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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함’ 벗고 ‘단단함’을 입다

〈국가대표2〉 주연 수애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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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의 개막과 함께 〈국가대표2〉가 찾아왔다.
비인기 종목인 여자 아이스하키 팀의 실화를 담은 영화다.
승자독식, 토사구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살벌한 아이스링크에 한 줌의 땀과 눈물이 뿌려졌다.
보잘것없고 메마른 살풍경에 온기를 불어넣는 배우 수애를 만났다.

사진제공 : 메가박스플러스엠
수애의 연기를 보는 일은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 여자 배구팀의 경기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땀을, 때로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지 경기를 보면 알게 된다. 경기 전 다른 종목의 다른 선수들만큼 주목받지 못하였더라도, 경기하는 동안만은 그는 독보적이다. 수애는 줄곧 어떤 열악한 상황에 빠진 인물을 연기해왔다. 그는 베트남에 파병 간 남편을 찾으러 간 순이(영화 〈님과 함께〉)이기도 했고, 서울에서 농활 온 대학생과 사랑에 빠지는 시골 도서관 사서이기도 했으며(〈그해 여름〉), 국권이 사라진 나라의 마지막 황후(〈불꽃처럼 나비처럼〉)이기도 했다. 상황이 주는 불리함과 상관없이, 그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불행에 압도되지 않는 우아함을 보여주었다.


불행이나 불운에 압도되지 않는 인물

이번에는 국가대표다. 여기에는 이중고가 있다. 그가 연기한 리지원은 북한 인민대표 출신 탈북자다. ‘국가’를 말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거기다 누구도 이들을 국가의 ‘대표’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가 속한 여자 아이스하키 팀은, 동계올림픽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동원된 병풍이다.

영화 밖으로도 썩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2016년 여름은 이미 1000만 영화 〈부산행〉과 블록버스터 〈인천상륙작전〉, 손예진과 박해일이 열연한 〈덕혜옹주〉와 하정우와 배두나가 호흡을 맞춘 〈터널〉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더구나 〈국가대표2〉는 이미 800만 관객을 동원한 〈국가대표1〉 이라는 넘사벽이 있다. 전편이 좋을수록 속편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공식도 여전하다.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수애는 뜻밖에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행복한 순간이 떠오르면 살짝 볼우물이 파이기도 했다.

“사실 이 순간이 제일 기쁜 순간이에요. 개봉하기 전이 영화를 제일 만끽할 수 있거든요. 흥행에 대한 부담보다는 배우들과의 행복했던 기억을 더 곱씹어 볼 수 있고요. 저희끼리는 서로 칭찬도 많이 해줘요. 관객의 칭찬만큼이나 같이 고생한 동료의 응원도 굉장히 감동이거든요. 저희 (오)달수 선배님은 영화 보다 우셨어요(웃음).”


〈국가대표2〉의 포스터에는 여자만 여섯 명 등장한다. 여기에 청일점 오달수가 보인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이례적인 구성이다. 특히 수애와 오연서는 극중 라이벌 관계로 등장한다.

이 때문에 여배우끼리의 기싸움이나 더 돋보이기 위한 암투에 대한 질문도 자주 받는다고 했다.

“신인 때부터 궁금했어요. 여배우와의 호흡은 어떨지요. 이 시점에서 여배우들과 뭉쳐서 한 팀의 일원이 되어보고 싶었어요. 한 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주변에서는 여배우끼리 기싸움이 있을 거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저희끼리는 없었어요. 왜냐면 저희가 다 ‘국가대표’니까요. 국가대표는 예뻐 보이면 지는 거거든요.”

운동복을 입고도 그렇게 예쁘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을 하려다 집어넣었다. 첫 촬영이 갯벌에서의 훈련이었다고 했다. 배우의 키를 넘는 파도가 쳐도 촬영은 강행됐다. 분장이든 화장이든 이미 땀으로 지워진 지 오래였다.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겠다’는 감을 확실히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제가 연기한 리지원은 탈북한 선수가 국가대표가 되었다는 게 좋았어요. 배우 하면서 좋은 점이 다양한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건데요, 초반에는 한 팀의 일원으로 있다가 마지막에 혼자 이끌어나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영화는 마치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는 경기처럼 나뉜다. 국가대표 여자 아이스하키 팀이 구성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전반전이라면, 이후 이들이 동계올림픽에서 보여주는 경기는 후반전이다. 그의 말대로 수애의 활약은 후반에 도드라진다.

“제가 한 인물의 극적인 드라마를 선호하는 것 같긴 해요. 그 안에서 어떤 강인함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요. 특히 남북 간의 감정은 한국 배우만이 연기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북한 사투리에는 제가 좀 더 욕심을 냈어요. 〈나의 결혼원정기〉 (수애는 탈북한 통역관 역을 맡았다) 때부터 저한테 북한 말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있으세요. 그 이후로도 개인적으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고요. 그때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그때 갈고닦은 실력이 지금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아름다웠던


수애의 대본은 늘 너덜너덜하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고 연기자가 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본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깊이 있게 숙지해서 팀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신인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은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그가 바뀌기 시작한 건 동갑내기 배우 조승우를 만나면서부터다.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명성황후를 사랑한 호위무사 무명을 연기한 조승우는 ‘현장을 즐기는 법’을 알게 해주었다. 친구처럼 편한 상대 배우를 만난 게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하느라 숨 한 번 편히 쉬지 못했다. ‘현장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즐기기 시작한 건 장혁 선배와 〈감기〉를 찍으면서부터예요. 장혁씨는 저랑 비슷하게 ‘대본을 파고들어가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때 오빠가 저한테 ‘우리 둘 다 그걸 좀 놔보자’라고 해서 처음으로 편안하게 해봤어요. 동이 틀 때까지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서 작품 이야기만 하기도 하고요. 그때의 그 바람과 냄새도 기억이 나요. 지금도 작품을 볼 때 본능과 이성의 균형을 찾아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연기에 대본이 아니라 후배들과의 호흡이나 현장의 분위기 같은 것들을 담아보려고 하고요.”

