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배우 공효진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NEW 

“마음에는 굳은살도 안 배기나 맨날 맞아도 맨날 찌르르해요. 그 느낌이 두부를 조각칼로 퍽퍽 떠내는 느낌이에요. … 그래도 나는 그냥 웬만하면 사람들한테 다정하고 싶어요. 다정은 공짜니까 그냥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

지난 9월부터 방영 중인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중 동백(공효진)의 대사다. 동백은 옹산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들어온 외지인이다. 두루치기에 소주를 파는 술집 ‘동백’을 운영하며 여덟 살 아들 필구를 키운다. 동네 아낙들에게는 왕따다. 〈동백꽃 필 무렵〉의 작가 임상춘은 동백을 ‘하마 같은 인물’로 묘사한다. 물 밖에 콧구멍만 내놓고 숨죽이고 살지만, 물에서 나와 들이받으면 밀림에서 누구보다 세고, 마음먹고 뛰면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어릴 땐 고아였고, 커서는 미혼모가 됐고, 현재는 동네 왕따인 동백을 공효진은 좋아한다. 그는 “사랑 타령하며 찧고 까부는 이야기보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내용에 끌린다”고 했다. 시장에 가면 다른 이는 7000원에 사는 알타리를 8000원에 사가라며 바가지를 쓰는 동백이지만, 동네 사람들을 혐오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상처 주지도 않는다. 세상이 불친절해도 동백은 다정하다.


공효진이 그간 맡아온 인물을 보면 그의 말마따나 ‘평범보다도 더 평범한’ 인물이고 ‘존재감이 유별나지 않은’ 이들이다. 심지어 이번에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의 제목은 〈가장 보통의 연애〉다. 세상에도 메이저가 있고 마이너가 있다면, 그의 인물은 마이너리그 쪽이다. 3년 전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그는 계약직 기상 캐스터였고, 지난해 촬영한 영화 〈도어락〉에서는 오피스텔에 혼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의 인물은 애써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고 오해를 받거나 미움을 사면서도 구겨지지 않는 마음씨를 갖고 있다.

그런 그가 극중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울 때,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돼서 붉어진 얼굴 위로 흘러내릴 때, 보는 이들은 움찔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가 숱한 무명씨들을 너무 모질게 홀대해온 것은 아닐까 싶어서. 그 눈물에 투명하게 비치는 일상의 무례가 문득 부끄러워진다.


공효진이라는 배우의 연기를 ‘현실 연기’라고 하죠. 사실은 이상해요.
현실과 연기는 함께 쓰이면 부딪히는 말인데요.



“그러니까요. 뭐가 ‘현실 연기’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성격이 급해서인지 천천히 다가가기보다는 후루룩 후루룩 지나가는 연기를 하는 것 같긴 해요. 드라마에서 보는 익숙한 연기는 아닌 거죠. 저도 전형적인 연기를 비틀어 보는 성향이 있고요. 처음 연기를 시작한 게 1999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인데 그때 만난 김태용, 민규동 감독님이 ‘너 하고 싶은 대로 알아서 해봐’라는 식이어서 그때 배운 게 지금까지 왔는지도 모르죠. 연기학원에서 배운 연기가 아니라, 그냥 하는 게 제 방식이 된 것 같아요.”


또 하나의 표현은 ‘공블리’죠.

“처음엔 쑥스럽더라고요. 그런데 뒤에 ‘~블리’를 붙이는 게 굉장한 칭찬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블리의 계보를 보면, 공블리가 원조고 이 아성을 위협했던 게 마동석 오빠의 ‘마블리’였는데 그분이 요즘 액션 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아무래도 (제가) ‘원조는 원조구나’ 싶어요. ‘잡아놓은 고기’ 같은 거랄까요.”(일동 웃음)


그동안 맡은 배역이 처음부터 사랑스러운 인물은 아니었죠.
사랑스럽게 느끼게 하는 데는 배우의 역할이 있었을 테고요.


“글쎄, 제가 끌리는 인물이 아주 유명하거나 유능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아요. 아주 보통의 사람들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평소에 제가 즐겨 보는 이야기도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나 휴먼스토리고요. 진짜 인간사, 정말 사람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인물이 서럽게 눈물을 쏟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카메라 앞인데도 누가 어떻게 볼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고요.



“저도 누가 어떻게 볼지 신경을 써요.(일동 웃음) 그런데 울음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사람이 감출 수가 없는 게 웃음소리랑 걸음걸이랑 우는 모습이래요. 저는 마음의 어떤 부분이 툭 건드려지면 눈물이 터져요. 그 감정에 도달하면 여지없이 그 얼굴이 나오고요. 작품 안에서 제가 터지는 어떤 문장이나 단어는 열 번을 들어도 또 터져요. 저도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울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사실 예쁘게 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제 마음이 움직이질 않았는데 울어야 할 때에요. 그럴 때는 감독님께 솔직하게 말해요. 아무래도 이번 장면에서는 눈물이 안 날 것 같다고요.”


드라마에서 사랑스럽고 따스한 정서를 전달한다면,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다르죠.
〈미씽〉이나 〈싱글라이더〉 〈도어락〉처럼 장르적인 영화를 선택하기도 하고요.


