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 충만한 배우 유아인

작품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짜 긍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글 : 이형석 헤럴드경제 기자  / 사진 : 김선아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얼굴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한 시대 청년세대의 ‘도상’(아이콘)을 청춘스타라고 부른다. 청춘스타의 얼굴은 이전 세대로부터 분별 정립하려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욕망과 감성의 표현이며, 그것을 포섭하고 수용한 대중문화산업의 ‘상품’이자 ‘서비스’다. 젊은 세대가 가진 자기표현이자 대중문화산업이 생산한 상품이라는 이중적인 규정은 청춘스타라는 하나의 얼굴과 하나의 육체에서 때로 갈등을 빚고 충돌을 일으킨다. 그래서 청춘스타는 당대의 독보적인 예술가로서 숙성되기도 하고, 반대로 한때 유행을 타는 일회용 소비재가 되기도 한다. 가장 젊은 나이에 대중문화 스타 시스템의 한복판에서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자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아니 가요·방송·영화 등 거의 모든 장르에서 폭발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쟁쟁한 청춘스타들이 한국 대중문화의 최전선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포진해 있다. 유아인의 자리도 그중의 하나다. 배우로선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 〈늑대소년〉의 송중기, 한일 양국에서 탁월한 엔터테이너로 활약 중인 장근석 등과 나란히 스타시스템의 최고점에서 20대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 그룹의 청춘들은 20대다운 패기와 허세·도전·균형감을 갖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아인을 다른 스타들과 구별 짓는 것은 청춘스타로서의 자기 존재에 대한 명확한 자의식이다.
“배우 유아인과 인간 엄홍식(본명)은 제 안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삶이고 일상이고 자아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배우 유아인이 인간 엄홍식의 영역을 크게 치고 들어왔습니다. 배우 유아인이 지금의 저를 사로잡고 지배하고 있는 이름입니다. 예를 들자면, 작품을 고를 때 이런 식이지요. ‘내가 이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을 하고 싶어 하나’라는 질문은 ‘내가 이 작품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으로 뻗어나갑니다.”  

‘작품 선택의 기준’ ‘배우와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묻는 뻔한 질문에 즉흥적인 반응으로서 이러한 현답은 20대 스타에겐 매우 드문 경우다. 서울 삼청동의 공기를 가득 채운 가을 한낮의 볕과 바람만큼이나 유쾌한 인터뷰는 그가 호연한 영화 〈완득이>와 〈깡철이>에서 보여준 건강한 낙천성을 닮아 있었다.

“‘〈완득이〉와 〈깡철이〉는 완전히 다른 영화고, 제가 연기한 인물도 다른 유형이지만, 둘 모두 비슷한 웃음을 품고 있죠. 저도 비슷해요. 항상 웃어요. 아주 긍정적이죠. 대신 진짜 긍정이요. 바보 같은 긍정이 아니라.”



10월 2일 개봉한 영화 〈깡철이〉는 항구 노동자로 일하는 부산 청년 ‘강철’(유아인 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진 것은 몸뚱이 하나뿐이지만 치매로 정신줄 놓고 사는 병든 어머니(김해숙 분)를 극진히 모시며 씩씩하게 살아간다. 세상은 한 번도 그에게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강철’은 늘 웃으며 산다. 하지만 세상이 ‘깡패’였다. 어머니 수술비용과 친구의 빚 때문에 폭력조직의 음모에 휘말려 들어간다. 청춘, 조폭, 친구, 부산 사투리, 그리고 어머니. 복고적인 감성이 진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그 중심에 배우 유아인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는 지금 가장 ‘핫’한 청춘의 아이콘이자 새 세대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자칫 ‘올드’해 보이는 서사와 새 세대 ‘아이콘’의 만남. 〈깡철이〉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제가 작품을 선택하면서 늘 그런 식으로 퍼즐을 맞춰왔습니다. 병 걸린 엄마와 병수발하는 아들. 얼마나 뻔한 설정입니까? 하지만 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모자관계를 보여주려 했죠. 〈완득이〉에서 사제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깡철이〉의 이야기 소재는 전형적이었지만 전체 구조는 신선했어요.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 전 〈완득이〉에서 유아인이 맡은 완득이 또한 불행하기로는 깡철이 못지않았다. 척추장애인인 아버지와 사는 가난한 고교생. 급식이 나오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비관스러운 현실. 필리핀 이주민인 어머니는 어디로 도망갔는지 알 수 없는 다문화 가정의 아들. “세상이 언제 우리 편이었던 적이 있었냐”는 깡철의 대사는 완득이에게도 더 없이 들어맞는다. 여기에 선생님 동주는 집요하게 완득이를 괴롭히는 ‘나쁜 선생님’이다. 하지만 완득은 비관하기보다는 긍정하고, 분노하기보다는 차라리 웃어버리는 쪽을 택한다. 담임인 동주 또한 섣부른 연민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완득이를 대한다. 유아인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 그가 연기한 인물들을 닮아 있다. 그는 대구가 고향으로, 고교 1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무작정 가출해 상경했다.



