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핀 꽃 류승룡, 테스토스테론 뿜는 ‘귀요미’

‘용구’(〈7번방의 선물〉 주인공)가 류승룡인지, 류승룡이 ‘용구’인지 모르겠다. ‘성기’(〈내 아내의 모든 것〉)가 류승룡인지, 류승룡이 ‘성기’인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보면 어느새 곁에는 용의주도한 영의정 허균(〈광해:왕이 된 남자〉)이 앉아 있는 것 같다가도 다시 돌아보면 맹렬한 눈빛과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이 압도적인 ‘쥬신타’(〈최종병기 활〉)가 돌아와 있다. 영화배우 류승룡(43)을 실제로 만나보면 그가 연기했던 작품 속 인물들을 다 불러내 변신을 거듭하며 1인극이라도 벌이는 것 같다. 멀쩡한 표정으로 있다가 짐짓 아이의 표정을 흉내내며 혀 짧은 소리로 “안녀하세여, 용구에여”라고 하다가, 금방 끈적하고 능글맞은 목소리로 짓궂은 농담을 던진다. 정색한 얼굴로 객쩍은 수작이나 할 때는 영락없이 느끼하기 이를 데 없는 바람둥이(〈내 아내의 모든 것〉)다. ‘꽃보다 류승룡’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40대 아저씨에게 젊은 여성 팬들이 열광한다. 내로라하는 20대 꽃미남 청춘스타들과 에너지 끓어 넘치는 30대 배우들을 제치고, 2013년 초, 류승룡이 한국 영화계 ‘대세’로 자리를 굳혔다. 한석규-송강호-김윤석으로 이어지던 한국영화 ‘흥행대권’의 바통이 바야흐로 류승룡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는 형세다.
지난 1월 23일 개봉한 류승룡 주연의 영화 〈7번방의 선물〉이 한 달여 만에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10월 이병헌과 공연한 〈광해: 왕이 된 남자〉의 1000만 돌파 열기가 채 식지 않았는데 불과 넉 달 만에 다시 한국영화 흥행사의 최고봉을 등정했다. 지난 2월 중순 〈7번방의 선물〉이 관객 수 700만 명을 찍고 1000만 명을 향해 갈 무렵, 류승룡은 흥행을 기념한 자리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던 제작사와 감독, 극장 없는 배급사와 흥행파워 없다는 조연배우들이 뭉쳐 탄생한 영화”라며 “〈7번방의 선물〉이 사회적 약자의 시선을 말하는 것처럼 관객도 우리 영화를 같은 시선으로 따뜻하게 바라봐주신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돌이켜보면 류승룡은 꽤 오랫동안 배고픈 연극배우와 무명의 조・단역 시절을 거쳤다. 잡초처럼 버텼고, 들풀처럼 뒹굴었다. 그래도 뿌리는 모진 땅을 단단히 움켜쥐었고, 그래서 늦게 피어 올린 꽃망울은 더 화려하게 터졌다. 영화배우 류승룡(43)의 자평도 같았다. “나는 늦게 핀 꽃”이라고 했다.

“전 만추에 늦게 핀 꽃이죠. 인성도 부족하고 성격도 급한 제가 이른 봄에 폈으면 어땠을까요? 너무 일찍 피고 금방 시들어 말라 죽었을 것 같아요. 소금도 늦도록 간수를 쏙 빼내야지 쓴맛이 안 난다고 하죠. 연기하면서 저의 모난 부분들을 다듬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천만다행이죠. 20대 때 지금 같았으면 기고만장했을 수도 있어요. 연기는 뒷전이고, 좋은 차나 타고 다니는 식으로요.”

류승룡의 ‘대기만성’을 밝은 눈으로 일찍 헤아려준 스승도 있다.

“대학(서울예대) 은사이신 김효경 교수님께서 재학 시절 ‘너는 늦게 빛을 볼 것’이라고 하셨죠. 대기만성형이라고. 아마 20대 시절부터 지금 얼굴이었으니까, 나이가 많아져야 맡을 수 있는 배역의 폭이 커질 것이라는 말씀이셨겠죠.”


10여 년간 연극무대 서며 잡부, 세차, 야식배달 등 다양한 부업

류승룡은 대학 졸업 후 1996년부터 연극을 했고 10여 년 이상을 대학로에서 지냈다. 정극부터 공연이라면 안 해본 장르가 없을 정도다. 뮤지컬, 택견, 한국무용, 성악, 무술, 탭댄스, 재즈댄스 등 모든 형태의 무대를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배우 인생에 좋은 토양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무대에 서는 대가만으로 살아가기엔 너무 빠듯했다. 장르만큼이나 ‘부업’ 목록도 화려하다. 생계는 공연 못지않은 분투였다. 공사현장의 일용 노동직부터 아스팔트나 인테리어 작업의 잡부, 세차, 야식배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다가 만난 게 1998년 〈난타〉. 1기 멤버로 5년간 신나게 두드렸다. 그런데 문득 겁이 났다. ‘넌버벌 퍼포먼스’에 너무 익숙해져 말문이 막힐까 두려웠다. 그는 서울예대 1년 선배인 장진 감독을 찾아갔다.

