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이 만난 사람 | 영화감독 조도로프스키

완전히 새로운 영화 언어 구사한 거장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맹세코 단 1초도 해본 적이 없다. 조도로프스키는 그만큼 멀리 있었다. 그는 칠레 출생이었고 멕시코에 정착해서 영화를 만들다가 현재는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다. 더구나 1929년생이다. 우리 나이로는 79세다. 이제 그를 해외 토픽의 부음 난에서나 만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던 때에, 느닷없이, 조도로프스키가 방한한다는 말이 들렸다. 나는 정말 기절초풍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곧바로 영화사에 전화를 해서, 그가 내한하면 꼭 인터뷰 스케줄을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내가 조도로프스키를 알게 된 것은 1990년대 초, 미국에 있는 친구를 통해서였다. 그는 <산타 상그레>라는 영화를 봤는데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했다. 꿈속에서도 자꾸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보면 아주 좋아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나는 궁금했다. 그런데 곧바로 그 영화가 국내에 수입이 되었다. 대중적이지는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워낙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기 때문에 수입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조도로프스키의 <성스러운 피>와 만났다. 그 친구의 말은 정확했다. 이번에는 내가 잠을 못 잤다.

국내 개봉된 조도로프스키의 <성스러운 피>는 상당 분량 삭제되고 상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 전혀 만나보지 못한 방식의 영화 언어, 꿈과 상상력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어린 시절의 피닉스는 곡마단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하고 그를 살해한다. 정신적 내상을 입고 자란 피닉스는 성인이 되어서 어머니와 함께 무대에 선다. 두 팔이 없는 어머니 대신, 그는 어머니의 등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서 어머니의 팔을 연기한다.

지난 1998년 뉴욕에 갔을 때 나는 조도로프스키의 다른 필름을 구하기 위해 비디오 가게를 샅샅이 뒤졌었다. 쉽게 구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뉴욕 시내에서도 조도로프스키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킴스 비디오에서 겨우 조도로프스키를 발견했을 때 나는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내가 집어든 그의 <엘 토포>를 보고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점원은 다른 비디오 하나를 뽑으며 이 작품이 훨씬 좋다고 나에게 추천해 주었다. 그것이 <홀리 마운틴>이다.

나는 강변북로 한강변에 있는 칠레대사관저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조도로프스키의 뒤늦은 한국 방문은, 지난해 그의 대표작인 <엘 토포>와 <홀리 마운틴>이 디지털로 복원되어 프랑스에서 상영되면서 컬트 영화의 아버지로 다시 국제적 조명을 받았고, 국내의 한 영화사가 두 작품을 수입해 극장 개봉하게 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79세의 조도로프스키는 아주 연로한 모습일 거라는 나의 예상을 깨고 너무나 정정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와 같이 온 베트남계 프랑스 여성은, 현재 프랑스에서 조도로프스키와 함께 살고 있는데 1973년생이었다. 조도로프스키의 혈색은 아주 좋았고 피부도 너무나 부드러웠으며 도저히 팔순을 앞둔 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에너지가 넘쳐났다. 우리는 칠레산 와인으로 반주를 들면서 저녁을 먹었고 무척 다변인 그는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나는 롯데호텔에서 <톱클래스>의 인터뷰를 위해 그와 다시 만났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방에 들어간 나는, 다른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그를 기다렸다. 드디어 약속 시간이 되었는데 그는 잠깐 쉬고 싶다고 했다. 모두 나가고 혼자 방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앉아 있는 그를 지켜보면서 어제와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이 조금 당혹스러웠다.

조도로프스키의 대표작들.
왼쪽부터 <성스러운 피>, <엘 토포>, <홀리 마운틴>.
나는 그의 영화에 곡마단이 자주 등장하고 기형아나 장애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혹시 어린 시절의 체험을 반영한 것이 아닌지, 질문했다. 그는 환하게 웃었다.