“살아내야 하는 고통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절망의 시간이었죠. 제 질문에 호의적인 대답을 주는 세상이 아니었고, 열일곱 살 이후 혼자 살면서 용돈 한 푼 안 받고 가난을 끌어안고 살았어요. 인생의 어느 한 시기는 전체 삶을 뒤덮을 만큼 강력한데, 제 지난 시절이 그랬던 것 같아요. 가난이 가장 힘들었죠. 돈이 사람을 가장 절박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도 과거는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감상에 젖어 과거를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보게 할 수 있는 특권이나 허세가 허락되니 다행이죠. 하하.”

고교 중퇴(지금은 단국대 재학 중) 후에 대해선 “누가 처음부터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을까요? 그저 당시엔 유명해지고 싶었고,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라는 것이 유아인의 솔직한 말이다. 그 첫 결과물이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이었고 나름 유명세도 얻었다. 하지만 학교를 떠났던 것과 같은 이유로 촬영장이 싫어졌다.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감독님이 싫었다. 어린 나이에 정치적이 돼 감독님 어깨 주무르고 있는 다른 친구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내가 왜 여기 있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래서 출연작을 몇 편 예정해놓고도 상경했을 때처럼 무작정 고향행 기차에 올랐다. 그렇게 잠적했다가 다시 재미있게 살고, 재미있는 배우가 될 마음이 들 때쯤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이후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좋지 아니한가〉 〈서양골동품양과자점 앤티크〉, 드라마 〈최강칠우〉를 거쳐 〈성균관스캔들〉에선 극중 인물을 빗댄 ‘걸오앓이’라는 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완득이〉는 흥행에 성공하면서 청춘스타로서 유아인의 입지를 다진 작품이었다. 동대문의 청년 옷장수가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패션디자이너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드라마 〈패션왕〉과 김태희와 호흡을 맞춘 사극 〈장옥정, 사랑에 살다〉 등 큰 작품으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의 지금을 “성공한 20대”라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누가 보더라도 안 그럴까. 그는 말뿐인 겸손 대신 책임감을 앞세운다.

“저는 저 자신을 일을 하고 돈을 버는 데만 묶어두고 싶지 않습니다. 대중에 노출된 유명인으로서 영향력에 대해 늘 신중하고 막중하게 생각해요. 연예인이 정치인보다 친숙하죠. 연기로, 유명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책임감이 듭니다. 제가 글이나 트위터로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사실은 다른 이들에 비해 제가 트위터로 올리는 글은 얼마 되지 않지만, 빠르게 퍼져나가고 영향도 큽니다. 아티스트로서 시대정신과 폭넓은 시각을 갖고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아인이 말하는 ‘현명한 긍정’엔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발언이 포함돼 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때마다 굵직한 사회 이슈와 사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혀왔다. 예를 들어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후 트위터를 통해 “누가 되었느냐보다는 누가 참여해서 무엇을 증명했는지가 중요하다. 기쁜 밤이다. 내가 나의 세대에 속함에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우리를 지배하게 하지 말고 우리를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보통의 20대 청년이 아는 민주주의와 참정의 기본이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너무 튀는 것이 아니냐, 네가 정치전문가도 아니지 않느냐는 비난도 있을 만하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은 단호하고 뚜렷하다.

“사실 국민의 삶에 가장 밀접한 것은 연예계 소식이 아니라 정치 얘기가 아닐까요? 정치는 특별히 전문가가 있는 별개의 분야가 아니라 우리 삶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스물일곱의 패기만만한 청년 배우. 그의 말이 틀리든 맞든, 유아인의 시각은 탄탄하고 어휘는 또렷하다. 또래 배우들에겐 보기 드문 미덕이다. 그 원천은 무엇일까.

“책을 많이 보진 않아요. 인터넷과 신문을 많이 보고, 다큐멘터리 정도가 제 정보의 원천이랄까요.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필터’가 아닐까요?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걸러서 자기 언어로 내보내느냐 말이죠. 20대 중반이라면 필터가 틀이 잡히고 구체화된 때가 아닌가 싶어요.”

그는 2년여 전 배우로서의 포부를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세대의 상을 제시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지만, 한편으로 인간 엄홍식이 다만 배우일 뿐인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날선 글도 쓰고 싶고, 제 또래의 돈 못 버는 예술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또 다른 창작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다른 언어로 꿈을 말한다.

“아웃사이더, 비주류의 존재를 끌고 들어와 메인 스트림의 존재로 만들고 싶은 욕망과 주류 시스템의 한가운데에서 저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희망 모두를 갖고 있습니다. 커머셜하게(상업적으로) 팔리는 엔터테이너이면서 동시에 배우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습니다.”
  •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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