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 목조각 전통 잇는 작가 강용면

옛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게 내 창작 방식

강용면
1957년 전북 김제 출생. 군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199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1991년 중앙 미술대전 우수상, 1995년 제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 초대전 대상 등 1997년?004년 광주비엔날레(광주), 1998년 한국 현대미술 독일 순회전(베를린, 아헨) 등 다수의 국내외 주요 전시 참여. 전북 도청 광장에 기념 조형물 ‘아이들의 꿈’(2004) 설치. 현재 군산에서 전업작가로 활동 중.
할머니의 49제를 지내고 흥법사 절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아침, 안개 속에서 보았던 단청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던 소년은 자라서 조각가가 되었다. 강용면의 고향인 김제 백산마을은 유명한 유학자들을 배출한 유교 사상의 본산지로 요즘도 5대조 이상을 모시는 시제를 지내는 곳이다.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붓글씨를 배웠다. 문명과 개화에 보수적이었던 마을 분위기 덕분에 백산마을은 전기가 가장 늦게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풍습이 많이 남아있던 고향의 기억이 그를 만들었다.

“남들이 왼쪽으로 가면 난 오른쪽으로 가요. 모두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은 재미없잖아요.”

동그란 안경테에 장난기 어린 말투로 작가는 말한다. 그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간 길은 우리의 옛것을 찾는 길이었다. 20여 년 전 한국 미술 전체가 추상적인 외국 사조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던 시절 강용면은 홀로 채색 목조각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옛것을 알고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의 <온고지신>은 강용면의 작품 제목이자 그가 20여년간 추구해 온 작품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가 알고 있는 우리의 옛것은 무엇인가? 그에게 첫 번째로 영감을 준 것은 상여에 얹는 채색 목조각들이었다. 이승을 떠나는 길의 동무가 되어주는 이 채색 목조각들은 살아서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그가 만든 동자상, 여인상, 동물들의 모습은 익살스럽고도 넉넉해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군산 옥산의 평야 한 귀퉁이의 돌머리에 자리한 100평 규모의 쌀 창고가 그의 작업실이다. 그곳에는 그간의 작업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설치 작품으로 만들었던 당집이며, 그 유명한 ‘놋쇠 밥그릇’이며, 아크릴과 LED(light emitting diode)를 사용한 최신작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멋진 전시장이기도 하다. 대학을 나온 이곳 군산에서 그는 20여 년째 터를 잡고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모두가 서울로 올라가야 사람 구실을 한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지역에서 터를 잡고 활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처음엔 교수 할라고 했지.”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교수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교수가 되려고 강의를 한 그 9년 동안이 가장 아까운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 시간에 작품을 더 열심히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지방에 있으면, 긴장감을 잃고 안주하게 되기 쉽지요. 잠시 손 놓아 버리면, 아주 감을 잃게 돼요.”

그는 한번도 손을 놓은 적이 없었다. 작품에만 전념하기로 한 후 2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가졌고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에게 유명세를 가져다준 작품은 <온고지신-주왕>이었다. 거대한 놋쇠 밥그릇에 노란 종이꽃을 가득 담은 이 작품은 부엌을 관장하는 주왕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밥심’으로 사는 한국 사람들의 감성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고봉으로 쌓아올린 밥은 모두 상여를 장식하는 종이꽃들이었다. 이 밥은 생명의 밥이요, 제사상에 오르는 망자를 위로하는 밥이었다. 이 노란 종이꽃들은 서천에서 상여꽃을 만드는 할머니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했다. 노란 꽃밥이 담긴 놋쇠 밥그릇 주변에 노란 꽃(밥알)을 흩어놓고 누드 모델이 누워있는 장면은 모티브는 전통적이지만 시각적인 효과에 있어서는 지극히 현대적이었다.

〈온고지신-주왕〉

“복돼지 해 맞아 돼지들 만들어요”

〈비보이〉
추상 조각과 설치 작품이 주를 이루던 미술계에서 채색 목조각의 전통을 계승한 그의 작품은 미술계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작품은 1997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되어 대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제가 작품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사람들이 낯설어했지요. 지금은 우리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무언가 역할을 해냈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껴요.”

그에게 전통만큼 중요한 것은 대중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가 ‘지신(知新)’에 몸을 아끼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걸, 작품이라고 해놓고 작가가 혼자 좋아라 하면 안 되지요. 머리 아프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것이 좋아요.”

그가 기반하고 있는 민화나 목조각들은 민중의 생활 속에서 민중들의 염원을 담고 태어난 것이니, 태생부터 대중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 시대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방식을 택하니 늘 새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설치되는 곳도 공공건물이나 학교같이 사람들과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전북 도청 광장에도 그의 대형 작품이 설치되어 지역 주민과 삶을 나누고 있다.

〈사천왕상〉
최근에 그가 고른 재료는 간판에 많이 쓰이는 투명 아크릴과 LED, 자동차 외장 도료다. 모두 현대 도시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것이다. 이 재료들을 가지고 그는 반가사유상, 사천왕상, 승무를 추는 모습, 남사당패의 공연 모습을 만들었다. 푸른색 아크릴 속에 반짝이는 LED를 넣은 작품들은 도시의 밤을 비추는 불빛을 끌어안고 있다.

〈토끼〉
서울의 봉은사에는 사천왕상이 있다. 이 서있는 사천왕상들을 투명한 아크릴로 만들어서 하단에서 빛을 쏘아 올린다. 완벽하게 빛으로 색채감을 내고 있다. 초록, 보라, 빨강, 노랑의 빛이 투명한 아크릴을 물들이며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원래는 나무로 만들어졌던 둔탁한 사천왕이 영혼만 남은 듯 투명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종교적인 신비감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물질을 비물질화시키는 디지털 시대의 시각적인 체험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강용면은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동시대인들과 더불어 호흡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전통의 동시대화는 소재뿐 아니라 전통적인 모티브를 해석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모델이 입고 있는 궁중 예복은 투명한 아크릴로 되어 있어서 속이 훤히 비친다. ‘투명’함은 현대인들의 은밀한 관음증과도 연관이 있다. 남사당패의 공연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은 비보이의 춤동작을 연상시킨다. 그의 작업실에 찾아갔을 때 그는 나무로 조그만 돼지들을 깎아서 다듬고 있었다.


2007년이 600년 만에 찾아오는 최고의 돼지해라 기복의 의미를 담은 돼지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경쾌하고 현대적인 감각을 주는, 자동차 도료로 칠해진 돼지들은 욕심 많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색색의 돼지들이 오밀 조밀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미술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현대 미술이 관객과의 소통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어쩐지 관객을 더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일쑤지만, 그의 작품들은 관객의 눈높이를 딱 한 단계만 높이는 재미가 있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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