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요즘의 뮤지션 지코

글 : 류버들 자유기고가  / 사진 : 뉴시스 

한국에는 3대 코가 있다고 한다. 지코, 개코 그리고 최백호.
각자의 전성기는 다르지만 이 세 사람에게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음유시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 가장 뜨겁고, 또 차가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는 지코다.

그는 지난겨울은 ‘아무노래’로, 올여름은 ‘서머 헤이트(Summer Hate)’로 채우고 있다.
지난 7월 30일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기 위해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지코.

그가 떠난 자리에도 그의 노래는 남아 열일 중이다.
음원차트 1위에 이어, 음악방송에서도 선두다.
사실 ‘지코 없는 지코 노래’는 이미 익숙하다.
그가 만들어 세상에 던져놓은 노래는 모두의 놀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챌린지는 하나의 놀이터다.
# 스무 살의 데뷔
미술 좋아하던 아이, 음악을 좋아하기까지

지코의 본명은 우지호. 미술을 좋아하던 그는 중학교 졸업 후 형과 함께 일본에서 유학했다. 당시 그의 이름을 일본 한자음으로 부르면 ‘치코우’였는데, 유학 시절 친구들은 그를 ‘지코’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소년 지코는 그림을 그릴 때 항상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이센스와 사이먼 도미닉이 함께한 슈프림팀의 라이브 영상을 보게 됐고, 어느새 미술보다 음악이 더 좋아졌다. 한 인터뷰에서 지코는 “일본은 유학생 지코가 뮤지션 지코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 곳”이라고 말했다.

뮤지션 지코는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제법 유명한 아이가 됐다. 초등학교 친구이자 훗날 블락비 멤버가 된 박경과 함께 ‘하모닉스’라는 이름으로 믹스테이프를 만들기도 했다. 2011년 블락비로 데뷔한 지코는 그룹 대부분의 노래를 작사·작곡·프로듀싱했다. 천재형 아이돌 같지만, 실은 생존형에 가까웠다. 이들이 데뷔할 당시 회사 내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모두 떠났고, 앨범을 내기 위해서는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다. KBS2 〈대화의 희열〉에 출연했던 지코는 그를 천재라 부르는 이들에게 “프로듀서는 곡의 콘셉트, 제목, 배열 등 앨범의 전체 제작 방향과 미술디자인까지 총괄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업가 기질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데뷔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이었다.

실제로 지코는 블락비뿐 아니라 아이유, 워너원, 송민호, 김세정 등 최고의 뮤지션들과도 함께 작업했다.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만 200곡에 이른다. 저작권 부자 소리를 들을 만한데, 그가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건 얼마 없다. 처음 노래를 만들고 생긴 수입은 한동안 모두 부모에게 드렸다. 성장기 시절 지코는 집에 빚이 있어서 평탄하지 않았다. 끼니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넉넉하지도 않았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늘 촉박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형 우태운은 한 프로그램 형제특집에 지코와 함께 출연해 “지코는 우리 집 막내지만, 우리에겐 가장 같은 존재였다”라고 말했다.

지코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노래 ‘사람’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발버둥 쳤기 때문에/ We always say 나중에 그 나중에를 위해/ 건너뛴 생일을 빼면 여태 난 십 대”라는 부분이 있다. 단 10분 만에 노래를 만들기도 했던 지코는 이 노래 가사를 쓰는 데 한 달이 걸렸다고 했다. 성장기 지코를 담담히 돌아보기 위해서다. 그는 이 노래를 소개하며 “남몰래 무력감을 숨기고 있던 이들이 혼자 속앓이하지 말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을 때 내 노래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했다.


# 천재형? No, 노력형!
매일 곡 쓰고, 한 시간 독서하고… “힘들 땐 ‘한 번 더’ 외쳐봐”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생존을 위해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음악을 배운 그는 음악이 하나의 영감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때문에 창작이 절실하던 시절에는 매일매일 꼭 한 줄의 곡을 쓰고, 한 시간의 독서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가사에 맞는 펀치라인을 만들기 위해서였지만, 점점 좋은 재료를 갖고 의미 있는 가사를 쓰고 싶어졌다.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처음에는 감에 의지했고, 누군가가 보내는 신호를 기다리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음악을 일로 대한다”고 했다. 그렇게 된 계기로 그는 “나에 대한 과대평가를 멈춘 것”을 꼽았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니 음악이 편해졌고, 기대감 대신 성실함을 더했다. 일단 앉았고, 만들었다. 구력이 쌓여서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다른 작업과는 달리 ‘아무노래’는 정말 단순하게 시작해 가볍게 끝났다.

2010년대 이후 가장 성공한 힙합 싱글이자, 2020년대를 여는 초메가 히트곡 ‘아무노래’는 그렇게 탄생했다. 2009년 소녀시대의 ‘Gee’ 이후 최다 1위를 차지한 곡이 됐고, 10년간 나오지 않던 8주 연속 주간 1위도 기록했다. ‘아무노래 챌린지’는 이제 한국과 중국을 넘어 유럽, 인도네시아에서도 이어지고 있으며, ‘아무노래’는 세계인이 ‘아는 노래’가 됐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도 제일 힘들 때 ‘한 번 더’를 외치잖아요. 그것과 비슷해요. 가장 힘들 때 ‘한 번 더’ 하면 곡이 돼요.”


