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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주, 작품과 함께 성장하는
스물여섯 여배우

영화 출연작을 위한 인터뷰를 명분으로 한효주(26)를 세 번 만났다. 〈오직 그대만〉이 개봉했던 2011년 10월과 〈반창꼬〉의 상영을 앞두고 있던 2012년 12월, 그리고 한여름 무더위가 엄습한 지난 6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약 2년 사이 가을, 겨울, 여름마다 계절을 바꾸어 만난 셈이다. 최근의 만남은 영화 〈감시자들〉을 위해서였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기간 중(〈오직 그대만〉은 개막작이었다) 부산에서 처음 만난 스물네 살의 한효주는 요샛말로 ‘까칠했다’. 낯가리는 사람 특유의 어색하고 민망한 공기가 끝내 꼬리를 남겼고, 오고 가는 말은 대체로 길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당시 다른 매체들과 이어진 인터뷰 분위기도 대략 엇비슷했던 모양이다. 조연으로 출연한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건너뛰고 1년여 만에 만난 〈반창꼬〉 때에는 인터뷰가 썩 유쾌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은 편했다. 한효주는 까칠했던 예전 한 때를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였다”고 표현했다.

“완전히 질풍노도의 시기였죠. 모르게 앓고 지나가는 감기처럼 제가 10대에는 사춘기를 심하게 겪지 않았는데, 스무 살 넘어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온 듯했어요. 세상에 괜히 화가 나고 반항하고 싶었죠. ‘왜?’라는 의문사를 입에 붙이고 살았으니 주위 사람들이 어지간히 불편했을 거예요. 그 전까지만 해도 시키는 일을 열심히 따랐는데, 언제부터인가 삐딱하게 ‘내가 왜 해야 되느냐’고 했으니 말이에요.”


한효주가 얼굴을 똑바로 들고 유난히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면 상대는 그 누구라도 주춤하고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사춘기의 고개를 넘은 것은 작품을 통해서였다. 〈반창꼬〉라는 작품은 그전까지 주로 TV와 영화의 멜로 드라마에서 주로 여성적이고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인물을 연기했던 한효주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절제하기보다는 발산하는 연기를 즐긴 영화이기도 했다.

“〈반창꼬〉의 고미수라는 인물은 어떤 여배우든 탐낼 만했죠. 하지만 내가 이렇게 성격이 방방 뜨는 인물을 연기할 수 있을까, 톤이 높은 여자를 보여줄 수 있을까 부담감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어색해서 촬영할 때 ‘컷’이 나오자마자 매번 감독님께 ‘너무 오버(액션)인 것 같다’고 말씀드렸죠. 하지만 감독은 계속 ‘더 해도 된다’고 했어요. 초반에는 서로 옥신각신했죠. 하지만 의외로 잘 맞더라고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을 연기하니까, 내 성격도 밝아지고 통쾌한 느낌도 있었어요. 갈수록 연기한다는 생각보다는 자유롭게 논다는 느낌이 생기더라고요.”

최근작인 〈감시자들〉은 한층 성숙하고 여유로워진 스물여섯 살의 한효주를 더 즐겁고 유쾌하게 만든 영화였다.

“황반장(설경구 분)에게 ‘에이, 거짓말~’이라고 대꾸하는 대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대사가 너무 여성스럽게 들려서 손발이 오글거려 못하겠는 거예요. ‘개뻥!’이라고 바꿨죠.”


〈감시자들〉엔 한참 고참인 선배의 득의양양한 무용담에 ‘개뻥!’(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이라는 뜻의 속어)이라고 일갈하는 당찬 한효주가 있는가 하면, ‘출동’을 명받고 “다녀오겠슴당!”이라며 애교 섞인 인사를 날리는 ‘귀요미’ 막내도 있다. 한효주는 시나리오에 분명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써 있는 대사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바꿨다. 짧은 한마디지만, 뉘앙스의 변화가 평범한 장면을 극중 인물의 또 다른 성격을 드러내는 순간으로 만들어냈다. 시나리오대로의 ‘테이크1’(현장에서 한 번의 촬영분)과 한효주 버전의 ‘테이크2’ 중 감독은 한효주가 즉흥적으로 변주한 두 번째 촬영분을 영화에 썼다. 이렇듯 영화 〈감시자들〉은 한효주가 가진 다양한 매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돌이켜보면 전작에서도 그랬다. 한효주는 미처 몰랐던 자신의 숨겨진 매력조차 카메라 앞에서 꺼내 활용할 줄 아는, 본능적으로 영리한 배우였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왕비는 구중궁궐 같은 내면에 자신을 꼭꼭 숨기는 듯 싶다가도 돌아보면 어느새 한 남자(이병헌 분)에 대한 사랑을 얼굴에 담아내고 있었다. 〈반창꼬〉에서 남자(고수 분)에게 거침없이 ‘들이대는’ 왈가닥 여의사는 찧고 까불고 발산하는 선머슴 같은 인물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툰 사랑과 연민을 수줍어 하는 여성이 있었다.

세 번째 만남에서의 한효주는 ‘개뻥’의 당돌함과 ‘다녀오겠슴당’의 애교와 20대 중반 배우의 패기와 연예계 데뷔 10년 차의 여유, 진지함이 모두 어울렸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갔다.