영화 〈국가대표〉
전에는 현장에 오면 겉도는 느낌이 있었다.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해 어딘가 발이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이번 현장에서는 그게 덜했다. 끈끈한 팀워크 덕분이었다.

“결국 현장에서 배우는 만큼 저를 확장하는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번에는 팀원들과의 팀워크가 돈독해져서 좋았어요. 그러다보니까 제가 예전에는 못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예능 프로그램(〈런닝맨〉)에 나가서 막 뛰어다니기도 하고, 〈국가대표2〉 무비토크 때 춤도 추고요. 그 이전에는 저를 그렇게 열지 못했거든요.”

여기에는 배우끼리의 자매애가 작용했다. 수애는 하재숙과 동갑, 오연서는 김예원과 동갑, 그 아래로 김슬기, 진지희가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자매 같았다.

“이제 우리 팀끼리는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함의 공백이 없이 친구처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재숙씨가 저보고 초등학교 동창같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참 고마웠어요. 이번 영화에 멜로는 없지만 여한이 없어요. 그 어떤 남자 배우들보다 멋있는 동료들이랑 같이 했거든요. 더구나 몸을 많이 쓰는 영화잖아요. 타박상이나 근육통은 달고 살았어요. 넘어지고 다치고 할 때마다 서로 붙잡아주고, 눈빛을 보내주고 했던 순간들이 쌓였죠. 나중에는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영화를 보니, 정말 배우들에게서 선수의 모습이 보여서 ‘와 저게 나라니, 저게 우리라니’ 하며 감격했어요.”


영화의 후반은 분명 수애가 끌고 가야 하는 부분이다. 리지원 선수가 홀로 감당해야 할 부분, 여기에 히든카드 박소담이 등장한다. 박소담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수애는 안심했다고 했다. 박소담이라면 친자매처럼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기만이 아니라, 그에게서 자기와 닮은 모습이 보였다.

“박소담씨와 클라이맥스 장면을 찍었죠. 그래서인지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극중에서는 그런 평범함을 같이 나누지 못한 게 제일 슬펐으니까요. 소담씨에게서는 실제로 동생 같은 느낌이 났어요.”

수애는 집에서도 맏이다. 엄마와 닮은 언니의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다. 동생을 아끼고, 동생이 잘되었으면 좋겠고, 동생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다.

“저 어렸을 때 동생 숙제 검사하고 많이 챙겨줬던 기억이 나요. 언니 마음이 참 엄마 마음이랑 비슷해요. 저도 못하면서 동생들 앉혀놓고 막 혼내고 그랬어요(웃음).”

수애가 처음 연기를 시작한 이유도 가족 때문이었다. 장녀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그래서 묵묵히 대본을 파고, 현장을 견뎠다. 그러다보니, 연기를 사랑하게 된 순간이 찾아왔다. 서른이 지나자 ‘나를 위한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더없이 내향적인 사람인데, 그 안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불이 있었다.

“만약에 연기라는 통로가 없었다면 내 안의 뜨거움을 어떻게 표현하며 살았을까 싶기도 해요. ‘이 직업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아찔한 순간이 있어요. 만약에 배우가 안 되었다면 아주아주 평범하게 살았을 것 같아요.”


아주 조용하고, 뜨거운 불


20대의 마지막 작품, 〈님은 먼곳에〉를 함께 했던 이준익 감독은 수애를 ‘아시아에서 최고가 될 여배우’라고 했다. 그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감정을 내지르기는 쉽지만, 중간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수애는 중간 톤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드문 배우”라고 했다. 〈국가대표2〉에서도 그 중간 톤의 힘이 보인다. 극의 전반까지 그는 튀지 않는다. 화면의 한구석에서 묵묵히 훈련을 하고 달리기를 한다.

“실제로 제가 운동신경이 좋아요(웃음). 운동할 때뿐 아니라 물 마실 때나 걸을 때도 선수처럼 보이려고 마음을 늘 가다듬었어요. 그건 준비하지 않으면 나타나지가 않거든요. 목소리도 좀 더 가라앉혔고요. 여자가 아니라 선수로 보이길 바랐어요. 일부러 돋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했고요. 실은 욕심이 더 커진 거죠. 데뷔 때부터 주인공 역할을 해왔는데, 그보다 더 커진 욕심은 전체를 아우르고 담으려는 욕심이에요. 그게 주인공보다 더 큰 역할이고요. 나, 내 것만이 아니라 전부를 넓게 보고 싶었어요.”

2004년 영화 〈가족〉으로 등장한 신인 배우 수애는 그해 청룡상, 백상예술상, 대한민국영화대상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2008년에는 영화 〈님은 먼곳에〉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2010년 〈심야의 FM〉으로 청룡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슈퍼루키로 등장한 이 선수는 자타공인 스트라이커가 되어 충무로를 누볐다. 소란스럽지 않게 자기 몫을 해내며 묵묵히 성과를 내는 선수였다. 그리고 이제는 경기 전체의 흐름을 읽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골을 넣는 순간뿐 아니라 골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배우. 덕분에 관객은 수애의 영화를 보며 한 편의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스포츠에서든 영화에서든, 모르게 쏟아낸 땀과 눈물만큼 정직한 건 없으니까.
  • 2016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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