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가수의 배우 도전,
보아를 여는 열 개의 열쇠

2013년 9월, 보아는 연기자로 우리에게 다가섰다. KBS 2TV 단막극 <연애를 기대해>에서 보아는 ‘가수 출신’답지 않게 자연스러운 표정과 일상적 동작들로 합격점을 받았다. 과도한 욕심이 조절된 담백함이 호평의 배경이 됐다.
‘연기를 기대해도’ 좋을 차세대 배우로 시청자의 눈에 들었다.

사진제공 : S.M. ENTERTAINMENTㆍ아주경제
대중은 “처음 연기하는 데도 제법”이라며 박수를 쳤다. 칭찬받을 만한 호연이었지만 첫 연기는 아니었다. 3년 전, 2011년에 촬영을 마친 <메이크 유어 무브(Make Your Move)>가 배우 보아의 첫걸음이었다. 한미합작 영화로 캐나다에서 촬영한 영화는 지난 4월 국내 개봉, 흥행을 거두진 못했지만 보아는 다시 한 번 안정적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배우 이정재・신하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빅 매치>에 캐스팅된 게 단순히 가수 보아로서의 찬란한 경력 때문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입증했다.

4월 16일,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만난 보아는 편안한 웃음, 특유의 느린 말투로 여유를 보였다. 그는 “안도감”이라고 표현했다.

“3년 전에 촬영한 영화잖아요, 첫 연기였고요. <연애를 기대해> 때 호평해주셔서 이 작품이 발표되면 반응이 어떨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언론시사회 끝나고 좋은 말씀들을 주셔서 안심했습니다(웃음).”

아시아에서 한류스타로 이름을 굳힌 솔로가수의 배우 도전. 구성원이 많은 걸그룹 멤버들이 개별활동 시기에 시도해보는 연기와는 사뭇 다른 의지가 읽힌다. 그는 어떻게 연기로 눈을 돌리게 됐을까.

“제가 배우를 생각해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가수로서 바빴어요. 출연 제의는 간간이 있었지만, 그게 무엇이든 한 가지를 할 때 몰두하는 타입이라 여러 가지를 함께 못 해요. 그래서 가수만 계속하고 있었는데…. <메이크 유어 무브>의 출연은 몇 가지 이유에서 제게 특별했어요. 댄스가수로서 댄스영화를 해보고 싶었고, 아무래도 가수로 무대에 서다 보면 연습실에서 춤출 때만큼의 기량을 스테이지에서 발휘하지 못하니까 아쉬움이 있기 마련인데, 오로지 춤에만 매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끌렸어요. 조금 우려했던 부분은 첫 연기인데, 그걸 영어로 한다는 게 걸렸지만 저를 캐스팅하러 일본까지 찾아오신 감독님(듀안 에들러)의 열정을 보고 ‘이분이라면 연기를 할 수 있겠다. 따라갈 수 있겠다’ 싶어 결심을 했지요.”


2011년 댄스영화, 2013년 드라마 데뷔


듀안 에들러는 댄스영화에 일가견이 있다. 미국에서 2008년 개봉한 댄스영화 <메이크 해픈>의 원안자이자 각본가였고, 공동제작을 맡았다. 2010년 존 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입체 댄스영화 <스텝업 3D>도 그가 원안과 각본을 담당한 작품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연출 데뷔작에 아시아의 춤꾼 보아를 캐스팅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것이었다.

보아의 차분한 답변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혼자 춤추며 노래하는 무대가 아니라 댄스영화가 춤에만 매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설명이 첫 번째 열쇠였다.

“가수로서 무대에 서면 일방적으로 제가 대중에게 어필해요. 물론 공연장에서는 반응이 보이지만, 그것조차 일방적으로 계속 나에 대해 표출하는 거거든요. 이번 작품 속 안무는 교감이 핵심이에요. 단순히 혼자 춤을 잘 춰도 안 되고 춤으로 대화한다는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거죠. 백업댄서가 있지만 결국 혼자 연습하고 춤춰야 하는 게 솔로가수의 숙명인데, 연기하면서 새로이 느낀 건 내가 주면 그 사람이 주는 게 있고 호흡이 맞았을 때 오는 기쁨이 있더라고요. 같은 춤이지만 노래냐, 영화냐 장르가 다르니 그 느낌도 전혀 다르더라고요.”

새로이 접한 영화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보아의 모습은 마치 첫사랑에 물든 복숭앗빛 볼을 지닌 소녀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영화의 매력, 그것이 두 번째 열쇠였다.

