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 바티칸 변호사의 인생 수업

《라틴어 수업》 《로마법 수업》의 질문 “나다움이란, 인간다움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를 만나기까지 700일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유는 그때마다 달랐다. 처음에는 선천성 질환인 심장병이 깊어져서, 수백 일이 지난 후에는 요양 겸 연수차 호주 애들레이드에 가 있어서, 또 그로부터 수백 일이 지난 최근에는 스스로 인터뷰를 할 만한 대상이 아닌 것 같다는 사양지심에서.

우여곡절 끝에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한동일 변호사와 마주 앉았다. 오래전에 해둔 막연한 약속을 끝내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큰 듯 보였다. 한파가 유난한 날, 알록달록 머플러를 두른 그는 “직장 생활 힘드시죠?”라며 위로의 말을 먼저 건넸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몸에 밴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안부 인사였다.

한동일 변호사가 대학 강단에서 한 강의가, 그 강의를 엮은 책이 한국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010년부터 6년 동안 서강대에서 한 강의를 엮은 《라틴어 수업》. 2017년 출간 이후 무려 27만 부가 팔렸다. “언어에 대한 호기심에서 책을 열었다가 인생을 배웠다”는 후기가 많다. 2019년 가을에 낸 《로마법 수업》 역시 인생 수업의 연장선에서 읽힌다. 두 책 모두 혼란의 시대에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전자에서는 ‘나다움이란 무엇인가’를, 후자에서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의 책은 종합인문학수업에 가깝다. 라틴어와 로마법은 품위 있는 인생 수업을 위한 설득력 있는 도구다. 라틴어에 담긴 시선을 통해, 로마법에 담긴 인간다움의 철학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힘들어도 괜찮아’라는 섣부른 위로 대신, ‘나 자신에 집중하는 힘’을 길러준다. 한 변호사가 내내 강조하는 것은 라틴어로 네불라(nebula), 즉 아지랑이다. 각자의 마음속에 이글거리는 투명한 불꽃을 들여다보고 찾아내라는 것. 결국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이라는, 품격 있는 은유를 건넨다.

혼란의 시대에 개인이 대처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혼란의 시류에 휩쓸리거나,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내적인 평화를 희구하거나. 한 변호사의 책에 반응하는 이들은 대체로 후자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며 정신적 귀족주의로 돌아서는 부류가 많다.

한동일 변호사 스스로는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사람들은 나를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는 말을 여러 번 했지만, 그는 ‘최초’의 지문을 여기저기 남겨왔다. 우선 한국인 최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다.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는 길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라틴어를 비롯해 여러 유럽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 하고, 라틴어로 진행되는 사법연수원 3년 과정을 마친 후 합격 비율 5~6%에 불과한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게다가 그는 교황청에서 설립한 라테라노대학에서 교회법학 박사학위를 최우등으로 받았다.

그런 그가 최근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강의도 중단하고, 로마나에서의 활동도 정리할 생각이라고 했다. 마주 앉은 시기는 모든 직함을 내려놓은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마음이 어떠세요? 어렵게 얻은 직함들을 내려놓겠다고 했는데요.

“두렵죠.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지요. 그런데 그 직함이 나는 아니니까요. 그 직함이 나의 가치도 아니고요.”


내려놓은 후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요.

“달라진 부분은 없어요. 직함이 있거나 없거나 내 일상은 같아요. 공부하고, 산책하고, 책을 씁니다. 요즘엔 공부법에 대한 책을 쓰고 있어요.”


공부량이 어마어마하지요.
쓴 책 목록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어요.


“내 책들은 원해서 쓴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교수님이나 법조계에서 요청한 것들이에요. 써놓고 출판사를 찾고 있는 《로마법의 법률격언》도 판사님의 요청이죠. 분량도 꽤 됩니다. 《이탈리안 관용어 사전》은 A4 850페이지고, 《카르페 라틴어 한국어 사전》은 1450페이지였어요. 《교회법률 용어사전》은 2250페이지였고요.”


세상에. 그래서 몸이 배겨나질 못했나 봅니다.

“허허, 그러게요. 그래서 최근엔 《중세의 미각》 같은 교양서를 보고 있어요. 힐링 중입니다.”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지요.
몸의 고통은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닌데요.


