술의 태생적 출발점이라면, 두 번째 경우는 구체적으로 그가 패션 디자이너가 된 결정적 동기를 제공한 것이다.

혼자 사는 정구호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너무 좋아하지만 그것을 수익의 근원으로 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예순 살 정도에 주변 친구들과 같이 놀 그런 공간으로 레스토랑을 하고 싶다. 그는 한식을 좋아하고 중식을 좋아한다. 음식 만드는 그의 솜씨는 다섯 가지 요리를 하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기본 요리 재료는 주말에 시간 날 때 사놓는다. 옷 만드는 것보다 요리하는 게 훨씬 더 쉽다는 디자이너 정구호.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그의 레스토랑에 들러 그가 직접 만든 요리를 먹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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