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찾아오는 프리티우먼
김아중

글 : 이형석 헤럴드경제 기자  / 사진 : 김선아 

“자~ 지금 시작해 조금씩 뜨겁게, 우~ 두려워하지 마, 펼쳐진 눈앞에 저 태양이 길을 비춰, 우~ 절대 멈추지 마!”

그리고 ‘마리아’라고 반복되는 후렴처럼 올겨울에도 김아중(31)이 찾아왔다. 그녀가 직접 부른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주제곡 ‘마리아’는 여전히 겨울이면 가장 많이 울려 퍼지는 노래 중 한 곡이 아닌가. 2006년 그 겨울의 ‘프리티우먼’은 2012년 12월 〈나의 PS 파트너〉로 돌아왔고, 2013년엔 1년 전과 거의 같은 날(12월 19일) 〈캐치미〉가 개봉했다. 거슬러 올라가 2005년 출연작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형제 역할을 했던 김주혁과 봉태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것도 11월 말이니 겨울과 김아중의 인연은 대단히 특별한 셈이다. 공교롭게 영화 개봉을 즈음한 2013년 12월의 인터뷰는 1년 전과 장소도 똑같은 삼청동의 한 카페였다. 조용필의 노래 ‘그 겨울의 찻집’이 절로 생각나는 춥지만, 화창한 날이었다. 하지만 배우로서는 12월 개봉작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극장 성수기, 벅찬 작품들과의 흥행경쟁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제 겨울에 제 출연작이 개봉하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아요. 마침 1년 전과 비슷한 날, 똑같은 장소에 있으니 기시감마저 드는 걸요. 그런데 아무리 시장이 커지는 겨울이라고 하지만, ‘꼭 내 작품은 이렇듯 좋은 영화가 많을 때 개봉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12월 개봉작으로는 전도연 주연의 〈집으로 가는 길〉과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몰고 있을 무렵. 타깃 관객층이 다른 로맨틱 코미디이긴 하지만 〈캐치미〉의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됐다. 하지만 김아중의 웃음은 밝고 시원했다. 세칭 ‘완벽한 S라인’이라고 하는 몸매도 미소의 굴곡처럼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포토그래퍼와 사진촬영을 하는 모습이 문득 몸매관리법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여성 팬들이 더 관심을 가질 만한 질문을 먼저 던졌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한두 달 정도는 운동을 열심히 해요. 식이조절도 하고요. 촬영에 들어가면 제대로 먹어야 하거든요. 몸매도 몸매지만 체력을 위해서도 영양보충이 필수죠. 그렇지 않으면 이제 나이가 나이니만큼 눈도 꺼지고 볼도 꺼져서 스크린에 예쁘지 않게 나와요. 2012년 〈PS 파트너〉 할 때는 오랜만(6년 만)의 영화 복귀라 워낙 긴장을 많이 해서 체중이 좀 많이 줄었죠. 45kg쯤? 지금은 48~49kg 정도고, 평소에는 51kg까지 나와요.”


〈캐치미〉는 묘하고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천재적인 프로파일러(범죄심리행동분석 전문 경찰)인 청년과 기막힌 솜씨의 여도둑 간의 로맨스를 담았다. 범죄자 검거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온 이호태 경위(주원 분)가 프로파일러로서의 전문적인 재능을 십분 발휘해 희대의 연쇄살인범을 검거하려는 찰나, 한 뺑소니범이 범인을 치고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역시 빼어난 수사실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해 호태는 용의자의 거주지를 홀로 급습하는데, 운명의 장난도 그만한 것이 없었다. 상대가 바로 10년 전 첫사랑 윤진숙(김아중 분)이었던 것. 게다가 파면 팔수록 꼬리를 물고 범죄 행각이 드러나는, 신출귀몰 경찰의 눈을 피해온 희대의 여도둑이었다. 어린 시절 불행한 기억 때문에 양심 대신 도둑질을 먼저 배웠던 여인은 아무 죄의식 없이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들었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점층적으로 여자의 심리와 과거가 한 꺼풀씩 드러나죠. 처음부터 다 보여주지 않아요. 정보가 하나 둘씩 드러날 때마다 눈덩이처럼 범죄 행적이 불어나죠. 감독도 극중 인물의 직업을 파고들어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라 서로 상반되고 대립되는 상황에 처한 남녀가 이루는 ‘케미’(‘케미스트리’를 줄여 부르는 최근의 인터넷 유행어로 주로 남녀 간의 화학적 반응이나 결합을 뜻하는 말)로 끌어가는 영화라고 했어요. 리얼리티보다는 판타지가 강한 설정이죠.”

