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은 놀이예요"

전북 고창 선동초등학교 발명왕 아이들

전북 고창군 공음면, 고창읍에서도 자동차로 40여 분 더 들어가야 하는 곳에 선동초등학교가 있다. 그 학교가 요즘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학교 바로 앞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배경이 된 데다, 전교생이 40명밖에 안 되는 학교에서 5명이 당장 상품화할 수 있는 물건을 개발해 특허청으로부터 실용신안을 따냈기 때문이다.

17만 평 너른 들녘에 자리 잡고, 측백나무가 울타리처럼 둘러쳐져 있는 학교. 매년 학생 수가 줄어들어 폐교 위기에 놓인 이곳에 ‘발명 바람’이 분 것은 2003년 9월 노회현 교사(30세)가 부임하면서부터였다. 초임지로 이곳에 온 노교사는 아이들의 놀잇감이자 교육용으로 발명을 적극 활용했다.

고창에서 태어나 자란 노회현 씨 자신이 어린 발명왕이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고창군 신림면 굽두리.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골짜기였다. 네 살 때 산목마을로 나와 살게 된 그는 뭐든 보이는 대로 뜯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호기심이 남달랐다. 부모님을 따라 우연히 들어간 보건소에서 발명만화를 보게 됐고, 그때부터 그의 ‘발명 인생’이 시작됐다.

“6학년 때 펜 끝에 불이 켜지는 반딧불 펜을 발명했어요. 재료를 따로 구할 수 없으니 대나무를 깎아 펜으로 만들고, 라디오를 뜯어 찾아낸 꼬마전구를 이용했죠. 그걸 들고 발명대회에 나갔는데 그만 탈락하고 말아 의기소침해졌어요. 그런데 5~6년이 지난 후 제 아이디어 그대로 만든 제품이 나오더군요.”

중학교 때는 추운 겨울날 등하굣길을 오가며, 입으면 훈훈해지는 ‘열 조끼’를 생각해 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해 학교 공부에 급급하면서 발명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그때 누군가 계속 지도를 해 줬더라면’하는 아쉬움이 그를 ‘발명 교사’로 이끈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발명은 놀이입니다. 농촌이라 다른 놀거리가 많지 않아서인지 아이들이 자연이나 주변에 대한 관찰력이 남다릅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생활하면서 겪는 불편함을 찾아보라’고 한 후 과학적인 원리를 이용해 이를 개선하는 방법은 없을까 토론을 했습니다.”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니 ‘언젠가 폐교될 것’이라는 위기감, 위축감에서 벗어나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싶은 마음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을 심어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생 발명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도 발명 지도 교사로 ‘과학기술부장관 표창’을 받고, 김샘찬, 한상민, 양경훈, 김소희, 강해솔 등 2~5학년 학생 5명이 6건의 실용신안까지 따 냈다. 3학년 한상민 학생은 ‘책이 넘어지지 않는 책꽂이’를 고안해 실용신안을 받았고, 4학년 강해솔은 ‘무동력 초간편 캔 압축기’, 4학년 양경훈은 ‘안전한 지게차’, 5학년 김소희는 ‘계량부가 구비된 용기’, 제일 어린 2학년 김샘찬은 ‘물품수거 접착기’와 ‘망실 물품 회수기’로 두 개의 실용신안을 따 냈다.

김소희 양이 개발한 ‘계량부가 구비된 용기’는 용기 바깥에 수평 눈금과 배출량 확인 눈금을 표시해, 안에 든 액체의 용량과 배출량을 곧바로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 특이한 점은 기울여서 액체를 따를 때에도 용량과 배출량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학생인 오빠가 어렸을 때부터 감기에 자주 걸렸어요. 물약의 양을 좀 더 간편하게 조절해서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요즘 ‘모자에 커다란 바람개비를 달아 헬리콥터처럼 날아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골몰해 있다. 강해솔 양이 만든 ‘무동력 초간편 캔 압축기’는 엄마를 위한 발명품이다.

“다 쓴 부탄가스 용기를 못을 사용해 처리하는 엄마가 손을 다칠까 봐 걱정이 됐어요.”

발명에 빠져 있던 지난 한 해가 가장 행복했다는 해솔 양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게 꿈이다. 양경훈 군의 ‘안전한 지게차’는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아빠가 눈이 좀 안 좋은 편이에요. 지게차를 타실 때 운전석에서 앞이 잘 안 보인다고 하셔서 운전석이 앞뒤로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넘어지지 않는 책꽂이’를 만든 한상민 군은 화가나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지만, 틈틈이 발명도 하겠다고 한다. 발명이라는 게 아이들에게 평생 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발명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것을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아이디어는 우리 생활 속에 있습니다.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하다 보면 실마리가 풀립니다.”

노회현 교사는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발명 교육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도시학교처럼 여건을 갖추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특허청이나 발명 관련 기관에서 책을 구해 오고, 마을 창고나 길가의 폐품을 모아 와 재료로 활용했다. 학부모를 찾아가 공구를 얻어 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도 자연히 아이들의 발명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번에 발명으로 인정받은 아이들 쪽으로만 관심이 쏠리니까 다른 아이들이 소외되는 것 같기도 하고, ‘왜 우리 아이는 빠졌냐’고 섭섭해하는 학부모도 계세요. ”

학교 관사에 사는 그는 문을 개방해 놓고 24시간 아이들과 어울린다. 방과 후뿐 아니라 주말에도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연구를 거듭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한다. 올해는 발명 지도 학생을 더 늘리고, 특허청의 ‘대한민국 발명전’과 과학기술부 ‘전국 학생 과학발명품 경진대회’에 모두 도전할 계획이다. 특허청 발명교육센터 순회강사를 하고 있는 그는 발명 교육은 발명품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고력과 논리력, 창의력을 높이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한다.

샘찬이만 봐도 그렇다. 올겨울 고창에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축사가 여기저기 주저앉았다. 샘찬이의 어린 마음에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 친구 현우네 집 축사가 무너졌어요.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게 힘든데, 철골 안에 열을 넣어서 눈을 녹이면 어떨까요?”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선동초등학교 앞의 보리밭은 곧 푸른 물결로 넘실댈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보리밭을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호기심 그 자체일 것이다.
  • 200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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