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잊을 수 없는 사람 | 매일 개밥을 실어 나르는 남자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운수리. 가만히 입속말로 읊조리다 보면 벌써 입 안 가득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바로 내가 사는 동네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7년이 넘었다. 병든 어머니께 좋은 공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찾아낸 곳이 수동면이었다. 어머니는 맑은 공기와 흙, 따뜻한 햇살 속에서 회복되셨고 그전보다 더 건강해지셨다.

그를 처음 발견한 것은 7년 전 어느 추운 겨울밤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겨울바람이 차창을 두드리며 윙윙댈 뿐 차도 사람도 뜸했다. 하마터면 내가 운전하던 차에 그가 치일 뻔했다. 경기도 마석에서 수동면 가는 길은 2차선 도로이고 따로 인도가 없다. 어두운 밤에 어두운 색 옷을 입고 2차선 도로 한쪽에서 리어카를 끌고 걸어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간신히 그를 피해 갈 수 있어서 위험한 순간은 면했지만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며칠 후 이른 아침에 분명히 그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다시 보았다. 역시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그의 존재가 내 인식 속에 자리 잡은 후 더 자주 눈에 띄었다. 어떨 때는 운전을 하면서 오늘은 아직 그가 이 길을 지나지 않았나, 그가 차에 치일 수 있으니 좀 더 조심해서 운전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의 리어카 끌기가 우리 동네에서는 이미 일상적인 일이었나 보다. 남동생과 어떤 이야기 끝에 그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동생은 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동생에 따르면 그는 혼자 사는 60대 중노인이다. 그가 끄는 리어카의 작은 드럼통에는 자신이 기르는 개가 먹을 음식이 담겨 있고, 그는 그 음식 찌꺼기를 마석에 있는 음식점에서 얻어 날마다 리어카로 실어 나른다.

그가 하루에 리어카를 끄는 길은 왕복 20km가 넘는 데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힘든 코스다. 그럼에도 그의 리어카 끌기는 쉬는 날 없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리어카를 끌고 그 먼 길을 오간다는 것이 내게는 참 불가사의한 일로 여겨졌다. 그래서일까. 그에 대해 리어카를 끄는 장면 아닌 다른 모습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몸을 앞으로 깊이 숙인 채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는 그에게서는 힘들다, 빨리 가야겠다, 찻길이라 위험하다, 춥다, 덥다 등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세상사를 초월한 사람처럼….

파룬궁(法輪功)의 창시자 리훙즈(李洪志) 대사가 강의하신 《전법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람에게는 정(情)이 있어, 사람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산다. 육친정겞껙旋痴쨦부모지정겙㉰쨦우정, 매사에 정분을 중시하며 곳곳마다 이 정을 떠날 수 없다.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미움 등 인류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이 정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늘 ‘정’에 허덕이며 무엇인가를 먹고 싶어 하고, 어떤 일은 하기 좋아하지만 또 어떤 일은 하기 싫어한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기는커녕 자기중심적이고 매사에 화도 많이 내며 잘 풀리지 않는 일은 남 탓으로 돌린다.

그런 점에서 그는 생각도 집착도 모두 내려놓은 도인(道人) 같다. 어쩌면 그는 ‘무위’(無爲)를 닦는 수련자일지도 모른다.

우리 마을에는 그 말고 도를 닦는 이가 또 있다. 날마다 한쪽 팔을 높이 치켜들고 “배트맨~”을 외치는 그에게 내가 지어준 이름은 ‘배트맨’이다. 마흔쯤 되어 보이는 그는 하루 종일 길가에서 교통정리를 한다. 조무래기들의 놀림감인 그도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정을 내려놓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두 명의 도인을 보아온 지 어느덧 7년이 되었다. 나는 그 7년 동안에도 굳건하게 온갖 정을 끌어안은 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솔직히 내려놓는 방법을 모르겠다. 그들은 나 보고 그냥 내려놓으라는데….
글쓴이 서갑숙님은 1983년 MBC 공채 15기 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MBC 베스트셀러극장 <초록빛 모자> <서울뚝배기> 등의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파 탤런트다. 1997년에는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란 저서를 발간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 출연 중이다.
  • 200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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