“원래 순서상으로는 〈감시자들〉이 〈광해〉와 〈반창꼬〉보다 먼저 출연을 결정했던 작품이에요. 원작(홍콩영화 〈천공의 눈〉)과 여성 캐릭터가 매력적이었거든요. 처음 제안 받은 시나리오에선 제가 맡은 ‘하윤주’가 훨씬 밝고 덤벙대는 인물이었는데, 저는 전형적인 ‘신참’ 캐릭터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어요. 좀 더 시크(다소 냉정하며 차갑게 느껴지지만 멋지고 세련된)한 인물, 말도 없지만 강인한 여성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결과적으로는 차갑고 낯가리는 일면도 있지만 인간적이고 털털한 성격도 가진 훨씬 입체적인 캐릭터가 됐죠. 촬영할 때는 좀 더 냉정한 톤과 애교 있는 억양의 대사를 함께 찍어서 감독님들에게 ‘알아서 골라 쓰세요!’라고 했어요.”


한효주가 연기한 ‘하윤주’는 경찰 내 특수조직인 감시반에 투입된 신참 여경이다. 베테랑이자 감시반 지휘자인 황반장과 한 조를 이룬다. 감시반의 철칙은 “모든 임무는 감시에서 시작해 감시로 끝난다” “허가된 임무 외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노출된 요원은 즉시 임무에서 제외된다”로 이루어져 있다. 하윤주는 아직 감시반원보다는 경찰로서의 사명감에 투철하고, 연민이나 정의감 같은 인간적인 감정에 곧잘 빠지지만 무엇보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작전에 대한 이해도가 탁월한 인물. 황반장과 하윤주가 주축이 된 감시반이 한 치의 틈도 허락치 않는 용의주도한 범죄조직 리더 제임스(정우성 분)와 대결한다.

영화는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의 쫓고 쫓기는 과정을 긴박하게 그려가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하윤주가 동료들의 희생 속에서 인간으로서, 경찰로서 한 뼘 성장해가는 드라마다. 영화 속에서 보여준 인물은 실제 한효주와 ‘화학적인 결합물’이기도 하다.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가 마침 자칭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촬영에 들어갈 때는 질풍노도의 끝자락에 있던 때였다. 그래서 하윤주라는 극중 인물을 마냥 밝은 캐릭터로만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편에선 〈반창꼬〉를 통해서 풀리고 자유로워진 감성과 유쾌한 행복감도 인물에 더해졌다.

“신인시절에는 ‘빨아들이기’에 정신없었다면, 이제 작품과 그 속의 다양한 인물이 내 안에 쌓이면서 한층 여유와 재미를 느껴요.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할 만큼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그리고 예전에는 하고 싶은 말과 일도 속으로 삭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담아두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나를 위해서도 좋고, 남을 위해서도 좋다, 사회를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해요. 하하.”


질풍노도 시기 지나 지금 가장 행복해요

버나드 쇼가 “젊음을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아깝다”고 했다지만, 20대 중반에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는 청춘이 어디 흔할까? 한효주는 잘 알려진 대로 고교 재학 중 우연히 응모한 ‘미스빙그레선발대회’에서 입상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내딛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5년 드라마 〈봄의 왈츠〉 주연을 맡으며 신데렐라처럼 연예계 스포트라이트 안으로 들어왔고, 독립영화와 TV 드라마에서 범상치 않은 연기력과 이미지를 보여줬다. 영화 〈오직 그대만〉에서 시각장애 여성 역할과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역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 〈반창꼬〉의 캐스팅 비화도 재미있다. 출연 계기는 2000년대 후반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연했던 디지털 카메라 CF 속 ‘섹시 댄스’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섹시 댄스’가 ‘섹시해서’가 아니라 ‘섹시하게 춤추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감독님이 CF를 보고 캐스팅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더군요. 제가 처음 출연한 CF였는데, 열심히는 했지만 영 어색해서 아직도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죠. 감독님이 ‘저 친구는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지만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구나, 저 친구를 캐스팅하면 진짜 열심히 하겠구나’라고 보셨다네요.”


한효주는 최근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제안으로 ‘동구리’라는 캐릭터로 유명한 현대미술작가 권기수와 일종의 ‘콜라보레이션’(협업)을 하기로 했다. 권기수 작가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한효주가 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한효주는 “태블릿PC의 어플로 작업 중”이라고 했다.

“외국 여행 가면 미술관을 꼭 찾아가는 편이에요. 국내에서도 토탈미술관이나 성북동에 있는 갤러리를 자주 찾아요. 추상화 중에서도 피카소보다는 색감이 ‘쨍’하지 않고, 정서가 묻어나는, 여백 있는 작품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나 마크 로스코의 회화요.”

지난해엔 음반 및 공연에도 참여했다. 브라운아이드소울의 음반에 ‘피처링’(다른 아티스트나 밴드의 노래에 일부분 가창이나 연주를 맡아 참여하는 것)을 했고,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와 함께 인터넷 생중계 공연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대중음악 축제인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 홍보대사인 민트 레이디를 맡은 것이 인연이 됐다. 원래 인디 밴드의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다.

“다양한 영역과의 콜라보레이션에 관심이 많아요. 음악・미술・패션 같은 연기 외의 부문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만나는 것을 좋아해요. 기회가 되고 제안이 온다면 얼마든지 해보고 싶어요. 작가들이 어떤 감성과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저에겐 얻을 것도 많고 자극과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색감처럼, 한효주는 결코 화려한 원색으로 다른 요소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다양한 채색을 실험하며 다른 컬러와 조화롭게 어울리는 배우로서 어느새 한국영화와 TV 드라마에서 성큼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키웠다. 그녀의 스물여섯 살은 안단테에서 좀 더 빠르고 벅찬 알레그로로 향해 가는 길목이다. 그녀가 보여줄 화려한 독주, ‘카덴차’가 궁금하다.
  • 2013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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