“고통스럽지요. 고통이 밀려올 때마다 먼저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 때문에 공부를 합니다. 공부를 안 하면 폐부를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몰려오는데, 공부에 집중하면 아픈 걸 잊어요. 그래서 공부를 쉬지 않고 합니다. 그 습관이 오래됐어요. 어릴 때 아주 가난했고, 신부가 되어서도 어려운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공부는 저에게 고통의 도피처이기도 해요.”


지금도요?

“직을 내려놓는 건 그런 공부를 안 하겠다는 의미예요. 이제는 고통을 잊기 위한 공부가 아닌, 즐기는 공부를 하고 싶어요. 전투적으로 뭔가를 탁탁 만들어내는 공부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면서 공부를 하겠다는 거죠.”



선생에게 공부란 뭔가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날갯짓이 있어요. 나는 내 길을 가야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어제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에요. 그리고 아직은 정확히 모르는 내 걸음의 속도와 몸짓을 파악해나가는 것이죠. 공부는 무엇을 외우고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의 걸음걸이와 몸짓을 배우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책을 읽다가 화들짝 놀란 부분이 있어요.
최근까지도 삶을 내려놓고 싶었다고요. 공부를 많이 하고, 성숙한 인격을 위해 끝없이 성찰하는 분은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안 할 줄 알았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래 사는 건 죄 같아요. 준비라는 건 다양한 차원이 있지요.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정신적으로요.”


왜 죄인이죠?

“삶의 패턴을 성찰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이 계속 다른 사람을 문제 삼으면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생의 의미를 다했다면 일찍 가는 게 맞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내 역할을 다한 후 세상에 돌려줄 건 돌려주고 가고 싶다는 게 제 바람입니다.”


태어났으니 살아내는 삶이 아니군요.

“오해는 마세요. 버티는 삶도 큰 의미가 있어요. 다만, 제 삶의 의미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선생한테 삶이란 뭔가요?

“허허, 그건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질문을 바꿔볼까요?
선생이 사명감처럼 생각하는 삶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가고 있는지요.


“저는 어쭙잖은 사람인데, 세상으로부터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아요. 인터뷰와 방송을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그 이유예요. 제가 평가하는 저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매일 갈등하고 고민하고 시간을 채워가는 사람에 불과해요. 그런데 세상은 저를 대단하게 보는지, 한국 사회의 갈등에 대해 묻고, 해결방안을 물어요. 부담스럽지요. 다만, 이런 생각은 해봤습니다. 삶이란 보이저호가 성층권을 뚫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우주선이 하늘 높이 날아가서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우주의 한계에 도달한 후, 다음의 우주권을 향해 가는 순간을 보면서 그것이 꼭 인생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가진 에너지를 다해 다음 단계로 뚫고 나아가는 것. 가다가 나의 에너지를 다했으면 거기서 멈추는 것도 삶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 한계를 뚫는 데 가장 큰 방해요인은 뭔가요?

“사람이요. 한국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게 너무 많아요. 이탈리아나 호주에서는 타인보다 내 능력이 안 돼서 힘든 게 많았거든요. 호주 애들레이드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반가운 얼굴로 ‘헬로’ 해요. 사람이 반가운 거죠. 한국에서는 사람이 반갑지 않잖아요.”


왜 그럴까요?

“그러니까요, 왜 그럴까요? 그런 질문을 다 같이 해보고 싶어요. 왜 우린 사람이 반갑지 않고, 고맙지 않을까요? 물질이나 사회적 성취를 추구하면서 가치를 상실한 게 아닐까 싶어요. 곧 베들레헴에 가서 필리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론을 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풍요롭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최근에도 사람들한테 많이 치였나 봅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저를 깨어 있게 하고, 공부하게 하고, 긴장하게 하고, 나태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채찍이지 않을까 싶어요.”



독신의 삶을 택한 이유는 “어떤 것에 온전히 투신하고 싶어서”라고 했지요. 외람되지만 독신의 삶을 후회한 적이 있는지요.

“그런 이유도 있고, 제가 준비되지 않은 이유도 있어요. 부모가 되려면 어떤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 내 탓 없이 물려받은 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경제적으로나 건강적으로나. 다만 공부만은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공부도 예술이나 스포츠처럼 숱한 재능 중 하나거든요.”


