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⑦ 〈빌리 엘리어트〉

아들의 꿈과 그 발목을 잡는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아버지

13세기 중세 독일의 궁정 시인 볼프람 폰 에셴바흐(1170~1220)가 말했다. “그대의 꿈이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가엾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말 가여운 것은 한 번도 꿈을 꿔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꿈과 이상, 희망에 대한 인상적인 문구들은 차고 넘친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명언으로 유명한 나폴레옹 또한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그만큼 인간의 삶에서 꿈과 희망이 중요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감독 스티븐 달드리, 2000)는 바로 그 꿈의 실현을 소재로 하는 영화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식의 메시지가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까지 건드린다.

영화의 배경은 1984년 영국 북부의 탄광촌 ‘더럼(Durham)’이다. 이곳에서는 탄광 노동자들이 정부의 시책에 반대해 파업을 벌이고 있다. 11세 소년 ‘빌리’(제이미 벨)는 광부로 일하는 아버지(게리 루이스)와 형 ‘토니’(제이미 드레이븐),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허름한 집에서 살고 있다.

어머니는 바로 전해 38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빌리는 엄마를 대신해 아침마다 삶은 달걀과 토스트를 할머니에게 챙겨 드리는 착한 손자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형은 매일 시위에 참여하느라 정신이 없다. 빌리와 한 방을 나눠 쓰는 형은 동생에게 퉁명스럽기 그지없다.


소년, 발레를 만나다


빌리는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루 50센트씩 내고 체육관에 다니며 권투 연습을 한다. 하지만 권투가 자기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어느 날 탄광 노조원들에게 공간을 내준 발레교실이 체육관 귀퉁이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윌킨슨’ 부인(줄리 월터스)이 지도하는 발레 수업을 우연히 보게 된 빌리는 묘하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경험한다.

하지만 빌리는 “남자가 발레라니, 호모나 하는 거지”라고 여긴다. 이에 대해 윌킨슨 부인의 딸이자 빌리와 학교 같은 반 친구인 ‘데비’(니콜라 블랙웰)는 “여기 더럼에선 안 해도 다른 데서는 해”라고 일러준다.

빌리는 윌킨슨 부인에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윌킨슨 부인은 빌리가 춤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다. 빌리 또한 이동도서관에서 발레에 대한 책을 대출해 집에서 연습할 정도로 재미를 붙인다.

그 와중에 아들이 발레 연습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 ‘재키 엘리어트’는 크게 화를 낸다. “남자는 축구나 권투, 레슬링을 해야지. 네가 아버지 얼굴에 먹칠을 하는구나.” 빌리는 “발레 무용수는 운동선수만큼 단단해요. 호모나 하는 게 아니에요”라며 대든다.


빌리는 아버지 몰래 계속 발레 연습을 하는데, 발레를 가르치는 윌킨슨 부인은 정원과 자가용이 있는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그의 남편은 명예퇴직한 알코올 중독자다. 직장 내 여직원과 바람을 피우다가 아내에게 걸려 각방을 쓰고 있다.

미스터 윌킨슨은 당시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광부 월급 주면 남는 거 없다. 파업은 공산주의자들이 선동하고 있는 거다. 나 같으면 당장 탄광 폐쇄할 거다.”

〈빌리 엘리어트〉는 1984~1985년 영국의 광부 대파업을 배경으로 한다. 그 중심지가 바로 더럼을 포함한 영국 북부 광산지대였다. 1980년대 초반 영국의 대처 정부는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구조조정을 강하게 밀어붙여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대처 정부는 그중에서도 특히 전국광부노조와 날을 세웠다.

1984년 대처 정부는 20개의 탄광을 폐쇄하고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총파업이 시작되었고 전체 광부의 80%가 참가하며 규모가 커졌다. 이때 연행된 광부만 1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정부의 강경 진압과 1년이 넘는 기간 탓에 파업도 와해되기 시작했고, 결국 1985년 3월 노조 지도부는 업무 복귀 결정을 내렸다.


실화를 참조해 제작


〈빌리 엘리어트〉에는 영국의 노동계급이 대처 총리 기간에 겪어야 했던 고통과 집권 보수당에 대한 반감이 직·간접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것은 각본가 리 홀(Lee Hall)이 빌리라는 캐릭터처럼 영국 북부 탄광촌 출신인 영향이 크다. 이 영화는 영국 로열발레단의 남성 무용수 필립 모슬리(Philip Mosley)의 실화를 참조하여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또한 탄광촌 출신이다.

이 영화에선 영국식 유머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윌킨슨 부인의 집에 놀러 간 빌리가 데비와 방에서 나누는 대화가 그렇다.

빌리: 네 엄마, 남자 친구 없어?

데비: 없어. 대신 춤이 있잖아.

빌리: 섹스 대신 춤을 택했다고? 너희 집 참 이상하다.


