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그림으로 인기 끄는 작가 육심원 씨와 이를 상품화한 정경일 갤러리 AM 대표

여자의 내면에는 누구나 ‘공주’가 있지 않나요?

작품을 문구상품으로 출시해 히트시킨 정경일 씨.
여자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조금씩 ‘공주병’이 있는 것일까? 육심원. ‘나 예뻐?’하는 표정으로 스스로에게 도취된 여자를 그리는 작가다. 그의 그림은 요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다이어리, 수첩, 메모지, 편지지, 탁상용 캘린더, 카드 지갑, 열쇠고리, 냉장고 자석에까지 그의 ‘공주’들이 들어가 있다. ‘육심원’이라는 브랜드로 나오는 이 물건들에 열광하는 마니아층도 생겼다. 최근에는 하나은행이 맞벌이 부부를 위한 신용카드 ‘둘이하나로 카드’를 새로 출시하면서 그의 그림을 카드 디자인으로 활용했다. 그가 그린 여자인 ‘깍쟁이’는 여성용 카드에, 남자 ‘멋쟁이’는 남성용 카드에 들어간다. 그 그림은 옥외 광고판, TV CF에서도 등장한다.

이화여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30대의 젊은 여성작가. 그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 미술세계대상전에서 특선을 하고, 여러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정통 코스를 밟아온 작가다.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수없이 복제되어 뿌려진 적이 있던가? 특징을 강조하면서 단순화시킨 그의 그림은 만화 같기도 하고, 일러스트레이션 같기도 하다.

사진촬영을 거절한 작가가 자신을 모델로 그렸다고 한 소녀 그림.
‘육심원’의 상품을 판매하는 서울 인사동 갤러리 AM에서 작가 육심원을 만났다.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작품을 시작하면 누구를 만나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는 작가를 겨우 설득해 끌어낸 자리였다. 사진 촬영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에야 그는 겨우 나타났다. 그렇다고 그가 까다로운 ‘공주’만은 아니었다.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부드럽고 조신한 모습이 천생 여자다. 자신의 그림에 대해 그는 “‘여자라서 너무 좋다’며 자기가 여자라는 데 대해 100% 만족하고, 여성성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그때가 제일 예쁘지 않아요?”라면서.

그의 그림 속 여자들은 사실 전형적으로 예쁜 얼굴만은 아니다. 코는 납작하고, 주근깨가 덕지덕지한 개구쟁이, 빨간색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날라리 같은 모습도 있다. 가는 눈에 팔뚝이 굵고 몸도 통통한 50대 여성이 몸에 딱 붙은 빨간 원피스를 입고 빨간 구두를 신고 있다. “적극적이고, 밝고, 활기찬 엄마 후배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여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온다. 모두들 즐거워 못 견디겠다는 듯 입꼬리가 올라가 있고, 아무것도 꿀릴 게 없다는 듯 너무나 당당하다. 그게 예쁘다. 유쾌하다. 사람들이 그의 ‘여자’들에 열광하는 것은 스스로에게서 그런 모습을 끄집어내고 싶기 때문 아닐까?

그 ‘여자’들을 사람들이 수첩으로, 열쇠고리로 몸에 지니게 된 것은 갤러리 AM의 정경일 대표 역할이 컸다. 정경일 대표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아트 마케팅을 공부하고 돌아와 1997년부터 인사동에서 화랑을 경영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2004년 육심원 씨가 갤러리 AM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 전속작가가 되면서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람들이 전시회 카탈로그를 계속 사가 자꾸 새로 인쇄해야 했다. 2005년 개인전 때는 아예 작품 사진을 담은 다이어리와 달력을 내놓으면서, 교보문고에서도 팔았다. 그게 금세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교보문고에서 “입점하셔야죠?”라고 먼저 제의했다.


정경일 대표는 디자이너를 따로 채용해 새로운 품목을 개발하면서 아예 ‘육심원’이라는 브랜드까지 만들었다. 이제까지 미술관이나 아트 숍에 가면 유명 작가들의 아트 상품이 있지만, 수요는 한정되어 있었다. ‘육심원’은 이런 아트 상품과 대중적인 팬시 상품 사이 틈새시장을 노렸다. 종이나 인쇄, 제본의 질을 높이면서 가격은 아트 상품보다 싸게 책정했다. 한지에 전통 안료로 그린 원화의 질감까지 살리기 위해 노력하면서, 육심원 씨가 마지막 상태를 최종 점검했다.





자신 있고 당당한 모습의 ‘여자’에 열광하는 마니아층

일반 문구류보다는 비싼 가격이지만,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을 찾는 여성들은 가격을 문제 삼지 않았다. 실제 인사동의 갤러리 AM으로 들어온 한 여성 소비자는 “나는 이거 가격은 안 보고 사”라고 친구에게 속삭인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좋아한다고. 다양한 개성과 표정의 ‘여자’ 중에서 자신 혹은 자신의 친구와 닮은 그림이 있게 마련. “내 친구 이미지가 딱 이렇다”며 선물용으로 사가기도 한다고 한다.

‘육심원’은 갤러리 AM과 교보문고, 생활용품점 ‘코즈니’에 이어 신세계 백화점에도 입점할 예정이고, 인터넷 판매를 병행하면서 매출이 급상승 중이다. 정경일 대표는 “처음에는 무난하고 얌전한 그림을 그리라며 작가와 신경전도 많이 했다”고 한다. 작가의 고집을 꺾기 어려워 “장사 안 돼도 좋으니, 그냥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라”고 했는데, 그렇게 나온 그림을 오히려 사람들이 더 좋아했다. ‘육심원’ 브랜드의 성공에는 외국에서 아트 마케팅을 전공하면서 아트 숍들을 돌아본 정경일 대표의 식견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원래 화랑을 경영하면서 중견 작가의 작품을 컬렉터들에게 팔고,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소개해 왔었는데, 요즘은 ‘육심원’ 일만도 넘쳐 완전히 이 일에 올인하게 됐다”고 한다.

대학원 시절까지 채색 인물화를 그렸던 육심원 씨는 “학교 틀을 벗어나니 내 마음대로 그리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단순화와 과장이 심해지면서 그림의 색깔이 점점 강해지더라고. 한 작품당 한 달씩 붙들고 있다보면 어느새 작품 속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는데, “나 자신이 기분 좋아지고 유쾌해지는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는 몇 달씩 몰아서 작품을 하다 또 한동안 그림을 끊은 채 여행을 가거나 예쁜 것을 보러 다니는 등 “여자들이 좋아하는 일들을 한다”고 말한다. 거리에 다니는 여자들의 개성과 표정도 살핀다.

그림 그리기에 들어가면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자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 한다. 그의 생활도 그림 속 인물처럼 밝고 건강해지는 것이다. 다른 일정을 만들면 리듬이 깨지기 때문에 이때는 아예 두문불출한다. 그는 요즘 5월 개인전을 앞두고 다시 두문불출에 들어갔다. 20~30점이 나올 전시회에서 그의 ‘여자’들이 어떻게 변신해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데 그의 그림 속에 나오는 남자의 의미는 무얼까? 그는 딱 한마디로 정의했다.

“여자를 빛나게 해주는 존재죠.”

사진 : 이창주
  • 200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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