남자라면 아직도 아련한 기억 속의 연인인 이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여도둑’을 어떻게 할까? 잡아야 하나 지켜줘야 하나. 주원이 맡은 남자 주인공은 갈팡질팡 오락가락하는데 김아중이 연기하는 여주인공은 늘 해맑고 순진무구하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이다. ‘프리티우먼’으로 인증된 김아중은 〈캐치미〉의 설득력이고, 극중 두 남녀의 아이러니한 상황은 영화의 재미다. 또박또박 인물의 감정의 결을 헤아리고 개인사를 더듬는 캐릭터 분석력은 김아중을 단지 ‘프리티우먼’일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에서 가장 신뢰할 만하고 가장 어울리는 로맨틱 코미디 전문 여배우로 만들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직접 가사를 쓴 노래 발표할 예정


한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야한 농담으로 장난을 친다는 것이 휴대폰 번호를 잘못 눌러 낯선 남자와 연결된 끝에 ‘폰섹스’에 버금가는 대화를 주고받게 되고, 그렇게 황당하게 만난 두 남녀가 사랑을 엮어간다는 내용의 전작 〈나의 PS 파트너〉 때에는 무려 A4용지 4장 분량의 개인 리포트를 만들었다. 김아중은 “내가 알고 있는 여성의 연애와 심리에 관한 분석보고서였다”고 말했다.

“당시 남자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써서 그런지 남성 캐릭터는 현실성이 느껴졌지만 여성 등장인물은 상상에 의존한 듯했죠. 그래서 제가 글을 써서 감독님께 드렸어요. 바람피우는 남자를 눈감아 줄 수밖에 없는 심정, 투사처럼 일하고 공주처럼 사랑하는 특별한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은 월급에 목매달고 남자친구에게 기대고 결혼에 집착하는 평범한 여성의 심리를 적었어요. 연애가 오래 지속되면 결국 여자가 남자를 더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상호관계에서 약자가 돼 외로움을 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로맨틱 코미디 출연작의 목록이 한 편씩 늘어갈수록 연애에 대한 감각도, 사랑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성숙해간다. “아쉽다면 실제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만 연애를 하고 사랑을 배운다는 사실”이라며 김아중은 웃었다. “최근엔 연애의 기회도 영 오지 않고, 둘러봐도 남자가 없다”는 말은 여느 서른 즈음의 ‘싱글여성’과 다르지 않다.

“남자배우들과 호흡하면서, 남자 감독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사랑에 대한 생각도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실제 연애와는 또 다르겠지만 말이죠. 실제 연애를 할 때 남자친구에게 하는 것보다 연기를 할 때 훨씬 더 상대 배우를 관찰하고 배려하게 되지요. 상대의 감정을 내 마음보다 더 품고 더 우선하게 되기도 하고요. 지금 바라는 연애상대가 있다면 편한 친구처럼 대화가 잘 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코드’가 많았으면 해요. 영화 한 편 보고 몇 시간 수다를 떨 수 있는 관계요.”

