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창생〉 주인공 최승현

배우 최승현이 빅뱅의 탑과 함께 사는 법, 그것은 젊은 아티스트의 모험이다

글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담당 기자  / 사진 : 김선아 

영화 〈동창생〉의 주인공과 배우 최승현(26)의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두 개의 이름, 두 가지의 정체성으로 사는 자의 숙명일 것이다. 〈동창생〉에서 최승현이 역을 맡은 ‘리명훈’은 북한으로부터 남파돼 ‘강대호’라는 이름의 고교생으로 위장, 암살 임무를 수행하는 소년 간첩이다. 최승현 스스로는 지난 8년간 본명보다는 ‘빅뱅’의 멤버이자 래퍼인 ‘탑’으로 더 많이 불렸다. 그래서일까, 〈동창생〉의 시나리오를 보고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끌렸던 것은 정체성의 혼돈에 빠진 주인공의 처지였다.

“그동안 사극이나 로맨틱 코미디,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시나리오를 받았지만, 이 작품에 유독 마음이 갔던 것은 주인공 소년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속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인물이지만,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져 갈등하고 고뇌하는 처지가 제 마음을 움직였죠. 정체성에 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 〈에이 아이〉나 주어진 운명이나 정체성을 벗어나 전혀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는 주인공을 그린 〈가타카〉를 떠올렸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당의 반역자가 된 아버지 때문에 요덕수용소에 감금된 북한 소년 리명훈은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남파공작원이 되기로 한다. 탈북자로 위장 망명해 낮에는 평범한 고교생, 밤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암살 기계로서 이중생활을 해나간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그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한예리 분)의 손을 잡아줄 정도로 따뜻한 피와 연민을 가진 소년이다.


북에 남은 여동생을 위해 남의 목숨을 가차 없이 빼앗아야 하는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 여동생과 함께 피아노를 치며 웃음을 나눴던 소년의 따뜻한 추억이 당의 배신자에게 총구를 겨냥하고 칼을 들이대는 암살자의 차가운 가슴을 덥힐 때, 분단의 비극은 남도, 북도 선택할 수 없는 한 젊은이의 삶을 무너뜨리는 파국이 된다. 리명훈은 김정일 사후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과정에서 북한의 내부 투쟁과 남한의 이해관계의 희생양이 되고, 남북 양측의 ‘인질’이 된 여동생과 동창 소녀를 구하기 위해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다. 최승현은 자신에게 북한말을 가르쳐준 탈북동포로부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얘기도 많이 들었지만, “전후 3세대로서 남북분단은 정치적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당면한 비극적 운명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동창생〉뿐 아니라 비슷한 설정으로 상반기 개봉해 화제를 뿌렸던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각각 최승현과 김수현이라는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를 내세운 점도 그렇거니와 분단에 대한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각과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들 작품에서 분단은 정치적이고 이념적이거나 민족적인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북한은 일종의 범죄조직으로 묘사되며, 남북 정부는 개인의 희생을 자양분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조직이나 권력집단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분단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갱스터 느와르’(갱을 주인공으로 한 범죄물)의 변주에 더 가깝고, 간첩으로 설정된 인물들은 오히려 폭력조직에 몸을 의탁했다가 결국은 파멸하는 갱스터 느와르의 젊은 주인공으로 읽힌다.

최승현은 “분단이나 민족 문제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연민과 그리움, 순수함, 가족애 같은 감정이 더 깊이 와 닿았다”고도 덧붙였다. 최승현은 자신이 연기한 리명훈의 운명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에이 아이〉에서 로봇으로 태어났지만 한 엄마의 아들이고 싶었던 소년과 〈가타카〉에서 범죄자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을 거역하려는 주인공의 원망을 읽었다.


영화 개봉(11월 7일)을 며칠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최승현은 자신이 처음으로 단독 주연을 맡은 작품이기 때문인지 첫 말문은 다소 초조하고 경직된 느낌이었다. 보라색 셔츠와 회색 수트로 단정하면서도 감각적인 스타일을 낸 최승현은 5인조 그룹 빅뱅에서 가장 화려하고 패셔너블한 멤버 중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지만, 무대에서 방방 뛰고 공격적인 자세로 랩을 쏟아내는 힙합 뮤지션은 어디 가고, 차라리 오디션을 마치고 합격 여부를 기다리는 자 특유의 두근거림이 앞섰다.

“설렘 반 초조함 반입니다. 1년 정도 오랜 시간 촬영한 영화고, 그것이 한 번에 보여진다고 생각하니 적잖이 예민해진 느낌입니다.”

음반이나 노래를 내놓기 전, 공연 무대에 오르기 전의 심정과는 또 다르단다.

“음악은 빨리 흘러가는 시장이고, 영화는 좋든 나쁘든 평가가 오랜 시간 이어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장르이다보니 설렘과 초조함의 정도나 느낌도 다른 듯합니다.”

