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동화작가 전이수

“아침 해가 달로 변하는 동안 만나는 모든 것들에서 세상을 배워요”

제주 작은 마을에 사는 12세 동화작가 이수에겐 세상 모든 곳이 학교다.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는 이수의 꿈은 치타처럼 빨리 달릴 수 있는 다리를 갖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놀이이고 또 어디까지가 수업인지 구분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지만, 이수는 이 모든 순간에서 배운다. 집에서는 가족에게 배우고, 산책하다 마주친 아저씨와 동생의 대화에서 배우고, 아침에 인사 나누는 꽃과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에게서 배운다.

지구상에 있는 아주아주 작은 것들부터 아주아주 큰 것들에까지, ‘아침 해가 달로 변하는 동안’ 만나는 모든 것에서 배운다.

훈 매니저(왼쪽)와 이수. 이수는 머리가 길어서 여자가 아니냐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
두 사람은 소아 암 환우들에게 기부하기 위해 머리를 기른다.
나는 제주에 있는 ‘전이수 갤러리-걸어가는 늑대들’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갤러리는 이수의 원화와 글을 상설로 보고 싶어 하는 많은 팬분들의 응원과 펀딩으로 탄생했다.

그리고 참 감사하게도 매주 많은 분들이 갤러리를 방문한다. 이수의 글과 그림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돌아가시는 분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근래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큰 에너지원 중 하나다.

사람들은 학교 가지 않고 세상을 배우는 이수의 삶에 대해 궁금해한다. 어느 날 이수에게 불쑥 물었다.

“이수야, 홈스쿨링하면서 제일 소중하게 배운 게 뭐야?”

이수는 한참 생각하더니 답했다.

“역지사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거. 나는 내 흠을 잘 못 보니까.”


이제 이수는 스스로 배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좋은 것에서 좋은 것을 배우고, 좋지 않은 것에서 좋은 것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배운다.

그런 이수의 순수하고도 깊은 시선은 그림과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수의 최근 그림과 글 몇 편을 소개한다.


우리집 1,2

1010×800mm
1. 우리 집은 가장 소중한 것들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멋진 상자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은 여러 가지로 변신한다. 어떨 때는 놀이동산으로 바뀌고, 어떤 때는 기숙사로도 바뀌고 공방, 카페, 넓은 들판… 생각하면 뭐든지 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곳, 가장 좋아하고 정말로 힘들 때 찾게 되는 곳, 의지할 수 있는 곳,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 살고 있고, 힘들 때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곳.
어떠한 비밀도 걱정 없이 이야기 나누고,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곳. 나는 우리 집을 사랑한다.

1600×1220mm
2. 우리 집은 내가 뭐든 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다. 기타도 치고, 그림도 그리고, 지붕에 올라가 글도 쓰고, 축구도 하고, 철봉에 4분이나 매달린다.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돌고 돌아와 목공으로 의자도 만들고 의자를 딛고 올라가 감도 따 먹는다. 아침 해가 달로 변할 때까지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엄마랑 차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든다. 어젯밤엔 불을 끄고 자려고 누웠는데 반딧불이가 한 마리 들어와 우리의 별이 되어주었다. 나의 하루 시간은 늘 이렇게 행복하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900×600mm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그런 게 자유일까.

가끔은 심장이 원하는 대로 뛰어가고 싶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싶다.

그건 어린아이들이라면 해소되지 않은 호기심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기 전에는 이 많은 호기심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 우리 어린이들이다.

그러나 나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피해나 불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간의 이해가 있다면, 이런 우리들의 마음을 조금은 허락해준다면 고마운 마음으로 커서 이 모든 것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좋은 어른이 될 것이다.

그때엔 정신도 몸도 좋은 습관으로 배어 있어서 억지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내 심장을 따라 살아가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진정 자유로움을 줄 것이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도 아무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그것이 자유다.

난 그런 자유를 찾아 좋은 습관이 몸에 배도록 익혀갈 것이다.



이수는 1년에 두 번 정도 제주도 밖으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얼마 전에는 프랑스를 다녀왔다.

