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어반 스케처 옌스 휘브너

나는 그린다, 도시의 순간을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임안나 작가  / 사진제공 : 옌스 휘브너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 42세. 살아온 대로 살아도 큰 무리 없을 삶이지만 남자는 정착하는 삶 대신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2년간의 세계 여행. 자동차와 카메라 대신 그는 자전거와 연필을 들었다. 산업디자이너로, 디지털과 속도에 치인 치열한 삶을 살아본 그는, 이번엔 느린 삶이 주는 농밀함을 느껴보고 싶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 자신을 던져놓고, 나머지 반생(半生)도 엇비슷하게 살아도 괜찮은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어반 스케처(Urban sketcher)이자 오지 여행가 옌스 휘브너(Jens Hübner·55) 얘기다. 옌스 휘브너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일, 러시아, 스페인 등 유럽 대륙에서는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일러스트레이터다. 그의 삶은 두 개의 키워드로 모아진다. ‘여행’과 ‘스케치’. 2년간 자전거를 타고 세계 42개국 약 2만 5999㎞를 누비면서 그림을 그렸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두 바퀴를 굴리면서 마음이 가 닿는 풍경이 있으면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흙바닥이든 계단이든 상관없었다. 털썩 주저앉아 종이와 연필, 수채물감을 꺼내놓고 도시의 풍경을 도화지에 담았다. 인도에서는 파파야 하나를 그리기 위해 오후를 오롯이 쏟아붓기도 했다.


휘브너가 오지 여행을 다녀온 건 2006~ 2008년. 730일의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우연히 시작한 어반 스케치는 인생 2막의 업(業)이 됐고, ‘원하는 삶’을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살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를 갖게 됐다. 무엇보다 그런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깊숙이 들여다볼 줄 아는 눈이 생겼다.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자전거와 연필의 시간이 안긴 선물이다. 현재 그는 독일 베를린에 살면서 오지 여행 가이드이자 어반 스케처로 활동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드로잉 워크숍을 열고 있다.

“한 번에 하나씩 그리며 세상을 보여준다”, 어반 스케처들이 내건 슬로건이다. 도시와 오지의 표정을 각자의 시선과 톤으로 담아내는 어반 스케치는 서서히 붐이 일어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도시는 여러 얼굴을 지녔다. 장소와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내민다. 어반 스케치는 단 한 번밖에 존재하지 않는 도시의 순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억한다. 사진에 떠밀려 역사 속에 묻혀가던 스케치가 이런 이유로 서서히 부활하고 있다.

프리미엄 필기구 파버카스텔(Faber-Castell)과의 협업차 방한한 옌스 휘브너를 만났다. 10월 말, 아시아 투어 기간 중 한국은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갔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라고 했다. 구 동독 출신의 그는 독일인 특유의 무뚝뚝함이 없진 않지만, 친절하고 열정적이었다. 지구 오지 곳곳에 수없는 발자국을 남긴 탐험가의 얼굴은 발갛게 그을려 있었다.


(명함을 가리키며) 원 데이 원 스케치(one day, one sketch)라고 쓰여 있군요.

“네, 맞아요. 6년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 서너 시간씩 그림을 그립니다. 이건 나와의 약속이에요.”


세상에나. 그리기 싫을 때는 없어요?

“늘 그리고 싶답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요. 매일 그리고 그려도 또 그리고 싶어요. 워크숍에서 서너 시간씩 사람들 앞에서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그림을 그리고, 워크숍이 끝나면 또 혼자 앉아서 그림을 그립니다. 이번엔 릴렉스를 하기 위해서죠.(하하)”


어제는 한국의 익선동과 인사동, 경복궁을 돌면서 어반 스케치를 했다지요. 한국을 그리면서 느낀 감성이 궁금해요.

“이거 보시겠어요? (익선동 스케치를 내보이며) 젊고 부유한 관광객과 수레를 끄는 할머니가 대조적으로 다가왔어요. 가로세로로 복잡하게 얽힌 전깃줄이 특히 인상적이더군요. 분주한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서 도시의 소음이 읽혔어요. 그에 반해 이곳(경복궁)은 고요하고 아름다웠어요. 이제까지 수많은 궁을 봐왔지만 아주 뚜렷하고 특별하게 남는 곳이었어요. 건축물의 선과 선들이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형태가 고요하고 차분한 느낌을 안겨줬죠. 휴식이 되더군요.”


