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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정신을 부르는 역할이라면 언제든 환영

‘로코 여왕’ 공효진의 변신

공효진이 사라졌다. 드라마 〈파스타〉 〈질투의 화신〉에서 보여준 귀엽고 사랑스러운 ‘공블리’의 모습도, 영화 〈러브픽션〉 〈미쓰 홍당무〉에서 보여준 엉뚱하고 까칠한 여배우의 모습도 없어졌다. 영화 〈미씽:사라진 여자〉(감독 이언희, 이하 미씽)에서 공효진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모습,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를 다 없애버린 채 생경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진제공 : 메가박스 (주)플러스엠
〈미씽〉 속 공효진이 맡은 한매는 한국말이 어눌한 중국인으로, 워킹맘 지선(엄지원)의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보모다. 어느 날 한매는 자신이 돌보던 아이를 유괴해 달아나고, 아이 엄마 지선은 한매를 쫓는 데 전력을 다한다. 두 여자를 둘러싼 사건의 전말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예상치 못했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두꺼운 눈썹과 30개가 넘는 점으로 가득 찬 칙칙한 피부 때문에 한매는 메마르고 우울해 보였다. 공효진은 “시골 사람 같은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 중국 영화에서처럼 순수하고 시커먼 머리를 늘어뜨리고 기름기 하나 없는 얼굴을 가진 인물이다. 조선족으로 설정하면 한국말을 더 잘하기 때문에 조선족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이미지가 좋아 처음 시나리오대로 중국인을 연기하게 됐다”고 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때 느끼는 쾌감


한매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공효진은 능숙한 중국어와 어눌한 한국어를 함께 준비해야 했다. 한국에 처음 온 한매는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지만, 점차 긴 문장을 소화하게 된다. 하나의 단어, 그리고 숨소리마저 모두 공효진의 고민과 계산이 담긴 결과물이다. 중국어 선생님과 꼭 붙어 일대일 집중 교육을 받았다. 그는 “중국 사람이라서 안 되는 한국어 발음이 있다. ‘오’에 ‘니은’이 붙은 단어들의 발음이 잘 안 되더라. ‘돈’을 ‘둔’이라고 발음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그대로 연습했다. 대신 애드리브는 할 수 없었다. 이상한 말을 뱉었다가는 신 자체가 웃겨질 수도 있지 않나. 말도 못 하고 짐승처럼 오열하는 신이 있는데, 애드리브를 더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며 웃었다.

“제가 원래 중국어를 하나도 못하는데 큰 도전이었죠. 중국어는 소리가 튀는 말이라 성조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선생님이 하는 대사를 체화하는 데 집중했어요. 중국어를 잘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한국어를 어눌하게 하는 것도 난관이었어요. 한매에게 말을 시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대사가 많지 않아 다행이었죠.”

영화 〈미씽〉
공효진의 외적인 변화 못지않게 그가 이 영화에서 새롭게 맞닥뜨린 건 ‘모성(母性)의 표현’에 대한 부분이었다. 한매에 대한 연민과 분노, 응원과 비난은 모두 그가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광기가 서린 그의 행동도 모성이 아니라면 납득하기 어렵다. 그는 “이 역할을 진짜 엄마인 배우가 맡았다면 더 잘해냈을까 하는 생각이 매번 날 괴롭혔다”고 했을 정도다. “나는 엄마가 딸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지 그런 것도 전혀 가늠이 안 된다. 그냥 어렴풋이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다. 현장에서는 조언 구할 사람도 없었고, 그냥 정답이 없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그런 톤과 매너로 연기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게 오히려 잘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많은 관객이 공감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고. 물론 모성을 느껴본 배우가 연기했더라면 또 다른 느낌으로 표현됐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영화 〈미씽〉
“미혼모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시설에서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갓난아기부터 제법 자란 아이까지 다양한 월령의 아이가 있었는데, 그때 아이들을 돌보며 노하우가 좀 생겼어요. 아기들이 너무 좋아서 엄마와 친구들까지 데리고 봉사활동을 다시 갔었죠. 당시의 경험은 봉사의 의미도 있지만, 저 역시 언젠가 엄마가 될 수도 있으니 아기들을 돌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너무 소중해요. 영화에 등장한 아기들도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촬영을 하며 저와 친해져 제게 안겨 있을 때 너무 예쁜 거예요. 촬영이 끝나고 헤어져서 너무 아쉬웠어요.”

이언희 감독은 〈미씽〉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본인의 개인적인 생활이 가장 중요하고,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싶다”면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내가 잘 모르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에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전했다.


남자의 보호, 도움과 타협하지 않는 여자

영화 〈미씽〉
이 영화는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두 엄마를 그려내지만, 모성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지선은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 중국인 보모 한매를 추적하면서 그가 한국에 온 이후에 견뎌내야 했던 삶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도 되돌아본다. 지선도 의사인 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양육권을 뺏길 처지에 있고, 생계를 위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자리에 연연한다. 이들의 경제적・사회적 위치는 다르지만 남자의 보호나 도움과 타협하지 않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자를 보여준다. 〈미씽〉은 남자 배우들이 주연으로 나서는 영화들이 극장가를 지배하는 가운데 ‘여자 감독이 연출한 여자 배우 투 톱(두 명의 배우가 주연)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공효진은 “평소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 현장에서는 여자 감독님과 함께하다 보니 여러 가지를 느낀 것 같다. 여자 감독님 현장은 더 각박하다. 페미니즘이 발동하고 독립투사처럼 싸우게 되는 부분도 있다. 여자 감독님과 여배우 둘이잖나. 물론 촬영은 조화롭게 진행되긴 했지만, 처음엔 남자와 여자 스태프들의 이야기가 갈렸다”고 했다. 가장 치열하게 공방이 오간 건 이 영화가 엄마에 대한 이야기인지,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지 하는 부분이었다. 그는 “여자 셋이서 고생했다. 결국엔 영화가 잘 나와서 다행이다. 여성 파워를 보여주자고 하는 이유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싸울 수밖에 없었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이 영화가 현재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남성의 시각은 달랐죠. ‘아니다, 엄마의 이야기다’라고요. 남자와 여자는 엄마에 대해, 여자에 대해 생각하는 그림이 상당히 다르더라고요. 스태프를 먼저 이해시켜야 했어요. 신마다 많은 의견 충돌이 있었고, 그럴수록 세 여자가 더 똘똘 뭉치게 됐어요. 재밌게 말하자면 셋이서 투쟁한 게 맞아요. 도전의식이 막 생기더라고요. ‘브로맨스’ 영화도 두렵지 않을 그런 자신감이 생겼어요(웃음).”


