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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밉지만 사랑스러운, 나쁜 짓을 해도 착할 것 같은 남자

인간미 돋보이는 배우 이선균

“난 네가 착해서 좋아. 믿을 수가 있어.”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옥희의 영화〉에서 옥희(정유미)가 진구(이선균)에게 하는 말이다. 홍 감독은 여러 영화에서 이선균을 캐스팅하면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쁜 짓을 하거나 얄미운 언행을 하는 역할을 맡을 때조차 ‘그래도 이 사람은 알고 보면 착할 것이다’라는 묘한 믿음을 갖게 만든다. 오죽하면 버럭 화를 내는 캐릭터(〈파스타〉)를 맡으면서도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를 완성시킬 수 있었을까. 이선균도 “예전에 어떤 감독님은 나에게 나쁜 이미지를 중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허종호 감독의 〈성난 변호사〉 주인공 변호성 변호사는 승소 확률 100%를 자랑한다. 일명 ‘변변’이라고 불리는 그는 “이기는 게 곧 정의”라는 말을 달고 살면서 허세 섞인 잘난 척도 심하다. 얄미운 캐릭터이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일 거라고 믿게 되는 것은 이선균이 그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허종호 감독은 “이선균은 배우로서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도 인간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래서 어떤 캐릭터를 맡아도 연출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매력적이다”라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인 이선균은 같은 학교 영상원을 나온 허종호 감독의 선배이자 친구다. 이선균은 군 제대 후 영상원 후배들과 자주 어울려 다니면서 허 감독을 알게 됐다. 허 감독이 〈카운트다운〉을 찍기 전에 다른 영화 시나리오를 이선균에게 줬는데 투자 통과가 안 됐다.

마침 당시 이선균은 소속사를 옮길 때였다. 허 감독은 이선균이 “개런티가 낮아서 작품을 안 하겠다”는 줄 알았고, 이선균은 나중에 자초지종을 알고 오해를 풀었다. 몇 년 뒤, 허 감독의 〈카운트다운〉은 흥행에 실패했고, 이선균은 〈끝까지 간다〉로 주연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선균은 허 감독의 작품을 다시 만났다.


이선균은 “〈성난 변호사〉의 시나리오가 주는 시원한 매력이 있었다. 생각지 못한 반전들, 그리고 그 반전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속도감 있고 경쾌했다.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듯한 시원한 느낌. 시나리오를 읽으며 느낀 긴박감과 유쾌함이 분명 관객분들에게도 전달되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책(영화계에서 시나리오를 일컫는 말)도 재밌었고, 아직 둘 다 영화판에 있는 것도 큰 축복이니까 이 기회에 다시 같이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문이나 학연 때문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촬영장에서 감독과 배우가 가까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죠. 허 감독의 전작이 스코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작품이 중요한 시점이었어요. 제가 영화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책임과 부담이 컸죠. 그래서 감독과 많은 얘기를 했어요. 제가 ‘이 영화 정말 안되면 우리가 다 안고 가자’고 했어요. 안되면 우리가 끌고 가는 거니까 서로 견제도 하고 지적도 많이 했어요.”

〈성난 변호사〉는 “재판의 주인공은 의뢰인이 아닌 나”라고 생각하는 대검 중수부 출신의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가 자신이 맡은 사건의 진상을 좇다가 마음을 고쳐먹는 과정을 그린 액션스릴러다. 대형 소송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승승장구하는 ‘변변’에게 새로운 의뢰가 들어온다. 시체도 증거도 없는 신촌 여대생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변호하는 것이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사건이지만 파트너 박 사무장(임원희 분)과 함께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의 혐의를 벗길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다. 재판 당일, 사사건건 부딪히는 후배 검사 ‘진선민’(김고은 분)의 반론을 변변은 조목조목 반박한다. 언제나 그렇듯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 용의자가 자신이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자백한다. 갑작스러운 자백에 판세는 뒤바뀌고, 변변은 승소를 위해 증거를 조작했다는 의혹과 함께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선균은 “얼마 전 영화 시사회가 끝난 뒤에 〈성난 변호사〉와 비슷한 일본 드라마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떤 분들은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연상하기도 한다. 기존의 법정 스릴러들이 무겁고 어둡거나 추리가 더 강조된 느낌이라면, 이건 더 밝고 가벼운 분위기로 만들었다”고 했다.

“촬영 초반부터 감독에게 ‘15세 관람가’로 할지 ‘미성년자 관람불가’로 할지, 영화 중심이 캐릭터로 갈 것인지 추리로 갈지 물어봤어요. 결국 대중적이고 친절하게 가고 싶다는 걸로 합의를 봤죠. 친절해지려면 캐릭터를 귀엽게, 유쾌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변변이 아무래도 가볍게 올라갔어요. 제가 〈셜록〉이란 영국 드라마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어설프게 추리를 했다간 욕먹을 거란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 영화의 장르에 추리뿐만 아니라 법정도 넣었죠. 호불호가 분명 있을 겁니다. 기분 전환에 딱 좋은, 유쾌하고 가벼운 영화로 즐겨주세요.”


이선균은 유독 캐릭터의 직업이 잘 드러나는 역할을 많이 맡았다. 의사(〈하얀 거탑〉 〈골든타임〉), 형사(〈끝까지 간다〉), 요리사(〈파스타〉) 같은 역할을 연기하면서 땅에 발 붙이고 사는 현실적인 인간의 이미지를 드러냈다. 기세등등한 변호사 변변 역시 이선균을 거친 뒤 어딘가 모르게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게 된다. 그는 “대중을 사로잡는 화술을 보며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드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분석했다”면서 “악보를 그리듯이 연기 작전을 짰다”고 말했다.