“공동체 생활의 매력을 느꼈어요. 이 작품을 시작할 때는 댄스에 매력을 느낀 게 출발점이었는데, 막상 현장이 열리고 보니 전혀 다른 기쁨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솔로가수라는 직업이 대인관계에 있어 누군가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늘 혼자였어요. 하지만 세트장에선 촬영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요. 서로에 대한 것뿐 아니라 세상 이야기에 대해서도 많이 접하게 되고요. 요즘 <빅 매치>를 찍으면서도 드는 생각인데, 오디션 프로그램 도 그렇고 저는 항상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었는데, 연기자로서는 누군가 나에게 조언해준다는 것, 배울 수 있는 게 많다는 점이 너무 좋아요. 배우와 스태프들이 한 작품의 성공을 위해 함께 일한다는 것이 가수랑 다른 점이고, 그 과정에서 영화라는 장르의 매력을 흠뻑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세 번째 열쇠는 첫 번째 답변에 있었다. 첫 연기인데 영어 대사라 걸렸다는 이야기. 여느 배우라면 프로댄서인 여주인공 ‘아야’가 되기 위해 수개월을 춤 연습에 바쳐야 했겠지만, 내로라하는 춤꾼인 보아의 목에 걸린 가시는 영어 연기였다.

“영어 연기가 가장 어려웠어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저로선 필터링을 한번 해야 하니까, 상대의 연기에 대한 리액션이나 상대의 말을 듣는 거나 다 어려웠어요. 다른 배우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사는 분들이잖아요. 영어가 모국어인 분들 사이에서 연기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래도 뭔가 영어를 잘하고 싶은 거예요(웃음). 저 주연배우인데, 주연배우가 영어를 못하면 작품이 이상해질 것 같아서 발음 코치 따로 받으며 노력 많이 했어요. 대사 연습도 많이 했고요. 또 한 가지는 배워야 할 게 많았다는 거예요. 현대무용, 탭댄스, 타이포 드럼…, 여러 가지를 단기간에 습득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메이크 유어 무브> 속 아야는 짧지만 한국어도, 일본어도 쓴다. “감독님이 이왕 아야가 재일교포로 설정됐으니 한국어와 일본어 대사를 좀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영어 대사를 보여주시며 ‘이 뜻을 한국어로 해줘’라고 주문하실 때 했죠. 그렇게 한국어・일어도 하게 된 거예요.”

재일교포 이야기는 자연스레 다음 이야기를 이끄는 네 번째 열쇠가 됐다.

“원안에서 여주인공은 일본인이었어요. 감독님이 대본을 처음 쓴 건 ‘코브’라는 실존 탭댄스 그룹의 공연을 보고 영감을 얻은 게 계기가 됐다고 해요. 하지만 캐스팅 논의 과정에서 솔직히 말씀드렸죠. 제가 일본인으로 나오는 건 좀 어려울 것 같다고요. 그렇다고 감독님이 작품을 크게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건 감독님의 크리에이티브를 침범하는 거니까 절충안을 찾다가 재일교포라는 설정에 이르게 된 거죠. 이름도 연구했어요. 그대로 일본인으로 나갔으면 아야코가 됐을 거예요. 다른 이름이 필요했는데 아야코는 일본 이름 색깔이 짙고, 한국어 이름으로 하자니 외국인들이 발음하는 게 어렵고, 그렇게 고심하다 아야라는 이름이 나온 거죠.”

새로운 시작점이 필요했다. 베드신을 다섯 번째 열쇠로 뽑아 들었다. 베드신이라지만 정사신 수준은 아니다. 사랑하는 남녀, 아야와 도니(데릭 허프)가 함께 춤을 추며 싹튼 교감이 사랑으로 옮아가는 장면이다. 침대에 이르기까지의 격정이 아름답고도 현란한 춤으로 표현됐다.

“연기라고 생각하니까 어색하진 않았어요. 퍼포먼스 장면이어서 그런지 그다지 설레지도 않았고요. 데릭하고는 연습실에서 함께 땀 흘리며 현실의 실체를 둘 다 봤기 때문에(웃음)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다만 몸이 되게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고난도의 안무였거든요. 특히 데릭이 저를 침대로 들어 올리는 장면에서 힘에 부쳐 한번 떨어뜨린 적도 있었기 때문에… 그때 정말 아찔했어요. 신경이 굉장히 곤두선 상태로 촬영했어요. 이 장면이 추가촬영분이기도 했어요. 이미 봄에 촬영을 다 마쳤는데 겨울에 다시 모였어요. 토론토 엄청 춥잖아요. 너무 힘들게 촬영했던 기억이 나네요.”