언어를 공부하면서 인생을 읽어내는 시선이 남다릅니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집에 아무도 없어서 형들의 문고본 전집을 읽었어요. 신학교에서는 대부분 철학을 공부하며 보냈죠. 이해가 되지 않아 철학대사전을 펼쳐놓고 하나하나 다 읽었습니다. 공부란 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에라스무스도 《교육방법론》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더군요.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만큼 아는 것이라고요.”


“공부를 시작하기 전,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가보는 연습을 해봐라”고 했지요. 끝까지 가보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마치는 연습을 해야 해요. 특히 공부는 매듭을 짓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를 알 수 있어요. ‘내가 이럴 때 무너지는구나, 이 전략은 바꿔야겠구나’를 알게 되죠. 끝까지 가보면 내 사이클을 알고, 나에게 맞는 계획을 짤 수 있어요.”


공부할 때도 나를 들여다봐야 하는군요.

“그럼요. 그래서 공부는 외우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나에게 맞지 않은 공부법을 무조건 흉내 내는 경우를 많이 봐요. 사람마다 얼굴이 다 다르듯,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도 다 달라요.”


선생의 요즘을 지배하는 마음은 뭔가요?

“‘앞으로 20년간 무엇을 할까’가 최대의 화두예요. 가난했던 소년 시절 내 기도는 ‘하나님, 나에게 세 끼의 정갈한 식사를 주십시오’였어요. 지금은 여러 면에서 부유한 사람이 됐습니다. 요즘 기도는 ‘그렇게 가난한 사람을 이렇게 부유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으니까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주십시오’예요.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려 합니다. 그래서 직을 내려놓겠다는 거예요.”


라틴어 수업에는 네 단계 평가가 있지요.
짓궂은 질문이지만, 스스로 인간의 성숙도를 평가한다면요.


“베네(Bene), 가장 낮은 단계요(라틴어의 최하위 성적인 ‘베네’는 ‘좋음/잘했음’의 의미). 아직 멀었어요. 겸손하려 한 게 아니에요. 갈 길이 태산입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가지고 있는데도요.

“시간이 지나면서 내 수준을 알게 됐어요. 공부할수록 내가 무엇을 안다기보다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를 알아가는 게 괴로워요. 건강상 내 한계가 느껴져 안타깝고요. 요즘엔 아랍어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모르니까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 너무 많아요.”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죠.
《로마법 수업》 표지에도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라는 문구가 있고요.
너무도 당연한 명제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그걸 같이 묻고 싶었어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었어요. 우리 공동체가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가’였어요. 한 사회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행위가, 다른 사회에서는 생명을 걸고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히잡이 대표적이죠. 인간은 신념과 가치관의 노예가 아닐까 싶어요. 인간을 뛰어넘는 신념과 가치관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요? 인간이라는 카테고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2020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2020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뭘까요?

“사람들은 공정과 정의를 얘기하는 것 같아요. 그것만 되면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그것(공정과 정의)을 매개로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죠. 과연 그럴까요? 저는 그것보다도 자아실현이 먼저라고 봐요. 개인적 자아든 사회적 자아든, 둘 중 하나가 실현되지 않으면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도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아실현과 공정, 나란히 공존하기 힘든 가치 같습니다. 자아실현의 시선은 ‘나다움’을 추구하는 내부로 향하는 시선이고, 공정의 시선은 타인과의 비교급 개념이 강한 외부의 시선이니까요.

“이 두 가치가 치열하게 충돌하는 지금이야말로 큰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가치를 선점하는 사회가 다음 시대를 이끌 거라 봅니다.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이 화두들이 표면 위로 튀어올랐어요.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수준은 된 거죠. 튀어오른 두 화두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선 희망적이군요.

“우리나라의 쏠림 현상도 좋게 봅니다. 《라틴어 수업》을 포함한 베스트셀러들도 어떤 면에선 쏠림 현상이지요.”


이 책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러게요. 저도 그게 궁금해요.”


제 생각엔,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은 선배의 고전적 잔소리에 목말랐던 게 아닌가 싶어요. 어른 멘토를 잃어버린 시대잖아요. 개인적으로는 피터슨 하버드대 교수가 쓴 《12가지 인생의 법칙》 한국 버전처럼 읽었습니다만.

