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겸 가수, 바비킴

“제 음악의 근본은 헝그리 정신이죠”

읊조리는 듯 묘한 음성. 한 소절만 듣고도 금방 누구 노래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가수 바비킴. 그의 노래에서는 마른 풀이 타는 듯 칼칼한 향이 난다. 마치 담배 연기처럼 공중으로 사라지는 씁쓸함도 묻어난다.
“원래 제 목소리가 가늘어서 노래도 예쁘게만 하려고 했었어요. 지금의 목소리는 긴 세월 세파에 깎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진화해 온 저의 자화상이나 다름없죠.”(웃음)

화제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절묘하게 표현한 배경음악 <소나무>로 더욱 주목받은 바비킴(33세). 그는 1994년 그룹 닥터레게로 출발해 13년 동안 작곡가 겸 가수로 활동해 왔다. 2001년 힙합 그룹 부가킹즈를 결성해 리더로 활동했고, 2004년에 솔로 가수로서 데뷔해 1집 앨범 을 냈다. 그중 타이틀 곡 <고래의 꿈>이 예기치 않은 히트를 했다. 계속되는 실패로 가수의 길을 포기하려던 그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낸 음반이었다.

“가수 데뷔한 지 딱 10년 만이었죠. 가수로서 인정받고 사랑받기 시작하면서 ‘아, 내가 이걸 위해 지금까지 온 거구나’ 깨달았어요. 그동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음악밖에 없는데 도대체 풀리지는 않고.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갈구하는 데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고통스러운 삶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노래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라는 뜻인 것 같아요.”

그의 1집 앨범은 3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높은 판매 순위를 기록하는 스테디셀러다. 지난 2006년 겨울에는 2집 앨범 을 냈다. 타이틀 곡 <파랑새>는 그의 자전적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척이나 사랑한 여자가 있었지만 능력도 자격도 없다는 생각에 떠나보냈다는 이야기. 하모니카 주자 전제덕의 잔잔한 연주가 애절함을 더해주는 슬픈 곡이다.

“1집 앨범은 저 바비킴이라는 가수를 알리기 위해 만들었어요. 당시 제가 하고 있던 음악인 힙합과 솔을 접목시켰죠. 2집 앨범에서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맘대로 펼쳐 봤어요. 솔을 바탕으로 리듬앤블루스와 재즈 스윙, 포크 등 여러 장르가 섞여 있습니다.”

그는 2년 반 동안 작업을 하면서 50곡이 넘는 노래들을 작곡했다. 그중 모니터링을 통해 14곡을 선정, 앨범에 담았다. 대중성을 의식하긴 해도 유행이나 트렌드를 무조건 좇진 않았다. 조금이라도 가식이 섞였다 싶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을 정도다. 음반 시장이 고사 직전에 이른 요즘, 이처럼 품이 많이 들어간 앨범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의 음악은 20대부터 40~50대 중·장년층까지 유독 팬층이 두텁다. 그의 콘서트에서는 젊은 세대는 물론 어지간해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중·장년층들이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큰 박수를 보내는 장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음악에서 재즈 스타일이 묻어난다고 하고 어떤 이는 컨트리풍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트로트풍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각각 받아들이는 방향에 따라 느낌도 제각각이다. 정작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어쩌면 그분들이 저보다 더 제 음악을 잘 아시는 것 같다”고 웃어넘긴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제 노래를 듣고 공감을 느낀다면 너무 황송하죠. 제가 그분들에게 인생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데. 하하하. 사람들에게는 모두 한구석에 애수가 있는 것 같아요. 전 그저 제가 살아온 인생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뿐인데. 음악을 통해 힘들고 지친 마음을 쉬어 가시라고.”