공효진은 “다른 건 몰라도 남자 배우들이 출연할 수 있는 캐릭터나 캐릭터의 나이대가 훨씬 다양한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공효진과 친분이 두터운 손예진도 최근 인터뷰에서 “공효진과 여성의 일탈을 그리는 〈델마와 루이스〉 같은 영화를 언제 한번 찍자는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할 정도로 여배우들을 위한 배역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모자란다.

“남자 역할이 더 탐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웃음). 지금 나오는 한국 영화 세 편 중 한 편도 여배우 중심의 영화가 아닐걸요. 물론 여배우 주연의 영화는 투자받는 과정이 어렵다고들 해요. 너무 오래 지속돼온 분위기라서 아무리 제가 ‘타도’를 외쳐도 개선되긴 어렵겠죠. 결국은 관객들에게 얼마나 호응을 받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해요. 그렇다고 영화의 질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죠. 마치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악순환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관객분들에게 여성들의 영화에 좀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영화에 출연할 때마다 공효진은 늘 색깔 있는 캐릭터로 등장했다. 영화 〈미쓰홍당무〉에서는 안면홍조증에 걸린 여교사, 영화 〈러브픽션〉에서는 겨드랑이 털을 당당하게 기르는 신여성, 영화 〈고령화 가족〉에서는 까칠한 이혼녀 등이 그러하다. 그는 “시나리오를 보다 보면 ‘3년 전에 나온 건데’ 싶은 캐릭터들이 많다. 그런 것에는 흥미를 못 느끼겠다. 특히 여성스럽고 뻔한 캐릭터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공효진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예쁘고, 남자들이 목숨 걸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역할”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는 “보면 볼수록 좋은 사람이 있고, 처음엔 괜찮은데 보면 볼수록 싫어지는 사람이 있다. 나는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내가 선택하는 캐릭터에도 투영이 되나 보다.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도 그렇고, 내가 연기하는 많은 캐릭터의 대부분이 갈수록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다. 그런 캐릭터를 잘 키워나가는 방법을 내가 동물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드라마 〈파스타〉 이후로 TV에서는 줄곧 허술하지만 발랄하고 귀여운 여자 역할을 주로 맡았다. ‘공효진’과 ‘러블리’(lovely·사랑스러운)를 합친 별명 ‘공블리’도 이때부터 붙은 별명이다. 구애정(〈최고의 사랑〉)과 서유경(〈파스타〉), 송미래(〈네 멋대로 해라〉), 선경(〈가족의 탄생〉) 등 그가 연기했던 대표적인 캐릭터들은 처음에는 엉뚱하고 무뚝뚝하지만 알고 보면 사랑스러웠다. 그는 인터뷰를 할 때도 약간 뾰족뾰족한 말투로 말하다가도 결국은 씨익 웃으면서 말을 마무리했다. 그는 “물론 ‘공블리’라는 별명 때문에 이미지가 더 강해진 것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별명을 갖고 활동을 한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수식어다. 여성스럽다는 것도 아니고 멋지다는 것도 아니고, 사랑스럽다는 말 아닌가. 나는 오히려 이 별명 덕분에 더 과감하게 캐릭터를 고르는 것 같기도 하다. 좋게 봐주시니까 용기가 생겼을 수도 있다. 여배우들이 겁을 내는 캐릭터가 나에게 많이 들어온다.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욕구에 따라 다양한 캐릭터를 고르는 편이다”라고 했다.

“사실 드라마는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해요. 드라마는 콩닥콩닥한 걸 좋아해서 긍정적인 여주인공이 힘든 세상에서도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그런데 영화는 달라요. 비슷한 걸 못 참겠고, 심지어 머리 스타일 하나까지 다 지겨워요. 영화를 통해 변화를 시도하려고 해요. 저를 지지해주고 사랑해주는 팬분들이 있어서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 자유로워요.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용감하게 연기할 수 있었죠. 아마 공블리가 없었다면, 전 여전히 비주류 배우로 남지 않았을까요?”

공효진은 “대중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때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영화 감독들에게 “정말 어려운 역할이 있으면 맡겨 달라. 도전정신을 부르는 캐릭터라면 언제든 환영이다”라는 당부의 말도 전해달라고 했다.

“제 로맨틱 코미디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반갑지 않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형적인 틀에 제 자신을 가두는 일이야말로 아까운 행보라고 생각해요. 관객은 조금 덜 동원하더라도 놀라움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못 돼먹은 부잣집 딸 역할 한 번 해보고 싶네요. ‘내가 어떤 역할을 하면 새로울까?’는 고민을 다 해봤어요. 많이 했더라고요. 그런데 해보지 못한 역할이 있었어요. ‘옥탑방을 벗어나 좋은 집에 사는 못 돼먹은 부잣집 딸’ 역이오.”
  • 201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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