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주인공 강동원

청춘 누리지 못한 대수는 실제의 나와 가장 닮은 캐릭터

글 : 변희원 조선일보 기자  / 사진 : 이태경 

대수(강동원)는 태권도 유망주고 그의 여자 친구 미라(송혜교)는 가수를 꿈꾼다. 이들은 열일곱 살에 아기를 갖고, 아기 이름을 ‘아름’(조성목)이라고 짓는다. 아름이를 낳은 뒤 대수는 생계를, 미라는 육아를 책임진다. 빨리 늙는 선천성 조로증에 걸린 아름이는 열여섯 살에 여든 살의 몸을 갖게 된다. <두근두근 내 인생>(감독 이재용)은 청춘을 누리지 못한 어린 부모와 늙은 아들에 관한 영화다. 김애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사진제공 : CJ E&M
열일곱 살짜리 고등학생 대수와 서른세 살짜리 아버지 대수를 동시에 연기한 강동원. 대수와 동갑내기이기도 한 그는 “지금까지 한 역할 중 대수가 나와 가장 닮았다”고 했다. “덜렁대는 것도, 철딱서니 없는 것도, 멍청한 구석이 있는 것도 비슷하다”며 “게임을 좋아하는 것마저 비슷하다”고 했다. ‘스타크래프트’와 ‘위닝 일레븐’(축구 게임) 같은 것을 즐겨했다. “이제 더 이상 같이 할 사람이 없고 너무 많이 한 탓에 지겨워져서” 그는 요즘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수와 강동원의 공통점을 하나 더하자면 둘 다 청춘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것. 대수는 아들의 치료비와 생활비 때문에 택시를 운전하고 사설경호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강동원은 “고등학교 땐 대학입시를 위해서 살다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뭘해야 할지 고민도 하기 전에 일(모델)을 시작했다. 그 후로 거의 쉬지 않고 일했다”고 했다. 강동원은 대학 1학년(2000년) 겨울방학, 길거리 캐스팅으로 이동통신사 CF에 출연하면서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곧 각종 패션 화보와 패션쇼 무대를 누볐고, 프랑스 프레타포르테 패션쇼 무대 제안도 받았다. 그러나 모델로 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의 목표는 연기자였다. 여러 오디션 끝에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2003)에 캐스팅됐다. 수줍은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던 미남 의사는 단박에 시청자의 눈에 띄었고, 드라마 <1%의 어떤 것>(2003)에서는 주연을 꿰찼다.


<늑대의 유혹>으로 ‘꽃미남 신드롬’


드라마에서 인지도를 높인 그는 2004년 로맨틱코미디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시골 약사로 스크린에 첫발을 디딘다. 재벌 2세와 의사 역에 더 어울릴 법한 그는 수더분한 옷차림으로 사람들한테 맞고, ‘올빽’ 머리를 하며 청양고추와 겨자까지 씹어 삼켰다. 굴욕은 금방 끝났다. 그해 여름 개봉한 <늑대의 유혹>으로 강동원은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인터넷 소설이 원작이었던 이 청춘 로맨스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관객들은 개의치 않았다. 24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천천히 들리는 우산 너머로 살짝 웃는 강동원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누나, 나 태성이야. 나 몰라?” 하던 순간 여자 관객들은 깊이 탄성을 내뱉았다. 화면 속 강동원을 향해 손을 내미는 이가 있는가 하면, 스크린에 대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강동원은 <늑대의 유혹>을 통해 형성된 청춘 스타의 이미지가 소진되기 전에, 적용 가능한 ‘배우’가 되어야 한다는 걸 스스로 깨달은 듯 행동했다. 더 이상 ‘예쁘장하고 신비로운 오빠’ 역할은 맡지 않고 이미지의 진폭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초능력자(<초능력자>), 남파간첩(<의형제>), 사형수(<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전우치(<전우치>)를 거쳐 지난달 개봉한 <군도: 민란의 시대>에선 엄청난 무술 실력을 가진 악당 ‘조윤’ 역을 맡았다. 스스로도 “지금까지 제일 많이 입은 게 한복”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사극에서 칼을 휘두르는 역할을 많이 맡았다. <형사>에선 말이 없이 눈으로 이야기하고 칼로 대신 감정을 전하는 무사였다. 이 역할을 위해 현대무용까지 배운 그는 장검을 춤추듯 휘둘렀다. <그 놈 목소리>에선 아동 납치범의 목소리로만 출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굵고 낮은 그의 목소리는 말투에서 살짝 배어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와 어우러져 다양하게 활용된다. 이 영화에선 실제 범인의 목소리와 89.6% 일치할 정도로 흡사했다. 아이 부모 역을 맡은 설경구와 김남주는 “전화협박을 하도 실감나게 해서 나중에 촬영이 아닌 평소에도 강동원의 목소리를 들으면 너무 밉고 분노가 치밀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강동원은 목소리 연기 이야기를 할 때 당시를 회상하며 “돈을 놓고 가라”는 대사를 다시 할 정도로 신이 났다.