11살짜리 소년 소녀가 나누는 대화치곤 꽤 당혹스럽다. 하긴 다른 장면에서 데비가 빌리에게 사귀자고 제안하면서 “네가 원하면 내 팬티를 보여줄 수도 있어”라고 말할 때는 그 나이다운 귀여움(?)이 묻어나오기도 한다.


나날이 늘어가는 빌리의 발레 능력을 본 윌킨슨 부인은 런던에 있는 로열발레스쿨 진학을 권유한다. 돈을 안 받고 개인 교습을 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윌킨슨 부인은 2주 후에 지원자의 가능성을 보는 오디션이 열리니 같이 준비하자고 말한다. 재능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오디션 준비를 위해 빌리가 윌킨슨 부인과 함께 춤을 추는 신은 매우 인상적이다. 글램 록 밴드 티렉스(T.Rex)의 노래 ‘아이 러브 투 부기(I Love To Boogie)’에 맞춰 춤을 추는 동안 빌리 가족의 모습이 교차 편집된다.

방에서 헤드폰으로 LP판을 들으며 흥에 겨운 형 토니, 욕실에서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아버지, 오랜만에 발레 포즈를 잡는 할머니의 모습이 비춰진다. 비록 힘든 삶에 찌들어 있지만 충분히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임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빌리의 재능을 인정하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오디션 당일 날, 노조와 경찰 간의 충돌 와중에 형 토니가 연행되면서 빌리는 오디션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이날 빌리의 집으로 찾아온 윌킨슨 부인과 토니 사이의 격렬한 말싸움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예체능 분야로 나가려 할 때 부닥치게 되는 난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답답한 마음을 빌리는 좁은 마당과 골목길에서의 멋진 탭댄스로 표현한다.


이윽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석탄이 떨어진 빌리네 집은 죽은 엄마가 아끼던 피아노를 때려 부숴 땔감으로 쓰는 최악의 상황이다. 아버지가 탄광 노동자들과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빌리는 친구 ‘마이클’(스튜어트 웰스)과 함께 텅 빈 체육관에서 춤을 추고 있다. 마이클은 집에서 여자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동성애 성향의 친구다.

그때 아버지가 갑자기 체육관으로 들어오고 빌리는 무언가 결심한 듯 아버지 앞에서 단호한 표정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아버지는 마음을 바꾼다. 빌리가 런던에 있는 로열 발레스쿨에 오디션을 보러 가려면 여비 등 돈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다른 동료들에게 배신자라는 욕을 먹으며 파업을 접고 현장에 복귀한다. 이를 만류하는 토니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 꼴을 봐라. 그 애마저 망칠 수는 없어. 이제 겨우 11살이야. 그 애에게 기회라도 주자.” 아들의 꿈과 그 발목을 잡는 현실 사이에서 아버지와 큰아들 토니는 서로 부둥켜안은 채 흐느낀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며 간직하고 있던 아내의 목걸이와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마련한다. 런던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부자는 이런 대화를 한다.

빌리: 어떤 곳이에요?

아버지: 뭐가?

빌리: 런던요.

아버지: 나도 모른다. 더럼을 떠나 본 적이 없다.

빌리: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 내가 런던에 왜 가겠니?

빌리: 수도잖아요.

아버지: 런던엔 광산이 없잖아.

빌리: 맙소사. 그 생각밖에 못 해요?


런던의 오디션에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춤을 선보이고, “일단 춤을 추게 되면 모든 걸 잊게 된다.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다”고 말한 빌리는 로열발레스쿨에 합격한다. 빌리가 합격 통지서를 받아든 바로 그날 노동조합의 굴복으로 파업은 끝난다. 빌리가 런던으로 떠나는 날 아버지와 토니는 탄광 갱도로 들어간다.

시간이 흘러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아버지와 토니는 빌리가 주연을 맡은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러 런던으로 오고,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한 청년이 된 빌리는 무대에서 힘차게 도약한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젊은 관객은 역경을 딛고 꿈을 실현하는 소년의 스토리에 주로 감동을 느끼겠지만, 중장년 관객은 자식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아버지의 모습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자식에게 자신이 처한 비루한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절박함은 언제나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이 영화로 빌리 역을 맡은 제이미 벨은 2000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글래디에이터〉의 러셀 크로,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 〈원더 보이즈〉의 마이클 더글러스를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윌킨슨 부인 역의 줄리 월터스는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2001년 미국 아카데미상에서는 감독상, 각본상, 여우조연상 등 3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주인공 빌리 역은 공개 오디션으로 선발했는데 그 조건이 ‘발레와 탭댄스에 능한 영국 북부 출신 소년’이었다. 2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제이미 벨은 6살 때부터 발레를 비롯해 각종 춤을 배웠고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놀림과 편견을 겪어봤다고 한다.

영화의 성공으로 〈빌리 엘리어트〉는 뮤지컬로도 제작됐다. 영국의 대표 뮤지션인 엘턴 존이 작곡을 담당하고 영화 각본가 리 홀이 작사를 담당한 뮤지컬은 영국 웨스트엔드 초연 이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호주 시드니 등을 거쳐 서울에서도 상연되었다.
  • 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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