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체조 선수 손연재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 ‘아시아 최고’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다

글 : 박소영 TOPCLASS 기자  / 사진 : 조선DB 

아시아인에게는 불모지와도 같은 스포츠 종목이 있다. 농구·핸드볼·피겨처럼 타고난 신체조건이 중요한 변수가 되는 종목들이 그렇다. 리듬체조도 그중 하나다. 신체의 조화를 중시하는 리듬체조는 팔다리가 긴 체형을 가진 동유럽 선수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고, ‘황색열풍’의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19·연세대)의 도전은 그래서 한국인만이 아닌 아시아인을 대표한다. 그는 40억 아시아인을 대표해 세계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전 국민의 관심이 손연재에게 쏠렸다. 한국에서 그는 이미 체조요정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세계무대에서 얼마나 통할지가 관심사였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섞여 있었다. 그래서 그가 연기 중 곤봉을 떨어뜨렸을 때 관중들은 묘한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손연재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무사히 경기를 마쳤고 런던올림픽에서 당당히 최종 5위에 올랐다. 역대 올림픽 리듬체조 종목에서 아시아 선수가 받은 최고 성적이었다. 런던올림픽을 통해 손연재는 세계 체조계의 샛별로 부상했다.

하지만 손연재는 샛별로만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 체조계에서 가장 환하게 빛나는 별이 되는 것이 그의 최종목표다. 2013년 상반기 손연재의 행보를 보면 그런 그의 소망이 헛된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포르투갈 리스본 월드컵, 이탈리아 페사로 월드컵, 불가리아 소피아 월드컵, 벨라루스 민스크 월드컵까지, 이 작은 요정의 행진은 멈출 줄 몰랐다. 민스크 월드컵에서 손연재는 후프와 곤봉 종목에서 사상 최초로 은메달 2개를 따내는 쾌거를 거두었다. 5월 민스크 월드컵 당시 손연재의 컨디션은 완벽하지 않았다. 1월에 부상을 입은 발가락이 채 낫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훌륭한 경기를 보여줬다. 그는 6월 5~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 ‘아시아 최고’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대회 직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훈련 중인 손연재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골절은 거의 다 나았어요. 가끔 통증이 있지만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에요. 경기 당시 몸 상태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연이은 월드컵 시리즈 참가로 피로가 많이 쌓여 있었거든요. 그런데 마음을 비우고 경기에 임하니 다른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다른 종목에 비해 비교적 약체였던 곤봉도 지속적인 반복 훈련을 통해 감을 끌어올렸습니다.”

리듬체조의 ‘성지’와 같은 모스크바에서 손연재의 시계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바쁘게 돌아간다. 손연재는 매일 오전 7시에 기상해 오전, 오후 훈련을 한다. 야간 운동을 할 때도 있다. 길지 않은 자유 시간, 그는 무엇을 하면서 보낼까.

“한국을 떠나 타지에서 혼자 훈련하려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해요. 그런 시간들을 잘 이겨냈기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훈련이 끝난 뒤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주로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을 보충하죠.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 기분전환이 돼요.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코치 선생님이랑 발레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해요. 아, 제가 올해 대학에 입학했잖아요. 아직 학기 중이라 교수님들이 내주시는 과제도 틈틈이 하고 있어요.”

훈련장을 함께 사용하는 현지 동료들과의 사이도 돈독하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서로 격려해주는 사이가 됐어요. 나라를 떠나서 동료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경기 중 실수하면 엄청 당황하지만, 이 역시 경기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어요

대중은 체조요정 손연재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한다. 2011년에는 ‘손연재 식단’이 포털사이트에서 화제가 됐다. 식단은 샐러드와 과일, 닭가슴살 등 저열량 식품으로만 구성돼 있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을 때는 저녁을 굶기도 한다. 지난해 7월 캐나다의 허프포스트는 이를 두고 “손연재가 ‘익스트림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리듬체조는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종목이에요. 보디라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체중 관리는 필수예요. 배고픔은 리듬체조 선수라면 당연히 참아내야 하는 부분이죠. 꼭 필요할 때는 고기도 먹어요. 물론 많이는 못 먹지만요. 시즌이 끝나면 케이크랑 고기를 마음껏 먹고 싶어요.”


