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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부지런한’

감독을 외롭지 않게 하는 배우 주원

‘하드캐리(Hard Carry)’, 질 것 같은 승부를 월등히 잘하는 한 명의 플레이어가 승리로 이끄는 경기를 말하는 게임 용어다. 배우 주원의 필모그래피를 모으면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신과 주변을 독려해 최고의 결과를 뽑아낸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 달라진다. 아주 거칠어져 밖으로 발산하거나, 아주 조용해져 안으로 침잠한다. 주원은 후자였다. 이것이 근심스러웠던 그의 부모님은 아들에게 ‘방송반’에 들어가볼 것을 권한다. 방송반은 이미 시끌시끌한 아이들로 만원이었다. 비슷한(?) 느낌의 연극반을 가보니, 아직 자리가 있었다. 난생처음 연극이라는 것을 하면서 알았다. 실은 발산형이었다. 무대에 서면 횡격막을 간질이는 것처럼 숨이 차올랐다. 그 느낌이 좋아서 매일 한 시간 먼저 연습실에 나왔다. 예고에 들어가서도 제일 먼저 연습실에 도착했다. 혼자서 바닥을 쓸고 닦으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노래들을 불렀다. 후배일 때나, 선배일 때나, 학교에서나, 극단에서나 한결같았다. 이 모습을 본 학교 선배(배우 한지상)가 추천해 뮤지컬 오디션을 보게 된다. “대걸레가 나를 데뷔시켰다”는 그의 너스레는 그렇게 나왔다.

“제가 가진 게 별로 없어요. 열심히 하는 거, 부지런한 거, 체력 좋은 거… 말고는 없어요. 연기는… 우리 또래 배우들은 고만고만하다고 생각해요. 선배들에 비하면 표현하는 내공에 한계가 있죠. 하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하는가, 얼마나 더 고민하는가에 따라 아주 조금 차이가 생긴다고 믿어요.”


신은 그에게 소름 끼치게 잘생긴 얼굴이나 끼를 주진 않았다. 그의 표현이다. 자신은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 “개성 있게 생긴” 편이고, 〈1박 2일〉에 고정 출연하면서 얻은 건 “예능감이 아닌 친한 형들”이라고. 대신 신은 그에게 ‘뼛속까지 근면’함과 다부진 책임감을 주었다. 이건 그의 주변인들의 표현이다. 드라마 〈용팔이〉를 함께한 오진석 PD는 “주원은 내가 아는 배우 중 가장 ‘잘 자란’ 청년이자 감독을 외롭지 않게 하는 배우”라고 했다. 시청률은 높았으나 제작 환경이나 스토리 전개에 적잖이 잡음이 있었던 이 드라마를 주원은 시종일관 묵묵히 이끌었다.

“작품은 분위기가 ‘전부’예요. 드라마는 시청률이 그날 그날 나오니까 그에 따라 분위기가 끌려가요. 그러다 보면 어떤 작품은 흑역사가 될 수도 있거든요. 반면 시청률이 낮아도 현장에 있던 우리가 좋았다면 얼마든지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어요. 〈용팔이〉 하면서는 7일 연속으로 밤을 새운 적이 있어요. 그런데 서로가 좋으니까 버티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믿어준다는 느낌, 오직 그 힘으로 버티죠.”


〈그놈이다〉의 장우는 내게 편한 옷


드라마나 영화나 흥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주원의 경우에는 더 극명하다. 드라마는 대부분 흥했다. 〈제빵왕 김탁구〉(2010)에서 탁구를 시기하는 구마준으로 드라마에 등장한 뒤, 주말극 〈오작교 형제들〉(2011)에서 기본기를 다졌고, 시대극 〈각시탈〉(2012)로 날아올랐다. 당시 일본 팬을 의식해 많은 한류스타들이 고사했던 각시탈 역을 맡아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이후 〈굿닥터〉(2013)에서는 자폐와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의사 시온 역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5년간 근속으로 ‘KBS 공무원’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던 이 시기, 주원이 출연한 드라마는 대부분 성공했다. KBS는 이에 화답하듯 그에게 신인상(2011), 우수상(2012), 최우수상(2013)을 차례로 안겼다. 영화는 아니었다. 〈특수본〉(2011)으로 시작된 그의 필모그래피는 〈미확인 동영상〉(2012), 〈캐치미〉(2013), 〈패션왕〉(2014)으로 이어진다.

단 한 작품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도, 분위기가 나쁜 적도 없었으나 흥행은 아쉬웠다.