“곡마단뿐만 아니라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것들이 중요한 경험이 되고 상상력을 동원하는 소재가 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곡마단을 경영했었다. 거기에는 실제로 기형아나 장애인들이 많았다. 정상적이지 않은 몸을 보고 나는 많은 상상력을 발원했었다. 장 콕토의 <시인의 피>가 그렇듯이 진정한 예술은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표현돼야 한다. 또 예술가라면 모든 예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림이나 다른 예술 장르도 공부했는데, 그림을 배울 때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을 그렸다. 피카소나 달리처럼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접근에 나는 관심을 가졌다. <엘 토포>는 서부의 무법자를 나의 방식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나는 그의 작품이 일반적 리얼리즘과 다른 독특한 상상 구조를 갖고 있고, 색다른 표현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대답 대신 통역을 통해 엉뚱하게, 지금 굉장히 기분이 좋다고 대답을 했다. “지금 하는 질문들이 너무나 좋다. 마음이 편하다”고 내 눈을 보며 말했다.


내 영화의 원천은 무의식과 꿈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다. 프로이트나 융을 연구했고 사람의 무의식, 꿈의 세계에 관심을 갖다 보니까 상상력을 발원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직감이 더 발달한다고 생각하는데 남자들의 직감도 뛰어나다.”

그러나 창조적 표현에 치중하면 대중과의 접점이 약해지는데 어떻게 돌파하려고 하는지 나는 거듭 물었다.

“예술가로서 필요한 게 세 가지다. 그것은 작품, 재능, 기회이다. 좋은 작품을 갖고 있고 재능이 있어도 좋은 기회를 만나기가 힘들다. 나는 운이 좋아서 기회를 적시에 만났다. 어떤 작품을 가지고 대중과 타협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내 작품을 이해하는 대중과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엘 토포>가 난해하다고 했을 때 영화를 본 존 레논과 요코 부부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을 통해 세계의 지식인들에게 알려졌고 심야 영화로 상영되었다. <홀리 마운틴>이 토론토에서 상영되었을 때는 마를린 맨슨이 대중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일부러 대중과 타협하지는 않았다.”

초현실주의 화풍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홀리 마운틴>.
조도로프스키가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결국 데이비드 린치가 감독한 <듄>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오이디푸스 상상력이 영화에 작용하는 것 같다고 질문을 던졌다.

“<엘 토포>에서 장군을 죽이는 장면은 아버지와의 갈등이 삽입된 것이다. 예술가로서는 자기 작품을 만드는 기본적인 베이스가 개인적 체험이다. 나의 아버지는 일종의 독재자 같은 사람이었다. 내 영화에는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모습들이 상당히 투영되어 있다. 나는 항상 왜 아버지가 그런 모습일까 의문을 가졌다. 영화는 일종의 해답이다. 그토록 지배적이었던 아버지를 하나의 인간으로 봤던 사건이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옷을 다 벗고 나체로 자는 것을 보았는데, 아버지의 성기가 발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 작고 초라했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나는 <성스러운 피>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실제로 조도로프스키의 개인적 체험이 상상력을 통해 변형된 것은 아닌지 물었다.

“개인적 체험이 보편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예술가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내 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이미지는 늘 폭력적이다. 그는 남성 지배 사회의 희생양이다. 그런 이미지를 드러내고 싶었다. 지금 사회가 그렇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남성 지배 사회에서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 어머니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들뿐이다.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기까지 한다. 남성 지배 사회는 폭력적이다. 종교적으로도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도 모두 신을 상징하는 존재는 항상 남성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성스러운 피> 마지막 장면에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고 환상으로 남는 것이다. <엘 토포>에서 어머니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조도로프스키는 내년에 영화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고, 올해는 자신이 쓴 희곡이 베니스 등에서 4편이나 공연된다고 했다. 현재 그는 프랑스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대본을 쓰면 만화작가 10명이 붙어서 그림을 그린다. <잉칼> 등 조도로프스키의 만화는 여러 권 국내에도 번역이 되었고 세계만화페스티벌에서 대상 등을 받았다. 시인, 극작가, 만화작가, 영화감독, 그리고 팬터마임 배우로도 활동했던 조도로프스키는 인터뷰 도중 여러 번 좋은 질문 해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그를 만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소설이나 회화와는 다른, 영화 언어를 통해서 이런 수준의 예술적 상상력이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보여준 조도로프스키를 내년에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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