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만드는 민중미술 작가 임옥상

“세상에 하나뿐인 놀이터 만들어요”

임옥상이 누구던가? 민족미술협의회 대표를 지낸 민중미술의 대표주자. 억압된 현실을 서슬 퍼런 그림으로 고발하던 그는 요즘 놀이터 만들기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의 꿈은 “우리나라에 하나도 같은 놀이터가 없게 하는 것”이다. 어느 주택단지에든 있는 놀이터. 그러나 그네, 시소, 미끄럼틀 등으로 정형화되어 있는 놀이터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경기도 시흥시 신청동에 자리 잡은 ‘새로운 예술문화 어린이 놀이터’. 시흥시 설계 공모에 당선돼 최근 임옥상 미술연구소가 선보인 이 놀이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롭다. 이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똑같은 놀이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장소를 어떻게 놀이에 활용할지는 순전히 아이들 몫이다. 놀이터는 2층으로 되어있다.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는 2m 높이에 자리 잡은 공간과 땅을 70cm 정도 파내 만든 그 아래 공간. 가운데 구멍 사이로 아이들은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논다.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알 것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구석진 공간을 좋아하는지. 비 오는 날에도 아이들은 아래쪽 공간에서 나름의 놀이를 개발할 것이다.

메인 놀이터를 둘러싸고 거꾸로 만들어 놓은 나무 집과 미로, 작은 공연장이 놓이고, 놀이터 2층에는 연필 세 자루 위에 까치집을 올려놓은 것 같은 형상이 자리 잡았다. 황토벽에 아이들이 마음껏 그리고 파내면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게 해놓기도 했다.

그는 요즘 대웅제약과 손을 잡고 ‘무장애 놀이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장애인이 ‘장애 없이’ 비장애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놀이터란 뜻의 무장애 놀이터. 대웅제약은 임직원들이 매달 기부해서 모은 돈과 그만큼 회사가 출연한 금액, 여기에 신제품 수익금 중 일부를 모아 기금을 마련했다. 서울시와 국회, 경기도 구리시로부터 땅을 제공받아 놀이터를 짓는데, 임옥상 미술연구소가 그 디자인을 맡은 것. 임옥상 씨는 세 곳에 각기 다른 형태의 놀이터를 선보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무장애 놀이터

시흥시 신청동에 자리 잡은 새로운 예술문화 놀이터의 거꾸로 만든 집.
오는 9월 서울숲에 세워지는 무장애 놀이터는 동화와도 같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키가 9m나 되는 거인이 등장하는 ‘거인의 나라’. 거대한 뱀이 놀이터를 둘러싸고 길게 누워있다. 한 손을 짚고 일어서려는 강한 몸짓의 거인은 에너지를 내뿜고, 심장에는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휠체어로 거인의 몸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게 구상했다. 임옥상 씨는 거인 놀이터를 소재로 어린이 글짓기나 그림대회를 열어 아이들의 상상력을 계속 확장하겠다고 한다. 무장애 놀이터는 국회와 구리시에도 연이어 들어선다.

임옥상 씨의 요즘 행보를 보면 작가라기보다 문화사업가로 부르는 게 온당할 것 같다.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한동안 사회성 짙은 작품을 발표해 왔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광주교대 교수를 지내, 5·18때 현장에 있었던 자의 부채의식을 한동안 지울 수 없었다.

그의 활동 영역은 그러나 거기에 멈춰있지 않았다. ‘공공미술’을 표방하며 ‘임옥상 미술 연구소’를 만든 그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퍼포먼스나 설치미술, 벽화작업, 놀이터와 공원 설계에까지 참여하며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손을 대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 작가의 입김을 불어넣어 다시 꿈꾸게 하는 게 그의 일이다.

1, 2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시흥시 놀이터.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홀로 자기 길을 가는, ‘고독한 예술가’를 꿈꾼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울 평창동에 자리 잡은 임옥상 연구소. 이곳은 예술가의 작업장이라기보다 디자인 사무실 같았다. 실제 그의 일이 우리 사회 곳곳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이다.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보다 문화사업을 이끄는 ‘CEO’로 생각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가 많고, 뭐든 앞장서야 했다는 그가 왜 미술을 택했을까? 임옥상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야기를 했다.

“그 시절엔 제가 지금보다 훨씬 예쁘고, 순진했어요.”

학생회장 선거에 나갔는데, 아이들을 주먹으로 거느리던 친구가 라이벌이었다. 학생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그 친구에게 총무부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선뜻 응한 친구는 학생회를 파행으로 이끌면서 그를 계속 괴롭혔다. 그 경험 때문에 “절대 정치판으로는 안 간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대신 그림을 택했다. 밀레의 그림 ‘만종’을 보고 감명을 받은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 희망란에 ‘밀레 같은 화가가 되고 싶다’고 썼고, 서울대 미대에 들어갔다. 그는 그림을 현실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에게 예술은 역사와 함께하는, 시대의 산물이다.

“어릴 때부터 박수 받으며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 대개 미대에 옵니다. 그들이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작업을 하다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지 못하면 ‘내 그림 이해 못 한다’며 자기 세계에 갇혀 버립니다. 어떤 일을 해도 기본 리서치가 중요한데, 의사도 어디가 아픈지 우선 환자를 관찰하고 처방을 해야 하지 않나요?”

자신을 변화시킨 사건으로, 그는 1990년대 작업 <대지-어머니>를 든다.

“‘피폐한 농촌’을 주제로 작품을 준비할 때였어요. 촌부(村婦) 모델을 찾기 위해 능곡 시장을 돌아다니는데, 한 아주머니가 자신의 어머니를 소개했어요. 자식 아홉을 낳아 5명을 잃은 어머니였어요. 자식들을 품었다 내보내고 이젠 텅 빈 축 늘어진 배를 보고, ‘한번 만져봐도 되겠느냐?’고 물었죠. 배에 손을 대는 순간, 전율이 왔어요.”

서울숲에 들어서는 무장애 놀이터 스케치.
어머니를 모셔온 딸은 “엄마, 이 사람이 빨개벗으라고 하면 당장 나와”라고 했다. 그가 누드 모델을 부탁하자 할머니는 “보아하니 나쁜 일 하는 사람 같지는 않고, 죽으면 썩어질 살덩어리, 뭐가 부끄러우냐”며 스스럼없이 벗었다. 처음에는 가슴에 못을 박는 등 직접적인 메시지와 이념성 강한 작품으로 시작했지만, 만드는 동안 달라졌다. 한 손은 흙을 단단히 짚고, 한 손은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대지와 한 몸이 된 어머니. 그에게 어머니나 흙은 ‘생명력’을 의미했다.

그는 그때 “민중을 부르짖으면서 막상 그들이 가진 힘은 몰랐다”는 반성을 했다. 그들에게 무얼 베푸는 게 아니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8년부터 시작한 ‘당신도 예술가’ 프로젝트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예술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삶 속에서 예술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욕심이 많다. 우리 생활과 문화를 변화시키고 풍성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다. 이 일을 위해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손잡고, 철저하게 사업 계획도 세운다. 그러나 혼자 앞서 나가지 않는다. 그의 꿈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사진 : 이창주
  • 2006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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