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여울

마음을 다독이는 다정한 이야기꾼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이승원 

이토록 다정한 이야기꾼이 또 있을까. 정여울 작가는 우리가 잊으면 안 되지만 잊고 사는 것들, 잃으면 안 되지만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그가 쉼 없이 써온 심리치유 에세이의 제목만 봐도 메시지가 읽힌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말로 괜찮은 건지 마음을 헤집으며 묻고,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남들에게 비치는 사회적 자아는 잠시 내려놓고, 상처받은 내면의 자아를 잘 돌보라고 다독인다. 청춘들에게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 대해 선배의 목소리로 진솔하게 고백하고, 《마흔에 관하여》에서는 나이 듦이 주는 의외의 눈부심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정여울은 어느덧 심리치유 에세이, 하면 떠오르는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대에서 국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문학평론가로 활약하던 그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건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면서부터다. 자신이 놓쳐버린 가치들을 재정의한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자신의 삶을 투사해 여행지에서의 깨달음을 전하는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전자는 8만 부, 후자는 30만 부가 팔렸다.

그를 점점 단단하게 만든 건 ‘삶을 위한 공부’다.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의 화두를 꽉 움켜잡고 현대문학과 고전문학, 철학과 예술, 심리학까지 두루 섭렵한 그의 내공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빛을 발했다. 정여울의 공부는 정여울식 다정한 글쓰기와 만나면서 날개를 달았다. 심리학 교재에서 읽으면 하나마나한 잔소리처럼 들릴 법한 이론들이 정여울의 문체를 만나면 마음에 쏙쏙 박힌다. 사회적 잣대에 휘둘리면서도 끝내 중심을 다잡고, 타인의 시선에 약해지면서도 결국은 내면의 시선을 지켜낸, 정여울의 조용한 열정의 힘이다.

‘치유하는 이야기꾼’ 정여울을 찾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활동 무대 또한 넓어지고 있다. 과거의 그에게 ‘읽기’와 ‘쓰기’의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면, 최근엔 ‘듣기’와 ‘말하기’의 시간이 늘고 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에서는 라이브로 심리상담을 해주고,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한다. 주제도 다양하다. ‘삶을 바꾸는 글쓰기의 힘’ ‘책 읽는 즐거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길’ ‘인문학과 함께하는 여행’ 등 쓰기, 읽기, 심리학, 여행에 걸쳐 폭넓게 다가간다.

한파가 유난한 날, 서울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애초에는 인생 최초로 집들이를 했다는 작업실에서 만나려 했으나, 하필 보일러가 고장이라 당분간 쓸 수 없다고 했다.



입술이 부르텄군요. 여전히 바쁜가 봐요.

“네. 최근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를 썼잖아요. 그런데 벌인 일들이 많아 정작 저를 잘 돌보지 못하고 있어요.(웃음)”


저런. 최근엔 ‘글’보다 ‘말’의 영역에서 더 활발해 보입니다만.

“격주로 진행하는 KBS1 라디오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에 출연하고, 네이버 오디오클럽에서 라이브로 〈월간 정여울〉을 진행해요. 제가 대본을 직접 써야 하는 프로그램이라 투입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죠. 원래 목적은 책을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 건데, 균형 있게 진행하는 게 중요해요.”


어떤 균형이요?

“쓰기와 말하기의 균형이요. 쓰기가 중심이고, 말하기는 보조 수단이었는데, 요즘에는 말할 기회가 점점 많아져요. 걱정될 정도로요. 강연의 목적은 강연을 통해 책을 접한 후 독서로 이어지게 하는 건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어? 《데미안》이 이렇게 재밌는 책이었어?’라는 걸 새삼 깨닫고 집에 가서 책꽂이에 꽂힌 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반복해서 읽는 책이 많지요.

“《데미안》은 스무 번도 넘게 읽었어요. 읽다가 세는 걸 포기했죠. 《나혜석 전집》이나 《베토벤 전기》도 많이 읽었고요.”



