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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해서 감사합니다”라고 메모하는 남자

책과 그림 좋아하는 반듯한 배우 김우빈

예상은 빗나갔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기재된 김우빈(25)의 키는 187cm. 하지만 카페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 그의 키는 그보다 더 커 보였다. 그가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을 때 예상은 또 한 번 빗나갔다. 〈상속자들〉의 반항적인 소년이나 〈기술자들〉의 자신만만한 청년의 모습은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어조는 ‘낮은 도’에서 반음 이상 올라가지 않았고, 대답을 하기 전에 이따끔 “음” 하고 잠시 뜸을 들인 적은 있어도 말의 리듬이 빨라진 적은 없었다. 예상과 달리, 김우빈의 육체와 정신은 모두 또래보다 한참 웃자란 것 같았다.

사진제공 : 사이더스HQ
일진·조폭·금고털이 등 거친 청춘 연기

변명을 하자면, 김우빈에 대해 억측을 한 것이 무리는 아니다. 김우빈을 세상에 알린 〈학교2013〉에서 그는 유급한 일진이었고, 그를 한류 스타로 만들어준 〈상속자들〉에선 삐뚤어진 왕자님이었으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친구2〉에선 세상이 두렵지 않은 조폭이었다. 맡은 역할들은 죄다 자신감 있고 거침이 없는 ‘요즘 젊은이’의 전형이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기술자들〉(감독 김홍선)에서도 그랬다. 김우빈이 연기한 지혁은 뛰어난 두뇌의 금고털이이자 작전의 설계는 물론 모든 위조에 능한 멀티플레이어. 별명은 ‘마스터키’. 그는 절친한 형이자 인력 조달 전문 바람잡이 구인(고창석), 어떤 보안 시스템도 순식간에 뚫어버리는 업계 최연소 해커 종배(이현우)와 함께 기막힌 솜씨로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보석상을 털며 순식간에 업계에 이름을 날린다. 이들을 눈여겨본 재계의 검은손 조 사장(김영철)은 자신이 벌일 큰 판에 지혁 일당을 끌어들인다. 조 사장이 설계한 작전은 동북아 최고의 보안 시스템을 자랑하는 인천세관에 숨겨진 고위층의 검은돈 1500억원을 단 40분 안에 터는 것이다. 시나리오에서 지혁이 나오는 장면에는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만한 미소로’ 등의 지문이 자주 따라붙는다.

김우빈은 “〈기술자들〉은 지혁의 감정으로 움직이는 이야기다. 시나리오가 재밌었고, 〈공모자들〉을 연출한 감독님 때문에 작품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그리고 대선배님들이 많이 출연하는 작품을 하는 게 쉽지 않은 기회인데 배우는 자세로 출연을 선택하게 됐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건데, 김영철 선배님은 눈만 보고 있어도 뭔가를 배울 수가 있었다”고 했다.

“촬영 전에 케이퍼 무비(범죄를 계획, 모의 그리고 실행하는 데 중점을 둔 영화)는 절대 안 봤어요. 그런 영화에서 금고를 열고 훔쳐야 한다는 목적은 다 같죠. 하지만 캐릭터의 인생, 생각, 행동들은 다 달라요. 그건 혼자 상상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김우빈이 출연한 첫 영화 〈친구2〉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리고 〈기술자들〉도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두 편 모두 기대 이상의 흥행을 했고, 작품을 혹평하는 이들도 “김우빈이란 배우를 건졌다”는 데에는 동의를 한다. 김우빈은 김영철・유오성・주진모 등 쟁쟁한 선배들 안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했고,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인상을 관객들에게 분명히 심어줬다. 촬영을 하지 않을 때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그가 작품을 준비하는 방식은 “캐릭터의 일대기를 상상하고 100문 100답을 혼자 묻고 답하는 것”이다.