프랑스에는 정말로 거지가 많다. 이수는 엄마에게 부자 나라 프랑스에 왜 이렇게 거지가 많냐고 물었다. “부족한 게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이 문제야.” 그날 이수는 고흐 기념품을 사기 위해 가져온 용돈 모두를 시시때때로 마주치는 노숙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다. 보름간의 파리 미술관 기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이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행복하다

1120×1450mm
오늘 아침 문득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옆에 누군가가 있어서 행복하고, 함께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하고,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고, 내 두 손이 내가 하려는 일을 잘 따라주어서 행복하고, 내 두 발이 내가 가려는 곳에 갈 수 있게 잘 따라주어서 행복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하고, 마법처럼 마음을 잘 쓰다듬어주는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드러누워 바라볼 수 있는 하늘이 늘 나를 지켜주어서 행복하고, 힘차게 달릴 때 휘날리는 나의 머리카락이 바람의 존재를 알려주어서 행복하다. 작은 꽃 한 송이가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어서 행복하고, 시원한 소나기를 맞으며 춤을 출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다

1120×1450mm
세상에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평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 특별함을 자기 자신은 깨닫지 못한 채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따라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른 사람의 겉모습을 흉내 내고, 어떤 게 예쁘다고 하면 그걸 가지려 하고, 유행에 민감해진다.

내 동생 우태는 옷을 아무렇게나 입는다. 얼핏 보면 신경을 아예 안 쓰는 것도 같고, 또 어떨 때는 신경을 많이 쓴 것 같기도 한 매우 이상하고 특별한 옷차림을 한다.

지나가는 이모가 우태에게 말을 걸었다. 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우태에게 물었다.

“누구야? 무슨 얘길 나눴어?”

“응, 나보고 바지 뒤집어 입었다고 바로 입으래.”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응, 알고 있다고 했어. 하지만 바꿔 입진 않겠다고 했어. 난 이게 편하거든.

그리고 똑같은 건 싫어! 형아, 난 세상에 하나뿐인 거 맞지?”




1220×1800mm


와디즈(wadiz.kr)에서 진행하는 위로 3 펀딩 수익의 일부는 〈걸어가는 늑대들〉을 통해 아프리카 친구들, 제주미혼모센터, 버마(미얀마)난민음악학교에 기부됩니다.


홈스쿨링을 시작하기 몇 해 전 대안학교 미술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풍경화를 그려보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수는 얼마 전 다녀온 곶자왈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본 곶자왈 숲의 지붕은 마치 수만 개의 버섯모양 우산을 펼쳐놓은 듯했고, 그 빼곡한 지붕 틈 사이를 비집고 내려온 한 줄기 빛과 그 빛이 화사하게 비춰주던 한 그루의 이름 모를 나무가 생각났다. 이수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피었고, 도화지에는 세상에 없는 단 하나의 나무가 태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한 친구가 말했다.

“나무가 왜 이래? 이상해. 나무는 이렇게 그리는 거야.”

아이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맞어, 나무는 이렇게 그리는 거야” 하며 반 친구들도 그 아이의 주장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제주시 아라동에 자리한 ‘전이수 갤러리 - 걸어가는 늑대들’. © 서경리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그리는 일반적인 풍경화 구도가 있다. 지평선이 그어져 있고, 상단 구석에는 붉은 해가 쨍하게 빛나고 있으며, 스케치북 좌우로 한 아름 정도 크기의 나무에 원색 과일이 몇 개 달려 있는 그림 말이다. 그날 이후로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수의 그림에서 나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영재라는 타이틀로 예쁘게 포장된 이수는 방송에서만 존재한다. 일상에서 이수는 동생들과 몹시 사소한 이유로 싸우기도 하고, 한때는 먹을 것에 엄청 집착해서 가족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 열두 살이 된 이수는 여느 또래 아이들과 다름없이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며 자라고 있다.


하지만 이수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수는 가장 이수스럽게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이수스러운 나무가 보편화된 나무에 의해 설 자리를 잃고 한동안 종적을 감추었듯이 많은 아이들이 저만의 아이덴티티를 제거당한 채 진짜 내가 아닌, 성공적인 누군가처럼 될 것을 강요받으며 키워지고 있다.

이수가 이수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쩌면 특별한 교육법은 없다. 다만 이수는 운 좋게도 자신의 개성을 보호해주는 가족들이 있었고, 이제는 자신의 개성을 스스로 지킬 만큼의 힘이 생겼다.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이수스러운 이수의 나무는 일 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모습들로 창조되었다.

이따금 아이들과 함께 ‘전이수 갤러리-걸어가는 늑대들’을 찾는 부모님들이 “너도 이수처럼 그림 좀 그려봐” 또는 “너도 이수처럼 생각해봐”라고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러면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던져 아이를 변호한다.

“이곳은 이수처럼 되라고 교육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전이수 갤러리는 모든 아이들이 이수처럼 행복하게 자라길 바라는 공간이에요.”
  • 202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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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삼남매맘   ( 2020-10-07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이수의 글을 보면서 이수의 성장을 보면서 나두 행복해진다.
 언젠가 꼭 전이수 갤러리를 둘러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그때 이수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따른다면 그 얼마나 더 행복할까? 그 생각에 그 설렘에 난 지금 또 행복해진다.
 이수의 글에는 읽는사람을 이리 만드는 힘이 있구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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