“드라마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서 편안하게 보고 싶잖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기왕이면 따뜻하고 희망적인 이야기가 좋아요. 영화는 달라요. 일단 티켓을 끊고 보자고 작정하고 나가잖아요. 저도 드라마에서 다 해소하지 못한 어떤 지점들을 영화를 통해 채워보려고 해요. 그래서 제 영화가 다소 마니아적이고 흥행 성적에선 부진한 면도 있죠. 그건 인정해요.”


이번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는 어떤 지점이 와닿았을까요?


“대본이 아주 딱 떨어지더라고요.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이 쿨했어요. 그동안 제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적지 않게 해왔는데, 늘 ‘사랑을 너무 미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해피엔딩이라는 결말에 대한 의심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번 영화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았을지, 아닐지 알 수가 없어요. 사랑이 모든 걸 치유해준다는 메시지를 강요하지도 않죠.”

〈가장 보통의 연애〉는 그동안 여러 번 사랑하면서 깨문 가장 아픈 손가락을 낱낱이 드러낸다. 옛 연인을 잊지 못해 밤새 연락한 경험, 아침에 눈을 뜨면 숙취보다 더 괴로운 지난밤의 찌질함 등이 날것으로 담긴다. 극중 재훈(김래원)이 상처에 계속 소금을 뿌리며 헤집는 스타일이라면, 선영(공효진)은 마치 사랑이 없었던 것처럼 상처를 방치하는 쪽이다. 때문에 둘의 만남도 새로운 로맨스의 서막이 아닌, 서로의 흑역사를 들추는 새로운 흑역사가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현재를 직시하면서 거기서 빠져나오게 된다는 점이다.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된다는 무의식적인 불문율을 깨는군요.

“제 생각도 그래요. 상처는 시간이 치유해주지, 사랑이 치유해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극 중 선영이 겪은 일은 데이트 폭력으로 보이기도 해요.
선영이 재훈에게 하는 말들도 세 보일 때가 있고요.



“읽을 땐 몰랐는데 실제로 연기를 해보니 그렇더라고요. 시사회 때 객석에서 웃음이 터질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싸해져서 당황하긴 했어요. 요즘 관객분들 수준이 높아서 이분들의 반응을 눈여겨보거든요. 선영을 연기했던 저로서는 ‘금기시된 단어를 쓸 때의 희열’이 있었어요. 보통 여성들이 잘 쓰지 않는 말이잖아요.”


잘못하면 비호감으로 보일 수 있는 역할을 맡을 때, 혹은 그런 대사를 해야 할 때 배우에게도 용기가 필요하진 않나요?

“모든 역할을 제가 공감하거나 이해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이 작품이 담은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죠. 어떤 한 장면을 위해 1000번을 고민할 때도 있는데 관객들이 슥 한 번 보고 ‘저게 말이 돼?’ 할 때는 아쉽기도 해요. 결국 만드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에 늘 치열한 논의와 합의의 과정을 거치죠. 어떤 한 장면이나 대사가 좋아서 선택하는 작품도 있어요. 그 장면을 위해 다른 부분을 쌓아가는 거죠. 〈미씽〉에서 한매가 아이를 잃고 바닥에 앉아서 엉엉 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아파요.”


지금은 영화 개봉과 드라마 방영이 겹쳐 있고, 올해만 두 편의 영화 주연을 맡았습니다. 인터뷰도 드라마 촬영 중간 짬을 냈다고 들었어요.

“2017년에 그런 순간이 왔어요. 계속 작품을 하고 연기를 하는데, 뭔가 최선을 다해 하고 있지 않은 느낌, 치열하게 임하고 있지 않은 기분 때문에 괴롭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1년을 쉬었어요. 쉬면서 연기에 대한 마음이 다시 차오르길 기다렸죠. 연기를 안 하는 시간이 쌓이니까 다시 하고 싶더라고요. ‘연기를 끊고 살 수는 없겠구나’ 느꼈죠. 그때 여러 작품이 들어왔는데, 다 마음이 움직였어요. 현장에서도 실제로 행복했고요.”



여자 주인공이라면 응당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공효진이 맡은 이들은 자주 미움을 받는다. 툭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과 〈러브픽션〉에서 액모를 드러낸 희진이 한국 영화사에 남긴 잔상은 크다. 누가 이 역할을 맡아줄까 싶은데, 공효진은 용감하게 손을 든다. 그가 ‘미움받을 용기’로 선택한 이들은 공효진이라는 필터를 거쳐 결국 관객에게 찾아오고 우리는 이들을 지켜볼 기회를 갖는다. 그 시간이 다소 불편할지라도,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고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공효진은 평소에도 물끄러미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의 공기와 날씨, 주변인들이 입었던 옷의 색깔이나 분위기도 오래 기억한다. 별다를 것 없는 풍경을 담는 〈다큐멘터리 3일〉이나 〈6시 내고향〉이 그의 최애 프로그램이다. 그 풍경에 공효진을 가만히 가져다놓는다.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고, 존재감 없는 어떤 인물이 되어 평범보다 더 평범한 순간을 살아간다.

마음에 굳은살이 배지 않아 매번 서러워하면서도 우스워지는 순간과 비참해지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 우리가 사는 그 평범한 순간은 미움과 그리움과 오해와 화해가 뒤엉켜 드잡이를 해야 한다는 걸 그는 온 얼굴의 근육을 써가며 증명한다. 사랑도 평범의 한 조각일 뿐 그렇게 유난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미움받을 용기란 기꺼이 상처받을 용기고 덕분에 사랑할 수 있는 용기라는 걸, 공효진을 통해 배운다.
  •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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