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명 깊게 읽은 책|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

글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2003년 어느 따스한 봄날, 낯선 남자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전해 온 사연인즉 “제가 쓴 글이 과연 책이 될 수 있을지 한번 보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다음 날에 내게 배달된 글의 제목은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본 가족 로망스’였다. 남성 정치학도의 가족 로망스라…. 일단은 호기심에 A4 용지에 써 내려간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만 앉은 자리에서 밤을 꼬박 밝히고 말았다.

그 가족 로망스가 얼마 후 《남자의 탄생》 이란 다소 치기 어린 제목을 걸고 세상에 나왔다. 직접 책을 들고 찾아온 필자를 처음 대면했을 때 우린 십년지기와 해후한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담을 나누었다.

뜻한 바 있어 뒤늦게 유학길에 올랐건만 그만 외지에서 임파선 암 2기 판정을 받았던 충격을, 항암제 부작용으로 장애인이 되고 아내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는 불운을 거듭하게 되었음을, 마흔을 훌쩍 넘기기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던 자신의 인생을 그는 마치 이웃집 남자의 이야길 들려주듯 그렇게 담담히 풀어 갔다.

《남자의 탄생》은 “왜 나란 놈은 도무지 되는 일이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헤매던 끝에 나온 부끄러운 부산물이라 했다. 결국 이 땅의 남자란 당신 아들을 ‘동굴 속 황제’로 키운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과, 재떨이 하나에도 거창한 조국애를 투사하는 아버지의 성화(聖化)한 우상이 탄생시킨 합작물이란 고백이었다.

책을 덮는 순간, 그래도 우리 아니면 누가 한국 남자를 사랑할 수 있으랴, 따스한 서러움이 밀려오던 기억이 새롭다.

그 필자가 2005년 여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가을에야 들었다. ■
글쓴이 함인희 님은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에모리대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사회학과 부교수, 한국사회문화연구원 정책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며, 《여성들에게 고함》 , 《한국 가족상의 변화》 , 《한국 사회학 50년사》 등의 저서를 썼다.
  • 2006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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