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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베테랑〉을 지나 〈히말라야〉로 3연타석 흥행 홈런

관객 3000만 명을 만난 연기의 달인 황정민

지난해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은 영화 〈국제시장〉 〈베테랑〉을 지나온 황정민(45)은 올겨울 〈히말라야〉(감독 이석훈)로 3연타석 흥행 홈런을 날렸다. 주연배우 중에는 그 누구도 올라가 보지 못한 고지(高地)다.
황정민의 경우는 사실 좀 불가사의하다. 잦은 영화 출연으로 이미지가 소비되는 와중에도 매번 전작을 말끔히 잊게 하는 새로움과 흥행 성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뮤지컬 〈오케피〉(2월 28일까지 LG아트센터)에 출연하면서 연출까지 맡고 있다. “2월 4일에는 다음 영화 〈검사외전〉도 개봉합니다. 말 그대로 소처럼 일하고 있어요. 아니, 소보다 일을 더 하는 것 같아요. 요즘 소는 일 잘 안 하잖아요.” 황정민은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지쳐 보이던 얼굴에 좀 화색이 돌았다. “저는 일을 할 때가 재미있고 행복해요”라며 덧붙였다. “‘황정민이라는 사람이 배우로서 살아 숨 쉬는구나’ 하는 걸 일할 때 느껴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사진 : 조선DB
사진제공 : CJ엔터테인먼트
1월 10일 현재 누적 관객 700만 명을 넘긴 〈히말라야〉는 〈국제시장〉으로 1426만 관객(역대 2위)을 모은 JK필름(대표 윤제균·길영민)이 제작했다. 엄홍길 대장(황정민)이 히말라야 등반 중 8750m 지점에서 숨진 동료 박무택(정우)을 찾기 위해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다. 지난 2005년 엄홍길 대장이 휴먼원정대라는 팀을 꾸려 고(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던 실화에 허구를 보탰다. 2014년 1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히말라야와 몽블랑 등지에서 촬영했다.

“처음에는 해외 로케이션이 ‘해외여행’으로 들렸어요. 해외여행 좋잖아요. 산악 영화이겠거니 했는데 그토록 힘들 줄 몰랐습니다. 〈댄싱퀸〉을 같이 만든 제작진이라 낄낄거리면서 신나게 갔다가 뒤통수 제대로 맞은 거죠. 촬영 일주일 만에 후회했어요. 셰르파가 얼마나 짐을 지고 나르는지도 모르고,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로 뛰어든 겁니다. 그렇게 시행착오가 쌓이면서 점점 산쟁이가 되어간 거죠.”


이른바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었다. 한국 산악 영화는 2004년 〈빙우〉 이후 11년 만이다. 엄홍길 대장은 몇 번 만났지만 아무런 조언도 없었다. 황정민은 “술 드시면 속내를 들을 수 있겠지 했는데 전혀 안 하시더라”며 “그 까닭을 촬영하면서 깨우쳤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리더이다 보니 책임감이 무거웠어요. 생사를 넘나드는 산행을 조금 경험해보니까 ‘아, 대장님이 이렇게 외로웠겠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주인공이고 선배잖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요. 지친 후배들과 스태프들을 향해 ‘괜찮아’ ‘까불지 마’ ‘할 수 있어’ 독려하면서 올라가는 겁니다. 다들 날 바라보고 있으니까 ‘내가 무너지면 안 되지’ 하는 책임감이 엄청 컸어요. 그때 엄 대장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어떤 얘기를 구체적으로 들었으면 오히려 나한테는 독(毒)이 될 수도 있으니까.”


연기와 등반은 닮은 꼴


배우에게는 배역 하나하나가 다 산(山)이다. 황정민은 “등반과 연기에 공통점이 있더라”며 말을 이었다. “히말라야 12좌를 오른 산악인이 이 영화 수퍼바이저를 했어요. ‘그 힘든 데를 왜 기어 올라가느냐’ 했더니 이렇게 되묻는 겁니다. ‘형은 배우 왜 해요?’ 무릎을 탁 쳤어요. 배우도 어떤 인물을 맡아서 창조하고 목표 지점까지 가야 합니다.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점에서 등반과 같은 것이구나 싶었어요.”

실제 휴먼원정대는 날씨가 나빠져서 올라가지 못하고 내려오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황정민이 갔을 때 네팔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바라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제작진은 그래서 몽블랑을 선택했다. 크레바스를 찍었는데 날씨가 좋아서 걱정을 많이 했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해야 하나 어떡하나 회의하다 마침 마지막 촬영 날 기상 상황이 나빠졌고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고 그는 말했다.

