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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품은 바다, 가수 장민호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인생을 노래한다”는 닳고 닳은 수식어가 장민호만큼 잘 어울리는 가수가 또 있을까.
장민호의 노래는 꾸밈이 없다.
노래한다’는 느낌보다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흘러넘치는 감성에 노래를 살포시 얹은 듯, 슬픔과 기쁨이, 환희와 비애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사는 게 그런 거지”라며 무심한 듯 읊조리는 노래에서는 관조와 해탈마저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양질의 시간들로 빼곡하게 채워 나간 나이테가 안긴 선물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쓴 흔적은 어디 가지 않는다. 시간의 무게만큼 밀도 있게 쌓이면 언젠가 진가를 발휘한다. 그 다재다능이 임계치를 넘어 폭발하는 순간, 그 사람의 실력과 매력은 측정 불가 수준이 된다.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 결국 늦게 터진 성공이 안긴 보너스다. 장민호가 그렇다. 20여 년을 성실하게 성찰하며 보낸 무명의 시간은 그에게 실력과 겸손을 동시에 안겼다. 아웃풋보다 인풋이 길었던 시간들. 언젠가 올 그날을 바라보며 차근차근 쌓아온 시도와 노력들은 그를 오래도록 빛나게 하는 단단한 무기가 됐다.

실패왕, 노력왕, 긍정왕.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10월 중순부터 시작하는 생애 첫 단독 콘서트의 주제가 ‘드라마’이듯, 장민호의 삶이 곧 드라마였다. 20세이던 1997년 아이돌 ‘유비스’로 데뷔했지만 뜨지 못했고, 2004년에 발라드 그룹 ‘바람’으로 활동했다가 역시 실패, 중간 중간 수영강사, 항공사 승무원 준비 등 방황이 길었다. 그러다 2011년 트로트로 전향하면서 인생 그래프가 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안다. 자기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었을 때의 그 안전한 쾌감을. 그러다 만난 〈미스터트롯〉은 장민호에게 역전 인생을 안겼다.

장민호 팬들의 입덕 순서는 대체로 비슷하다. 처음엔 선명한 이목구비의 외모에 반하고, 두 번째는 그 어려운 시절에도 살뜰히 후배들을 챙겨온 따스한 인간미에 반하고, 세 번째는 갈수록 일취월장하는 노래 실력에 반한다. 남자 트로트 가수 특유의 미끈거림 대신 넘치지도, 과하지도 않는 담백한 노래 스타일은 오히려 장점이 됐다. 그의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 쉽게 빠졌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오디션 스타들의 팬심과는 달리, 그의 팬은 오래도록 뭉근하다.

여름 끝자락과 가을 초입에서 만난 장민호는 그즈음의 계절을 닮아 있었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정과 쓸쓸하지만 성숙한 가을이 동시에 느껴졌다. 석양의 노을빛을 조명 삼아 시작한 촬영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촬영 현장과 인터뷰 시간의 장민호는 집중력이 대단했다. 매 순간 마지막 한 컷인 듯 표정을 실었고, 질문마다 사력을 다해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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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팬츠 :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타일리스트 오영주(@오쌩)

촬영 현장에서 보니 의외로 진지하더군요. 평소 워낙 입담이 좋아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여유롭게 진행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멀티가 잘 안 돼요. 뭘 하나 하면 집중도 있게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해요. 하나에 빠지면 다른 걸 못 챙기니 잊어버리는 것도, 잃어버리는 것도 많습니다. 수시로 ‘내 휴대폰 어딨지?’ 해요(웃음).”


그 집중도 있는 시간들은 결과적으로 장민호 씨한테 어떤 시간이 됐는지요.

“노래 연습도 그래요. 뭔가를 바꿔보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또 연습해요. 그러다 보면 3~4개월 내내 컨디션이 저조한 상태로 있기도 합니다. 하루아침에 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들거든요. 하지만 〈미스터트롯〉 하면서는 달라졌어요. ‘인이 박인다’고 하잖아요. 이제는 기계처럼 노래할 수 있는 컨디션은 갖춘 것 같아요. 몸은 더 힘들어도.”


아이돌 ‘유비스’ 시절과 지금,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음색도, 음역대도, 감성 표현도 다르더군요. 어떤 연습을 얼마나 했길래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사람마다 성대도, 소리 내는 방식도, 호흡법도 다 다르잖아요. 스무 살부터 많은 선생님들과 레슨하면서 저만의 것을 찾아왔어요. 정답은 나에게 있더군요. 아무리 좋은 선생님을 만나도 내가 내 노래를 객관적으로 들어보기 전에는 제대로 알 수 없어요. 저는 수시로 내 노래를 녹음해서 들어봐요. 이게 가장 큰 공부가 됐어요.”


