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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도시환경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식물을 그리다

화가 박상미

그의 그림을 보면 식물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색들은 화려한 색감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녹색은 무한한 가능성과 밝은 미래, 붉은색은 환희와 따뜻함, 행복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보색대비가 뚜렷한 그의 작품을 볼 때 밝고 힘찬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유다.
“5월이 되면 외할머니 집의 담벼락은 온통 빨간 장미로 뒤덮였어요. 유난히 탐스럽게 피어난 장미라 지나가던 사람들 대부분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볼 정도였습니다. 할머니는 바느질과 뜨개질, 요리, 정원 가꾸기 등 못하는 게 없으셨고, 특히 화초를 잘 가꾸셨어요. 이웃에서 죽어가는 화초를 맡겨 놓으면 싱싱하고 예쁘게 살려내셨습니다. 방학 때면 한 달씩 할머니 집에서 보내곤 했는데, 제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돌아가셨어요. 그 즈음부터 식물들에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잡초만 봐도 마음이 짠해졌어요.”

화가 박상미의 작품에는 언제나 식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초록빛을 내뿜어야 할 식물을 먹으로만 그려 넣는다. 대신 총천연색의 배경이 먹색 식물을 둘러싸고 있다.

“동양화에서 수묵은 단순한 무채색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색깔을 함축하고 있는 색이라고 할 수 있지요. 동양화의 특징이 여백인데, 보시다시피 제 그림에는 여백이 없잖아요? 수묵으로 그린 식물이 여백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 색으로 정의하지 않았기에 보는 사람마다 다양한 색감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먹색의 식물은 저 자신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scene_stare around II〉, 56x75.5cm, indian ink _ korean color on paper over panel, 2012
식물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색들은 화려한 색감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주술을 걸듯 저 자신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색이기도 합니다”라고 설명한다. 녹색은 무한한 가능성과 밝은 미래, 붉은색은 환희와 따뜻함, 행복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보색대비가 뚜렷한 그의 작품을 볼 때 밝고 힘찬 에너지가 느껴지는 게 그때문인 듯했다. 박상미 작가는 이화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을 거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의 작품은 동양화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강렬한 색감과 대담한 구도로 서구적인 감각을 보여주며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장지에 먹과 분채 등 동양화 재료를 고수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제 그림에서 원색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줄 아는 사람도 있어요.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리면 화면을 매끈하게 덮어버리지만, 장지에 분채물감으로 칠하면 종이와 물감이 상호작용하는 느낌입니다. 장지는 숨을 쉬듯 물감을 흡수하기도 하고 내뱉기도 합니다. 분채로 원하는 색감을 얻으려면 네 번 다섯 번 연속해서 칠해야 하는데, 덧칠할 때 물감 속 돌가루들이 사각사각 서로 부딪히는 느낌이 참 매력 있어요.”

〈beyond scene〉, 162x122cm, ink _ color on paper over panel, 2011
2003년 첫 개인전 때 작품의 절반이 팔릴 정도로 그는 비교적 초창기부터 주목받는 작가였다. 첫 개인전의 제목도 〈도시의 숲〉이었다.

“먹으로 수직선을 수없이 내려 그어 숲을 표현한 수묵추상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을 병풍처럼 설치해서 숲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게 했지요. 내 위치가 어디인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후 조금씩 색을 도입한 작가는 2006년부터 분출하듯 뻗어나가는 식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강렬하고 거친 붓질로 그려낸 먹색의 식물 이미지와 원색의 평면적인 공간이 대비를 이루는 작품이다.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식물에게서 원시적인 생명력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scene_정지된 풍경 II〉, 81x100cm, indian ink _ korean color on jangji over panel, 2011
“제 그림이 정형화된 틀에 갇히는 것 같아 재미없어질 때였어요. 틀을 깨고 싶었고, 내 손이 움직이는 대로 마음껏 그리고 싶었습니다. 원하는 색을 사용하면서 팝아트적인 느낌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요.”

과감한 시도였지만 반응이 좋았다.

“그때 경기도미술관이 공공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제 작품을 사주었습니다. 통장에 입금된 돈을 보면서 제 노력이 인정받는 것 같아 자신감을 얻었지요.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모두 해소되지는 않았습니다. 작업실 월세와 재료비는 꼬박꼬박 들어가지만 매달 월급이 나오는 직업은 아니니 그림이 잘되어도 못되어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뭔가 해내고 싶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구가 컸기에 그만큼 현실적인 제약도 크게 느껴졌습니다. 인간은 환경적인 제약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닌가,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를 고민했습니다.”

〈safeguard_blossom 08〉, 45.5X53cm, indian ink _ korean color on jangji over panel, 2015
그는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보면서 ‘인간과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고〉라는 제목의 작품에서는 작은 화분에 어울리지 않게 크고 무성하게 뻗어나가는 식물이 보인다. 환경적인 제약을 뛰어넘어 도약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이는 듯하다.

“화분 속 식물 역시 자신이 살아갈 환경을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어떤 크기의 화분에 심어져 어떤 양분을 먹고 자라는지, 어떤 주인을 만나 어떤 공간에서 키워지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됩니다.”

〈sceneONshow_coexistence with nature〉, 130X130cm,indian ink _ korean color on jangji over panel, 2016
작가는 요즘 인공 정원과 수족관 속의 풀, 조화 등 인간들의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유사 자연’을 주로 그리고 있다.

“녹지를 훼손하면서 식물을 내쫓았던 인간이 이기심과 편의 때문에 다시 식물을 도시환경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잖아요? 일회용 화분에 심어져 줄줄이 놓여 있는 식물들을 보면 만원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보는 느낌이에요. 마트 한편에 놓인 식물들이 가습기로 수분 공급을 받으면서 겨우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띕니다. 그런 가운데도 팔려가기 위해 예쁜 척해야 하지요. 조화도 중요한 도시 식물의 하나가 된 것 같아요. 요즘에는 조화를 너무 진짜같이 만들어서 생화와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하나같이 예쁘게 만개한 모습이라는 거죠. 똑같은 표정으로 방글방글 웃으며 활짝 피어 있는 조화들을 볼 때 묘한 감정이 듭니다.”

〈sceneONshow_II〉, 100X100cm, ink _ color on paper over panel, 2010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도시의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식물들의 모습과 우리 인간의 모습이 뭐 그렇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수묵의 활달한 필선과 강렬한 색상 대비가 조화를 이루면서 강인한 생명력과 활기를 느끼게 한다.

“생명이 숨 쉴 구멍이 없을 것 같은 아스팔트 틈 사이로 비집고 올라와 꽃을 피우는 식물들을 볼 때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인간 역시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생명력을 꽃피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요?”


2011년 결혼해 여섯 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작가는 “요즘엔 아이랑 산책하면서 발견한 소소한 풍경들을 많이 그리게 된다”고 말한다.

“결혼 전에는 독일, 파리, LA,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타이베이 등 세계 각국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직접 참가했습니다. 대여섯 점 작품을 들고 가서 거의 다 팔고 올 때가 많았죠. 자신의 집에 걸 작품을 사러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요즘은 그때만큼 자유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감성적으로 채워지는 부분도 있어요. 1주일에 나흘은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셔서 그때는 어쨌든 작업실에 붙어 있으려고 합니다. 지난해 6월에 개인전을 했고, 올해는 이런저런 기획전과 단체전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는 게 올해 목표입니다.”

그는 조선시대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와 자신의 작품을 비교하는 논문을 쓸 계획이라고 말한다. 조선시대 사람들과 현대 한국인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졌다.
  • 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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