“저는 어른이라는 말에 굉장한 부담이 있어요. 얼마 전 북토크에서 제게 ‘흔들리지 않는 삶의 지혜를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 들려주세요’라더군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요. 저도 매일 흔들리고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어딨나요. 바람이 불면 다 흔들리죠. 여기 와서도 아메리카노 한잔할까, 하다가 엉뚱한 걸 시켰잖아요. 인간은 끝없이 흔들리고 갈등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로마법 수업》의 부제를 바꿔야겠습니다. 부제가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천 년의 학교’잖아요.(웃음)

“흔들린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갈등한다는 건 살아 있다는 좋은 표증이에요. 흔들리는 건 괜찮아요. 꺾이지만 않는다면. 지난번 태풍 끝에 산에 가보니 부러지고 꺾인 나무가 많더군요. 마음 아팠습니다.”



꺾이지 않으려면 어떤 힘이 필요할까요?

“그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예요. 꺾이는 요인이 너무 다양하니까요. 현대 사회에서는 내가 노력한다고 꺾이지 않는 게 아니잖아요. 사회구조적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 등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죠. 다만 나 스스로 불필요한 불안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예를 들면요.

“며칠 전 일입니다. 법원에서 등기가 왔다는 전갈을 받고, 확인하기 전까지 하루 종일 불안에 떨었어요. ‘올 일이 없는데 도대체 뭘까’ 하고요. 내가 만들어놓은 불안이죠. 결국 별게 아니었답니다.”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찰, 성찰밖에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저녁에도 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잘 쉬는 사람이 공부를 잘할 수 있어요. 육체적인 차원만이 아니에요.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구겨 넣으며 살아가요. 가끔 로스쿨 친구들의 공부 코치를 하는데, 시간표를 보면 쉬는 시간이 없어요. 운동 시간도 없고요. 쉴 때도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해요.”


성찰도 습관일까요? 선생은 늘 되돌아보고, 문제의식을 찾고, 마주하는 분 같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필요해요. 길게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성찰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부하면서 늘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어요. 저야 운이 따랐는지 좋은 결과로 이어졌지만,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왜 그런지 결과를 분석해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이 경기 결과가 안 좋으면 다음 경기 전 원인 분석을 하듯이. 그것에 대한 분석이 없으면 실패를 반복하게 됩니다.”


젊음의 푸르름이 멍들어서 생긴 푸르름이라고 했지요. 모두들 청춘을 찬란한 푸르름이라고 하는데요.

“나의 20대를 생각해보면, 젊음이란 게 개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더 보수적일 때가 많아요. 학생들과 공부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봐도 그래요. 본인 스스로 문제를 알고 방법도 알지만 변화에는 오히려 보수적이에요. 문명의 기기 적응에는 빠르지만 생각의 변화에는 더 보수적일 수 있다는 걸 느껴요. 나이가 들수록 실수를 인정하면서 나의 앎이 불확실하다는 걸 알아가니까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하죠.”


인정을 하든 안 하든 청춘들의 멘토입니다. 청춘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그렇게 큰 이야기를 제가 할 자격이 있겠어요? 다만 제 욕심은 말해볼게요. 제가 욕심이 좀 많은데, 가장 큰 욕심은 우리나라가 당당한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다는 겁니다. 이런 마음이 생긴 건 로마에 간 이후부터예요. 바티칸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자극했죠. 비교하고 싶지 않아도 전 세계 힘의 우위를 일직선으로 비교하게 되는 곳입니다. 전 세계 국가 정상들이 모이면 강대국 순위별로 의전 수준이 다 다릅니다. 지금의 10대, 20대는 제 시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좋은 언어능력과 식견을 가지고 있어요. 하드웨어는 준비돼 있으니 소프트웨어를 탄탄하게 다져서 선진국과 어깨를 겨룰 수 있으면 좋겠어요. ‘라틴어 수업’을 통해서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 2020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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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여름   ( 2020-01-15 )    수정   삭제 찬성 : 1 반대 : 0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싶은 글이네요.
  조*영   ( 2020-01-14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인터뷰 글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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