“사람들은 저보고 작품을 많이 하라고 하는데, 저는 지금까지 총 18편에 출연했어요. 군복무한 기간을 제외하면 데뷔 후 1년에 한두 편은 한 셈이죠. 저는 촬영장에 있는 게 가장 좋고, 연기하는 것이 재밌어요. 다른 건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가 연기를 하지 않은 건 군복무 기간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1년간 일을 못 했을 때”뿐이다. 그 1년 동안 강동원은 가구 만들기를 배웠다. 거울이 필요해서 사러 갔는데, 너무 비싸서 스스로 만들어 쓰려고 시작한 것이다. 역시나 “시작한 일은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 때문에 1년 동안 미친 듯이 가구만 만들었다. 선생님이 그에게 목수를 하지 않겠냐고 권유했을 정도다. 군복무 때도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서 힘들었다”고 했다. 제대 이후 바로 연기가 하고 싶었던 찰나 처음 들어온 일이 잡지 화보 촬영이었다. 이명세 감독에게 부탁해서 사진이 아닌, 동영상으로 화보를 촬영했다. 그리고 바로 <군도> 촬영을 위한 무술 연습에 들어갔다. 그에게 “그렇게 욕심을 내면서 열심히 살면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이제 겨우 좀 편해지려고 해요. 요즘엔 어려운 장면 찍기 전날이면 ‘릴랙스해야 하니 술이나 마시고 자야겠다’고 할 정도가 됐어요”라고 답했다.

“예전에 촬영하다가 산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구워 먹은 적이 있어요. 유해진 선배가 ‘20대 때 여행도 다니고 좀 놀았냐’고 물었어요. 돌이켜보니 치열하게 일한 기억뿐이에요. 조금 아쉽긴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요. 돌아간다면 여자를 많이 만나볼까, 허허. 농담이에요.”


시작하면 끝까지 간다


“원래 딱히 꿈이 없었다”면서 이렇게 청춘을 바쳐 일을 했던 이유가 뭘까. 강동원은 “일을 시작하면 살아남고 성공을 해야죠. 무엇이든지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에요.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고 했다. <군도: 민란의 시대>가 477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었는데도 그는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해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다. 왜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한동안 고민하고 반성했다”고 했다.

대수는 강동원이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평범하다. 10대에 아빠가 되고,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평범하다고 할 정도로 그는 지금껏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 휘청거릴 정도로 큰 키와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생김새, 그리고 서늘하고 날렵한 눈매도 여기에 한몫했다. 어떤 역할이든 이제까지 강동원이 연기했던 인물들은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얼마간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군도>에서 긴 머리를 선녀(仙女)처럼 풀어헤친 장면에선 일부 남성 관객들마저 “예쁘다”며 감탄을 했다.

강동원은 “영화를 선택할 땐 시나리오의 완성도와 감독의 연출력을 본다”고 했다. 그는 또래 배우들에 비해 유독 최동훈・장훈・윤종빈 감독 등 대중과 평단에게 고른 지지를 받는 감독들과 작업을 함께했다. <전우치> 같은 경우엔 시나리오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최동훈 감독의 제안만으로 캐스팅이 이뤄졌다. 4년 공백 후 첫 복귀 작으로 <군도: 민란의 시대>를 택한 것도 “윤종빈 감독과 이야기를 나눠본 후 ‘이 양반 범상치 않다. 영화 잘 찍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귀 작으로 사극을 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감독에 대한 믿음이 컸다”고 했을 정도다. <두근 두근 내 인생>을 접하게 된 것은 상대 역할인 송혜교 덕분이었다. 둘은 지난 2010년 장준환 감독의 영화 <러브 포 세일>에서 호흡을 맞춘 뒤 친분을 유지해왔다.