“이제는 (영화가) 잘될 때가 됐어요(웃음). 정말 궁금해요. 영화가 잘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무대 인사를 다니면 분위기는 항상 ‘천만’이거든요. 그런데 관객 수는 아쉽더라고요. 참 어려워요. 드라마나 영화나 선택의 기준은 다르지 않거든요. 다 잘될 것 같아서 해요. 드라마든 영화든 제가 선택하는 기준은 ‘변화를 추구한다’는 거죠. 매번 최선을 다해서 촬영해요. 분위기도 좋고요. 결과가 나쁘더라도 그 행복한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면 ‘보는 분들이 낯설어하지 않을까’ 싶은 염려와 ‘그래도 잘 받아줄 것 같다’는 기대가 동시에 생긴다. 〈그놈이다〉도 그랬다.


처음에는 ‘스릴러’라는 장르물이라는 게 기뻤다. 나중에는 인물 ‘장우’에 감정이입이 됐다. 부모를 잃고 가진 거라곤 바닷가의 집 한 채와 여동생밖에 없는 장우, 그런 상황에서 여동생이 집에서 살해된다면 ‘나라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장우는 저한테 입히기 편한 인물이었어요. 만약 제 가족 중 누군가 그렇게 되었다면 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거예요. 정말 미쳤을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보는 내내 너무 짠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일한 이유가 여동생이었는데, 살 이유가 없어진 거잖아요.”

그는 장우의 투박한 느낌을 살리고 싶어 살을 찌웠다. 처음엔 운동을 했는데, 할수록 얼굴이 좋아져서 ‘아니다’ 싶었다고 한다. 전체적인 윤곽을 뭉뚱그리고, 해진 점퍼와 군용 바지를 입었다. 헤어 손질이나 분장도 없는 현장, ‘눈곱이 끼어도 이에 고춧가루가 끼어도’ 상관없는 인물이 도리어 편했다. 윤준형 감독은 “거칠어 보이지만 장우의 속은 누구보다 따뜻할 거라 생각했다. 그걸 표현해줄 인물이 주원이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주원은 〈용팔이〉에 이어 두 번째 ‘여동생 바보’가 되었다. 영화 속에서 장우가 일하는 얼음공장에 여동생 은지가 도시락을 싸오는 장면이 있다. 장우는 점퍼를 벗어 은지의 드러난 다리를 덮어주는데 이건 주원이 만든 장면이다.

“저는 여자분들이 치마 입는 걸 잘 못 보겠어요. 위험해 보여요. 만약 제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면 더 못 보겠어요. 사실 (두 눈을 가리는 시늉을 하며) 아이돌이 짧은 옷 입은 것도 잘 못 봐요. 세상이 흉하잖아요. 남자들이 쳐다보고, 혹여나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걱정돼요.”


“한없이 귀여운 남동생 같은”


해마다 현장에 출근하듯 다양한 작품을 했고, 인물의 감정의 파고가 높았던 적도 있지만 이번엔 달랐다. 범인과 맞닥뜨린 유치장 신에서 감정의 고삐가 풀렸다. 범인은 유치장 밖에, 장우는 수갑이 채워진 채로 유치장 안에 갇힌 장면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여동생이 죽었다는 게 실감이 안 났어요. 장우도 그랬던 것 같아요. ‘이게, 이 상황이 뭔가’ 싶은 거죠. 유치장에서 가장 도움이 된 감정이 ‘눈앞에 있는 이 범인을 정말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그 마음이 들어오니까 심장이 터질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초인적인 힘이 나오면서 손에 차고 있던 수갑이 풀렸어요. 진짜 수갑이랑 진짜 철창이었는데, 둘 다 부쉈어요. 태어나서 그렇게 울어본 게 처음이에요. 장우로서 서러웠나 봐요. 진정이 안 되더라고요. 나도 모르던 내가 나와서 좀 놀랐죠.”

끝나자마자 모든 스태프에게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울음이 진정되지 않아 꺽꺽거리면서도 속으로 ‘어? 내가 그렇게 잘했나?!’ 싶어 으쓱했다고 한다. 주원은 좀 ‘귀여운’ 구석이 있다. 〈용팔이〉를 함께한 배우 김태희나 〈굿닥터〉를 함께한 배우 문채원이 “어떤 땐 듬직한 오빠 같고, 어떤 땐 한없이 귀여운 남동생 같다”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그놈이다〉를 찍으면서 제일 잘 먹었어요. 외모에 신경을 안 써도 되니까 너무 좋았어요. (〈그놈이다〉에서 시은 역을 맡은)유영이가 그러더라고요. ‘오빠 치킨을 진짜 좋아 하시나 봐요’, 무슨 소린가 했는데 쉬는 날 다 같이 패밀리 레스토랑을 간 적이 있는데 제가 샐러드바에서 치킨만 먹더래요(웃음). 평소에는 조절해야 해서 잘 못 먹으니까 먹을 수 있을 때 원 없이 먹었죠.”