와~ 경복궁 그림이 너무 아름답군요! 익선동과 경복궁 스케치 톤이 완전히 딴판이에요. 한 사람의 그림이 맞나 싶을 정도로요. 한 곳은 도회적이고, 한 곳은 고즈넉하네요. 가만 보니, 두 곳의 종이 바탕색도 다릅니다.


“종이를 선택할 때는 다 이유가 있어요. 사람이 많은 곳은 색이 있는 종이를,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은 차분한 톤의 연한 회색이나 흰색으로 조용함을 강조해요. 그래서 이 그림(익선동)은 누런 종이에 그렸고, 이 그림(경복궁)은 흰색에 그렸어요.”


수많은 도시와 오지를 여행했지요. 한국의 특징을 표현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지요?

“음… 독일어로는 생각이 나는데 영어로는 잘 떠오르지 않는군요. 잠깐만요. 아, ‘다이내믹’이 맞겠어요. 아주 정적이면서도 아주 동적인 느낌이 혼재돼 있어요. 이건 동독 출신의 제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에 느낀 복잡한 감정과 비슷해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전 스물다섯 살이었어요. 그 현장을 직접 목격했죠. 아! 그건 세상의 또 다른 문을 여는 어마어마한 경험이었어요. 북한과 남한도 비슷하지 않겠어요? 분단된 조국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느껴요.”


그때 어땠어요?

“벽이 무너지는 걸 본 순간, 그때의 감회와 에너지는 진짜 엄청납니다. 평생 제 인생에 영향을 끼쳤죠. 2년간 세계 여행을 가능하게 한 에너지도 그 순간에 만들어진 것 같아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던 일이 가능하게 된 걸 목격한 거니까요.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에 과감하게 도전하게 됐어요. 미국 대학에서 장학금을 신청한 것도, 여행을 많이 다닌 것도 그 이후였죠. 아, 이걸 먼저 보시겠어요? 이것을 봐야 제가 누구인지 알 수 있어요.”

그는 아이패드를 꺼내 3분짜리 동영상을 보여줬다. 눈부신 황토빛 모래언덕 사막을 자전거로 누비고,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전거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 스케치 현장을 지켜보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얼굴에는 신기함과 호기심이 잔뜩 서려 있다. 그는 사하라 사막만 열 번 넘게 횡단했다고 한다.


사하라 사막을 열 번 넘게 횡단했다니 놀랍습니다.


“느리다는 게 중요해요. 2년간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하는 중 그림을 그리면서 발견한 게 있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자전거도 느리죠. 연필과 수채물감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매우 천천히 그리게 돼요. 하지만 사진과 자동차는 매우 빨라요. 자전거와 연필, 사진과 자동차. 이 두 부류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연관이 있어요. 연필과 자전거의 삶은 느린 대신 촘촘합니다. 밀도와 깊이가 있죠.”


느린 삶의 깊이라.

“인도에서 파파야를 그리기 위해 오후 내내 앉아 있었던 적이 있어요. 단 하나의 파파야를 그리기 위해서 말이죠.(웃음) 만약 파파야를 사진으로 찍었다면 ‘파파야는 이렇게 생겼어’ 하고 말 거예요. 하지만 그림을 그리려면 파파야를 아주 깊게 들여다봐야 해요. ‘나뭇가지가 아니라 나무 몸통에 붙어 있구나, 표면은 이런 질감이구나’ 하고 대상의 형태와 본질을 깊게 느낄 수 있어요. 이 사람들(익선동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그들을 그리려면 아주 깊게 관찰해야 해요. 젊은 여성의 쇼핑백과 헤어스타일 등 하나하나를 들여다봐야 하죠. 한 대상을 아주 오랜 시간 깊게 관찰하다 보면 깊은 감동을 받게 돼요.”


그런 감동을 2년간 자전거 여행을 통해 느끼다 보면 많은 것이 달라지겠습니다.

“물론!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달라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해요. 만약 당신이 3개월간 여행을 다녀왔다면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2년간의 여행은 많은 것을 바꿔놓죠. 무엇보다 ‘가능성’을 봤어요.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됐죠.”


자신감을 얻은 건가요?


“그렇죠. 낯선 환경에서 진짜 내 자신을 보고 싶었어요. 새로움을 헤쳐 나가는 용기와 자신감을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독일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면 독일 사회가 나를 보호해주지만, 인도나 아프리카의 삶은 그렇지 않잖아요.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긍정과 감사, 행복의 가치를 느꼈죠.”


