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인의 사주를 타고난 불과 물의 〈궁합〉 엔터테이너 이승기

“뭔가를 해 볼 만하다는 가능성은 내재돼 있는 것 같다”

사진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군대 이야기는 딱 석 달, 2월 28일까지만 하기로 했다. 제대와 동시에 복귀한 예능 〈집사부일체〉에서다. 인터뷰는 3월에 이뤄졌다. 이승기는 약속을 지켰다. 질문이 나오지 않으면, 군대 이야기를 부러 먼저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삶에 군 경험이 변곡점이 되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영화 〈궁합〉은 아직 볼살이 있고, 소년의 눈망울이 살아있는 싱그러운 이승기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입대 전 촬영을 마쳤고, 제대 후 개봉했다. 지금의 이승기는 영화 속 서도윤보다는 날렵하고 단단해 보였다.

“시간이 흐른 뒤라 감정선에 몰입하지 못하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작품 안에 잘 녹아들었더라고요. 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봤습니다.”

〈궁합〉은 오랜만에 보는 하이틴 로맨스다. 아기자기하고 간지러운 감성이 가득하다. 송화 옹주(심은경)라는 사나운 사주팔자를 갖고 태어난 인물이 자신의 운명에 맞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승기가 맡은 서도윤은 ‘운명을 읽어주는 남자’다. 명리학에 통달한 명민한 이 인물은 시종일관 진중하고 반듯하게 송화옹주 곁을 지킨다.

“천재적인 기질을 가진 인물에게 관심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예술계에 근접한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특별한 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저 스스로는 특별하다기보다는 평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실제 1월에 태어난 이승기의 사주는 ‘겨울에 태어나 불을 만나 물의 본성을 찾아갈 대길할 사주’라고 한다. 불과 물의 기운이 함께 있는 사주다. 실제로 함께한 심은경은 이승기의 열정을 보며 ‘불 같은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작품을 위해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이승기가 깨달은 건 “운명을 만드는 건 결국 그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주제와 같다.

“저는 약간의 재능과 끝없는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군대를 다녀오면서 체력과 멘털의 한계점이 더 높아진 것 같고요. 매 순간 최선을 다했지만, 저는 알잖아요. 스스로 ‘이 정도면 됐다’고 타협했던 지점이오. 이제는 그게 사라졌어요.”


불 같은 열정, 물 같은 본성


〈집사부일체〉에 함께 출연하는 비투비의 육성재는 이승기를 만나기 전날 밤 무척 설레었다고 했다. 실제 이승기의 노래를 불러 오디션에 합격하기도 했고, 자신의 ‘롤모델’에 가까운 선배를 만나서다. 아이돌을 포함한 신인들은 예능과 드라마, 영화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굳힌다. 육성재가 그렇고, 〈궁합〉에 함께 출연한 샤이니의 민호도 그렇다. 이 길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게 이승기다.

그는 〈1박 2일〉로 예능을 ‘접수’했고, 드라마 〈찬란한 유산〉으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때 그는 ‘시청률의 제왕’으로도 불렸다. 〈강심장〉에서 강호동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운 것도 이승기였고, 강호동과 이수근이 〈신서유기〉로 복귀할 때 이들을 맞아준 이도 그였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는 그저 약간의 재능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인색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약간의 재능’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곰곰이 생각하다) 모든 분야에 열려 있는 ‘가능성’? 뭔가를 해 볼 만하다는 가능성은 내재돼 있는 것 같아요. 조금의 가능성이 보이면, 잘 해내기 위해서 노력으로 채우는 거죠. 그 약간의 가능성이 제가 가진 재능인 것 같아요.(웃음)”

이건 다른 말로 포텐(potential) 그러니까 잠재력인데, 그는 이미 각 분야에서 포텐을 터뜨렸다. 가능성은 믿음이 되었고, 믿음은 기대가 되었다. 그 역시 자신에 대한 기대와 잣대의 눈금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안다.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깨우는 일은 군에서 파낸 삽질보다 더한 노력이다.

