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걸(파리 국립오페라단 솔리스트) & 김미애(국립무용단)

떨어져 사는 연인이 만드는 하나의 무대

오는 8월 19일과 20일, 이틀간 정동극장에서는 재미있는 공연 하나가 막을 올린다. 주목받는 두 명의 젊은 무용가 김용걸 씨(33세)와 김미애 씨(32세)가 한 무대에 서는 것. 한쪽은 발레에서, 한쪽은 한국무용계에서 최고의 기대주로 손꼽히는 인물로 서로 다른 장르의 무용수가 한 무대에 선다는 점 외에도 두 사람이 지난 9년간 사귀어 온 연인 사이라는 데서 더 주목받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을 선정, 그들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선보이는 정동극장의 인기 레퍼토리 ‘아트 프론티어’ 시리즈 중 하나로 기획된 이번 공연은 정확히 말하자면 김미애 씨의 무대다. 여기에 김용걸 씨가 함께 출연하는 셈. 김미애 씨는 예중겳물?출신도, 집안의 적극적인 뒷받침도 없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우리 무용계에서는 독특한 존재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생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했던 그는 지난 1997년 한성대 무용학과를 졸업한 후 국립무용단, 시립무용단, 서울예술단 등 한국의 대표적인 무용단에 동시 합격했다. 전국 대학의 무용학과 졸업생 수 대비, 국공립 무용단체의 신입단원 선발 수가 5% 미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는 입단 다음 해에 곧바로 주역을 맡아 다시 한 번 돌풍을 일으켰다. 국립무용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무대는 이번이 처음.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난 김미애 씨는 이 공연에 대해 “제안을 받고 두렵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다.

“공연 제목이 ‘아트 프론티어’잖아요. 그 이름에 걸맞게 그동안 제가 추구해 온 춤에 대한 열정과 춤을 통해 느껴지는 희로애락을 표현할 거예요. 1,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저 혼자 춤을 추고, 2부는 용걸 씨와 같이 해요. 회색빛 하늘이라고 이름 붙인 2부에서 용걸 씨는 프랑스, 저는 한국에서 서로 떨어져 생활하는 아쉬움과 그리움을 춤으로 표현하게 되죠. 항상 느끼는 감정이라 그런지,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웃음) 무엇보다 이번 공연에서는 한국 무용과 발레의 경계를 넘어서는, 뭔가 새롭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안무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공연 내용을 설명하는 김미애 씨 옆에서 김용걸 씨는 ‘잘할 것으로 믿는다’며 힘을 실어 주었다. 1년 전, 이미 정동극장의 ‘아트 프론티어’ 무대에 선 경험이 있는 그에게 “여자친구에게 조언을 하느냐”고 묻자, “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히려 방해가 될까봐 아무 말도 안 했다”며 웃는다. 현재 파리 오페라발레단에서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그는 이 공연을 위해 일시 귀국했다. 두 사람은 매일 저녁,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나 안무를 다듬고 있는 중이다. 워낙 오랜 연인이라 서울과 파리에서 각자 연습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호흡이 척척 맞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지난 1997년. 당시 국립발레단과 국립무용단의 연습실은 통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2년차 발레 단원이었던 김용걸 씨는 어느 날, 맞은편 연습실에서 나오던 신입 단원 김미애 씨를 보게 되었고, 그 단아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몇 달 동안 말 한마디 못 붙이고 끙끙 앓기만 하던 그는 용기를 내 김미애 씨의 고향인 제주도까지 따라 내려가 마음을 고백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촉망받는 무용가로 주목받던 터라 둘의 관계는 한동안 무용계의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용걸 씨는 2000년 파리로 떠났다. 계약직 견습생 신분으로. 부산예고와 성균관대를 거쳐 1995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잇따라 국제대회에서 수상하며 한창 이름을 날리던 그가 그렇게 떠나는 것에 대해 모두들 의아해했다.

“세계무대에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에 무작정 떠났는데, 생각보다 많이 힘들더라고요. 정말 노력을 많이 했지요. 동양인에 대해 벽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열심히 한다면 얼마든지 넘을 수 있는 벽이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됐어요.”

그는 무섭게 연습에 몰두했다. 그 결과 파리 오페라발레단에 입성한 지 5개월 만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정단원이 되었다. 50명 중 단 한 명을 뽑는 자리였다. 다시 6년 뒤, 그 어렵다는 솔리스트 자리에 올랐다. 솔리스트는 주역 무용수 다음 가는 자리로, 파리 오페라발레단 300여 년 역사상 동양인 솔리스트 발레리노는 그가 처음이었다. 초창기 파리에서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상당 부분 이 친구의 공”이라며 김미애 씨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여자친구가 파리 가서 활동하라며 등 떠밀어

“선뜻 파리로 가라고 등 떠민 것도 사실은 이 친구예요. 발레에 대한 제 애정, 큰 무대에 대한 욕심 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솔직히 그때는 그게 고마운 건 줄도 몰랐어요. 낯선 땅에서 몇 년간 지독한 고생을 하고, 외로움과 싸우면서 삶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이 친구의 배려가 얼마나 고마운지 깨닫게 됐어요. 처음 파리 갔을 때 연습에만 빠져 사느라 서울에 연락도 거의 안 해 한동안 마음고생 많이 시켰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다 미안하죠.”

김용걸 씨의 파리행 이후 두 사람은 1년에 한 번 정도밖에 볼 수 없었다. 김용걸 씨가 여름 바캉스 기간을 이용해 귀국하는 한 달 반의 휴가가 유일하게 데이트할 수 있는 시간. 그나마도 각자 이런저런 일정이 많아 자유롭게 얼굴을 볼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래도 올해는 연말쯤에 또 한 번 만날 기회가 생겼어요. 이 친구가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수석 무용수가 안무를 맡은 외부 공연에 참여하게 됐거든요. 제가 이 친구의 공연 비디오를 보여 주었는데, 안무가가 그걸 보자마자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제안하는 거예요.

김미애 씨의 외국 공연 소식을 전해주며, 김용걸은 마치 자기 일처럼 자랑스러워했다. 서로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고, 또 힘이 되어주는 모습이 참 멋지다. 내년에는 꼭 결혼을 할 것이라며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았다.

사진 : 이창주
  • 2006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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