극중 리명훈은 과묵한 성격이다. 신분을 속이고, 감정을 감추고, 여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암살자의 고뇌를 속으로 삭여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내면에서 이는 감정의 격랑을 오로지 표정과 눈빛, 그리고 몸짓으로 표현해야 했다. 최승현은 “말을 해야 할 순간에 침묵하고, 입을 닫아야 하는 때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역할이 강렬하게 느껴졌다”며 “눈빛으로 두 시간의 러닝타임을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이 내게 도전의욕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으로 말하자면 가사(가창) 없이 악기 연주로만 이끌고 가야 하고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곡과 비슷했다”며 “내겐 모험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에 빠져 사는 동안 받은 영감으로 새 노래 만들었어요

영화 개봉을 앞두고 평가와 흥행성적표를 기다리는 배우로 말문을 열었던 최승현의 눈빛은 음악 이야기로 흘러가면서 더 뜨거워지고, 목소리는 힘이 들어갔으며, 입은 웃음을 머금는 빈도가 잦아졌다. 지금, 최승현의 고민은 음악과 연기의 ‘밸런스’에 있다.

“음악이 기반이고, 본업은 가수지만 연기, 배우와 ‘균형’을 맞춰가려 합니다. 요새 가장 힘들어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이죠.”

연기는 사실 자신의 의지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빅뱅으로 데뷔한 (2006년) 1년 후 드라마 〈아이 앰 샘〉의 작가가 “당신에게 꼭 맞는,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며 출연을 제안해왔고, 주위의 권유를 받아들여 크지 않은 배역이었지만 얼굴을 내밀었다. 그때만 해도 그저 가능성의 타진이었고, 호기심 삼아 해본 외도였다. 그게 빅뱅 탑의 또 다른 이름, ‘최승현’이 될 줄은 몰랐다.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용감하게 도전했죠. 저는 음악만 하고 음악밖에 모르던 아이였고, 그래서 〈아이 앰 샘〉에선 제게 뭔가 부족함이 느껴졌어요. 그러다보니 〈아이리스〉를 하게 됐고, 연륜이 많은 선배들과 호흡하면서 배운 게 많았죠. 영화 〈포화 속으로〉는 전환점이 됐어요. 많은 칭찬을 듣고 상(신인상)도 많이 받다보니 책임감이 생겼죠. 이제 더 이상 발을 뺄 수도 없다고도 느꼈어요. 하하.”


〈포화 속으로〉에서 영화 엔딩 크레딧에 처음으로 ‘최승현’이라는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제가 처음 빠져든 힙합도 노토리어스 비아이지나 우탱 클랜 같은 직설적이고 어두우며 리듬이 남성스러운 음악이었어요. 제가 음악을 쓸 때도 제 안에 있는 슬픔과 분노, 어둠이 반영이 되죠. 선이 굵은 리듬과 멜로디를 좋아하고요. 그러다보니 영화에서도 어두운 색깔의 역할을 연이어 선택하게 됐어요. 전작(〈아이리스〉 〈포화 속으로〉)에 이어 또 강렬하고 무거운 인물을 하느냐 고민도 컸지만, 이왕 한번 시작한 것 갈 때까지 가보자 했죠,”

최승현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영화 촬영을 하면서 빅뱅 월드투어 공연도 병행했다.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는 거의 매일 밤샘촬영을 하며 소년 간첩 리명훈이 됐고,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주말 동안엔 비행기에서 자고, 공항에서 공연장까지 직행해 월드 투어 무대를 휘저었다. 스포트라이트의 화려함과 생사를 건 소년의 비운이 교차하는 ‘이중생활’이 수개월간 계속됐다. “살면서 제일 힘들었던 때”라면서도 “내 자신을 막다른 곳까지 몰아넣는 스릴과 쾌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년여간 영화에 빠져 살면서 받은 영감을 11월 중순 발표할 새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새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작품 개봉에 맞춰 발표하게 된 것은 ‘밸런스’를 맞춰가려는 제 의지의 표현이에요. 새 음악에는 두 가지 길을 가야 하는 제 고민과 현재 우리 음악계에 대한 생각이 솔직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음악과 연기, 가수와 배우 사이에서의 ‘균형’이 고민의 주제라면, 두 분야를 가로지르는 화두는 ‘모험’이다.

“이번 솔로 음악은 영화만큼이나 저에게 큰 모험입니다. 상업성이 없거든요. 가사는 때로 추상적이고, 뮤직비디오 이미지는 초현실적입니다. 가사와 이미지가 충돌하고 대립하죠. 서현승 뮤직비디오 감독이 제 의견과 아이디어를 많이 받아들여줬습니다.”


최승현의 외조부는 잘 알려진 대로 소설가 서근배씨(1928〜2007)다. 최승현은 “생전 할아버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며 “외가에 예술가들이 많아서인지 제가 가수활동을 하는 것에 호의적이셨다”고 말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故) 서근배씨는 고 김환기 화백의 조카로, 최승현의 새 뮤직비디오엔 김 화백의 유작이 등장한다.

최승현은 인터뷰 중에도 음악과 연기, 가수와 배우 사이에서 혼돈과 균형을 끊임없이 자문했지만, 지향은 결국 하나로 모아졌다. 그도 알아차렸는지 모르지만, 인터뷰 말미에 스스로 답을 내렸다.

“아직은 넓은 시야로 세상과 사람을 보는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에게 집중하면서 제 나이 때 제가 갖춰야 하는 깊이와 색깔을 찾는 때가 아닌가 싶어요. 저만의 색깔과 세계를 만들어가는 작업이겠죠. 아마 그것은 음악이나 연기나 정석과 기준으로부터 벗어나는 ‘의외성’이 아닐까요? 용감하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용감하게 모험을 즐기는, 젊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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