“배우마다 연기를 위해 노력하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저는 대본을 읽을 때 ‘왜’라는 질문과 분석을 많이 해요. 이번 영화는 긴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 법정 장면이 많아 고민이 됐지만,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어쩌면 이 영화를 하게 된 동기 중의 하나였던 것 같아요. 이 부분이 좀 어렵고 힘들겠지만 어려운 걸 또 하나 해내고 나면 극복하고 제 것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한국에 나온 법정영화를 다 봤어요. 실제 법정은 판사님이 80%는 혼자 이야기하잖아요. 지루해 졸음이 쏟아져요. 그래서 생각했죠. 우리 교회 목사님에다 토크 콘서트 달변가 김제동에다 홈쇼핑 쇼호스트를 더해서 배심원과 판사를 현혹시켜보자고요. 혼자 크레셴도(점점 세게)와 데크레셴도(점점 여리게)가 그려진 악보를 그리듯 준비했어요.”


〈커피프린스 1호점〉 이후 ‘만인의 연인’으로


2001년 뮤지컬 〈록키호러픽처쇼〉로 무대에 서기 시작한 이선균은 같은 해 MBC 시트콤 〈연인들〉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는 〈연애〉 (KBS·2005), 〈태릉선수촌〉(MBC·2005), 〈후〉(MBC·2006) 등 단막극에 자주 출연하다가 처음으로 〈러브홀릭〉(KBS2·2005)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가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것은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MBC·2007)이었다. 어떠한 외압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인술을 펼치는 강직한 내과의사 ‘최도영’ 역을 맡았다. 욕망이 큰 야심가 ‘장준혁’ 역의 김명민과 대립각을 세운 이선균은 섬세하면서도 강한 내면을 지닌 의사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리고 〈커피프린스 1호점〉(MBC·2007)에선 낮고 굵은 목소리를 내세워 ‘만인의 연인’이 된다. 그는 “당시에는 광고도 많이 찍었다. ‘로맨틱 가이’란 말도 그때 들었다. 나랑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였지만, 나름 현실감을 주고자 했다”고 했다. 〈파스타〉에서 까칠함과 버럭으로 무장한 요리사 ‘최현욱’ 역을 맡았을 때만 해도 그는 로맨틱 코미디에 잘 어울렸다. 주방에서 벌어지는 한 치의 오차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요리에 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요리사를 연기했고, 여성 시청자들은 그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공효진을 바라보는 눈빛에 열광했다. 다양한 유행어와 패러디가 쏟아질 만큼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낮은 목소리를 소재로 한 코미디 프로그램까지 나왔다. 지난해 MBC 〈코미디의 길〉의 ‘이선균’이란 코너는 이선균과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상한 마을의 이야기로 웃음을 줬다.


“이걸(목소리) 갖고 학교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울림이 있으니까 단점이라고 생각했죠. 일단 일반적이지 않으니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잖아요. 게다가 캐릭터가 특별해지고 규정 지어져요. 누가 들어도 ‘쟤는 이선균’ 하잖아요. 힘을 빼려고 노력해요. 절 좋아하시는 분 중에는 목소리 때문에 좋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 목소리를 싫어하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제 목소리로 성대모사 하시는 분들은 좋아서 하시는 거 맞죠? 하하.”

이선균은 영화계에서 줄곧 유망주로 꼽혔지만 한동안 TV에서만큼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서프라이즈〉(2002), 〈일단 뛰어〉(2002), 〈국화꽃 향기〉(2003), 〈쇼쇼쇼〉(2003) 등에 출연했지만 비중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존재감은 미미했다. 〈인어공주〉(2004), 〈알 포인트〉(2004) 등에서는 비중이 제법 컸지만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밤과 낮〉(2007)에 출연한 것이 인연이 되어 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 〈어떤 방문〉(2009), 〈옥희의 영화〉(2010),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3)을 함께하게 된다. 이후 〈손님은 왕이다〉(2006), 〈잔혹한 출근〉(2006), 〈우리 동네〉(2007), 〈로맨틱 아일랜드〉(2009)에서 출연 비중이 늘어났지만, 흥행 성적은 참담했다. 이선균의 연기가 TV를 넘어 스크린까지 인정받은 해는 2009년이다. 흥행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가 스크린에서 매력을 발산한 〈파주〉(2009)로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의 영광도 안았다.

쉼없이 작품활동을 한 이선균의 장점 중 하나는 상대 배우를 돋보이게 한다는 것이었다.

〈성난 변호사〉 역시 이선균이란 배우의 힘에 많이 기댄 작품이다.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식당이 신장 개업하는 느낌인 것 같아요. 오랫동안 준비하고, 음식 준비하고, 인테리어 점검하고. 여러분한테 어떤 레시피를 준비할까 고민하다 개업 준비하는 마음이요.”


이선균과 부인 전혜진은 2013년 연극 〈러브, 러브, 러브〉에서 부부로 출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전혜진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과 마찬가지로 이선균도 전혜진과 한 영화에 출연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혜진이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였어요. 지금 다들 혜진이를 칭찬하지만, 저한테는 그게 새삼스러운 것도 아녜요. 하지만 서로 연기에 대한 평가는 안 해요. 가족이다 보니 연기를 객관적으로 못 보겠어요. 잘하고, 멋있고, 대견스러워요. 영화 현장에 대한 즐거움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고요. 그래도 한 영화에 같이 출연할 생각은 없어요. 매일 집에서 일일 드라마 찍는데 굳이 뭐하려고요.”
  •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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