42세에 2년간 목적지 없는 세계 여행을 떠나다니요! 이미 많은 것을 가진 나이라, 쉽지 않은 결정인데요.

“미디어에서는 수많은 정보와 뉴스가 흘러나옵니다. 이를 통해 다른 나라에 대한 편견이 심어지게 되고요. 국제 뉴스를 보면서 ‘과연 그럴까?’ 의구심이 일면서 진짜인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떠나야 했죠. 다행히도 큰 사고가 나지 않았고, 세 달 만에 이집트 카이로까지 갔어요. 90일간 자전거로 5000km를 달렸으니 정말 빠른 거죠.”


도착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서두르지 않게 되더군요. 해냈기 때문에 더 이상 서두를 필요가 없었어요. 3주간 카이로에 머물면서 그저 그림을 그렸어요. 여행을 떠나면서 두 가지 막연한 계획만 있었어요. 첫째는 2년간의 여행이고, 둘째는 세계를 돌겠다는 것이었죠. 매력적인 관광지를 보겠다든지 하는 목표는 없었어요.”


42세의 당신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산업디자인을 전공해 캐나다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와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말하자면 공동 CEO죠. 회사를 운영한 지 딱 10년째 되던 해가 마흔두 살이었어요. 당시 두 가지 이슈가 있었습니다. 사무실 재계약 여부를 결정해야 했고, 비슷한 삶에 정착할지 말지 결정해야 했죠. 순수예술을 하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산업디자인을 전공해서 그 길을 걷고 있었는데, 과연 이 길이 맞나 싶었어요. 정착하면 계속 돈은 벌 수 있었지만 제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다른 삶에 도전할 수 있는 딱 좋은 시기라고 봤죠.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투자는 여행이에요. 나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경험이고, 평생 잃어버리지 않는 자산이니까요. 마침 책임질 부양가족도 없어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떠났어요.”


지금은요.

“못 떠나죠. 아내가 있으니까.(웃음)”


세계 여행으로 가본 도시 중 가장 마음에 남는 도시는 어디였나요?

“그건 진짜 어려운 질문이에요. 도시마다 개성이 다 다르니까요. 대신 제 인생에 중요한 도시를 꼽아볼게요. 인도의 바라나시인데요, 힌두교 성지 같은 곳이죠. 자전거로 세계 여행 할 때 1만 2000km를 달린 후라 자신감이 붙었을 때였어요. ‘나는 이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죠. 수채화를 그려서 바라나시에서 팔아보고 싶었어요. 아주 멋진 셔츠를 차려입고 바라나시에서 가장 큰 갤러리를 무작정 찾아갔죠. 처음 본 사람한테 다가가서 나를 소개했어요. ‘나는 독일에서 온 휘브너이고,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린다. 여기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요. 그전까지 저는 한 번도 전시회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 운 좋게도 3일 뒤 진짜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두 번의 기자간담회를 했고, 열네 개 신문에 실리고, 여섯 개 채널에서 방송됐어요. 첫 전시회를 인도 바라나시에서 하게 된 겁니다. 아주 성공적이었고, 그림도 모두 팔았어요. 꽤 많은 돈을 벌어서 그다음 여행지인 네팔로 가게 됐습니다.”


기적이군요.

“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죠. 그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 성공을 계기로 더 많은 그림을 그렸고, 어반 스케처로서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죠. 사실 여행을 떠나면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그저 스케치북이 있었고, 보이는 풍경을 느낌대로 그렸을 뿐이에요. 카이로의 한 서점에서 5유로짜리 수채화 그리는 법에 대한 책을 보면서 끄적거린 정도였죠. 여행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그림엽서를 보내려고 시작한 스케치가 제 삶을 통째로 바꿔놓은 겁니다.”


도전과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인생에 ‘좌우명’이 있는지요?



“(한참 생각하더니) 저는 ‘더 느린 삶’을 추구해요. 인생에 난관이 생기면 모든 속도를 늦추려 하죠. 천천히 보면, 천천히 가면 더 깊은 것을 볼 수 있거든요. 드로잉 워크숍을 많이 진행하는데, 펜은 삶의 속도를 늦춰주는 매개체예요. 어떻게 하면 더 차분하고 깊이 있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죠.”


쉽지 않은 결정을 과감하게 실행하면서 여기까지 왔지요. 갈림길에서 판단 기준은 뭔가요?

