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이 만난 사람 | 이승연

“나는 강아지처럼 사람을 좋아한다”

지금, 이승연이라는 이름 속에는 수많은 설렘과 망설임, 그리고 따뜻한 박수와 외면이 동시에 들어있다. 그녀는 지난 15년 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었고, 또 그 사랑만큼 많은 비난의 화살을 받으며 참담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김수현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으로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온 이승연. 현재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방송되는 SBS FM ‘이승연의 시네타운’과 케이블 TV 온 스타일의 ‘스타일 매거진’을 진행하고 있다.

‘쌩얼’로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나온 이승연과 목동 SBS 1층 로비의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그녀는 ‘쌩얼’이었다. 얼굴의 잡티가 정오의 햇빛에 투명하게 보였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오늘 세수도 안 하고 나왔다고 고백한다. 어젯밤 늦게 자서, 일어나자마자 생방송에 늦을까 봐 서둘러 옷만 걸치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정말, 참 말을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그녀의 말에는 힘이 있고 개성이 있으며 설득력이 있어서 저절로 그녀의 말을 경청하게 된다. 생각해 보니까, 대중들 앞에 등장한 이후 이승연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이승연의 세이 세이 세이〉를 진행했을 때가 아닌가. 상투적인 멘트나 가식적인 제스처가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 던지는 그녀의 말에는 힘이 있다.

이승연은 지식욕이 강한 사람이다. 앎에 대한 강한 욕구가 그녀의 성장 동력이다. 지금의 이승연을 만든 것은 어쩌면 세상과 사물에 대한 무서운 호기심일 것이다. 서정주의 시 ‘자화상’의 한 구절을 빌려 말하자면, 그녀를 키운 것은 8할이 호기심이었다. 여고 시절부터 스튜어디스를 꿈꿔 인하공업전문대 항공운항과를 갔고 스튜어디스가 되었다. 미스코리아에 도전해 1992년 미스코리아 미가 된 후 그는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방송에 대한 그리고 연기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그것들이 단순히 말초적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도록 이승연은 자신이 알고 싶은 것들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계속했다.

나는 김기덕 감독의 <빈집>을 보면서, 이승연의 내면이 황폐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너무나 건조했고 피폐해졌으며 상처 받았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맡은 캐릭터가 그랬지만 어쩌면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그녀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김기덕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을 원래 <이승연>으로 하려고 했다. 상처받은 한 여배우, 무차별 쏟아지는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고 싶다는 김기덕 감독의 욕망과 무수히 많은 대중들의 비난을 받으며 좌절한 이승연의 욕망이 만나는 곳에 <빈집>이 있다. 이승연은 <빈집>에서 당시 그녀가 처한 황폐한 상황을 드러낸 게 아니라 연기를 한 것이라고 한다. 영화 캐릭터의 내면과 자신의 상황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라는 그녀의 대답은, 그만큼 이승연이라는 인물이 자의식이 강하다는 표현으로 들렸다.

“예전에는 분석을 좋아했다. 대본을 받으면 먼저 날카로운 이성으로 분석을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분석을 안 한다. 너무 계산을 하고 분석하다 보면 짜여진 연기만 하게 된다. <사랑과 야망>에서는 그냥 가슴속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연기를 했다. 기본적인 상황이나 캐릭터만 분석하고 그 다음에는 감성으로 연기를 해야 된다. 드라이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위안부로 분한 누드집 사건이나 운전면허 불법취득 사건을 겪으면서 세상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 원망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이게 전부이겠거니 생각하면 다른 게 있고, 인생 뭐 얼마나 틀린 게 있겠어 생각하면 또 다른 게 있다. 참 희한하다. 나는 굉장한 휴머니스트다. 사람이 좋다. 하지만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다. 나는 이른바 똥개 성향이다. 발로 차면 깨갱하면서도, 부르면 헉헉거리면서 간다. 끊임없이 사람을 좋아하고 가까이 다가간다. 내가 방송에서 ‘여러분 힘내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상투적 멘트가 아니다. 나이 마흔이 되면서 ‘이제부터가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은 이렇게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변하고 그러지 않겠는가.”


절망적일 때 산속 암자 찾아가

굳이 나이를 들먹일 필요는 없지만 이승연은 1968년생이다. 여성 연예인들의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것은 연예인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의 빛나는 청춘 시절이 아름다운 것은 분명하지만, 삶의 질곡을 경험한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원하는 대중들도 늘어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방송에서, 진솔한 삶의 모습을 마주하고 싶은 대중들의 욕망이 반영되는 것이다. 이승연은 지난 15년 동안 우리 곁에 있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일 때 그녀는 절을 찾았다.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모태신앙으로, 마리아라는 세례명도 있지만 절에도 갔었다. 겨울철 눈 내린 전남 백양사에 가서 큰스님과 밤새 이야기하고, 산꼭대기 암자에서 하룻밤만 자고 가겠다고 스님을 졸라 깊은 산중에서 하루를 머물기도 했었다. 그녀가 그렇게 세상을 헤매면서 찾고 싶어 했던 것은 일시적 상처의 치유가 아니라 삶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말을 듣다 보면, 어떻게 이 세상을 살 것인지 삶에 대한 진짜 길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이승연은 한남동으로 이사를 했다. 집안에는 거울이 많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두 살 연하의 남자친구와 열애 중이라는 기사도 났는데, 만난 지 세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있는 이승연의 남자친구 사진을 보고 네티즌들은 유리상자 닮았다는 댓글도 올려놓았다. 나도 그 사진을 보았는데, 긴 머리가 잘 어울리는 미남이었다.

내가 ‘이승연의 시네타운’에 출연하는 날은 수요일이다. 이승연은 수요일이 제일 기다려진다고 했다. 내가 립 서비스가 아니냐고 묻자 그녀는 정색하며 수요일 방송이 제일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이승연은 마이크 앞에서 혼자 진행하는 것보다는 대화를 할 때 그녀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다.

“사람들은 나보고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느낌이 어떤가 묻기도 한다. 나는 다시 대중들 앞에서 방송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진실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노력하면 이루어진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통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 크기가 각각 다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모두 아픈 것이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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