“연기를 처음 배웠을 때 그게 숙제였는데, 그땐 그걸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그런 작업을 통해서 캐릭터와 가까워진 저를 발견했어요. 100문 100답은 캐릭터 연구 중 가장 마지막에 하는 거예요. 캐릭터 본인이 아니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죠. 가장 간단하지만 어려운 과정이에요. 예를 들어 이번 영화에서도 지혁이 구인을 처음 만난 날을 그린 장면은 없지만 캐릭터 연구를 하면서 그날이 어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요. 그날은 무슨 요일이고, 날씨가 어땠는지부터 시작해요. 나한테 구인이 형이 이런 말을 건넸고, 내가 이렇게 대답했더니 형이 웃었다고 답하고. 그러다가 좀 더 깊게 들어가죠.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오 원장님. 이런 식이에요. 가끔 몇 줄 안 되는 질문을 갖고 고민하기도 해요. 이렇게 연기 준비를 하는 제 모습은 그냥 집에서 멍 때리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요.”

김우빈은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언제나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컸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는 모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대경대학교 모델과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며 자신의 장래희망에 대한 고민을 상담했다. 김우빈은 2005년 이 대학이 주최한 수퍼모델 캠프에 참가한 후 교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편지에 적어 보냈다. 당시 편지를 받은 교수는 지난해 인터넷에 편지를 공개하면서 “정말 잘될 친구라고 확신했다. 아직도 우빈이처럼 열심히, 꾸준히, 지치지 않고 노력하고 실천하는 모델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손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진 두 장의 편지에는 “모델이 되기 위해 몸무게를 늘리고 영어회화 공부 등에도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김우빈은 “모델이 되고 나서도 연기에는 전혀 생각이 없었고, 연기 수업에도 참여하질 않았다. 그러다가 광고에 출연하기 위해서 연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연기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변했어요. 그분의 열정이나 연기하시는 모습은 대단했죠. 연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델일과 비슷한 점도 생각보다 많았고요. 모델일에도 기본기라는 게 있지만 정답은 없거든요. 얼마만큼 고민하냐에 따라 다른 포즈와 워킹이 나와요. 그래서 연기 수업을 미친듯이 받았어요. 더 남아서 연습하고 숙제를 내달라고 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씩 채워나가다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게 됐어요. 좋아하는 일을 실컷 하고 있으니 저는 축복받은 거죠.”


〈기술자들〉에서 김홍선 감독은 모델로 활동한 그의 경력을 십분 활용한다. 매 장면에서 지혁은 잔뜩 신경을 써서 멋을 낸 남자처럼 등장하고, 영화의 맥락과 무관하게 샤워하는 모습까지 나온다. “배우 경력을 그런 식으로 쌓는 게 괜찮냐”고 묻자 김우빈은 “감독님은 처음부터 스타일리시한 영화를 찍겠다고 했고, 지혁의 스타일을 위해 개인 스타일리스트까지 동원했다. 이 영화는 가벼운 대중영화이고, 감독님이 연출하는 장면에 맞게끔 연기하는 것이 내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경쟁심에 빠지기보단 작품 전체를 볼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선택의 폭이 좁았고 늘 선택을 기다려야 했던 입장이었으니 ‘내 장면을 만들어야겠다. 이 장면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더 치열했었어요. 욕심이 많았죠. 다른 기회들을 위해 더 집중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작품 전체를 볼 줄 아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았던 과거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대경대 교수가 편지를 공개했을 때 화제가 된 것은 김우빈의 글씨체였다. 10대 여자아이가 썼을 법한, 가지런하고 반듯한 글씨체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 중 지혁이 쓴 편지도 김우빈이 직접 쓴 것이다. 그는 “서예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아서 서예학원을 오래 다녔다. 한문 공부도 많이 했다. 그림은 여전히 그리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워낙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세요. 물감과 종이 등 미술 도구가 집에 많았기 때문에 저도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전문가처럼 배운 건 아니고 제 스트레스 해소법이죠. 그날그날 그리고 싶은 거 그리고, 그런 게 없으면 물건을 따라 그리기도 해요. 최근에도 영화 〈스물〉 촬영 끝내고 하나 그렸어요. 바람에 관한 시(詩)가 눈에 띄어서 그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죠. 생각이 많을 땐 큰 캔버스에다 그려요.”


“가족이 가장 큰 힘”


인터뷰 중 김우빈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아버지’ ‘어머니’ ‘동생’ ‘가족’이었다. 그는 “가족이 가장 큰 힘”이라면서 “다들 그렇지 않냐”고 반문했다.