“드디어 하늘이 우릴 도와주는구나. 스태프가 신나서 찍는데 그쪽에서는 위험하다고 못 찍게 막는 거예요. 각서를 썼어요. 사고 나도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배우와 스태프 70~80명이 굴비처럼 줄로 엮여서 올라갔습니다. 너무 위험하니까 동지애도 생겼고 영화에 자연스럽게 묻어난 것 같아요.”

황정민은 등산을 썩 즐기지 않는다. 산자락에서 시늉만 하다 전이나 먹고 가는 식이다. 언론 시사회 때 그는 “히말라야에 다녀와서 등산복을 다 내다버렸다”고 말했다.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힘들었다는 뜻이었다. 빙벽 등반과 감압 체험 등을 하고 간 히말라야에서는 4500m까지 올라갔다. 황정민은 “풍광이 장관이었다”며 “그 자연 앞에서 아등바등 사는 내가 초라해 보였다”고 했다. “영화를 통해 큰 공부를 한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어딜 가나 주인공이고 선배인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문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웠어요. 영화를 처음 볼 때 ‘해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악전고투하며 서로 토닥여준 기억이 밀려와 눈물 날 뻔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니까 눈물이 많아진단다. 황정민은 “히말라야를 사진으로만 보지 말고 겪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촬영을 하려고 사나흘 걸어서 올라갔는데 깔딱 고개가 나왔단다. 3500m 지점부터는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그곳을 지나면 3800m 높이에 마을이 있다. 황정민은 “삶이나 생활 태도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설산(雪山)의 기운을 받아 왔다”고 으스댔다. 히말라야에 다녀와서 촬영한 작품은 2월 4일 개봉하는 〈검사외전〉(감독 이일형). 설산의 기운은 그 영화가 가져간 셈이다. 감옥에 갇힌 검사(황정민)가 누명을 벗기 위해 사기꾼(강동원)과 손을 잡으면서 펼쳐지는 범죄 오락물이다.

영화 〈히말라야〉 초반에 엄홍길 대장(황정민)이 박무택(정우)을 향해 “너 다시는 산에 올라올 생각 하지 마”라고 나무라는 대목이 있다. 산악인의 기본 자세가 안 돼 있다는 질책이었다. 황정민도 후배 배우를 그렇게 야단친 적이 있을까.

“셰르파로 나온 친구들이 다 우리나라 배우들이에요. 셰르파라면 누구보다 산을 잘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장비 쓸 줄도 모르는 겁니다. 답답하고 속상해서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혼을 냈어요. 모르면 배워서라도 와야 하는데 신발도 못 신어 끙끙거리더라고요. 그래서 연출부한테도 야단을 쳤어요. 촬영이 더뎌지니까. 그게 대장 역할입니다. 배우는 솔직히 그런 얘기 할 필요 없는 거잖아요. 야단치고 나서 또 미안해지고 후회되고. 내 속은 편하겠어요? 안 편하잖아요. 그런 중압감과 자괴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러나 싶고. 그런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이 영화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좋은 퀄리티로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서로 동지애가 생기고 더 열심히 하게 된 거지요.”


동료가 쓸쓸하게 죽어가지 않도록


산악인은 ‘정복’이라는 낱말을 싫어한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산이 허락해 운 좋게 잠시 머물다 내려오는 것뿐”이다. 황정민에게 엄홍길이라는 배역은 어땠을까. 그는 “엄홍길을 감히 정복하진 못했지만 그 산악인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늘 양면이 있잖아요. 누구는 엄홍길을 존경하는데 누구는 욕할 수도 있는 것처럼요.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엄홍길 대장을 인간으로 보게 되었어요. 나중에 만나면 더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히말라야〉는 오프닝부터 압도적이다.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서 이곳이 히말라야 8000m 지점임을 직감한다. 엄홍길 대장이 눈 덮인 산을 굴러 떨어진다. 대역 배우가 아니라 황정민이다. 그는 “20m쯤 굴러 떨어졌는데 다들 사고 난 줄 알고 뛰어왔다”고 했다. 감독과 촬영감독에게만 귀띔한 터였다. 스태프들은 난리가 났지만 멀리서도 이 장면이 찍혔다. 영상 소스로 충분히 쓸 수 있는 긴박한 순간을 수집한 것이다. 황정민은 “강원도 영월 눈밭에서 찍었는데 리얼하게 담겨서 오프닝으로 잘 써먹었다”고 했다.