《베토벤 전기》는 어떤 면이 끌렸나요?

“제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책도 썼잖아요(《빈센트 나의 빈센트》). 고흐와 베토벤이 비슷해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강한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이죠. 베토벤은 귀도 안 들리는 데다가 어릴 때 아버지한테 아동학대를 당했어요. 원초적인 상처로는 아동학대가 더 커요. 그런데 베토벤은 상처를 억압하거나 애써 극복하려 하지 않고 그 상처를 껴안은 채 더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죠. 그런 면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상처를 극복하는 것과 안고 가는 것, 이 둘의 차이는 뭘까요?

“베토벤도 고흐도 결국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어요. 우리는 상처를 없애고 극복하려 하지만, 상처는 삭제가 불가능해요. 상처와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해야 하죠. 공존이 중요해요. 이번 책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는 ‘셀프를 돌보지 않는 에고에게’라는 뜻이에요. 셀프는 내면의 자아이고, 에고는 사회적 자아예요. 우리가 이 부분을 많이 신경 썼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우리는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여기서 ‘나’는 대체로 에고죠. 타인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요.”


작가로서는 어떤 경우에 에고와 셀프가 부딪히나요?

“일의 영역에서 예를 들어볼게요. 제가 좋아하는 분이 원고를 청탁하고, 강연을 요청하고, 귀한 자리에 초대하면 고민돼요. 거기에 다 응하면 저를 못 지키게 되더라고요. 원고를 더 쓰고 더 많이 출연하고 돈을 더 많이 벌면 에고는 더 좋아하겠죠.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칭찬해줄 테니까요. 하지만 셀프 입장은 달라요. 10년, 20년 준비해야 하는 책을 위해 공부할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10년, 20년이 필요한 책은 어떤 책들이죠?

“심리학을 신화나 문학과 연결해 거대하고 두꺼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어떤 책이 될지, 과연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15년 전부터 구상해온 작업인데 아직 못 쓰고 있어요. 단기 작업은 마감이 있고, 기다려주는 사람도 있지만, 장기 작업은 저 혼자만의 작업이죠. 제가 저 자신을 단련하면서 써야 해요.”


책을 쓰는 동안에는 ‘셀프’가 되겠군요.

둘 다 공존해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길 바라는 건 ‘에고’인데, 책의 내용에는 ‘셀프’를 담아요. 셀프를 잘 표현하면 에고가 자꾸 간여해요. ‘잘 안 팔려서 출판사에 누가 되면 어쩌지?’ 하고. 그러면 셀프가 이렇게 답해요. ‘여울아, 너는 이 책을 쓰면서 완전히 너 자신을 던졌니?’ 하고.”


던진 것 같아요?

“네. 던진 것 같으니까 내는 거예요.”



정 작가의 글은 작가의 이야기가 독자의 이야기처럼 읽히는 묘한 힘이 있어요.
의도한 건가요?


“아, 그랬어요? 꿈꾸는 바예요. 제 상처를 말할 때도 제 상처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엄마 얘길 하는 이유도, 엄마가 가장 공감하기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지 저희 엄마 자체를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제 책을 읽다 보면 ‘엄마 되게 예민하시다’ 느낄 수 있는데, 사실 저희 엄마는 되게 평범하고 착하세요. 다만 저에게 너무 기대하고 과잉 투사하다 보니, 세상에서 받지 못한 것을 저를 통해 받으려는 보통 엄마들의 모습이 있는 거죠. 이런 의도가 있기 때문에 의도를 뛰어넘어 읽어주시면 고맙죠.”


보편적 메시지가 개인적 이야기에 함몰되지 않도록 만들어놓은 경계가 있나요?
‘이 지점까지만 나를 드러내자’ 하는.


“있죠. 당연히 있는데요, 그 경계를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게 좋더라고요. 책을 낼 때마다 점점 더 허물고 있어요. 처음 평론가로 활동할 때는 아주 간접적으로 저를 드러냈어요. 나와 닮은 작품의 주인공을 고른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부터 저를 오픈하기 시작했죠.”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 시점이군요.