주원을 신나게 만든 건 또 있다. 언론시사에서 〈그놈이다〉를 본 마산・창원 출신 기자들이 “사투리 인정!” 하며 100점을 주었다. 주원은 장우는 서울말이 아니라 사투리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완벽한 사투리를 구사하기 위해 3개월 동안 녹음 테이프를 달달 외웠다는 그의 성실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VIP 시사회에는 그와 함께했던 동료들이 대거 참석했다. 주원은 평소 현장에서 선생님뻘 되는 선배들에게 ‘엉기는’ 편이다. 작품이 끝나고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이들은 또래가 아닌 ‘선생님들’이다. 〈김탁구〉 시절부터 따르던 배우 전인화도 포함해서다.

“또래에서는 친한 사람을 꼽자면 신중해지는데, 항상 연락하는 분은 선배님들이에요. 서로 농담도 주고받고요. 제가 〈그놈이다〉 한다니까 몇 달 전부터 미리 스케줄을 빼놓으셨어요. 그러니까 제가 더 잘하고 싶죠. 이번 작품에 자신이 있었던 건 ‘한국적 스릴러’라는 점이었어요. 뮤지컬 〈고스트〉를 할 때도 그랬어요. 연출가가 ‘빙의’에 대해 설명할 때 ‘괜찮아요. 이쪽은 우리(한국사람)가 전문가예요’라고 안심시켜드렸어요(웃음). 〈그놈이다〉도 엄청난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한국 영화인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장치가 들어 있는 스릴러인 거죠.”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스타일


사람을 잘 챙긴다. 작품을 마치면 고생한 스태프에게 한 명도 빠짐없이 선물을 전한다. 시청률이 낮았던 작품일수록 더 그렇다. 동료 배우가 나오는 작품은 꼭 챙겨 보고 모니터도 해준다. 무엇보다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각별하다. 누가 봐도 ‘사랑 많이 받고 잘 자란’ 청년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한테 ‘여기 여동생 추가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어요(웃음). 저흰 남자만 둘이거든요. 막내인 제가 딸 역할을 하려고 했죠. 근데 남자라 어쩔 수 없는 무뚝뚝함이 있어요. 부모님이 공부를 중요하게 여기진 않으셨는데, 학교나 학원에 지각하는 건 엄하게 다스리셨어요. 초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매일 등교 전에 저를 데리고 운동장을 스무 바퀴씩 뛰셨고요. 1학년 때부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요. 그러면서 ‘요즘 고민은 없니?’ ‘여자 친구는 없고?’ 등등을 물어보셨어요(웃음). 제 체력이 다 그때 다져진 것 같아요.”

사춘기를 겪었지만 반항기나 일탈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고민이 많고 생각이 많았을 뿐이다. 친구들이 불량한 짓을 모의하면 ‘중심을 잡고 말리는’ 타입이었다.

“부모님께도 반항기가 없었어요. 부모님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 자랐으니까요. 친구들이 ‘부모님이랑 싸웠어’라고 할 때 이해를 못했어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지금도 집에 가면 힘든 내색을 전혀 안 하는 스타일이에요. 밤새우고도 멀쩡하게 들어가요. 그러다 부모님 마음을 찢어놓은 게 〈힐링캠프〉에서 힘든 이야기하다가 울었을 때예요. 부모님은 그걸 보고 저 몰래 우시더라고요.”

〈힐링캠프〉에서 주원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참자는 주의”라고 했다. 힘든 게 쌓이면 차에 가서 혼자 운다고 했다. 한번은 세 달 촬영 중 두 달을 밤새운 적이 있었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 이동 중 링거를 맞는데 눈물이 주룩 흘렀다고 했다. 힘들다고 술을 한잔하는 타입도 아니다. 술을 잘 못 먹을뿐더러 술을 먹으면 몸만 상하고 더 힘들어지더란다. “연기하면서는 밤을 새우겠는데, 술 먹으면서는 고역”이라며 웃었다. 차라리 기다린다. 그때 그 상황이 이해되고 답답함이 풀리는 순간을.

“웬만한 일은 시간이 지나면 이해가 되더라고요(웃음). 지금도 생각이 많아요. 군대에 다녀온 뒤에도 대중이 계속 저를 찾도록 해야 하고, 오래도록 보고 싶으니까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버지 역할도 할아버지 역할도 하게 될 텐데 그때를 잘 준비해가고 싶어요.”

그의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고민이 풀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무래도 이 성실한 청년은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그 자리에 있을 듯하니 말이다.
  •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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