# 가장 요즘의 뮤지션
세대를 바꿔 대세가 된… “트렌드가 없는 게 트렌드일지도 모른다”


지코는 가장 요즘의 뮤지션이다. 유재석, 이효리, 비 등 시대의 레전드가 모여 여름을 휩쓸고 있는 ‘싹쓰리’도 자신들의 올드함을 희석해줄 ‘요즘 멤버 1순위’로 지코를 꼽았다. 실제 그는 이들의 타이틀곡인 ‘다시 여기 바닷가’의 랩을 메이킹해 작사가에 이름을 올렸다. 쉽지만 쏙쏙 들어오는 가사로 너와의 설렘을 “다시 한 번 받아 보고 싶다”고 쓰고, “다시 한 번 바다 보고 싶다”고 해석해 “역시 지코”라며 멤버들의 감탄을 사기도 했다.

지코 음악의 특징은 ‘남들과 다르게 보고, 한 번 더 비틀어 보기’다. 신곡 ‘Summer Hate’는 여느 여름 노래와는 다르다. 여름은 화면 속에서는 청량하지만, 실제로는 덥고 습하다. 지코는 이런 무더위에 불쾌지수는 높고 더워서 짜증 난다는 솔직한 마음을 노래에 담았다. 어른들이 가만있으면 안 덥다고 하지만 어디 그런가. 에어컨 바람이 미지근해도, 그저 참고 견디는 수밖에.

그 한 뼘의 시각이 지코를 지코로 만들었을까. 지코는 자신을 대세로 보는 이들에게 “트렌드는 언제든 변한다”고 말한다. “트렌드가 없는 게 트렌드일지도 모른다”고. 지난해 지코가 회사를 세운 것도 그런 이유다. 이제 그는 장르 구분 없는 음악을 만들려 한다. 지코가 세운 회사는 KOZ. ‘King Of the Zungle’의 약자다. 데뷔할 때부터 봐왔듯 세상은 정글이고, 살아남으려면 왕이 돼야 한다. 기획사를 차린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미래만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오늘을 놓치게 되더라고요. 사실 오늘이 탄탄해야 미래를 볼 수 있는데 말이죠. 그걸 깨달은 후에는 당장 닥친 일들, 내 앞에 주어진 일들에 충실하려고 해요.”

새로운 회사에서 지코는 정규 앨범 〈THINKING〉을 냈다. 지코로 살던 ‘인간 우지호’에 대한 탐구다. 그동안 그는 “앨범을 냈을 때 좋은 스코어를 받으면 아주 만족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결핍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음악은 차분하다 못해 나지막하다. 그가 만든 ‘남겨짐에 대해’라는 곡에는 “계절은 봄을 데리러 갔지만 난 지난번 겨울 끝자락에 남아”라는 가사가 있다. 세상 화려하고 분방해 보이는 그가 구차해도 떠나지 못하는 어떤 자리에 남아 헤어진 날에서 며칠째 앓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회사는 정글에서 왕이 되려는 야심만만한 외피를 갖고 있지만, 사실은 속내를 털어놓을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한 소년의 골방처럼 보인다.


#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뮤지션 지코가 아닌 훈련병 우지호로


그러면서도 그는 짐짓 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노래한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뭐가 문제야 Say Something”. 그도 안다. 이 심각함이 ‘아무노래’ 한 곡으로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무노래’ 뮤직비디오는 한 바탕 왁자하게 춤을 추고 난 뒤 혼자 남은 지코를 물끄러미 비춘다. 그래도,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것도 필요하다. 잠시나마 아무 계급장 없는 “아무개”로 살면서 말이다. 그는 이제 당분간 뮤지션 지코가 아니라 훈련병 아무개가 됐다. 입대하기 전 지코는 “이 공백이 다시 음악이 차오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입대 소식과 함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코의 어머니가 쓴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그가 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을 단박에 잠재울 이야기였다. 글 속에서 그의 어머니는 “정말 어렵게 키운 아들, 둘째 지호”라며 운을 뗐다. “심장수술과 선천성 천식, 탈장… 그 모든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겨준 기특한 꼬마장군”을 위해 어머니는 수술실 앞에서 기도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제가 잘 키워볼게요. 정말 한 번만 살려주신다면 저 아이를 내 욕심껏 키우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데려가지 말아주세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지호는 자라 지코가 되고 시대를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됐다.


# 2020년의 아무개 지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를 견디는 법… “아무 노래나 일단 틀어”

1992년생인 지코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노래를 찾아 듣는다. 한때는 세계의 트렌디한 노래들을 강박적으로 찾아 들었는데 최근 그가 듣는 노래는 김광석, 조덕배, 조하문 등 한 시절 우리 곁에 있었던, 지금은 노래만 남은 뮤지션들의 곡이다. 노래를 일로써가 아닌, 노래로 들으면서 그의 취향은 한결 더 편안해졌다. 지코는 노래가 ‘의무가 아닌, 의미가 되니’ 한 곡 한 곡이 남다르게 들려온다고 했다.

어느 시절의 노래는 그 노래가 태어난 시간과 공간으로 듣는 이를 실어 나른다. 언젠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이 2020년을 떠올리면 거기에는 ‘아무노래’가 있을 것이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이들에게 청량한 새벽배송처럼 찾아온 노래. 지코는 “아무 노래나 일단 틀”고, “아무렇게나 춤추”자고 제안했고, 거기에 방구석의 숱한 이들이 응했다. 노래 한 곡에, 여기 나와 거기 너만 있으면 가능했던 이 놀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이 시절을 어떻게든 지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2020년의 아무개, 지코가 있었다.
  • 202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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