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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는 사이클 선수, 나는 자전거포 주인”

‘1인 TV’ 최강자, 백주부 백종원

“참 쉽쥬?”

아버지도, 자취생도 부엌으로 불러들이는 주문이다. 된장찌개든 콩국수든 백종원의 손에서는 컵라면 하나 끓이는 것마냥 정말 쉬워 보였다. 바질과 민트가 없으면 깻잎을 넣으면 되고, 수란이 어려우면 반숙 달걀을 만들어도 괜찮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식에 설탕을 넣어도 된단다. 뭔가 미심쩍어도 따라 해보면, ‘어라?’라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맛의, 그럴싸한 한 끼가 나온다.

그가 방송에서 고등어를 쓴 날엔 마트에서 고등어가 잘 팔린다는 얘긴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씨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백종원을 언급하며 “외식업체는 싸구려 식재료로 맛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백종원도 그 정도 수준의 음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백종원은 “예전부터 황교익씨의 글을 많이 읽고 좋아했다. 비평가로서 생각을 밝혔을 뿐, 나를 디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음식이 세발 자전거라면 셰프는 사이클 선수다. 자전거 박사들이 볼 땐 내가 사기꾼처럼 보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자전거를 보급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진제공 : MBC, tvN
내 음식 수준은 ‘세발 자전거’

그가 방송에서 선보이는 음식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플레이팅이라고 할 만한 장식도 없고, 구하기 어려운 향신료를 넣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출연한 tvN 〈집밥 백선생〉은 시청률 7.3%를 넘었다. 동시간대 예능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이다. 초보자라면 다른 데서 배우기 어려운 팁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재미와 정보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고 있다. 소면을 차지게 삶는 법, 다시마와 멸치 없이 육수를 내는 법 등을 배울 수 있다. 그는 대체 이런 것들을 다 어디서 배웠을까. 백종원의 대학 전공은 사회복지학과로 요리와는 무관하다. 그는 1993년 ‘원조쌈밥집’을 오픈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아 한 차례 고전도 했다. 다시 원조쌈밥집을 살려내고 이어서 현대식 포장마차인 ‘한신포차’가 히트했다. ‘7분 돼지김치’(7분 동안 기다리도록 타이머를 설치)로 유명한 ‘새마을식당’과 ‘해물떡찜0410’ ‘홍콩반점0410’ ‘본가’ 등도 계속 성공을 거뒀다. 지난 4월 기준 현재 공정거래위 등록 36개 브랜드로 국내 602개점, 해외 49개점의 점포망을 구축했다. (주)더본코리아의 설립에 이어 (주)더본차이나, 더본아메리카, 더본재팬의 대표이사로 요리와 경영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음식을 하면서 어머니께 고마움을 많이 느껴요. 어릴 때는 아버지 안 좋아했는데, 지금 이렇게 된 건 아버지의 혁혁한 공 때문이에요. 아버지는 정말 반찬 투정이 심했어요. 그 밑에서 커서 입맛 덕을 많이 봤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음식에 관심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출장 다녀오시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햄버거를 10개씩 사오셨는데, 그걸 냉동실에 넣었다가 프라이팬에 데워 먹었어요. 차가운 햄버거를 분해해서 상추나 토마토 같은 건 새로 다시 넣고, 양파도 볶아서 넣으면서 시작됐죠.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받은 건빵도 버터에 볶아서 설탕 뿌려 먹고. 부모 잘 만나서 그런지 몰라도 음식에 대해서 병적인 집착이 있었어요. 군에 입대해 학사장교로 근무하면서도 간부식당 관리를 맡은 부사관과 보직을 바꿔 생활했지요.”


먹는 것은 태곳적부터 있던 행위고, 음식에 대한 열광이 최신 유행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명 ‘쿡방’이란 요리방송이 인기를 끌고 있다. 백종원은 이런 현상에 대해서 “예전에는 음식 만드는 것을 감상하거나 음식을 먹는 손님의 입장에서 반응 정도만을 보여주는 대리 만족이었다. 어머니의 일이든 사먹는 것이든 ‘요리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요리는 내가 만드는 것’이 됐다. 쿡방이 바로 그 간격을 좁혀준 것이다”라고 했다.


“제가 요리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대다수 주부님들이 요리를 잘하시는데, 제가 하는 걸 ‘집밥’이라고 하기도 죄송해요. 이 자리를 빌려서 사과하고 싶네요. 저는 마트 갔을 때 저 때문에 아저씨들이 장을 봐갔다고 하거나, 남편이 요리를 시작하게 됐다고 할 때 정말 뿌듯해요. 지금이야 요리를 못 하시는 분이 많으니 저처럼 쉬운 레시피가 먹히지만, 그분들의 실력이 발전하면 좀 더 수준 높은 요리를 원하시겠죠. 그런 식으로 쿡방이 더 성장해가지 않을까 싶어요. 문제는 쿡방을 하면서 제 정체성이 흔들리는 거죠. 의외로 낯가림이 심한 편인데 가끔은 벌거벗은 느낌이 들고요. 프렌차이즈 잘되게 하려고 방송에 나오는 거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전혀 아니에요. 실제로 매출에는 큰 영향이 없어요. 하지만 방송에 나오는 궁극적인 이유는 외식업이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요리에 관심을 많이 가질수록 외식업도 발전하니까요. 본인이 직접 요리를 해봐야 마트에서 3000원에 살 수 있는 삼겹살을 왜 식당에서 1만원에 파는지 알거든요. 식당에 대해 마음을 열게 되는 거죠. 제가 바라는 건 딱 그거 하나예요.”


