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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l We Dance?

‘좋은 배우’ 문정희

좋은 배우, 좋은 아내, 좋은 댄서의 공통점은 ‘좋은 파트너’라는 점이다.
그 셋의 교집합에 배우 문정희가 있다.
연말연시, 영화 〈카트〉와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로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 그를 만났다.

사진제공 : 명필름, 메가박스 플러스엠
배우 문정희에게는 두 개의 이름이 있다. 대중에게 알려진 이름 정희,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이 부르는 이름 마리. 20대에 살사를 추기 시작하면서 댄서로는 ‘마리’라는 이름을 썼다.

“마리라는 이름은 제 세례명 ‘마리아’예요. 부모님은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마리라고 부르셨어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정희라고 부르는 사람보다 마리라고 부르는 분이 더 많아요. 저의 또 다른 이름이죠.”

문정희는 1994년 개원한 한예종 연극원 1기로 입학하면서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동기였던 오만석은 “문정희는 판소리든, 무용이든 가장 열심히 하고 가장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문정희는 어릴 때부터 한 번도 배우나 연예인을 꿈꿔본 일이 없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예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끼보다 잠재력을 봐주신 덕”이라고 했다. 곧잘 홀로 생각에 빠져 철학책을 끼고 살던 문정희는 연기보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 싶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지원했다. 배우로 살 수도 있겠다고 느낀 건 스무 살이 넘어서다. ‘위에 구멍이 날 정도로’ 치열하게 굴렀던(?) 학교를 졸업하고 막상 사회에 나왔을 때, 혈혈단신으로 배우의 길을 가기란 쉽지 않았다. 1기였던 이들은 아는 사람도, 끌어줄 인맥도 없었다. 동기였던 장동건・이선균・오만석 등이 각자의 분야에서 이름을 떨칠 때, ‘언젠가는 내게도 기회가 오리라’ 생각하며 묵묵히 기다렸다. 그런 그를 붙잡아주었던 건 문정희의 분신 문마리였다. 춤을 추고 춤을 가르치며 생계비를 벌었고, 불투명한 미래가 막막할 땐 한바탕 춤을 추며 복잡다단한 마음을 날려 보내기도 했다.

“몸으로 배운 건 참 안 잊어버려요. 살사는 수신호이기 때문에 상대가 주는 정확한 신호에 움직여야 해요.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상대도 망치고 다칠 수가 있어요. 춤을 배운 게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연기도 똑같거든요. 혼자 튀려고 하면 안 돼요. 상대가 주는 에너지만큼 움직여야 해요. 시나리오는 배우에게 악보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좋은 댄서이자 좋은 배우, 좋은 파트너가 되고 싶어요.”


몸으로 배운 건 잊지 못하죠


화면에 비치지 않는 동안 꾸준히 움직여온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첫 무대는 황정민 등과 호흡을 맞춘 연극 〈의형제〉였다. 극 중 황정민의 엄마로 등장해 쌍둥이 아들의 비극적인 삶을 지켜보는 역할이었는데 무려 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합격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배우로서의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다. 학전은 그때나 지금이나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알려진 곳, 문정희의 기본기가 다져진 곳이기도 하다. 다음 기회는 뮤지컬 〈그리스〉였다. 이선균・오만석・엄기준 등과 함께 출연했다. 무대를 종횡무진 오가며 춤추고 노래하던 때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던 때 친구 이선균의 제안으로 합류하게 됐다고 했다. 토크쇼 〈TAXI〉에 출연한 그는 “이선균씨가 전화하지 않았다면 저는 그때 연기를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이선균・오만석・윤희석 등 학교를 같이 다니던 친구들과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기 때문에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2006년 그가 서른이 되던 해,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그가 감우성의 마음을 훔치는 완벽한 여자 유경 역으로 등장했다. 그때의 느낌은 어떤 신인의 탄생이 아니라 한 배우의 발견이었다. 균형 잡힌 몸매와 안정적인 음성, 흔들리지 않는 눈빛은 짧은 등장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차기작부터 그가 등장하는 장면이 점차 늘더니, 영화 〈연가시〉와 〈숨바꼭질〉 이후에는 마침내 문정희라는 배우가 관객에게 또렷해졌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내(〈연가시〉), 헬멧을 쓴 공포의 범인(〈숨바꼭질〉) 등 연달아 난도 높은 연기를 몸사리지 않고 소화해냈다. 한 영화 관계자는 그를 “몸 고생 사서 하는 여배우”라 불렀을 정도다. 작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던 시절의 포한을 풀 듯 연이어 문정희의 작품들이 관객을 찾았다. 2014년 11월에는 영화 〈카트〉가 12월에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가 개봉했다. 직전까지 드라마 〈마마〉(MBC)로 매주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말이다.