“지금도 매일 두통을 달고 살아요. 촬영 현장에 가면 ‘내 몫을 해내야 한다’는 긴장감이 있으니까요. ‘여기서 이렇게 하면 재미가 있을까, 웃음이 터질까, 오늘의 분량이 나올까’를 늘 고민하죠. 그런데 도망가고 싶다거나 괴롭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더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죠.”

두통이 끝나는 순간은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웃음의 분량을 채웠을 때다. 그제야 비로소 만족감이 밀려든다.

“괴롭기만 했다면 못했을 거예요. 살면서 웃을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예능이라는 장르는 먼저 제가 굉장히 많이 웃게 되는 곳이에요.”


연기라는 장르는 이승기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공간이다. 그가 맡은 역할들도 예사롭지 않다. 재벌에서 반인반수, 천재 역술가에서 요괴까지, 능력을 넘어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매력이 있는 인물은 그만큼 잘 못하면 못하는 티가 엄청 나요. 위험부담이 크죠. 〈화유기〉의 손오공도 ‘판타지’잖아요. 그런데 하고 싶었어요. 그 비현실적인 격차를 넘어보고 싶었죠.”

하나의 장르도 제대로 하려면 노력이 필요한데, 연기와 노래, 예능까지 하는 그는 ‘남들의 3배 노력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이미 결론을 내렸다.

“노래는 제가 정말 잘하고 싶은 장르예요. 노래를 부를 때 제 모습이 참 좋아요. 더구나 이선희 선배님을 보면 노력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대단한 분도 늘 자기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빡세게(웃음) 사시거든요.”

그러고 보면 이승기의 ‘사부’들은 모두 빡세다. 〈집사부일체〉로 매주 만나는 사부들도 그렇지만 곁에 모시는 사부들도 그렇다. 예능의 대부 강호동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에너지가 넘친다. 아침 오프닝부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호동 형님은 항상 ‘우리는 지칠 자격이 없다’고 밀어붙이거든요. 그때는 ‘아니, 그래도 지칠 자격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일동 웃음) 지금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언제든 부르면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나영석 PD는 사람 좋은 얼굴로 그 사람의 능력치를 다 뽑아낸다는 면에서 빡세다.


약간의 재능에 빡센 노력


어릴 적에는 한 번도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이 없다. 장래 희망에는 ‘사업가’라고 적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어느 조직에 속하지 않고 자기만의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를 가나 주목받고,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이 되어 있다. 운명이란 알 수가 없다.

“어릴 때도 주목을 받으면 기분이 좋았던 것 같기는 해요. 연예인을 꿈꾼 적은 없지만, 벌써 데뷔한 지 14년 차가 되고 보니 ‘이 삶이 내 삶이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돼요. 사실 연예인이라고 특별할 건 없어요. 직업이 특별할 뿐이지 저 역시 사회구성원의 일부니까요.”

그가 이런 ‘개념’을 갖게 된 데는 가족의 영향도 크다. 지금도 가족 단톡방에는 매일 메시지가 올라온다. 트렌드가 바뀌고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의 말씀을 새겨듣는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건 어릴 적부터 몸에 밴 가르침이다.

“요즘 시청자분들이나 관객분들 수준이 굉장히 높아요. 미드나 새로운 매체에 익숙하기 때문에 평론가, 감독 이상으로 보는 눈을 갖게 됐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더 노력해야죠. 제대로 안 하면 다 티가 나요.”

가장 먼저 들키는 건 그 자신에게다. 그의 삶에 가장 엄격한 조교는 자신이다. 마음의 흐름을 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는 것 같으면 경종을 울린다. 말년 병장 시절, 어떤 선임이었느냐고 물으니 ‘먼저 모범을 보이는 편’이었다고 한다. 선임이 하는데 안 할 수가 있나. 말로만 부리는 선임보다 더 독한 선임이다.

혹자는 고고한 예술이 영감과 재능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그 수면 아래에서는 자맥질이 있다. 세네카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은 예술이 아니’라고 했다. 이승기가 지금 영화와 드라마, 예능에서 상한가를 치고 있는 것 역시 우연은 아니다. 어쩌면 이승기는 숱한 담금질로 ‘예인이 되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불 같은 물인지도 모른다.
  • 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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