연습량이 많지요.

“늘 뭔가를 앞두고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연습도 하고 다른 것도 챙기고. 가만있지 못해요. 스스로 피곤하게 하는 타입이죠.”



완벽주의를 지향하나요?

“완벽주의자라면 오히려 그렇게 안 하죠. 빨리 완벽하게 끝내놓고 다른 걸 할 거예요. 그런데 저는 뭐가 완성됐는지도 모르고, 완성됐다고 여겨져도 계속하고 또 해요.”


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안 되는 시간이 너무 길었잖아요. 늘 다음을 위해, 더 잘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노력한 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가만있지 못하고 제자리뛰기라도 하는 심정이에요. 그래야 내가 미래에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강박 같기도 합니다.”


수영강사도 했고, 중국어도 능통하더군요.

“수영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아이돌로 데뷔했다가 잘 안 돼서 타격감이 너무 컸어요. 20대 초반에 혼자서 감당하기엔 쉽지 않았죠. 부모님께도 말 못 하고. 충격의 시간이 길어지면 안 되겠다 싶어 수영강사를 시작했어요. 중국어 공부는 한류 열풍 초창기라서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해뒀어요. 어릴 때부터 언어 습득이 빠른 편이었거든요. 중국어 학원을 다니면서 배웠어요.”



음악 장르 역시 다재다능합니다. 팝·발라드·트로트 등 장르를 확확 틀어가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다양한 장르를 잘해왔다고 말씀해주시는데, 이건 결과론적인 이야기예요. 만약 제가 트로트로 잘 안 됐다면 아마 ‘뭐 하나 똑바로 하는 게 없네’ 하고 느낄 수 있어요. 제가 한때 그렇게 느꼈거든요. 트로트를 하다 보니 과거의 다양한 경험들이 다 도움이 됐어요. 결과적으로 아이돌 시절이나 발라드 가수로 활동하면서 익힌 감성, 창법, 춤 등이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 됐죠.”


언젠가 잘될 분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시기가 과연 언제일까, 라는 생각을 20년 넘게 해왔어요. 과연 시기의 문제일까, 아니면 자질의 문제일까 하는 고민도 많았고요. 지금 와서 보면 실력만으로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소위 스타가 되려면 정말 수많은 조건들이 딱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것 같아요. 저는 좋은 기회를 잘 만났어요. 겸손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저만큼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은 수없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한 곡을 부르는 3분이라는 시간 안에 실력과 평소 특장점을 다 보여줄 수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미스터트롯〉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대 위에서뿐만 아니라 경연 과정의 이야기들, 평소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거대한 스토리를 만들어냈잖아요.”


〈미스터트롯〉 TOP6 결성 이후 1년 6개월 동안 쉼 없이 프로그램을 소화해왔는데요, 어떤 시간이었습니까.

“현실감 없는, 믿기지 않는 시간이었죠. 그런 시간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흘러갔어요. 쉬지 못해서 힘들었지만 기분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 활동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해왔으니까요.”


장민호 씨의 노래는 납작하지 않아요. 모든 노래에 희로애락이 묻어납니다. 부르면서도 입체적 감성을 느끼는지요.

“입체적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 목소리 자체에 슬픈 감성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노래를 불러도 슬프게 부를 수 있거든요(웃음). 어쩌면 아이돌이 안 맞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댄스곡도 슬프게 들린다는 얘길 들었으니까요.”



장민호는 단정적인 표현을 조심스러워했다. “어쩌면” “아닐지도 몰라요” “그런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같이 다른 가능성을 열어둔 개방형 답변을 했다. ‘실패’라는 단어를 쓸 때도 “실패에 가까웠다” 혹은 “실패라고들 한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어떤 답변을 하든 “내 생각은 이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사견일 뿐,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어요”가 괄호 안 지문에 녹아난 듯싶었다.

삶의 다양한 양태를 겪어내면서 그는, 삶이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라는 진실을 마주하게 됐다. 슬픔과 기쁨, 성공과 실패, 1등과 꼴찌는 반대말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품을 수 있는 모순일 수 있다는 것도. 그래서 그는 어떤 답변이든 오(O), 엑스(X)의 이분법으로도, 사지선다형 객관식도 아닌, 자기만의 주관식 언어로 곰곰 생각하면서 답변했다. 저마다의 삶은 제각각 귀하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시선이 느껴졌다.


