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일러스트레이터 이복식

스무 살 넘은 ‘물먹는 하마’ 제가 그렸어요

그의 일러스트레이션 중 가장 대표적인 게 <물먹는 하마>.
벌써 20년이 넘었으니 광고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장수한 캐릭터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복식 씨(60세). 국내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의 개척자로 손꼽히는 그는 에어브러시와 세필을 이용한 섬세한 그림으로 정평이 나있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열두 평 남짓한 오피스텔 두 개를 터서 만든 공간은 작업용 책상과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바닥까지 빼곡히 쌓인 자료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여느 도서관의 자료실을 방불케 한다.

“자료 싸움이야. 언제 무슨 일이 나에게 들어올지 모르니까요. 인물, 우주, 동식물, 생활용품 등등 뭐든지. 일러스트는 정확성이 중요해요.”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한 작업들을 보여 주겠다며 커다란 스크랩북 여러 개를 꺼내 왔다. 빛바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나라 광고의 역사가 한눈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1976년 미풍에서 나온 조미료 <아이미>부터 시작해 <점프> <맘마 밀> <너구리> <쌕쌕 오렌지> <썬업 리치> <콩豆>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마시는 홍초> <냄새 먹는 하마> 등 슈퍼마켓에서 파는 생필품 대부분에 그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과일과 야채 사진인 줄만 알았던 게 그의 세밀화라고 한다.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가 좋아요. 사람 얼굴은 웃거나 찡그리는 표정을 직접 연기해서 사진을 찍은 후 그걸 보고 그리는데. 그러다 보니 남자는 전부 날 닮았죠. 여자는 집사람 닮고. 하하하”

그의 일러스트레이션 중 가장 대표적인 게 <물먹는 하마>. 벌써 20년이 넘었으니 광고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장수한 캐릭터다. 그는 “그 하마가 지금은 냄새도 먹고 곰팡이도 먹더라”며 웃는다. 연계 상품이 많이 출시됐다는 얘기다. <물먹는 하마>의 하마는 이제 단순한 광고 일러스트를 떠나 브랜드 캐릭터가 되었다.

홍익대 조각학과를 졸업한 그의 원래 꿈은 미술 교사였다. 군 제대 후 학비를 벌 생각에 제과업체에 취직했다 우연히 제일기획으로 옮기게 됐는데, 그곳에서 광고 일러스트의 미래를 발견했다. 당시 우리나라에 일러스트레이션이 처음 도입돼 그림책, 신문이나 잡지, 광고, 제품 디자인 등 급속도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국내 일러스트레이션 시장은 그가 보기에 꽤 유망 산업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광고 일러스트레이션 외에 <월간조선>과 <음악동아>, <마당>의 표지도 맡았다.

그는 캐릭터의 경우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를 좋아한다.
“잡지 표지는 작업하는 데 8일 정도 걸려요. 한 달의 3분의 1을 쏟아 부어야 하는데도 보수는 광고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 됐지. 하지만 편집회의에 참석하면서 방향을 잡아 내 재량대로 그리니 일이 재미있었어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우표 일러스트레이션도 했다. 멸종 위기 및 보호 야생 동식물 특별 우표 중 새 시리즈, 꽃 시리즈, 마라도·독도 ·백령도 등 섬 시리즈가 그의 작품. 정보통신부 디자인실에서 목록과 사이즈를 알려주면 그가 직접 자료를 조사해 시안을 만들어서 제출했고 작품이 결정되면 수정·보완을 거쳐 완성했다. 시안을 제출하기 전 그는 먼저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 한 번 더 검증을 받았다. 조류를 예로 들자면 색깔이나 머리, 몸통, 날개의 비례까지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연습이 쌓여야지, 사진 놓고 베낀다고 거저 되는 게 아니에요. 일일이 손으로 그리는 거라 양을 많이 할 수가 없죠. 근데 광고건 잡지건 전부 다 급하다고 하고. 그래서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작업을 했어요.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는 색깔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밤에는 컬러링을 안 했어요. 흐린 날도 안 하고.”


조수 없이 혼자 손으로 그려

“나를 보고 일을 준 건데 내가 직접 다 그려야 된다”며 30년 동안 그는 한번도 조수를 두어본 적이 없다. 보통 수주를 받은 후 하청을 주거나 조수를 시키는 게 관행이었지만, 그런 것은 스스로 용납이 안 됐다고 한다. 자존심이 강해 지금껏 일이 없을 때도 누구에게 가서 일을 달라고 해본 적이 없었고, 일이 들어와도 내키지 않아 거절한 적도 많았다.

“이제는 광고 일러스트를 손으로 그리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어요. 컴퓨터 그래픽으로 하면 빠르고 비용도 덜 드니까. 사진 위에다 보정하고 합성해서 편집하면 하루 저녁이면 다 끝난다더군요. 나는 일주일씩 걸리는데.(웃음) 아직도 손으로 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다 광고계 원로들이야. 내 나이가 벌써 환갑이니 같이 일하던 사람들도 다 업계를 떠났죠.”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지만 아날로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일본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데 우리는 아날로그가 죽어가고 있다”면서 “그나마 출판 쪽은 상황이 낫지만 거기도 점점 힘들 것”이라며 걱정을 내비친다. 그는 지금까지 작업한 내용을 날짜와 작업 일수는 물론 보수까지 꼼꼼하게 적어 놓았다. 노트 한 권 분량이다. 그가 그린 일러스트는 총 952점. 그중 502점의 원본을 보관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평균 잡아 한 달에 세 개씩은 작업을 했다는 얘기니 한 번도 쉰 적이 없다는 그의 말이 빈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고도 시간이 날 때면 동물이나 새 그림을 하나씩 그린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도 자신이 하는 일을 떠나지 않는 그에게는 일과 놀이의 구분이 따로 없는 듯했다.

“가장 힘든 건 시간은 다 됐는데 작품이 맘같이 안 나올 때죠.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 하하. 헤어날 방법이 없거든. 아직도 일을 시작할 때마다 긴장이 굉장해. 요즘엔 더 무서운 게 점점 게을러진다는 거예요. 남들은 그만하면 이제 쉬어도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건 또 내 적성이 아니고.”

그는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최고의 대우를 받아왔다. 하지만 수작업인 데다 일을 가려서 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는 늘 풍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돈 더 벌어오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힘들면 쉬라”고 말해주는 아내와 두 딸에게 늘 고맙다. 그는 지금까지 작업한 것들을 모두 모아 생전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부모들이 아이들 손잡고 와서 보면 굉장히 재미있을 거야. 자식들에게 ‘우리는 예전에 이런 거 먹고 자랐다’고 설명도 해주고. 이젠 다 추억의 상품들이지.”

사진 : 이창주
  • 200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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