열다섯에 천재 춤꾼으로 등장, 어느덧 스물아홉


현실에서도 춤으로 나눈 교감이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보아는 여섯 번째 열쇠에 대해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글쎄요, 이런 춤을 춰본 게 데릭밖에 없어서, 데이터가 적어서 뭐라고 말씀드리긴 어려운데요. 적어도 저한테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춤을 안 췄다면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은 자신이 부족한 점을 잘하는 상대에게 더 큰 마음을 갖게 되지 않나요? 그런 맥락에서 연기 잘하는 분들이 매력 있고요, 뭐든 미치게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에게서 저는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돌아보니 보아에겐 별다른 열애 스캔들이 없었다. 열다섯 나이에 천재 춤꾼으로 등장한 그의 나이 어느덧 스물아홉. 일곱 번째 열쇠 ‘사랑하기에 좋은 시기’가 보아의 곁을 스치고 있다.

“맞아요. 제가 느끼지 못한 20대의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드라마 <연애를 기대해>를 해보고 싶었고요. 이은진 감독님도 ‘보아의 20대를 찾아주자’고 말씀하셨어요(웃음). 이상형이요? 음… 저를 보듬어줄 수 있는 남자요. 연상연하 특별히 가리는 건 없는데, 아무래도 연상이 잘 보듬어주지 않을까요, 아닌가요?”

변변히 연애도 하지 않고 20대를 무엇으로 채운 걸까. 그것이 여덟 번째 열쇠였다.

“정말 성실하게 일했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왔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고요. 저를 가만 놔두는 성격은 못 돼요. 쉴 때도 꼬박꼬박 운동하고 관리도 꼬박꼬박 해요. 뭔가를 배우기도 하죠. 일테면 중국어요. 요즘 바빠서 못 하고 있는데 시간이 되면 다시 중국어 공부를 시작할 거예요. 후회가 안 든다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후회하지 않을 만한 삶을 살기 위해 전진하고, 매순간 감사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아홉 번째 열쇠로 삼았다.

“하고 싶은 것이라기보다는 배우 일을 시작했으니까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 (신인배우로서 욕심나는 장르를 조르자) 요즘 치고받고 싸우는 연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멜로가 좋을 것 같네요. 이렇게 말하고도 제가 끌리는 대본이 있으면 전혀 다른 걸 할 테고요. 지금 촬영 중인 <빅 매치>의 수경은 굉장히 특이한 캐릭터예요. 다른 영화에서 있었나 싶을 정도로 특이한데요. 앞으로 어떤 캐릭터와 인연이 닿을지 너무 궁금해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가수 보아는 온데간데없고 배우 보아만 보인다. 스스로는 가수의 끈을 움켜쥔다.


긴 호흡으로 배우의 길을 갈 것


“저의 내일은 연기자, 가수 반반으로 채워질 것 같아요. 어느 쪽으로 치우치기보다 시간 배율을 잘해서 좋은 영화가 있을 때는 작품에 매진하고 가수로서도 꾸준히 활동하고, 그런 방식으로 해나갈 거예요.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충실히 임할 수 있는 연예 활동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보아의 야무진 욕심에도 열 번째 열쇠는 역시 ‘배우 보아’다. 드라마는 더 큰 순발력을 필요로 해서 당분간은 영화에 몰두하고 싶다. 출연을 청하는 시나리오들이 들어오곤 있지만 일단은 현재 촬영 중인 <빅 매치>에 집중하겠단다. 서두르지 않고 긴 호흡으로 배우의 길을 가겠다는 보아에게 연기는 무엇일까.

“더 일찍 시작했으면 연기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물론 <메이크 유어 무브>가 3년 전에 개봉했다면 그때 바로 연기를 이어갔겠지만, 지금도 좋습니다. 10대의 저보다 지금의 저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유예요. 캐릭터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좀 더 진지한 마음으로 연기할 수 있어서예요. 지금이라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2014년 봄을 살고 있는 보아가 품은 오늘의 소원은 하나다. <메이크 유어 무브>를 통해 영화 속에서 아니 관객의 마음속에서 배우로 태어나는 것.

“물론 여전히 가수 보아로 보는 분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모든 분의 눈에 과연 (여주인공이) 보아로만 보일까요? 아야가 보아로 보이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오로지 아야가 아야로서 보이기만을 바라요. 그때 비로소 배우가 된 거니까요.”
  • 201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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