이런 철저한 자기관리는 체조선수 손연재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그렇다면 손연재가 생각하는 체조선수로서의 자신의 강점은 뭘까. 그는 “난도 높은 동작을 자신 있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체조경기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동양적 외모의 매력”을 꼽았다. 동양적 외모는 사실 리듬체조에 있어서는 마이너스 요소였다. 하지만 손연재는 이를 강점으로 승화시켰다. 특유의 앙증맞은 표정 연기와 작은 체구를 활용한 몸동작은 전 세계 체조 팬들에게 손연재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실제로 지난해 런던올림픽 기간 중 국제체조연맹(FIG) 홈페이지에는 손연재의 사진이 톱으로 걸렸고, 손연재가 경기를 마쳤을 때 가장 큰 환호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조 윌리엄스는 “손연재의 곤봉 프로그램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 그는 여타의 선수들과는 다른 연기를 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국제대회에서 손연재는 ‘개성적인 연기를 펼친다’는 호평을 받는다.

체조 팬들의 반응을 실감하는지 그에게 물었다.

“표현력과 예술성을 강조하는 룰이 생겨 연기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팬들도 좋게 봐주시는 듯해요. 표정 연기를 따로 연습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해외에서 시합할 때 가끔 태극기를 들고 응원해주시는 외국인 팬들도 있는데, 아직도 신기하기만 해요.”

회전이나 점프 등 고난도 동작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것도 그의 강점 중 하나. 모스크바 훈련지에서 러시아 대표팀과 함께 혹독한 훈련을 소화한 덕이다. 페사로 월드컵 리본에서 손연재가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17회전 푸에테 피벗(한 다리는 몸을 지탱하고 다른 다리는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회전 동작) 연기를 선보였을 때 세계는 환호했다.

손연재는 마인드컨트롤을 잘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리본을 떨어뜨리거나 곤봉을 놓쳐도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강심장 훈련’이라도 받는 걸까.

“그렇지는 않아요. 속으로는 엄청 당황하죠. 하지만 실수 또한 경기의 일부이기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고 연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최근 열린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그의 목표는 메달권이었다.

“물론 메달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당일 컨디션에 따라서 메달 색깔이 달라질 것 같아요. 컨디션을 잘 유지해서 최고 연기를 하고 싶어요. 이제는 바뀐 규정에 따른 새 프로그램에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메달권이 목표라던 그는 개인 종합・후프・곤봉에서 3개의 금메달, 리본과 단체전 은메달 등 총 5개의 메달을 걸었다. 대회가 끝난후 손연재는 휴식 없이 곧바로 6월 15~16일 열리는 갈라쇼 준비에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이런 빡빡한 일정이 훈련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손연재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갈라쇼 역시 리듬체조 훈련의 일종이에요. 보통의 훈련과 100% 같은 효과를 낼 수는 없지만요. 그럼에도 갈라쇼에 참여하는 이유는 그동안 리듬체조에 관심 없던 분들에게 리듬체조를 알릴 수 있고, 조금이나마 리듬체조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번 갈라쇼는 옴니버스 형식의 ‘종합예술축제’가 될 예정이다. 뮤지컬・힙합・발라드와 리듬체조를 접목한 콜라보레이션 무대도 선보인다.

“최고 선수와 최고 퍼포먼스가 준비돼 있습니다. 색다른 시도로 관중의 이목을 끌 생각이에요. 저와 같은 훈련장에서 훈련하는 러시아 대표팀이 갈라쇼에 출연해서 특히 기대가 커요. 호흡이 잘 맞을 것 같아요. 타지 생활을 하는 동안 제게 많은 도움을 준 룸메이트인 루마니아의 알렉산드라 피스쿠페스쿠 선수도 출연하고요. 그 친구들이 한국에 오면 많이 챙겨주고 싶어요.”

계속된 상승세에 국내외 팬들의 기대도 커져가고 있다. 8월 말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손연재가 얼마만큼 기량을 발휘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나하나 충실히 준비해나가고 있습니다.”

손연재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행복한 선수로 은퇴하는 게 꿈이에요. ‘아, 내가 리듬체조를 하길 정말 잘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체조는 제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존재이자,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원동력이에요.”
  • 2013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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