연극 〈웰컴 투 동막골〉 〈택시 드리벌〉 등 장진 감독의 연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고, 단편영화 〈소나기는 그쳤나요〉와 〈고마운 사람〉에 출연했다. 〈아는 여자〉의 단역을 거쳐 〈박수 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 〈열혈남아〉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영화팬들의 눈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으로는 〈황진이〉와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황진이〉에서 사랑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도 그것을 탐하는, 권력 지향적이면서도 허무주의적 분위기가 짙은 ‘희열’은 류승룡의 배우로서의 매력을 극대화시킨 인물이었다. 드라마 〈별순검〉과 〈바람의 화원〉을 통해 TV 시청자들의 눈에도 들어왔다. 하지만 불과 6~7년 전인 〈황진이〉와 〈거룩한 계보〉 때까지만 해도 촬영이 없을 때는 과수원에서 농약을 치고 세차장에서 걸레를 잡는 등 부업을 해야 했다.

“‘멀티’ 배우가 되는 게 제 꿈이에요.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영화・드라마・뮤지컬・ 연극을 다 아우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전격 Z작전〉의 데이비드 핫셀호프가 하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봤는데 대단하더라고요. 저도 성악 훈련을 더 받아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 같은 배역으로 공연도 해보고 싶습니다.”

류승룡은 잘 알려진 대로, 팬들이 다시 한 번 눈을 씻고 본 대로 〈광해〉에서 공연한 이병헌과 동갑이다. 차승원・황정민・김수로・유해진・윤제문・박희순・

이범수・박원상・정준호・이성재와도 같은 ‘70년생 개띠’다. 동갑내기 동료들에게 쏟아지는 갈채와 스포트라이트를 지켜보아야만 했던 무명 시절, 류승룡은 특유의 오기와 낙관주의로 버티며 가장 늦지만 가장 높은 정상에 도달했다. 동갑내기인 차승원과는 잊지 못할 인연도 있다. 차승원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6년이었다. 같은 나이였지만 류승룡은 모든 면에서 차승원에 압도됐다. 일단 류승룡(175cm)이 한참을 올려 쳐다봐야 하는 188cm의 큰 키가 주는 심리적 위압감이 컸다. 영화경력도 비할 바 없었다. 류승룡은 장편에 갓 데뷔했고, 차승원은 당시 10년차였다. 차승원은 첫 아들이 고등학생이었고, 서른세 살에 ‘늦장가’를 든 류승룡의 맏이는 그때 갓 돌이었다. 차승원은 매니저가 운전해주는 고급 밴을 타고 촬영장에 나왔지만, 류승룡은 50만원짜리 자기 소유 경차를 손수 몰고 나왔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내심 비교가 되고 면면이 주눅들 수밖에 없는 게 인지상정. 류승룡은 “연극만 하던 사람에겐 가혹한 데뷔식이었다”며 웃었다. 그 (장편) 데뷔작이 〈박수 칠 때 떠나라〉였다. 그리고 3년 후 류승룡은 다시 한 번 차승원을 만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년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류승룡은 이때 비로소 차승원과 극중 ‘맞짱’을 뜬다. 영화 〈시크릿〉이었다.


차기작에서는 이순신과 맞서는 일본의 해적왕

<광해>의 허균,
류승룡은 최근 2~3년간 배우로서 ‘아우토반’을 달려왔다. 주・조연으로 활약한 〈평양성〉(171만 명), 〈아이들〉(186만 명), 〈고지전〉(294만 명), 〈최종병기 활〉(747만 명), 〈내 아내의 모든 것〉(459만 명), 〈광해: 왕이 된 남자〉(1231만 명) 등에서 점입가경, 욱일승천의 기세를 보였다. 흥행과 함께 연기에 대한 비평적, 대중적 찬사도 잇따랐다. 그리고 〈7번방의 선물〉은 드디어 첫 단독 주연작이었다. 이 영화는 여섯 살쯤에 지능이 멈췄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맑고 순수한 심성을 가진 중년 남자가 아동 성폭행 및 살인범으로 몰려 어린 딸과 가슴 아픈 이별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코믹 휴먼 드라마다. 대중은 류승룡이 순진한 눈과 처연한 눈물로 보여준 ‘아빠의 신파’에 열광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아빠가 어린 딸을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는 경제불황으로 고통받고, 권력에 상처받은 대중을 위로했고, 치유했다.

“극악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도 제 표정에 ‘강아지 눈’이 있었다네요. 그래서 저에게 영화 출연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는 바로 응낙했죠.”