“그게 참 묘해요. 의도한 건 아닌데, 평론이 아니라 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연 순간 더 좋아해주셨어요. 독자들의 연령대도 더 어려졌고요. 이전의 독자들은 문학작품을 읽는 진지한 마니아층, 종이신문을 읽는 분들이었는데, 지금은 인스타그램으로도 소통을 많이 해요.”


정 작가에게 글쓰기란 뭐죠?

“상처를 꼭꼭 싸매고 있던 포장지나 담을 허물어뜨리는 역할을 해요. 글쓰기 자체가 저를 치유하죠. 심리학 3부작을 쓰면서 많이 치유됐어요.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는 문학으로 심리학을 본 것이고, 《마흔에 관하여》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주는 것들,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는 온전히 심리학과 나에 관한 본격 심리치유 에세이예요.”


심리학 3부작을 통해 점점 다정해지고, 치유자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지요.

“그걸 꿈꿔요. 초등학교 때부터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학의 힘을 믿어요. 아직 저는 국문학자라고 생각하고요. 문학은 제 상처를 끄집어내서 타인의 상처를 보게 만들고,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계속 보게 하는 역할을 해요. 내 상처를 가만히 두면 은둔형 외톨이 되기 딱 좋은 성격인데, 문학을 통해 외국에 가고 싶어 하면서 여행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사람들을 좋아하게 됐나요?

“네. 친구들을 만나면 많이 놀라요. 예전에는 더 예민하고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어요. 못됐다기보다 움츠려 있었던 것 같아요. 나를 보여주면 마치 큰일 날 것 같은 소심함이 있었어요. 움츠려 있던 소심함을 펴게 하고, 사람들을 좋아하게 하는 역할을 문학이 해줬어요. 인간에 대한 사랑을 키워줬다고 할까요?”



가공할 만한 생산성을 지녔지요.
매년 거의 두 권의 책을 냈고요. 자신을 채찍질하고, 그런 자신을 위로하고, 위로하기 위해 또 책을 쓰는, 무한궤도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저는 즐기는 걸 잘 못해요. 예전에는 카르페디엠, 이 순간을 즐기라는 말이 저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어요. 뭔가에 몰입해서 일중독처럼 빠져서 산 적이 많죠. 여행을 가도 그래요. 사람들이 ‘너, 그거 여행 아니야, 답사야’ 할 정도예요. 한때 ‘왜 나는 잘 즐기지 못할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카르페디엠의 뜻을 다르게 받아들여요. 그 순간을 즐기라는 말뿐 아니라, 그 순간을 완전하게 만들라는 뜻 같아요. 매 순간의 스펙트럼이 있잖아요. 빨강에도 천연한 빨강이 있고, 분홍에 가까운 빨강도 있는 것처럼, 그 순간의 모든 국면을 올올이 다 누리라는 뜻 같아요. 꼭 놀거나 사랑을 해야 카르페디엠이 아니라, 일에서, 사람과의 만남에서, 또 책을 통해 카르페디엠을 느끼려고 해요. 짧은 순간에 많은 걸 포착하려 하죠.”


정 작가의 글과 말에서 느끼는 건데요,
단정적인 표현을 안 쓰는군요. 양면성을 동시에 보고, 결과가 아닌 과정의 언어를 많이 써요.