두 살 때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민을 떠났다. 당시 MBC 관현악단의 트럼펫 주자였던 아버지가 음악적인 도전을 위해 온 가족을 이끌고 미국행을 결정한 것이다. 1992년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 스무 살. 그래서 그의 음악적 바탕엔 미국에서 접한 힙합과 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한국적인 정서가 버무려져 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외계인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이민 초창기라서 이렇다 할 교포 사회도 없었고 흑인들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옆 동네 중국인들에게도 무시를 당했죠. ‘나는 왜 남들과 다르게 생겼을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늘 매사에 불만이 많고 반항하는 아이였어요.”(웃음)

그의 아버지는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작은 바의 밤무대에서 활동했고 어머니는 두세 군데 공장에 다니면서 열심히 일했다. 수년 후 식당과 옷가게를 운영하며 어렵사리 기반을 잡았지만 그나마도 1992년 LA 폭동으로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의 가족은 빈손으로 귀국했다. 다행히 친척의 도움으로 열 평 남짓한 아파트에 겨우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지친 부모님의 얼굴을 보면서 그는‘20년 동안 타국에서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는데 결국엔 이 꼴이구나’ 하는 참담함을 느꼈다고 한다.


트럼펫 주자 아버지, 10년 만에 음악하는 아들 인정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만 더 힘든 것은 또다시 이방인 취급을 받는 것이었다. 한국말이 서툴렀던 그는 어학당에서 우리말을 익히며 영어 테이프 녹음, TV 드라마 엑스트라, 유아 TV 프로그램 영어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음악은 포기하지 않았다. 음악은 그에게 유일한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제가 무명생활이 좀 길었죠(웃음). 형편이 핀 건 2004년 앨범이 히트 치고 나서부터예요. 앞으로 몇 년간은 부모님 모시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지금도 베란다에서 담배 한 대 피울 때 드는 기분은 예전 어려울 때와 똑같아요. 참 이상하죠?”

그의 별명은 ‘할아버지’다. 후배 래퍼들이 그를 두고 ‘랩 할아버지’라 부르는 데서 붙여진 별명. 한국에서 가장 먼저 랩을 했고, 지난 10여 년 동안 힙합이란 음악 장르가 한국에 뿌리내리는 데 있어서 산증인이기도 하다. 한쪽에서는 그를 두고 힙합의 대부라고 하고 또 한쪽에서는 솔의 제왕이라고 추켜세우지만 그는 그냥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좋다고 한다. 스스로 “제 목소리 톤이 좀 늙은 것 같기도 하다”며 농담까지 한다.

“제왕도 그렇고 대부는 무슨 대부예요. 전 그럴 자격이 없어요. 이제 막 인정받기 시작했는걸요. 요즘도 우리 아버지는‘너 노래 잘한다’‘음악 잘한다’ 이렇게 말씀 안 하세요. 그저 가끔‘많이 나아졌다고’만 하시죠. 그게 아버지 식의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늘 힘들었던 과거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세요.”

아버지는 그에게 음악적 재능을 물려주었지만 그가 음악을 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반대했다. 아들이 당신처럼 고생스러운 음악가의 길을 가는 것이 싫었는지 아니면 아들의 음악적 재능이 성에 안 차서 그랬는지는 그도 아직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토록 반대했던 아버지가 10년 넘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는 아들을 이제는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이 있었다”며 “하지만 왠지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점점 이해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매일 아침 아버지의 트럼펫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다. “이제 나이가 드셨으니 좀 쉬셔도 될 법한데 평생토록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을 하시는 아버지가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답답하기도 하다”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내비쳤다. 내년이 어머니 환갑인데 그때는 무조건 부부 동반으로 해외여행을 보내드릴 계획이라는 것도 귀띔한다.

“그동안 활동하면서 크고 작은 사기도 많이 당했어요. 굴곡을 거치면서 더 강하고 단단해졌죠. 지금은 더 좋은 구두를 신고 있지만 여전히 예전처럼 외롭고 우울하고 늘 만족하지 않아요. 고집이랄까. 아니면 ‘나’를 아직도 찾는 중이랄까. 재벌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성공을 했어도 늘 불안한 거 말예요.”(웃음)

사진 : 이창주
  • 200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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