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드라마 만드는 자매 작가 홍정은·미란

우리야말로 ‘환상의 커플’

지난 12월 3일자로 종영한 SBS 드라마 〈환상의 커플〉. 방송이 끝난 지금도 시청자 게시판에는 ‘시즌 2를 만들어 달라’는 네티즌들의 요구가 거세다. 인터넷 다시보기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는 등 〈환상의 커플〉은 20~30대 젊은 층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꼬라지 하고는~”, “어린이들, 잠을 자야 키가 커. 평생 그렇게 짧은 채로 살고 싶으면 떠들어”, “지나간 짜장면은 돌아오지 않아” 등 톡톡 튀는 대사들은 ‘어록’으로까지 만들어졌다.

드라마를 쓴 작가는 홍정은(32세), 미란(29세) 씨 자매. 이들의 드라마가 화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쾌걸 춘향〉과 〈마이 걸〉에 이어 〈환상의 커플〉까지 자매가 지난 2년 동안 집필한 작품 셋은 매번 화제 만발이었다.

독특한 캐릭터의 주인공, 재기가 번득이는 대사, 코믹과 감동이 적절히 어우러진 설정이 이들 드라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자 인기 요인. ‘홍 자매 표 드라마’로 불릴 정도로 신선한 작품을 선보이는 데는 예능국 구성작가 출신이라는 두 사람의 이전 경력도 톡톡히 한몫을 한다.


MBC 코미디 작가 공채에 합격하며 방송과 인연을 맺은 언니 정은 씨는 〈웃찾사〉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서 대본을 썼고, 동생 미란 씨는 시트콤 〈달려라 울 엄마〉 〈진실게임〉에서 보조 작가로 일했다. 드라마 작가로 전업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2004년 KBS 드라마 하나가 엎어지면서 급하게 찍을 작품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구상한 시놉시스를 가지고 찾아갔지요. 별 기대는 안 했는데, 감독님이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내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게 대본을 쓰게 됐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드라마 작가를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그렇게 시작한 작품이 바로 〈쾌걸 춘향〉. 언니 정은 씨는 “운이 좋았는지, 반응이 좋아 곧바로 다음 작품인 〈마이 걸〉을 하게 됐다”고 한다.

“정식으로 드라마 공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요. 저희는 재미있겠다 싶으면, 무조건 해요. ‘어, 드라마에 이런 것도 나와?’라고 할 만한 상황이라도. 저희 작품이 다른 드라마와 뭔가 좀 다르다고 느낀다면, 아마 그런 요소들 때문일 거예요.”

한 줄의 대사,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동생과 함께 하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다는 정은 씨. 대본을 쓰기 시작하면 두 사람은 아예 속초의 한적한 바닷가 펜션으로 거처를 옮긴다. 결혼 5년차인 정은 씨도 이때만큼은 남편과 떨어져 동생과 생활한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약 석 달간을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본만 쓰는 것이 이들의 작업 방식이다.


끊임없는 수다 속에 나오는 대사

자매가 집필한 드라마. 위로부터 〈환상의 커플〉〈쾌걸 춘향〉〈마이 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둘이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는 미란 씨는 “이런 상황에서 이 주인공이라면 어떤 말을 할까, 어떻게 대처할까, 등등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건질 만한 것이 한두 개 나온다”고 한다. 〈환상의 커플〉에서 여주인공 안나가 숫자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초코볼을 주며 “셀 수 있는 만큼만 먹어라”고 하는 장면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 따라 해봐, 하나, 둘, 셋…’ 하는 식으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겠지만 안나의 성격상 그렇게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부분의 상황들은 이렇게 만들어요. 캐릭터를 먼저 구상하고, 그에 맞는 줄거리와 대사를 만드는 거죠.”

그래도 이야기가 풀리지 않을 때는 드라이브를 한다. 바닷가를 따라 달리면서 작품과 상관없는 얘기를 나누다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고. 미란 씨는 “우리가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쥐어짜면 다 나오게 돼있다”며 꽤 솔직한(?) 대답을 던진다. 동생의 답에 대한 언니 정은 씨의 부연 설명은 이렇다.

방송 작가가 되기 전 두 사람은 취직을 못 해 집에서 눈칫밥을 많이 먹었다. 4녀 1남 중 첫째와 셋째인 둘은 공무원과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 졸업 후 정은 씨는 공무원 시험을, 미란 씨는 임용고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쉽나요. 번번이 떨어졌죠, 뭐. 나중에는 뭐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방송국에 간 거예요.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별로 마땅치 않으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완전히 대우가 달라졌어요.(웃음) 구성작가 시절과 비교하면 경제적인 면에서나 집안에서의 위치나 여러 모로 여유가 생겼지만 삶의 질은 오히려 더 떨어졌어요. 2년 동안 세 작품을 하느라 거의 노숙자 수준으로 살았다니까요. 시골에 틀어박혀 대본 쓰기에만 열을 올리는 동안 친구들도 다 떨어져 나갔어요.”

“다른 친구가 없어 휴가를 즐기고 있는 지금도 이렇게 지겹게 둘이 붙어 다닌다”며 웃는 정은 씨. 무슨 질문이든 유쾌하고 솔직하게 답하는 두 사람은 명랑 쾌활한 드라마 속 주인공들과 참 많이 닮았다.

이들이 구상하고 있는 차기작은 ‘판타지 홍길동’. 미란 씨는 “무협과 코믹, 멜로가 섞인 퓨전 사극으로 독특한 캐릭터의 홍길동이 될 것”이라고 귀띔해 준다. 하지만 당분간은 충분히 휴식을 취할 계획. 제작사에서 지원하는 보너스 형식의 해외여행도 예정돼 있다.

“젊은 층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홍 자매. 이들이 드라마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 낼 ‘홍길동’은 또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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