“네. 늘 노력해요. 세상일이 흑백으로 나뉘면 얼마나 좋겠어요. 얼마 전에도 놀란 일이 있어요. 저는 스스로 내향성이 90%, 외향성이 10% 정도이고, 10%의 외향성을 간신히 만든 거라고 생각했어요. 노력해서 10%의 페르소나를 연기하고 있는 거라고. 그런데 MBTI 검사를 해보니 외향성이 48%, 내향성이 52%로 나왔어요. 이건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답변으로 한 조사인데, 객관적인 지표로 해보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오겠지요. 어떤 분은 제가 외향성이 80%로 보인다더군요. 원래 저는 굉장히 우울한 사람이에요. 혼자 있을 때는 더하고요. 우울하지 않았다면, 슬픈 감정을 잘 느끼지 않았다면 심리학 공부를 안 했을 테고,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를 내지 않았겠죠. 그런데 이 제목을 보고 충격받은 분도 많았어요. 자기 자신 같다고. 서로 다른 삶을 살지만 상처를 느끼는 메커니즘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글을 쓰면서 독자들을 통해 거꾸로 저를 알게 된 거죠.”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는 공감 영역이 커요.
특히 ‘사회적 자아’로 오랫동안 살아와서 ‘내면의 자아’를 대면하기 두려워하는 이들에게요.


“제 경험으로 보면, 대면은 공포스럽긴 하지만 기쁨이 더 크더라고요. 시작할 때는 두려워요. 마치 뜀틀 같아요. 두려움 때문에 뜀틀 앞에서 멈춰서게 되잖아요. 상처가 많은 이들은 특히 더하고, 많지 않더라도 성격상 대면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 자체가 또 상처가 돼요. 자기와 대면하지 않으니까 계속 만들어진 나로만 살게 되는 거죠. 페르소나 역할로서, 만들어진 나로서.”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은 내면의 자아를 대면하게 되면, 사회적 자아로서의 책임감의 끈을 놓아버릴까 봐 두려워해요. 우리 교육은 오랫동안 과잉 사회화를 주문했잖아요.

“그렇지 않을 거예요. 대면한다는 건 내가 나를 갑자기 바꾸는 게 아니에요. 울타리를 허무는 것과 같아요. 수학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잖아요. 사람들은 플러스만 보면서 살고 싶어 해요. 마이너스는 그림자의 영역이고, 셀프에 가깝죠. 그 마이너스의 문을 열면 더 넓고 아름다운 또 하나의 내가 펼쳐지더라고요. 그건 그림자와 대면해야만 보여요. 그림자를 대면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림자 쪽이 어둡고 힘든 것만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막상 대면하고 나면 그 그림자 안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와 잠재력이 있다는 걸 알게 돼요. 그림자가 그걸 가로막고 있는 거죠. 그림자와 대면하면 물꼬가 확 트이듯 내 안의 잠재력이 트여요.”


그런 순간이 언제였어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쓰면서요. 감추고 있던 나의 이야기를 꺼내면서죠. 힘은 드는데 좋아 죽겠더라고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글을 쓰면서 더 당당해지고 풍요로워진 것 같아요.”



누군가의 사연을 듣다 보면 공감 과잉으로 힘들진 않나요?

“그게 진짜 힘들었어요. 누군가의 고민을 들으면 잠이 안 왔죠. 그런데 상처를 바라보는 내 프레임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동안 내 프레임이 고정돼 있었다는 걸 알았죠. 대표적인 게 부모와 자식 간이에요. 부모님이 나를 제한하고 통제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많은 부모들의 경우 순전한 학대는 별로 없고, 사랑과 집착이 같이 가요. 자식 입장에서는 이 둘이 구분이 잘 안 되고요.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부모님이 이런 말씀은 안 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는 따로 있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엄마, 이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라고 단호하게 말할 때도 있어요.”


엄마가 상처받았겠어요.

“처음엔 상처받죠. 그러다 점점 그런 말을 안 하게 되면서 스스로 덜 피곤해하시더라고요. 엄마도 힘들었던 거죠. 대신 엄마한테 당근을 드려요. 늘 저와 함께하는 시간을 그리워하고 갈망하세요. 엄마랑 같이 장 보고 구경 다니는 시간을 늘려나가요. ‘엄마, 우리가 싸우면 서로 사랑할 시간이 줄어들잖아. 서로의 생각을 강요하는 시간에 더 많이 예뻐하고 아껴주면 안 될까’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걸 책에 썼는데, 엄마가 보신 것 같아요. 과거엔 엄마가 제 글을 안 읽었는데.”