김아중은 로맨틱 코미디를 여전히 즐기고 있으며, 팬들도 경쾌한 러브스토리 속의 김아중을 반기지만, 다른 장르에 대한 갈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엄연히 캐릭터가 다르고 스토리가 다른데, 지금까지 해온 로맨틱 코미디와 장르가 같다고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남자들에 비해 여배우들이 할 수 있고, 여배우들에게 제안되는 작품과 장르의 폭이 참 좁은 것도 사실이에요. 여배우가 주연을 맡을 만한 작품은 대부분 로맨틱 코미디지요. 휴먼드라마나 정통 멜로영화, 스릴러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번 작품에서 수수께끼에 싸인 도둑 역할을 하고나니까 저도 악역이나 스릴러 영화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에는 소심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고 애교가 많은 귀여운 여인 역할을 주로 해왔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눈치 안 보고 뻔뻔하게 범행을 저지르는 역할이다보니 쾌감도 생기더라고요. 하하. 스릴러를 한다면 범죄를 수사하게 된 신참 여형사 같은 역할도 잘 맞을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김아중은 2012년 2월 고려대 언론대학원 방송영상학과에서 〈감성 욕구와 인지 욕구가 감정 강도 및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스릴러 영화 관람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감성과 인지 욕구가 높은 두 개의 집단을 표본으로 6가지 가설을 세운 뒤 이를 검증하는 복잡한 연구였지만, 한마디로 “인지 욕구보다는 감성 욕구가 높은 집단이 스릴러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는 게 결론이다. “왜 여배우가 맡을 역이 없을 정도로 한국영화에는 스릴러가 인기가 있을까, 무섭고 잔혹한 작품에 왜 관객들이 열광할까”라는 의문으로부터 출발한 논문이었다. 스릴러 영화를 대상으로 검증했던 가설을 로맨스 영화 〈캐치미〉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인지 욕구보다는 감성 욕구가 높은 관객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죠. 덧붙여서 제가 감독님께 특별히 부탁한 것은 우리 영화는 어리고 젊은 관객이 많이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어요. 유치해 보일 수 있는 대목도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도록 하고, 담배를 핀다거나 욕설을 한다거나 하는 장면은 배제하자고 했죠. 그래서 우리 영화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볼 수 있어요. 12세 이상 관람가거든요. 방학을 맞은 학생들도 많이 봤으면 해요. 더군다나 주원씨가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 나왔었기 때문에 어린 팬들도 많잖아요.”

김아중은 한국에서의 활동이 얼마간 공백이다가 지난해 6년 만에 영화로 복귀하면서 “영화든 드라마든 매해 두 편씩은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올해는 계획을 이루지 못했다. 2월부터 영화 기획에 들어가 8월에야 촬영이 끝났으며, 9월엔 일본에서의 팬 미팅, 10월엔 중국영화 〈어메이징〉의 프로모션이 있었다. 김아중의 일본 활동을 맡고 있는 일본의 음반연예기획사 포니캐년의 제안으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가진 팬 미팅은 새로운 활력을 줬다. 2000여 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이루어진 행사에서 김아중은 노래도 부르고 팬들과 춤도 추고 게임도 했다. 원래 가수로 연예계 데뷔를 하려다 기획사가 해체되면서 연기를 하게 된 전력이 있는 터라 잘 알려진 것처럼 김아중은 노래에도 빼어난 재능이 있다.

이번에는 일본 팬들 앞에서 6곡 정도를 불렀는데 기존 곡과 일본 노래, 팝송 외에 미발표 신곡도 있었다. 일본 측에서 미국 유명 작곡가에 의뢰하고 김아중이 가사를 붙인 ‘런 더 월드’라는 신나는 록댄스곡. 곧 한국과 일본에서 음원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일본 팬 미팅 경험은 저에게 새로운 감동을 줬어요. 신선하기도 했고요. 다른 여배우들은 일본에서도 주로 여성 팬들이 많은 반면에 제 팬 미팅을 찾으신 분들은 남성이 70%였어요. 대부분 30대 이상이었고, 70대 할아버지도 계셨죠. 일본 관계자들도 놀라더군요.”

영화 〈어깨동무〉로 데뷔한 지 벌써 9년차에 접어든 배우. 김아중은 이제 속도를 더 낼 예정이다. 서른 중반까지는 필모그래피를 열 편 가깝게 늘릴 예정이고, 장르도 다변화할 계획이다. 2014년 새해엔 상반기 중 영화와 드라마 한 편씩을 할 예정. 예정된 작품 말고도 한 감독의 이름과 준비 중인 영화의 제목을 대며 “꼭 출연하고 싶다”고 되뇌는 이 ‘귀여운 여인’의 서른한 번째 겨울은 추위를 녹이는 의지로 충만하다.
  • 2014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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