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는 작가’ 최정화

눈부시게 하찮은 물건들의 쓸모

서울 성북구립미술관 입구에서부터 100m 정도 숲길이 생겼다. 녹색 플라스틱 소쿠리를 쌓아 올려서 만든 숲이다. 최소 3m에서 최대 9m 높이로 쌓아 올린 녹색 소쿠리는 진짜 나무 못지않게 시원한 느낌을 주면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성북구립미술관이 거리갤러리 개관 기념으로 2019년 4월 7일까지 여는 전시다. 최정화 작가는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즐겨 사용하는 소재인 플라스틱 소쿠리를 쌓아 숲을 만들고, 지역 주민 300여 명도 작업에 끌어들였다. 주민들은 집에서 사용하던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컵과 그릇들을 엮어서 각자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자연과 인공,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깨면서 최정화 작가의 지론대로 ‘모든 게 예술,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현장이었다.

최정화 작가의 작품은 전국 곳곳,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에서는 그의 작품 〈꽃나무〉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강화플라스틱으로 커다랗게 만든 붉은 꽃송이들이 둥글게 모여 있는 작품이다. 리움미술관에 들어가면 그의 작품 〈연금술〉이 천장부터 1층 로비까지 늘어뜨려 있다. 플라스틱 그릇들을 조합해서 만들었지만 빛을 받아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연금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부천테크노파크에는 그가 만든 꽃 모양 조형물 〈당신은 꽃입니다〉가 있다. 부천지역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가져온 고철로 만든 조형물이다.

森, 321 Art Community Project, Tainan, Taiwan, 2013
일본, 중국,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오스트리아, 호주, 브라질, 칠레,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리투아니아, 모나코, 체코, 대만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했고, 이 중 많은 나라가 그의 작품을 영구 전시하고 있다.

세계 최고층 빌딩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에도 올해 중 그의 작품이 설치된다. 9m 높이의 대형 〈꽃나무〉라고 한다.

Kabbala, Daeguartmuseum, Daegu, Korea, 2013
올해 일정도 꽉 차 있다. 6월에는 프랑스 앙시페스티벌에 참여하고, 9월 7일부터 2019년 2월 5일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9월에 중국의 휴양지 하이난에서 열리는 전시에 참가하고, 10월 16일부터는 방콕 아트비엔날레에 참가할 예정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새로 생기는 도시개발단지에 설치할 작품도 의뢰받았다. 보통 2~3년 후까지 전시 계획이 잡혀있다고 한다.


‘묵히고 삭힌 물건’에 대한 애정

Breathing flower, San Francisco, 2012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작품을 구상하는 그의 요새이자 보물창고인 작업실은 서울 연지동, 옛 자취가 진하게 남아있는 복닥복닥한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66년에 지어진 2층 양옥이라고 했다. ‘묵히고 삭힌 물건’들에 진한 애정을 느낀다는 그는 ‘묵은’ 공간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둥지를 튼다. 10년을 길렀다는 담쟁이덩굴이 2층까지 올라와 있고, 널찍한 옥상에 놓인 화분들이 서로 초록을 뽐내고, 방방이 들어찬 작품들로 어디든 꽉 차 있는 공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여유가 느껴지고 편안했다. 온갖 요소가 잡탕으로 뒤섞여도 잘 조화되어 있을 때 느껴지는 자연스러움, 편안함이었다. 공간에서도 최정화 작가의 특징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최정화라는 작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보티첼리, 소르젠떼 같은 세련된 패션 매장이나 서울문화재단, 쌈지길 같은 문화공간을 디자인한 공간디자이너, 〈복수는 나의 것〉,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나쁜 영화〉 등 영화의 미술감독,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무대디자이너, 사진작가, 전시기획자, 그래픽디자이너이기도 하고, 심지어 술집이나 카페,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평창 동계 패럴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 미술감독을 맡았다.

싸구려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순금을 가지고 작업하기도 했고, 원색의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작가로 유명하지만 그가 디자인한 패션 매장은 미니멀하고 세련된 감성이 돋보였다.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서양미술에 빗대 ‘키치’니 ‘팝아트’로 해석하는 전문가들도 있고, ‘현대사회의 대량생산, 물질주의에 대한 풍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최정화의 작품은 그저 최정화답다. 그는 스스로 작가나 예술가라고 말한 적이 없지만, 어느새 전 세계에서 초청하는 작가가 되었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굉장히 쉬우면서도 알쏭달쏭하다. 무한히 확장해서 해석할 수 있는 열린 텍스트와 같다.

