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이 만난 사람 | <아들> 개봉한 영화감독 장진

확실한 개성의 ‘장진’표 영화, 대중과 가까워지려나?

"마흔 넘어 상업영화를 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극단적인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대중들과 치열하게 부딪쳐야 하는데,
내 시작이 순수문학 쪽이다 보니까 계속 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장진 감독이 5월 23일 결혼한다는 기사를 봤다. 정말 축하해 주고 싶다. 하지만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은 그전에 본인에게 직접 듣는 게 좋다. 하지만 내 잘못이다. 늘 생각만 있을 뿐, 그가 이런 내용을 나에게 먼저 알릴 수 있게 술도 자주 사지 못한 것이다. 이제 장진의 시대는 끝났다. 배우보다 더 멋있게 잘생긴 꽃미남인 그는, 대학로와 충무로의 노총각들에게 관심을 갖는 여성들의 1순위 후보였다. 한 여자의 남자가 되었으니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나는 그를 만나자마자 결혼 축하부터 했다. 그런데 그는 와인 한 병을 내게 선물했다. 오자다(ORZADA) 카르메네르의 빈티지 2004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비싼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칠레의 최상급 프리미엄 와인 중의 하나다. 오자다 카르메네르 2004는 독일에서 열린 와인대회에서 톱3에 랭크되었고, 제4회 칠레 와인 어워드에서 베스트 카르메네르 와인으로 선정되었다.

내가 먼저 결혼선물을 들고 왔어야 했는데, 미안했고 고마웠다. 청첩장을 달라고 하자 지금 인쇄 중이라고 했다. 5월 23일이면 수요일이다. 왜 평일 저녁에 결혼식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다음 날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 휴일인데다, 평일 저녁이 결혼식에 오시는 분들에게 폐를 덜 끼칠 것 같아서 그렇게 정했다고 했다. 장진 감독의 <아들>은 5월 1일 개봉했다. 같은 날 <스파이더맨 3>가 세계 최초로 개봉했다. 3억 달러, 그러니까 280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할리우드 영화와 19억원으로 만든 한국 영화가 맞붙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들>의 흥행이 아주 저조한 것은 아니다. 개봉 시기가 조절됐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진 감독의 <아들>은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대중친화적인 작품이다.

11년 전, 그가 서울예대 연극학과 학생이었을 때, 나는 그 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강의하고 있었다. 그해 그는 학교 문학상을 수상했다. 문예창작과 학생이 아닌 다른 과 학생이 수상한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그리고 1995년 1월 1일 아침 신문에서 나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의 희곡 <천호동 구사거리>를 읽었다. 사실 그 전 TV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할리우드 통신’이라는 걸 진행할 때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분명 한강 둔치인데 트렌치코트를 입고 등장해서 시치미 딱 떼고 LA의 가을은 서늘하다며 방금 줄리아 로버츠를 만나고 왔다고 사기를 치고 있었다. 전혀 엉뚱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웃음을 유발하는 일종의 상황 코미디였다.

데뷔 이후 그는 대본 작가로, 그리고 출연자로 일했던 TV와 연출자로 일했던 연극을 오가며 활동했었다. TV의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그가 단편영화를 찍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장편영화 감독이 되어 시사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장진의 영화감독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은 그러나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그것뿐이 아니다. 그 다음 작품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그리고 <아는 여자> <거룩한 계보>도 그랬다. 그의 영화가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은 <박수칠 때 떠나라>였다.


서울예대에서 강의할 때 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인연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모두 장진 영화라고 부를만한 독특한 개성으로 포장되어 있다. <기막힌 사내들>에서는 아무도 주인공으로 쓰지 않던 최종원 등 중년의 배우들을 등장시켜 뮤지컬 형식이나 미술관 퍼포먼스 등을 도입하는 실험을 했고, <간첩 리철진>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뒤집으며 어리숙한 간첩이라는 설정으로 웃음을 유발했다. <킬러들의 수다>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원빈이 가슴 저리게 사랑 고백을 하는데 그의 형들은 킥킥 웃음을 참는 장면이다. 이런 상황의 부조화야말로 장진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부산영화제 기간 중 부산 영평상 시상식에서 나는 사회자로 장진을 만났다. 그전 장진 사단이 제작한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너무 호되게 비평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게 편치 않았다. 그런데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당연한 비판이었다고 나를 마음 편하게 했다. 그리고 <웰컴 투 동막골> 시사회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그에게 몇 번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어서 서운했다고 했더니 그는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자신의 번호를 보더니 구석기시대의 번호라는 것이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꾼 지 오래되었다며 다시 새로운 번호를 불러 주었다.

일주일 뒤 <박수칠 때 떠나라> 시사회가 있었고 나는 며칠 뒤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보편적 관념을 뒤집는 신선한 발상, 전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내는 상상력의 독특함은 그 누구보다 탁월하다. 장진은 분명히 한국 문화계의 보물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신선함의 강박증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장진이다. 일부러 엉뚱하고 새롭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보는 장진 영화의 엉뚱한 상황, 기막힌 설정 그 자체가 장진이다. 내 불만은, 이렇게 희귀한 재능을 가진 장진 작품이 항상 소재의 신선함에 주제의 깊이가 치인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연극이나 영화로 분리해서 각본을 쓴다. 연극은, 정극의 맛보다는 마당극처럼 떠들썩하게 확장시키거나 아니면 무언의 연극으로 간다.

<아들>에는 장진 감독의 아버지(사진 왼쪽)가 단역으로 출연했다.
<아들>은 원래 무기수가 하루 동안의 귀휴를 얻어 집으로 돌아가는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새롭게 쓴 것이다. 영화 개봉 이후 특히 마지막 반전에 대해서 관객들의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간 후 아내는 떠나고 아들과는 소식이 단절된 무기수가 15년 만에 귀휴를 얻어 교도관 동행 하에 집으로 돌아가 아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차승원이 무기수 아버지로, 류덕환이 고등학생 아들로 등장한다. <아들>은 장진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따뜻하고 대중친화적인 코드가 있어서 그가 충무로 주류 시스템과 본격적으로 동거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감독들과 인터뷰할 때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나 역시 원래 배우 출신이라는 것이다(물론 캐스팅 제의를 은근히 기다리기 위해서다). 내가 에드워드 올비의 2인극 <동물원 이야기>에서 제리 역을 했었다고 하자, 장진 역시 대학시절 제리 역을 했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의 인간 소외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동물원 이야기>의 제리 역은 상당한 연기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무려 10여 분 동안 혼자 하는 긴 대사도 있다. 우리는 마음이 맞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마흔 넘어 상업영화를 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극단적인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대중들과 치열하게 부딪쳐야 하는데, 내 시작이 순수문학 쪽이다 보니까 계속 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회개를 더 늦게 했으면 좋겠다. 대박 나는 작품 몇 개를 만들면서 대중적 코드를 확실히 분석하고 그 사이사이에 장진식 상상력이 빛나는 개성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장진 감독은 올해 결혼한 뒤 조금 쉴 생각이다. 대학로에서 연극 레퍼토리 작업을 하고 영화는 군대 이야기나 퓨전 사극 시나리오를 쓰려고 하는데 내년 상반기에나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다음 영화를 보려면 적어도 2년은 기다려야 한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6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10

201910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0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