히말라야에서 무전기로 노래를 들려주는 장면도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그의 아이디어다. 엄 대장이 나쁜 기상 상황으로 “나 믿고 여기까지 와준 것만 해도 감사해. 내려갈 사람은 내려가도 좋다”고 말한 다음 장면에서다. “배우 김원해(김무영 역)가 감성적이고 하모니카를 잘 불어요.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써먹자고 했어요. 무전기를 이용하면 좋은 그림이 나오겠다 싶었습니다.” 고른 노래는 산울림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영화에는 엄홍길 대장이 강연하는 대목이 있다. 존경하는 산악인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얼마 전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고 하산하다 박무택 대원이 조난을 당했습니다. 기상 상황이 나빠 구조하러 가는 건 자살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혼자 달려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박정복 대원(김인권)입니다. 그는 다음 날 새벽 6시에 산에 고립된 박무택 대원을 만났습니다. 무택이가 쓸쓸하게 죽어가지 않도록 곁을 지켜줬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무택이와 같은 운명을 맞았습니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지만 그날 밤의 등반은 가장 외롭고 가장 위대한 등반이었다고 믿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이야기


산악인에게 위대한 등반이 있다면 배우에게는 위대한 연기가 있다. 황정민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어릴 땐 많았죠. 배우 숀 펜을 좋아했어요. 〈데드 맨 워킹〉을 보면서 위대하다고 생각했죠. 사람을 막 미치게 하잖아요. 나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꿈꿨어요. 그런데 연기를 20년 넘게 하다 보니까 요즘 저의 화두는 ‘연기 안 하는 연기’입니다. 다큐를 보면 연기가 아니라 생활인데 보는 사람을 진동시키잖아요. 〈히말라야〉는 촬영 과정 자체가 힘들어서 퍽 자연스럽게 묻어난 것 같아요.”

황정민이 출연하고 연출까지 한 뮤지컬 〈오케피〉는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지휘자와 열두 명의 악기 연주자는 저마다 이야기의 주인공 역할을 한다. 허세 가득한 지휘자(황정민)는 사실 아내 ‘바이올린’(최우리)과 별거 중이면서 ‘하프’(린아)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고 바이올린은 새 애인 ‘트럼펫’(최재웅)과 헤어진 사실을 숨기고 있다. 황정민은 〈히말라야〉로 8000m 봉우리에 올라갔다가 먼지 구덩이로 불리는 오케스트라 피트로 내려온 셈이다.

“연기는 똑같아요. 하지만 저는 무대에 있을 때가 제일 좋아요. 행복해집니다. 영화는 컷(cut)으로 구성된 감독의 예술이지만 공연은 배우의 예술이니까요. 막이 올라가면 그때부터 내 세상이에요. 매일 관객도 달라지고 늘 새롭죠. 제가 뮤지컬을 연출하는 까닭도 영화 연출이랑은 다르기 때문이에요. 뮤지컬 연출은 배우들을 떠밀어주는 역할일 뿐입니다.”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은 전쟁을 겪고 폐허에서 일어서야 했던 아버지 세대의 일생을 덕수(황정민)를 통해 재생했다. 가족은 살렸지만 정작 자신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던 인생 말이다. 묵묵히 가장의 자리를 지킨 덕수의 감정은 고성장을 일구고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와도 상당 부분 겹쳐져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베테랑〉(감독 류승완)에서 서도철(황정민)은 더없이 형사다운 형사였다. 불의 앞에 타협 없고 권력도 재벌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두둔하는 동료 형사를 향해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명대사를 날린다. 한국 사회의 갑을(甲乙) 다툼을 비춘 이 영화에서 관객은 을의 편이었고 서도철은 통쾌하게 승리했다.

그리고 올겨울에는 〈히말라야〉다. 1000만 영화가 될지 여부는 다른 영화들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관객이 결정할 것이다. 이석훈 감독은 “삶이 각박해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 결핍이 많다”며 “인간에 대한 예의랄까 인간애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는 목표 지점으로 정확히 가서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황정민은 이 영화를 돈 주고 봐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결국 사람 이야기예요. 산보다는 사람을 통해 얻는 게 더 위대하다는. 박무택의 시신을 집으로 데려오지 못하고 히말라야에 돌무덤을 만들면서 부인과 통화하는 장면이 좋습니다. 죽은 사람 덕에 비로소 산 사람을 돌아보게 되는 거예요. 다들 누군가의 자식이고 아빠니까.”
  • 201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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