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이 만난 사람 | 한국에서 환갑 맞은 올리버 스톤 감독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영화로 재현

사진 : 숲 영화사 제공
영화를 보는 것이 직업이 되면서 내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감독 중의 한 사람이 올리버 스톤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영화를 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그 자신이 성장하면서 영향 받은 미국의 60년대와 70년대 문화와 사회를 영화화하는 데 자신의 핵심 역량을 집중시켰다. 해방 이후 미국 문화의 영향권 아래서 성장한 한국의 대중들은, 올리버 스톤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제기한 문제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할리우드 감독들 중에서도 현대 미국의 정치와 사회, 문화를 정공법으로 영화화하는 드문 감독이다. 자유주의와 신좌파적 성향을 보여주는 그는, 자신의 성장기에 영향을 미친 록 그룹 도어스(도어스 1991년), 미국 CIA의 남미정책(살바도르 1986년), 미국의 월남전 참전(플래툰 1986년), 반전운동(7월 4일생 1989년), 케네디 암살(JFK 1991년), 워터게이트 사건(닉슨 1995년), 권력화 되어가는 미디어에 대한 풍자(내추럴 본 킬러 1994년) 등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 중에서 <플래툰>과 <7월 4일생>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으며, 감독 데뷔 이전에 각본을 썼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1978년)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바 있다.

최근에는 <레이건 저격사건>(2001년)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에 관한 영화 <코만단테>(2003년)를 찍기도 했었다. 미국 현대사를 살아 꿈틀거리는 영상으로 바꿔놓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미국 현대사에 전환점을 이룬 9·11 테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최신작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9·11 테러를 미국 내에서 최초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올리버 스톤 감독을 만났다. 1946년 뉴욕 출생이니까 그는 올해 환갑이다. 그가 내한해 있던 9월 15일은 그의 환갑날이었다. 그의 아내는 한국인 정선정 씨(45세). 두 사람 사이에는 딸 타라(11세)가 있다. 기자회견장에서 올리버 스톤 감독은 가족들과 함께 한국식으로 만든 떡 케이크를 잘랐다.

올리버 스톤의 작품들. 좌로부터 〈플래툰〉 〈7월 4일생〉 〈도어스〉 〈월드 트레이드 센터〉.
“아내가 한국인이고, 내 딸도 반쪽은 한국 피가 흐르고 있어 60세 생일을 한국에서 맞게 돼 무척 기쁘다. 나는 영화에서 위기를 극복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좋아하는데, 한국이 바로 그런 모습인 것 같다. 한국 영화도 많이 본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가 이런 수준에까지 도달할 줄 몰랐는데, 요즘 한국 영화를 보면 깜짝 놀란다. 10년 전부터 한국 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 영화 중에는 배우들의 이미지를 잘 잡아낸 이명세 감독의 〈형사 듀얼리스트〉와 〈쉬리〉 〈무사〉 〈조폭 마누라〉 등을 재미있게 보았다면서, 예전에는 아시아에 중국과 일본 영화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아시아 영화의 중심에 한국이 있다고 했다.


“내 영화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9ㆍ11 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월드 트레이드 센터〉촬영 장면.
그의 영화에 정치색이 너무 강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을 ‘드라마티스트’라고 표현하면서 자신의 영화에는 항상 사람이 중심이고, 정치색이 짙은 것처럼 보이는 영화도 그 내면에는 인간의 고뇌와 휴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고통 받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어떻게 다시 용기를 얻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9·11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 9·11 당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굴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강한 심지와 의지를 가지고 난관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내 영화가 그날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남길 바란다. 이 영화를 보며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렇게 대처했구나’ 하는 것을 미래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실화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그는 그날 구조대원으로 활약했던 사람들을 직접 출연시켰다고 했다. 영화의 3분의 1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 주변에서, 나머지 분량은 LA에서 촬영했다. 무너진 돌덩이와 콘크리트, 철근 등을 재현했는데, 그 사이로 카메라 접근로를 만드는 게 어려웠다. 컴퓨터 그래픽도 많이 사용했다.

“건물에 있던 사람 중 3000여 명이 죽었고 20여 명만이 살아남았다. 음모론은 있을 수 없다. 미국 정부가 자국 국민을 대상으로 이런 무참한 테러를 저질렀다고는 보지 않는다. 9·11 당시 언론들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서 희생양을 찾으려 했다. 미국인들은 모두 테러리스트들에 대해 분노를 느꼈고 복수심을 느꼈다. 나 역시 알카에다에 어느 정도 복수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직후 일어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해서는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다분히 음모론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 대량살상 무기가 없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인의 입장에서뿐 아니라 재난을 당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세계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내한 기자회견이 있던 그날 밤, 한국의 119 소방대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특별 시사회가 개최되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내가 영화 속에서도 그렸지만 여러분들이 하는 일은 정말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영화로 그 뜻을 전하고 싶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한국의 119 소방대 측에서 올리버 스톤 감독에게 소방제복과 모자와 꽃다발을 전달하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영화 속에서 그려줘 감사한다”라고 하자, 올리버 스톤 감독은 “한국은 나에게 제 2의 고향 같은 곳이다”라고 고마워했다.

한국 방문 중 환갑을 맞아 부인 정선정 씨, 딸 타라와 함께 생일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 올리버 스톤 감독.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그의 영화 정신만큼은 늙지 않는 것 같다. 내가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내추럴 본 킬러>다. 타란티노 감독이 각본을 쓴 이 작품에서 올리버 스톤 감독은,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타란티노의 새로움이 올리버 스톤이라는 거목을 만나 탄생한 <내추럴 본 킬러>는 전복적 주제와 혁신적 실험이 균형감 있게 표현된 올리버 스톤 영화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그러나 올리버 스톤 감독은 실제로 일어난 미국 현대사의 한 부분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에 훨씬 더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영화를 통해 동시대 사람들과 행복한 커뮤니케이션을 꿈꾸는 그의 의지가 살아 있는 한, 앞으로도 그는 계속 현실에서 건진 생동감 있는 소재로 영화를 만들 것 같다.
  • 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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