“가족은 가장 큰 힘이에요. 어릴 때 지금보다 훨씬 내성적이었고 인사하는 것도 쑥스러워서 못했어요. 어린 시절의 저는 공부를 꽤 하는, 키만 큰 평범한 아이였어요. 그래서 제가 열네 살 때 모델을 한다고 하니까 주변 반응이 ‘네가?’ 이러면서 웃었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을 때는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주셨어요. 저는 지방에서 자라 친척 중에 이 계통 종사자가 아무도 없었고, 부모님도 평범하게 자라셨기에 응원해주시기 힘들었을 거예요. 큰아들에 대한 기대도 있었을 텐데 저 같으면 쉽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대학교에 너무 가고 싶으셨는데 형편 때문에 못 가셨어요. 최근에 들어가 졸업을 하셨어요. 그래서 평생 한이 되셨는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해주셨어요. 부모님께서 유일하게 내주신 숙제가 책, 영화, 건강이었어요. 책은 어머니, 영화는 아버지의 영향이 커요.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믿어주신 것에 대해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가족 덕분에 제가 안 지치고 달릴 수 있었죠.”

혼자 사는 김우빈은 “집밥이 그립다”고 했고, “영화 시사회 때문에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부모님 덕분에 어제 집밥을 잘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평범한 가정을 갖는다는 게 가장 힘들고, 화목한 집안에서 자란 것은 복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아는 그가 팬들에게 둘러싸인, 비일상적인 배우의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배우로 사랑받는 것을 그렇게 원했으면서 대중의 관심을 불편해한다면 그것도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요. 평범하게 못 산다고, 사생활에 제한을 받는다고 불평하면 안 되죠. 물론 불편할 때가 있죠. 집 앞 수퍼에 나갈 때도 신경이 쓰이니까요. 집에서 편하게 있을 때는 제가 봐도 못 봐줄 정도거든요.”


지난해 김우빈은 1월부터 4월까지 서울을 시작으로 중국 홍콩, 상해, 대만 타이페이, 태국 방콕에서 팬미팅을 개최했다. 대만 팬미팅 티켓은 인터넷 예매가 시작된 지 5분 만에 1500석이 매진됐으며, 1회 추가된 팬미팅 역시 5분 만에 매진됐다. 태국 팬미팅은 티켓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접속 폭주로 사이트가 마비되기도 했으며, 추가된 1회 팬미팅도 예매 시작 9분 만에 모두 매진됐다. 인터뷰하는 날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시간 관계상” 사진 촬영은 하지 않았다. 그는 “(연기는) 너무나 원했던 일이기 때문에 이런 반응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제일 크다. 너무 피곤하고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현장에 가서 스태프들과 수다 떨고 인사하고 나면 피로가 풀린다. 나를 위해서 일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힘을 얻는다”고 했다.

“관심을 많이 받고, 일도 많아지니까 예민해질 때도 있어요. 그래서 2년 전부터 시작한 게 있어요. 2년 전 어느 날 문득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휴대폰에 메모를 한 적이 있는데, 그걸 지금까지 해오고 있어요. 매일 ‘~해서 감사합니다’라고 메모를 해요. 메모를 못 하는 날에는 혼잣말로라도 해요. 별일이 없는 날엔 ‘오늘 무사히 지나가서 감사합니다’ ‘오늘 늦잠을 안 자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거죠. 그런 일을 하면서 스스로 다잡게 되고 화이팅도 생기고. 한번 해보세요. 힘들거나 지칠 때 진짜 힘이 생겨요.”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감사하다’는 대답을 유독 많이 했다. 김영철 선배와 연기를 해서 감사하고, 곽경택 감독이 〈친구2〉의 주연으로 발탁해줘서 감사하고, 심지어 공룡을 닮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도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터뷰 전까지 ‘되바라지고 자신만만한 요즘 20대 배우’를 기대한 것이 민망하고 허무해졌다. 그렇다면 인터뷰를 하기 전 김우빈이 감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제 청룡영화제 다녀왔어요. 인기스타상을 수상하고, 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서 감사합니다, 라고 적었어요.”
  • 201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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