성공한 사업가이자 요리 선생님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을 통해 그가 얻은 별명이 바로 ‘슈가보이’. 음식을 만들 때 아낌없이 설탕을 넣기 때문이다. 그가 자주 애용하는 만능간장 레시피도 인기다. 밑반찬 만들 때 어디에 써도 맛이 나기 때문이란다. 황교익씨는 이를 겨냥해 “적당한 단맛과 짠맛의 균형을 맞추면 사람들은 맛있다고 착각한다”고 했다. 백종원은 “대중이 요리에 쉽게 다가가기 위한 기본을 설명하기 위한 도입부로 봐야 한다”고 했다. “요리의 기본은 간 맞추기예요. 금에 최대한 가까이 동전 던지는 놀이에 비유할 수 있는데, 요리할 때 제일 중요한 건 맛있다고 생각되는 간에 얼마나 가까이 갖다 붙이느냐에 있어요. 단맛·짠맛·매운맛이 음식의 기본이에요. 제 간은 솔직히 과해요. 제가 좀 강하게 설명드리는 건 간 보는 게 어려우면 시청자들이 해보고 ‘에이, 맛없어’ 해버릴까 염려돼서 그런 거예요. 어떻게 보면 금을 밟고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쉽거든요. 간을 세게 해서 병 생겼다는 말 안 들으려고 운동도 해요. 하하.”




백종원은 요리하는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 연예인 ‘소유진의 남편’이자 성공한 외식 프랜차이즈 대표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케이블 채널 올리브의 〈한식대첩〉이란 요리 경연대회의 심사를 맡았지만, 그걸로 이름을 알릴 정도는 아니었다. 〈마리텔〉이란 프로그램에서 그는 요리하는 모습을 본격적으로 보여줬다. 출연진이 각자 인터넷 1인 방송을 하고, 시청자 수가 적은 사람부터 탈락하는 프로그램이다. 백종원은 방송 초반부터 요리를 선보여서 연예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첫 1위를 차지한 그에게 주어진 상품은 1분간의 PR시간이었다. 지상파 황금 시간대 15초 광고가 1000만원 정도 되니, 이 1분은 4000만원짜리였던 셈. 백종원은 “음식 사업을 하는 사람이지만 맹세하고 돈을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음식을 어떻게 싸게 즐길 수 있을까 고민한다. 와이프하고 저하고 사랑하고 잘살고 절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거 전혀 없다. 와이프에 대해 안 좋은 얘기가 없어졌는데 예뻐해주셨으면 좋겠다. 진짜로 좋은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아내가 15세 연상인 자신과 결혼하면서 온갖 구설수에 오른 것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이 우승 소감 이후 시청자들은 그를 연예인 이상으로 친밀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그는 〈마리텔〉에서 시청자들과 쌍방향 소통을 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인터넷TV 대화창에 올라오는 코멘트에 적절히 대응을 하면서 요리를 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고추’를 썼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이 “성인방송이다. 사과하라”고 지적하면 그는 거기에 장단을 맞추며 사과 방송을 하는 식이다. 백종원은 ‘놀려 먹는 재미가 있는 아저씨’ 혹은 ‘개그가 통하는 센스쟁이’로 통했다. 다른 연예인들은 이 대화창을 아예 무시하거나 지나치게 신경 쓰다가 방송 흐름을 놓쳤다.


IMF 때 쫄딱 망해본 경험이 진짜 자산


자신을 향한 비난에도 백종원은 넉살 좋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대답을 할 때는 알아듣기 쉬운 비유를 꼭 썼고, 남을 향한 공격이 될 만한 발언은 피해갔다. 재료를 가리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면서 모두의 입맛에 맞을 만한 음식을 선보이는 주방장 같았다. 느리게 눙치는 듯한 충청도 사투리까지 덧붙여져 그는 ‘백주부’ ‘백선생’이라고 부르기에 딱 알맞은, 넉살 좋은 아저씨처럼 보였다. 그는 “요즘에는 사장님보다 ‘백주부’와 ‘백선생’으로 불리는 게 더 좋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 유행어를 낳은 것은 충청도 사투리의 공(功)으로 돌렸다.

“난처할 때 뒷말 어설프게 해버려도 통한다는 거쥬. 욕인지 아닌지, 긍정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거쥬. 냅둬유. 됐어유.”

‘백종원의 원조쌈밥집’
“20년 전만 해도 ‘백사장님’이라고 불리는 걸 좋아했어요. 남들보다 높게 칭송받는 거 좋아했거든요. 삶에 제일 크게 도움 되는 게 IMF 때 쫄딱 망해본 경험입니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교육도 잘 받았고, 학교도 잘 갔고 하는 일마다 실패 없었는데 IMF 때 크게 망해서 인생이 이런 거구나, 싶었죠. 저 말고도 많이들 그랬겠지만 정말 충격 받았어요. 어려움 안 겪었던 사람이 떨어지니까 정말 막막했고요. 그때 다시 일어나면서 모든 걸 집어던졌어요. 그(IMF) 전에 음식점 할 때 손님이 오면 ‘오셨어요’ 하고 인사했는데, 그게 가식이었어요. 퇴근할 때 되면 그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 IMF 겪고 마음을 열면서 변했어요. 제가 가면 쓰고 있는 것보다 있는 대로 보여주는 게 당장 효과는 없지만 제일 중요하다는 걸 느꼈죠. 덜 겸손해 보일지 몰라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게 똑같은 게 좋다는 걸 힘든 시절에 터득했어요. 있는 그대로 행동하는 건 창피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은 나의 진심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지금 하는 건 다 IMF 때 쌓은 경험이 득이 되어 돌아온 거예요. 제 자산이 되었죠.”
  • 201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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