“〈숨바꼭질〉이나 〈연가시〉처럼 캐릭터가 좋아서 잘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고, 〈카트〉나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처럼 메시지가 좋은 영화가 있어요. 〈카트〉는 명필름이 만드는 영화라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더 믿음직스러웠어요. 심재명 대표님이 직접 시나리오를 주면서 혜미 역을 제안했을 때 거절할 수 없었죠.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역시 시나리오가 가진 따뜻함과 김덕수 감독님이 전해주는 진실함이 좋았고요.”

촬영은 영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카트〉 그리고 드라마 〈마마〉 순이었다.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에서 그는 명문대를 나왔지만 10년째 백수인 남편을 둔 여자 지수를 연기한다. 집안의 생계를 꾸리고, 딸과 남편 이렇게 애 둘(?)을 키우는 엄마 역할인데 “오랜만에 예쁜 역할을 맡아 기쁘게 촬영했다”며 웃는다.

“〈숨바꼭질〉 마치고는 새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싶었는데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참 따뜻하고 행복했어요. 그리고 드라마를 하고 싶었는데 좋은 작품인 〈마마〉를 만났고요. 〈카트〉는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예요. 10대 알바생부터 60대 청소원의 이야기까지 들어 있죠. 배우 역시 비정규직이라는 불안감을 늘 가지고 있어요. 저 역시 일이 없을 땐 생활고를 겪었고요.”

영화 〈카트〉에서 싱글맘 혜미로 등장한 문정희.
2013년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촬영이 한창일 때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카트〉 시나리오를 그에게 건넸다. “내년엔 우리 이 작품으로 다시 부산에서 만나요”라면서. 그리고 2014년 부산에서 〈카트〉의 첫 시사회가 열렸다.

“〈카트〉는 자랑하고 싶은 영화예요.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았거든요. 실제로 합숙하면서 같이 떡볶이도 만들어서 먹고, 촬영장에서는 항상 마트 옷이나 노조 티셔츠를 입고 있었어요. 이 영화가 만들어지길 바라면서 개봉 두레(〈카트〉의 제작비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일부 충당되었다)에 동참하신 분들도 있고, 출연하는 사람들도 개런티를 조금씩 양보했고요. 그러다 보니 모두 더 애틋한 마음이 있어요.”

부산에서 〈카트〉를 보는 마음은 남달랐다. 꿈꾸던 일이 이루어졌다는 설레임과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들었다. 모두가 배우이면서 제작자의 마음으로 영화를 지켜봤다. 배우들이 늘 강조했듯 “이것은 다름아닌 우리 얘기”이기 때문이다. 문정희 역시 얼마 전까지 신용카드를 만들 때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4대 보험도 남 이야기다.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배우’라는 직업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넓은 의미로 확장하면, 작품이 찾아오지 않는 배우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카트〉의 제작보고회에서 배우 황정민(옥순 역)은 “저 역시 비정규직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에서는 생계형 가장 미용사 지수 역을 맡았다.
배우와 관객들이 기꺼이 제작비를 부담했다는 것도 신기한데, 더욱 신기한 점은 이 여배우들의 우애다. 영화 〈카트〉에 함께 출연한 염정아는 “촬영을 마치고도 정희만 보면 눈물이 글썽거린다. 완전히 팬이 되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마마〉를 함께한 송윤아는 “연말 대상은 욕심이 안 나지만, 문정희와 베스트커플상을 받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염정아 선배나 송윤아 선배는 저보다 한참 선배잖아요. 제가 데뷔할 때는 두 분 다 이미 스타였고요. 아무래도 먼저 겪었으니까 제가 걸어온 길을 이해해주시고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좋은 선배를 만난 게 복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내리사랑으로 후배들을 보듬고 싶고요.”