〈7번방의 선물〉의 이환경 감독은 류승룡이 연기한 〈시크릿〉 속 냉혈한인 조폭 두목, 〈열혈남아〉 속 거친 깡패에게서조차 ‘강아지 눈’을 보았다며 “당신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천진함이 깃들어 있다”고 〈7번방의 선물〉을 제안했다. 잴 것 없이 응낙했지만 영화에서 선악을 넘나들고, 주・조연을 오가며 늘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을 보여줬던 류승룡에겐 딸밖에 모르는 ‘바보아빠’ 역할은 ‘도전’이었다. 그의 영화경력에서 이렇듯 ‘착한 영화’도 드물었다. “배우로서 류승룡에 대한 고정관념과 제가 잘 해오던 것에서 안주하고픈 마음을 버려야 했다”고 말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기,
“망망대해에 버려진 기분이랄까. 제 짧은 지식과 연륜, 경험으로만 한다면 흉내내기에만 그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적장애인이 대개 과장되고 희화화돼 표현되기 일쑤죠. 그래서 롤모델을 찾았습니다. 일산의 빵공장에서 일하시던 분과 나흘간 하루 4시간씩 붙어 지내며 어투와 표정, 심성, 태도 등을 배웠습니다.”

〈7번방의 선물〉의 주연을 다른 배우가 했다면 어땠을까? 연기력을 떠나 악랄했던 깡패나 카리스마 넘치는 형사, 여심을 쥐락펴락 능수능란한 바람둥이, 대륙의 기개가 드높은 만주족의 장수, 궁중 속의 근엄한 영의정을 연기했던 배우의 파격과 배신을 보는 재미는 영화가 주지 못했을 것이다. 1000만을 일군 바탕에서 류승룡의 힘이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는 육중한 활로 액션영화의 과녁을 꿰뚫었고, 달콤한 혀로 여심을 녹였으며, 카리스마 깃든 저음의 목소리로 난세의 조정을 휘어잡았고, 순정의 바보연기로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이미 그는 그가 꿈꿨던 ‘만능 배우’가 돼가고 있다.

“연기가 좋아서 하다 보니 배우가 된 거죠. 배우가 되기 위해서 연기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상을 받을 작품만 선택하는 배우도 있고요. 연기 이론가인 스타니슬라브스키에게 제자가 연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시간엄수라고 했다고 합니다. 모든 게 약속에서 출발하죠. 동료 배우들 간의 약속이 팀워크를 이루죠. 연기는 관객들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이순재 선생님이나 강부자 선생님 같은 어르신들은 배우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고 말씀하시는데, 이제 그 뜻을 좀 알 듯해요. 연기란 자기를 갈고닦고 수신・수양해서 인생을 배나오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7번방의 선물>의 용구.
그가 한 약속 중에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동반자와의 약속, ‘결혼’이다. 류승룡을 몇 번 만났지만, 그때마다 꼭 앞세우는 것이 있다. 아내 자랑이다. 연극이며 영화며 부업까지 분투 속에 살았던 무명시절, 보증금 1000만원짜리 전세 옥탑방에 살 때 오직 자신만을 보고 결혼해준 아내가 더없이 소중하다.

“지금 제가 미혼이고 결혼상대자를 구한다면 원석을 못 가려낼 것 같아요. 상대가 오직 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가진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아무것도 없을 때 만나서 ‘당신은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워준 아내가 고맙죠.”

‘배우의 가족’은 배우만큼이나 특별한 눈으로 작품을 본다. 류승룡은 무명의 연극배우 시절 5년간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멤버로 무대에 섰다. 그때 부모님은 공연을 보자마자 때 아닌 ‘눈물바람’이셨다. “우리 아들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며 말이다. 류승룡은 “〈난타〉 보고 운 관객은 우리 부모님밖에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얼마 전 만난 류승룡은 일흔 넘으신 아버지께 받았다며 장문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여줬다. 70대의 아버지가 40대의 아들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보낸다는 문자에는 다정함이 넘친다. 늘 끝에는 “사랑해, 아들”과 하트 이모티콘이 붙어 있다. 류승룡의 ‘강아지 눈’은 다정다감한 아버지로부터 대물림했을지도 모르겠다. 류승룡의 두 아들도 아버지의 영화를 특별하게 보기는 마찬가지.

“아들 둘인데 아홉 살, 여섯 살이에요. 그런데 케이블TV에서 제 출연작만 방영하면 둘째가 대성통곡을 하는 거예요. 아빠 죽지 말라고요. 〈고지전〉 〈평양성〉 〈최종병기 활〉에서 극중 최후를 맞잖아요. 총 맞고 죽고, 칼 맞고 죽고, 활 맞고 죽고. 이번에도 제가 맞는 장면이 많아서 걱정이 많았죠. 하하.”

류승룡. 이제 그는 기록이 입증하고 한국영화계가 공인하는 최고 흥행파워의 스타배우가 됐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류승룡만 할 수 있는 연기”를 해갈 생각이다. 그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기분으로 오랫동안 긴 호흡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차기작은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과 다시 만난 사극액션 〈명량-회오리바다〉다. 이순신(최민식 분)과 대적하는 일본의 해적왕 역할을 맡았다.

사진제공 : Prain TPC
  • 2013년 04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05

201905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05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