“글쎄요. 저는 매우 운이 좋았어요. 매 순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하는 모든 것,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예술을 위한 과정이었죠.”


그러면 갈림길이 없었던 건가요?

“그런 셈이죠.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의 상황이 없었어요. 직진만 있었지. 내가 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목표를 명확하게 아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걸 분명히 알고, 직진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좋은 삶이란 뭘까요? 또 좋은 직장이란 뭘까요? 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곳이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해요. 회사를 접고 세계 여행을 하기 전, 6개월간 자동차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했어요. 어느 날 창밖을 보는데 ‘자동차’가 보였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어요. ‘여행’과 ‘그림’이라는 목표가 또렷해졌죠. 그 순간 결정했어요. 내 삶의 나머지는 그림과 여행을 하면서 살겠다고요. 하지만 중요한 게 있어요. 결정한 순간 진짜로 그렇게 해야 해요. 매일 그리고 또 그려야 해요. 꿈을 좇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꿈을 이루려면 삶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 매일 네 시간씩 그림을 그리죠. 만약 당신이 스케처나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매 순간 실천해야 해요.”


산업디자인 전공은 이후의 삶에 도움이 됐나요?

“당연하죠.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건 부모님 때문이었어요. 아버지는 공학도, 어머니는 재단사였어요. 두 분은 제가 원하는 길을 반대는 안했지만 순수예술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안해하셨어요. 그래서 경제적인 이유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죠. 하지만 산업디자인도 좋았어요. 그 공부를 통해 일을 구조화하고 프로젝트를 만들어 발전시키고, 고객과의 관계 맺음 방식과 데드라인 내에 일을 해내는 방법을 익혔으니까요. 그 모든 지식과 지혜를 어반 스케치에 옮겨놓은 거죠. 이거 볼래요? (파버카스텔 제품을 꺼내 보이면서) 워터브러시예요. 제가 디자인한 겁니다.”


파버 카스텔은 당신에게 어떤 브랜드인가요.

“파버 카스텔은 특별합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만들어내죠. 이 워터 브러시를 예로 들까요? 이 제품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에요. 붓 뒤에 물통을 달아서 붓질을 하면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 내려와 수채화의 채도 조절을 할 수 있는 도구죠. 그런데 기존 제품들이 사용자 입장에서는 다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파버가 저에게 의견을 물어왔고, 기존 제품의 단점을 보완해서 이 하나의 제품에 담았어요. 한 마디로 파버는 매우 프로페셔널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뭔지 궁금해집니다.


“아주 사적인 관점인데요, 제 모든 작품은 색을 최소화합니다. ‘적을수록 아름답다(Less is more)’고 생각해요. 보세요. 갈색에 아주 약간의 파란색을 쓴다든지 하는 식이죠. 단순할수록 느낄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이거 보실래요? 서울에 오기 전, 도쿄에서 그린 도시 풍경이에요. 회색으로만 표현하면서 건물은 차가운 회색, 사람과 나무는 따뜻한 회색으로 그렸죠. 이런 미묘한 차이는 파버카스텔 색감으로만 표현이 가능해요.”


생명을 따듯한 회색으로 표현한 건가요?

“네. 살아 있는 것들을 따뜻하게 표현해낸 거예요. 저는 늘 저 자신에게 말합니다. 미묘한 차이를 발견해서 표현해내라고.”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삶을 지향하는데요, 우리 삶은 디지털 라이프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아날로그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철학이 있는지요?


“그게 제 비즈니스 아이디어인 걸요.(웃음)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고, 저 역시 디지털을 많이 사용해요. 아이패드도 사용하고, ‘원 데이 원 스케치’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동영상 작업도 하죠. 중요한 것은 통합이에요. 아주 디지털적인 것과 아주 아날로그적인 것을 함께 봅니다. 오토바이를 예로 들어볼까요? 전 1986년산 야마하를 타는데, 여기서 두 가지를 함께 봅니다. 기기적인 것에서는 디지털을, 페인팅 등에서는 아날로그를 보는 식이죠. 디지털에 아날로그적 요소가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봐요. 매끄러운 아이패드에도 그림을 그리지만, 흑연이 종이에 닿는 거친 느낌을 좋아합니다. 누군가가 제 책에 커버를 씌우라고 하는데, 전 괜찮아요. 자전거가 밟고 지나갈 수도 있고, 더렵혀질 수도 있지만, 뭐 어때요? 그게 삶이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스토리가 쌓이는 거죠.”
  •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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