송윤아는 〈마마〉를 마친 뒤 드라마의 인기를 동네 식당에 가서 실감한다고 했다. 전보다 살갑게 맞아주고, 반찬도 더 챙겨준다는 것. 문정희는 도리어 잘 모르겠다고 한다. 평소에 워낙 ‘일반인’처럼 다니는 터라 아직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하철 타고 다니고, 평소에는 거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다녀요. 식당을 잘 안 가서 그런가 인기가 실감 나지는 않아요. 얼굴보다 제 목소리를 듣고 알아볼 때가 많은데, 그것만 조심하면 아직도 사는 데 큰 무리는 없어요(웃음).”


‘어떻게 보일까’보다 ‘어떻게 믿게 할까’를 고민해요

문정희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은 여전히 많다. 화려한 배우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사실은 극히 일부라는 걸 그는 너무나 잘 안다. 지금의 인기가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인기가 더 어릴 때가 아닌 지금 찾아온 건 참 감사하다고 했다. 그사이 가정을 이뤘고, 나를 지지해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게 어떤 응원군보다 값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무명시절부터 믿고 기다려준 남편이 그에게 그 누구보다 든든한 팬이다.

“작품 욕심이 있어도, 제가 졸업하고 의지할 데가 없었어요. 사회에 나오니까 선배도 없고 첫발을 떼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런 외로운 시절이 있다 보니 나를 찾아주고 함께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너무나 소중해요. 저는 무명 시절이 서러웠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저라는 배우의 내용이 쌓였거든요. 그때 저를 붙잡아준 사람과 함께 가정을 이룰 수도 있었고요. 지금 이 나이에 이렇게 된 게 참 좋아요.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해요. 무엇 때문에 힘든지를 알아야 한다. 지금 그 역할 때문에 힘든 건지, 아니면 욕심 때문에 힘든 건지요.”


연달아 세 작품을 한 지금, 열심히 작품을 알리고 나서는 다시 숨고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재충전’이란 게 대단할 게 없다. 그가 20대에 늘 해오던 일들이다. 그의 옷장에는 등산복만 수두룩하다고 한다. 틈날 때면 산에 오르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늘 제철에 나는 음식으로 밥상을 차린다. 포털에서 화제가 된 일명 ‘문정희표 쾌변 밥상’이다. 20대에 무리한 탓인지 위장병을 달고 살았는데, 스스로 밥을 지어먹고 식단을 조절한 뒤 뱃속이 편안해졌다. 렌틸콩으로 드레싱을 만들어 채소를 찍어 먹는 게 그의 비법,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상을 차리고, 낮에는 주로 운동을 한다. 촬영이 없을 때는 매일 1시간씩 10km를 뛰기도 한다. 그렇게 문마리의 삶을 살고 나면, 다시 문정희로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시간이 온다.

“한 번도 제 외모가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 역할이 믿어질까를 고민했죠. 그게 더 멋있어요. 그 인물로 보이는 게 더 탐나고요. 워낙 멋진 외모의 배우들이 많아서 지금도 다른 여배우를 보면 와~ 하는 기분이에요(웃음). 제가 가진 무기도 외모 쪽은 아니죠.”

문정희의 무기는 사람이다. 작품이 끝나면 사람이 남는다고 했다. 문정희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영화 〈연가시〉는 사실 박정우 감독과 호흡을 맞춘 세 번째 작품이었다. 그 이전에 〈바람의 전설〉(2004)과 〈쏜다〉(2006)가 있었고, 그 안에서 문정희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진 것. 비중뿐 아니라 역할의 난도도 높아졌지만 문정희는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고 했다. 당시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자신을 신뢰 하나로 캐스팅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문정희의 인지도는 여배우 중 단연 돋보인다. 대표작을 꼽을 때도 부족함이 없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고른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에게 ‘믿고 보는 배우’ ‘흥행보증수표’라는 수식이 자연스레 따라다닌다. 〈카트〉의 부지영 감독이 농반진반으로 “문정희씨의 인기에 〈카트〉가 묻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두 편의 영화가 함께 개봉한 터라 두 배는 긴장될 법도 한데, 문정희는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그는 이미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얻었으니까.

“작품은 지나가고, 흥행했는지 안 했는지는 잊히지만 그때 같이했던 추억과 함께했던 사람들은 끝까지 남아요. 제가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덜 흔들리고 갈 수 있다는 거예요. 물론 영화를 많은 관객이 보시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우리 영화를 보고 공감한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는 게 더 행복해요. 앞으로도 보는 분들께 현실적인 공감을 드릴 수 있는 작품을 한다면 배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 2015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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