왜요?

“글 쓰는 딸을 인정할 수 없었던 거죠. 공부를 잘했으니까 뭔가 대단한 직업,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라셨어요. 상상도 못 한 길로 갔으니 실망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행복해하니까 엄마도 바뀌더라고요. 작년쯤 문자를 보내셨어요. ‘여울아, 네가 행복하니까, 엄마도 이제 행복하다’ 이렇게요.”


엄마도 성장하셨군요.

“저만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도 성장하시더라고요.”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믿나요?

“그럼요. 저도 바뀌었는 걸요.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바뀌지 않아요. 저도 만약 심리학을 안 했다면, 글을 안 썼다면, 문학을 안 했다면 틀에 박힌 모범생이 됐을 것 같아요. 선배들은 늘 투 트랙으로 가라고 조언했어요. 글을 쓰더라도 직장은 있어야 한다고요. 하지만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두려움보다 창조성이 소진될 것 같은 두려움이 더 컸어요. 프리랜서가 안 됐다면 전혀 다른 글을 썼을 거예요.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늘 불안했고, 불안한 대신 자유로웠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걸 찾을 수 있었어요.”


자기 자신을 계속 들여다봤군요.

“지나치게 들여다봐서 문제죠. 대신 그랬기 때문에 그 시절의 가난과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어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 정말 가난했는데 가난한 줄 몰랐어요. 인문학 공부가 가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부모님 빚을 11년 동안 갚아야 했는데, 길고 힘들었지만 셀프를 잃지 않아 다행이에요.”


사회가 부과하는 ‘에고’로서의 압박감에 짓눌리지 않고 ‘셀프’로 살아낸 용기와 힘은 어디에서 왔나요?

“어릴 때부터 글을 쓰면서 살 수만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고흐 생각을 많이 해요. 주변에서 고흐한테 제발 팔리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죠. 테오조차도요. 고흐가 만약 그 말을 들었다면 고흐의 〈해바라기〉는 탄생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 사례들을 숱하게 접하면서 늘 에고에게 무릎 꿇을 수 있는 위기의 순간에도 셀프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아주 여리면서, 아주 강한 면이 동시에 보여요.

“어릴 때는 수도꼭지 같았어요. 말만 하면 울었죠. 그런데 그것도 내 안의 순수함과 정직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더라고요. 여행과 심리학과 문학이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여행, 심리학, 문학. 이 세 영역이 각각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문학은 아주 어릴 때부터 제 일부였어요. 꼭 문학이 아니어도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죠. 동네 아주머니의 수다도 재밌었어요.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문학의 핵심인데, 문학이 세계를 향한 창문이 됐죠. 제가 가진 세계는 좁은데 이야기를 통해 세계가 점점 커졌어요.

심리학은 제가 받은 상처, 저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줬을 상처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어요. 원래는 내 상처를 극복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격을 고치기 위해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점점 사람들이 저한테 오더군요. 심리학은 말하자면 사람들이 저에게 다가오게 만들었어요.

여행은 그 모든 걸 다 갖고 있어요. 원래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줄 알았는데, 재밌고 적극적인 부분도 있다는 걸 여행을 통해 발견했죠. 이건 일상에서는 잘 안 되고 새로운 상황에 빠져봐야지만 보여요. 여행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아이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줘요. 제가 가진 능력 중 하나는 경이로움을 잘 느낀다는 거예요. 잘 놀라고, 잘 감동받죠. 그래서 여행과 심리학과 문학을 통해 계속 성장하는 것 같아요.”
  •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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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선종근   ( 2020-01-27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정작가님의 책을 한번 읽어 봐야겠어요! 이렇게 다정 다감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작가를 본적이 없었거던요!! 많이 읽으면 글도 쓰진다는 것을 믿으면서, 정여울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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