흑역사로 회자되는 영상들이 꽤 있지요.
유비스 시절도 그렇고, 〈스펀지〉 실험맨 영상도 있고요. 그 시간들을 실패라고 생각하나요?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미를 위해 그 영상들을 보여주는데, 저는 전혀 창피하지 않아요. 낯 뜨거워서 얼굴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이렇게 할 때는 있지만. 왜냐하면 그때는 그게 너무 간절했거든요. 제가 그 시절을 흑역사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많은 분들이 지금 흑역사 속에서 살겠어요. 그건 흑역사가 아니에요. 그 순간의 저로선 최선이었고, 다른 분들도 각자의 최선을 살고 있어요.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그때의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는 분들께 잘 버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 순간들이 나중에는 흑역사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거든요.”


44세의 장민호가 타임머신을 타고 스무 살의 장민호를 만난다면 그 시절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요?

“딴 일을 찾아, 라고요(웃음). 이게 말이 쉬워서 20년이지 진짜 긴 시간이에요. 현실적으로 봤을 땐 ‘야, 빨리 다른 길로 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한 우물형과 다재다능형 중 스스로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는지요.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지고 한 우물을 파는 편이에요. 그런데 다재다능이라고 해서 그것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건 아니고 조금씩 잘해요.”


장민호 씨 팬들 중에는 노래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성에 반해서 찐팬이 된 분들이 많아요.

“이 부분이 너무 낯 뜨거워요. 저는 그냥 다 같이 잘되면 좋겠어요. 물론 현실 가능성은 없지만. 누구 하나가 잘되면 누구 하나는 안 돼야 하는 게 오디션이잖아요. 그런데 동생들을 보니까 제가 처음 트로트 분야에서 했던 고민들을 1도 안 틀리게 하고 있어요. ‘내일 의상을 뭘 입지?’부터요. 그러면 제가 당시에 겪었던 고충이 생생하게 되살아나요. ‘쟤 집에 가면 걱정돼서 어떻게 잠을 자지? 그 시간에 스케줄 끝나고 의상 때문에 동대문을 간다고?’ 하면서 제가 잠이 잘 안 와요. 제가 힘들 때 누가 조금만 도와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변머리가 없어서 도와달라는 말을 못 했거든요. 동생들은 내 전철을 밟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블랙수트 : 슈트더블유
셔츠, 슈즈 :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타일리스트 오영주(@오쌩)

〈사랑의 콜센터〉 마지막 방송에서 권인하 씨의 ‘사랑이 사랑을’을 부른 후 이런 말을 했어요. “동생들은 외롭지 않으면 좋겠다고”요. 외롭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있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외롭다는 증거일 수 있는데요.

“그럼요. 제가 많이 외로웠어요. 그래서 그렇게 얘기한 거예요. ‘형은 20대, 30대 때 너무 외로웠어. 그런데 너희들은 일찍 꿈을 찾았고, 너무 좋은 우리 여섯 명이 있으니까 외로워할 필요가 없어’라는 거죠. 그런 얘기를 주입식으로 합니다(웃음).”


영탁 씨, 이찬원 씨 인터뷰를 하면서 장민호 씨가 어떤 존재인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이찬원 씨는 “우리 팀의 기둥”이라 했고, 영탁 씨는 “이 모든 것이 민호 형이 있어서 가능했다. 민호 형은 우리 팀의 처음과 끝이다”라고 말했답니다. 후배들의 든든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장민호 씨도 그런 존재가 있어요?

“저는 없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지금은 없어도 되는 나이가 됐고, 욕심도 내려놓을 시기가 됐으니까요. 천성적으로 뭔가를 막 가지려 하는 편도 아니에요. 안 외롭진 않지만, 외로워서 고통스럽진 않습니다.”


가장 궁금한 질문이에요. 〈미스터트롯〉 경연에서 정동원 군과 ‘파트너’를 부를 때 노래도, 춤도 다 정동원 군에게 몰아주면서 결과적으로 장민호 씨는 더 낮은 점수를 받게 됐죠. 상대가 잘하면 내가 떨어지는 잔인한 경연의 절체절명 순간에 어떻게 양보가 가능했습니까.

“반대로 제가 여쭤볼게요. 기자님이라면 그 순간에 어떻게 했을 것 같으세요? 열세 살짜리, 서른 살 나이 차가 나는 동원이랑 듀엣을 하는데, 다른 선택이 있었을까요? 아마 다 저처럼 했을 거예요. 저는 컨트롤할 수 있는 나이지만, 동원이는 아직 어려운 나이잖아요. 당시 저는 간·쓸개 다 빼주는 마음이라기보다 그 상황에서 어른이라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한 거였어요.”


결과적으로는 앞서 장민호 씨 바람대로 ‘모두 다 같이 잘되는’ 아름다운 선택이었어요.