Rosy Life, Seoul Museum of Art, Seoul, Korea, 2012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1986년과 1987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과 대상을 연이어 받았다. 그런데 1987년 대학을 졸업하자 장래가 촉망되던 화가의 길이 아니라 인테리어 회사에 들어갔다. “신표현주의 기법에 실험요소를 좀 더 집어넣어 그렸더니 상을 받더라고요. 그림으로 사람들을 속이기가 너무 쉽다는 생각에 집어치웠습니다. 인테리어 회사에서 갖가지 재료와 공사현장을 경험한 게 제 작업에 기반이 되었죠.”

1989년에는 가슴시각개발연구소를 만들었다. 명함, 도록에서 영화, 인테리어, 건축, 무대, 공공미술까지 ‘모든 것을 디자인’하는 곳이다. 대학 시절 수업에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는 그는 ‘이게 제 사부’라면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등받이와 방석이 없는 나무 의자에 다리가 없는 플라스틱 의자를 연결해서 만든 하나의 의자였다. 1986년 시장통에서 발견한 그 의자를 그는 지금도 사부로 모시고 있다. 가게나 손수레에 잔뜩 쌓아 올려진 물건들도 그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이다.

남들이 싸구려라고 촌스럽다고 무시하는 물건들을 가지고 그는 누구든 쉽게 공감하면서 전 세계가 열광하는 작품을 빚어내는 연금술을 구사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도 그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대신 삶의 생기와 열기로 가득 찬 재래시장이나 벼룩시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건져낸 물건들로 작품을 만든다. 한국과 일본, 중국,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에서 발견한 동서고금의 물건들이 하나로 엮이면서 작품이 된다.


모두가 예술가, 노숙인과도 작업


그의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인간’으로 읽힌다. 그는 다양한 국적,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조화롭게 한 덩어리가 되는 세상을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부서진 나무 의자와 플라스틱 의자가 한 몸이 되었듯 서로 모자람을 채워주며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꾸는 게 아닐까?

그는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누구든 금방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설명서가 필요 없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내 작품의 근원은 사랑”이라는 말도 한다. 가치 없다고 버림받고 무시당하던 ‘눈부시게 하찮은’ 재료들을 모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다고 한다.

그는 기존의 예술, 기존의 미술관에서 ‘갑갑함’을 느꼈다고 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들만 향유하는 미술, 현학적인 문법으로 사람들을 오히려 소외시키는 엘리트 미술에 반발심을 느낀 듯했다. 대신 ‘잘 놀자’는 생각으로 ‘설치는 작가(설치작가가 아닌)’가 되었다고 한다. ‘잘 논다’는 게 무슨 의미냐고 물었더니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이고 평화로워지는 길, 자기 뜻이 펼쳐지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거창하게 말하면 인간해방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물건들로 작품을 만들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작업에 참여시켰다. 술집이나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 전시공간이나 공연공간으로 내주면서 사람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판을 깔았다. 그는 서울역 앞 노숙자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예술에 치유의 기능이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기존 예술의 개념이나 권위를 부정하는 그가 사실은 예술에 대해 더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원시시대 예술가는 인간의 염원을 하늘에 전달하는 제사장 역할을 했다”면서 그 말에 동의했다.

“제 작품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염원이 깃든 원시미술과 민화, 과장된 표현으로 환상적인 세계를 꿈꾸었던 바로크미술, 자신만의 예술언어를 구축했던 추사 김정희의 세계까지 뒤섞여 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추사 김정희를 좋아했고, 보통사람들의 염원을 자유롭게 표현한 민화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민화를 3차원으로 옮긴 게 제 작품입니다. 색색으로 커다랗게 만든 꽃나무나 과일나무는 민화와 동화, 초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줍니다. 한편 원시미술의 원초적인 에너지, 성적인 에너지도 내포하고 있어요. 꽃은 사실 식물의 생식기잖아요? 플라스틱으로 높이 쌓은 탑도 남근석(男根石)을 대신해서 인간의 염원을 하늘에 전달하는 거지요.”

누구보다 많은 일을 하지만 ‘잘 논다’는 한마디로 자신의 생활을 압축하는 그는 자동차도 휴대전화도 가져본 적이 없다. 세속적인 성공에 들뜨지 않는 그에게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하느냐고 물었더니 “아침마다 화분에 물을 주면서 말을 건넨다”며 비결을 이야기한다. 어떤 대상에든 정성과 사랑을 기울이는 게 그의 삶과 작품의 원천이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제일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제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이 이야기꽃을 피울 때, 이야기가 숲을 이루어 서로서로 연결될 때”라고 말한다.

“미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제 작품을 보면서 ‘저것도 예술이야?’라고 재미있어합니다. 전문가들은 새롭다면서 흥미롭게 바라보고요. 극과 극이 이렇게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 2018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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