“송혜교씨에게 다음 작품이 뭐냐고 물었더니 <두근두근 내 인생>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아이가 조로증인데 부모는 어리다는 극단적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겼어요. 흥미로울 것 같았어요. 더구나 이재용 감독이 오랜만에 하는 상업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를 볼 수 있는지를 물어봤어요.”


그는 방콕행 비행기에서 시나리오를 읽으며 다섯 번 정도 오열했다. 눈물은 나는데 들키기는 창피해서 최대한 고개를 숙였다. 그가 훌쩍이는 소리를 들은 승무원이 “감기가 심하게 걸리셨나봐요”라며 물수건을 건넸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를 잘 읽었냐”는 문자를 받았다. “한 시간을 고민한 후 출연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한 시간을 고민한 이유는 “이 작품이 좋지만 내가 이 작품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6시간 반 만에 출연을 결정한 셈이다. 그는 “시나리오가 신파가 아니라서 좋았고, 슬픈 이야기인데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판타지적인 요소도 있었다.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시나리오에 묻어났다. 게다가 감독의 전작인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나 <정사>도 좋아하는 작품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원작 소설은 보지 않았어요. 저는 시나리오 밖에서 이것저것 찾는 것보다 시나리오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영화를 많이 보는 편도 아니고요. 정보가 많으면 오히려 안 좋은 것 같아서요.”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조윤 역을 맡아 날렵한 칼솜씨를 선보였던 강동원은 당시 날 선 악인 캐릭터를 그리기 위해 몸무게를 64kg까지 줄였다. 그러나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애쓰는 평범한 아버지 캐릭터를 위해 10kg이나 몸무게를 찌웠다. 작품에 들어가며 원래 목표했던 몸무게는 76kg. 그러나 이재용 감독과 주변 스태프의 만류 때문에 74kg에서 살찌우기를 그만둬야 했다. (현재 강동원의 몸무게는 68kg) 그는 “오랜만에 현실적인 캐릭터를 맡아서 편하게 연기했다. 카메라 앵글 같은 거 신경 안 써도 되니까 좋더라”고 했다. 힘든 게 있었다면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부모의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아버지(SPP중공업 강철우 부사장)와는 딱히 살갑지도, 멀지도 않은, 딱 평범한 부자관계”라고 했는데, 촬영장에서 아들 역을 맡은 조성목과도 딱 그런 관계였다. 강동원과 조성목이 둘이 같이 있으면 할 말이 없었다. “학교는 갔다 왔니?” “네” “내일도 가니?” “내일 토요일이에요” “아”, 그 뒤로 침묵.


“부성 연기 어려워 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아버지가 된다면, 가장이 된다면 어떨까 했는데 상상이 쉽지 않았어요. 롤모델로 제 아버지를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아버지가 된다는 생각은 아직 해본 적 없지만, 실제로 극중 대수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철없는 아버지 말이에요.”

그는 “아들로는 33년 살았지만 부모로는 한 번도 안 살아봤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아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아들 역을 맡은 아역 배우 조성목의 ‘아빠’ 호칭에도 깜짝 놀랐다. 첫 만남에 “아빠”라고 하길래 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는 조성목에게 “연기는 연기일 뿐, 현실에선 형이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아들 둔 아버지보다는 아들로서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을 수월하게 촬영했다. 극중에서 대수는 아들로부터 시를 받고 나서 한동안 인연을 끊었던 아버지(김갑수)를 찾아간다. 그 시의 내용은 이렇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을 리허설하면서 그는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참기 힘들어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여배우들이 아이가 아픈 장면 찍을 때 눈물이 나서 죽겠다고 했던 게 이해가 갔다. 결국 리허설을 그만두고 그냥 바로 촬영에 들어갔었다”고 말했다.

강동원의 대답은 대개 길지가 않았다. 영화의 원작 소설을 봤냐고 물으면 “소설 같은 걸 안 봐서요. 만화책 봐요”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불성실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대답에 수식이나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쪽에 더 가깝다. 그래도 2007년 한 인터뷰에서 “다시 한국에 태어나면 배우를 안 하겠다”거나 “나에게 히스테리컬한 면과 일종의 대인공포증 같은 게 있다”고 한 것에 비하면 많이 밝아진 편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좋아하는 만화책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눈을 반짝 빛내며 “《원피스》와 《베가본드》”라고 답했다. 만화에 대한 이야기는 인터뷰 시간이 끝나고도 계속됐다. 아들에게 게임기를 달라고 조르는 서른세 살짜리 대수와 기자에게 요즘 무슨 만화가 재밌는지 묻는 서른세 살짜리 강동원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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