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이 만난 사람 | 재일교포 영화감독 이상일

<훌라걸스>로 일본 아카데미 5개 부문 석권

“난 내가 갖고 있는 감각 하나만을 믿고 작업한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먹힐지는 생각 못 한다. 대중들을 장악했다면 이번에 그게 가능했다고 할지라도 다음 작품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 작품 한 작품 그때그때 나의 감각을 믿고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상일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영화화한 <69>였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쓰마부티 사토시와 <베틀로얄>의 안도 마사노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1969년 일본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전공투 사건을 배경으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작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다. 무라카미 류 소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일본 현대 소설을 양분하고 있는 무라카미 류는, 하루키와는 다르게 작품의 기복이 심하다. 나는 그의 작품 중 <69>와 <영화소설집>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영화 <69>(2004년)의 감독이 재일교포 이상일이라는 것을 알고 흥미가 발동했다. 이상일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영화 <훌라걸스>는 최근 일본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감독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했다. 외국인으로서 감독상을 받은 것은 재일교포인 최양일 감독에 이어 두 번째다.

나는 <훌라걸스>를 보고 이상일 감독의 재능에 감탄했다. 그는 소재를 완벽하게 장악해 극의 흐름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해 가면서 관객들의 정서를 자극해서 눈물을 흘리게 하다가 순식간에 웃음을 주었다. 하지만 대중성이 강화되면서 많은 부분 상업적으로 타협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 34세인 이상일 감독은 조총련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영화가 하고 싶어 무작정 시네콰논이라는 영화사를 운영하는 재일교포 이봉우 씨를 찾아갔다. 일면식도 없지만 같은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무작정 찾아갔다. 그런 것을 보면 이상일은 자신의 욕망을 실천하는 데 매우 능동적인 사람이다.

“지금도 이봉우 프로듀서 만나러 갈 때를 생각하면 너무나 두근거린다. 그가 ‘이런 바보 같은 놈이 있나’ 생각할까 걱정했다. 그러나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저지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난 겁이 많고 용기가 없다. 그래서 일단 저지르고 보는 식으로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간다. 여러 가지 마이너스 요소를 고려하면 우리는 꿈쩍할 수도 없다. 그 외에는 ‘통밥’으로 산다.”

이상일은 그렇게 영화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후 <우나기> 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학교에 들어가 영화 공부를 했다. 이상일은 장편 데뷔작 <보더라인>(2003년)을 만든 후 <69>(2004년)에 이어 <스크랩 헤븐>(2005년), <훌라걸스>(2006년) 등 매년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만들며 현재 일본에서 주목받는 감독 중 한 명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일본 감독들이 받는 연출료가 얼마 되지 않아 생활을 하려면 1년에 영화 한 편은 만들어야 한다고 현실적인 이유를 댄다. 한국의 몇몇 스타 감독들은 흥행 지분까지 요구한다고 내가 덧붙이자, 일본에서는 지분을 받는 감독은 없고 DVD 판매의 몇 퍼센트를 받는 경우는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연출료를 물어보자 정확하게 답은 피했지만, 일본보다 훨씬 많은 연출료를 받는 한국 감독들이 부럽다면서 4인 가족이 겨우 살아갈 정도라고 밝혔다. 그의 부인 역시 재일교포다. 아들과 딸 하나를 두고 있는데 자녀들도 그처럼 한국 이름을 쓴다. 일본 사회에서 이상일이라는 한국 이름을 고수하며 산 것은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화 업계에서 눈에 드러나는 차별은 없다. 취직을 한다거나 집을 임대하려고 계약서를 쓴다거나 어떤 제도나 법률에 관련될 때 외국인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보통 일본 관객들은 내 영화에서 이름을 보고 한국 감독이 일본에서 만든 영화인지, 내가 재일교포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 감각 믿고 영화 만든다”

이상일 감독 영화〈스크랩 헤븐〉
작품에서 조직과 개인 사이 갈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것이 혹시 조총련계 학교를 다니며 성장한 자신의 경험과 관련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 얼굴을 똑바로 보고 “그렇습니다”라고 한국말로 대답했다. 한국어를 듣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말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아 통역을 통해 대화를 나누던 터였다.

“나 자신이 스스로 의식하건 안 하건, 좋다 나쁘다와 무관하게 어떤 사물에 대해서 생각할 때 내가 성장한 환경이 내 몸에 스며있던 게 드러나듯 따라 나온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미남형 외모여서 인사차 무대에 오르면 배우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나라 유하 감독과 비슷하다. 처음부터 난 공격적인 질문을 했다. <훌라걸스>는 매우 재미있었지만 지나치게 대중들을 염두에 둔 연출이었다. 이상일적인 색깔이 희석된 것인가, 이상일의 세계가 변한 것인가, 대중성을 강화한 것인가, 라고 물었다.

“실화를 기초로 전개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 필요가 있지 않은가, 그런 자세로 영화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나도 <훌라걸스>의 배경인 탄광촌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었고 탄광촌이 어떻게 스파 리조트로 변신했는지 역사적 배경도 전혀 몰랐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대부분 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와 비슷한 상태일 것이다. 관객들이 즐기면서 그 배경을 알아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의〈식스티나인〉
나는 <훌라걸스>의 몇 장면을 예로 들면서, 관객을 울렸다가 순식간에 웃음을 주는 재능이 뛰어나고 영화가 재미있기는 하지만 너무 상업적 연출이 아닌가 거듭 물었다. 그는 웃었다.

“하 선생님께서 ‘이 감독이 둥글어진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난 내가 갖고 있는 감각 하나만을 믿고 작업한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먹힐지는 생각 못 한다. 대중들을 장악했다면 이번에 그게 가능했다고 할지라도 다음 작품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 작품 한 작품 그때그때 나의 감각을 믿고 할 수밖에 없다.”

<훌라걸스>는 1960년대 일본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탄광산업이 사양화의 길을 걷게 되자, 탄광촌을 ‘하와이안’이라는 스파 리조트로 바꾸고 광부의 딸로 구성된 하와이안 댄스 팀을 만들어서 공연하는 내용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훌라걸스>는 한 마을이 변신하는 과정에서의 갈등과 눈물, 웃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탄광촌 배경은 합성한 것이다. 하와이안 센터에 이전의 탄광촌 주택지가 조금 남아있다. 충분하지 않아서 다른 지역에 남아있는 주택을 해체해서 촬영하는 지역에 세워서 만들고 찍었다. 이 영화를 찍기 전에는 하와이에 간 적도 없고, 훌라댄스를 본 적도 없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촌스럽다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 찍으면서 하와이안 댄스가 정열적이고 우아한 춤이라는 것을 알고 매료되었다. 하와이가 미국에 처음 점령되었을 때는 하와이안 댄스가 금지된 적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들이 집단적으로 아리랑을 부르거나 춤추는 것을 일본인들이 금지시킨 것처럼, 하와이안 댄스에는 하와이의 정신적인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훌라걸스>가 일본 내에서 엄청난 흥행 성공을 하자, CF 의뢰도 잇달아서 벌써 두 편이나 찍었다고 했다. 다음 작품으로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는데 도적들 이야기를 다룬 시대극을 먼저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그가 머무는 호텔계단 위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한 계단 높이 내가 올라섰는데 머리 높이는 똑같았다. 재중동포인 장률 감독이 한국 자본으로 <망종><히야쯔가르> 등을 만들었고,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 역시 한국 배우들과 함께 <수>를 만들었다. 이상일 감독도 곧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사진 : 이규열
  • 200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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