“그러니까요. 동원이의 귀여운 모습을 좋아해주는 분이 있다면,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도 계시리라고 확신을 갖고 했어요.”


그 긍정 마인드와 배려는 타고난 겁니까.

“어릴 땐 친구들과 많이 싸우고, 니 거 내 거 많이 따졌어요. 심지어 학교에서 땅따먹기 하면서도 내 땅이 많아야 직성이 풀렸고요. 지고 나서 집에 가면 내내 분했다니까요.”



승부욕이 강한가 봅니다.

“강하죠. 승부욕이 어마어마했는데, 지속적인 훈련과 마인드컨트롤을 통해 바뀐 것 같아요. 20대 초반부터 힘든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매일 버리는 연습을 하게 됐어요. ‘아, 저건 내 거 아니지’ 하고 포기하는 연습. 처음엔 잘 안 됐어요. ‘내 거 아니지’ 하고 돌아섰다가도 다시 뒤돌아보게 되고, 그래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미련이 남았어요. 그런데 계속 버리는 연습을 하다 보니 그 마음이 온전히 제 것이 된 것 같아요. 이제는 편해졌어요. 갖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별로 없어요.”


팬들이 불러주는 별명 중 가장 맘에 드는 것은 뭔가요.

“왕자님이라고도, 사슴이라고도 불러주시죠. 다 감사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원했던 게 제 이름 석 자 알리는 거였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이름 불러주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길을 가다가 ‘어머, 민호 씨’ 하면 ‘어, 내 이름을 알다니’ 하면서 신기해요. 그냥 장민호라고 불러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길이 궁금합니다.

“인생 후반부를 준비하고 있어요. 더 이상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없어요. 내려갈 마음의 준비가 돼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 이상을 가졌고, 누렸잖아요. 이미 충분히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고요. 그저 제 위치에서 위안과 감동을 드리는 일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장민호 노래 좋더라. 들으면 위안이 되더라’ 하는 분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겁니다. 50분이든, 100분이든, 5000석, 1만 석 콘서트장이든 그 어떤 곳이든.”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자기만의 성공의 정확한 목표 지점을 정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걸 정하지 않으면 성공의 정점에서도 그게 성공인지 몰라요. 그러면 전 국민이 다 아는 스타가 됐는데도 앞으로 더 올라갈 곳이 있는 줄 알고 보이지 않는 목표를 향해 계속 걸어갈 수밖에 없어요.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삶을 누리려면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를 알아야 해요. 그래야 아직 안 왔는지, 이미 지나쳤는지를 아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매일 합니다.”


자기 성찰적이군요!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계속 닦달하면서 살게 되니까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또 뭘 더 해야 하지?’ ‘뭘 더 가질 수 있지?’를 생각하면서 계속 달리게 돼요. 내가 목표를 정해놓으면, 되면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만족하는 법을 알게 돼요.”


요즘 행복하세요?

“너무 좋죠. 좀 피곤하지만. 제가 그토록 원하는 삶을 살고 있잖아요. 내려갈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은 내려가야지, 하는 마음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오늘의 감동을 충분히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가 바다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센 풍파를 묵묵히 품어온 거대하고 고요한 바다. 바다는 멀리서 보면 잔잔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바닷가는 치열하기 그지없다. 이제 장민호는 사나운 파고를 넘어 잔잔한 바다가 됐다. 더 깊은 음색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노래를 오래도록 불러주길 기대한다.
  •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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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빼빼로네   ( 2021-10-31 )    수정   삭제 찬성 : 9 반대 : 0
장민호 가수님은 파도를 품은 너른 바다였지요
 지금은 그 파도를 타 넘고 바다를 품었습니다
 
  예쁜여우   ( 2021-10-28 )    수정   삭제 찬성 : 22 반대 : 0
장민호 파도를품은바다 거친파도를 헤치며 묵묵히 여기까지
 온 민호님 노래로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언제나 열 응원 합니다
  미소천사   ( 2021-10-28 )    수정   삭제 찬성 : 24 반대 : 0
장민호 파도를품은바다 더깊고넓은 파도처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장민호 노래 응원합니다
  아바떼   ( 2021-10-28 )    수정   삭제 찬성 : 25 반대 : 1
장민호 님의 노래와 말씀에는 언제나 깊은 감동과 가르침 교훈이 있어요
 항상 존경하게 됩니다
  승요   ( 2021-10-28 )    수정   삭제 찬성 : 28 반대 : 0
장민호는 스승입니다. 어떤 철학자나 강연자의 강의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고 우리를 일깨우네요. 영혼에 불이 들어옵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오늘의 감동을 충분히 느끼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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