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혜 1976년 철원 생. 서울대를 졸업하고 독일 정부 학술 교류처 장학생으로 발탁돼 칼스루에 국립음대에 입학했다. 서울대 재학시절 슈베르트 콩쿠르 우승, 일본 국제슈베르트 가곡 콩쿠르 2위(최연소 입상)와 청중상 등을 수상했다. 칼스루에 졸업 전 고음악계의 거장 필립 헤레베헤에게 발탁돼 고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바로크 음악 분야의 프리마돈나로 우뚝 섰다. 르네 야콥스, 윌리엄 크리스티, 파비오 비온디 등 고음악계 거장들의 콘서트에서 솔리스트로 활약했으며, 바흐, 헨델, 비발디, 하이든, 모차르트 등의 음악을 주요 레퍼토리로 삼아 유럽, 아시아, 미국 등의 무대에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바흐 〈b단조 미사〉, 하이든 〈천지창조〉 〈하모니 미사〉, 헨델 〈시로에〉 〈아그리피나〉, 모차르트 〈티토의 자비〉 〈돈 조반니〉 〈이도메네오〉 〈마술피리〉, 말러 〈교향곡 제4번〉 등의 음반을 냈고, 이 음반들로 그라모폰, 독일 비평가상 등 유럽 내외의 유수한 음반상을 수상했다.">

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아시아의 종달새’라 불리는 유럽 고음악계의 프리마돈나

소프라노 임선혜

임선혜
1976년 철원 생. 서울대를 졸업하고 독일 정부 학술 교류처 장학생으로 발탁돼 칼스루에 국립음대에 입학했다. 서울대 재학시절 슈베르트 콩쿠르 우승, 일본 국제슈베르트 가곡 콩쿠르 2위(최연소 입상)와 청중상 등을 수상했다. 칼스루에 졸업 전 고음악계의 거장 필립 헤레베헤에게 발탁돼 고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바로크 음악 분야의 프리마돈나로 우뚝 섰다. 르네 야콥스, 윌리엄 크리스티, 파비오 비온디 등 고음악계 거장들의 콘서트에서 솔리스트로 활약했으며, 바흐, 헨델, 비발디, 하이든, 모차르트 등의 음악을 주요 레퍼토리로 삼아 유럽, 아시아, 미국 등의 무대에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바흐 〈b단조 미사〉, 하이든 〈천지창조〉 〈하모니 미사〉, 헨델 〈시로에〉 〈아그리피나〉, 모차르트 〈티토의 자비〉 〈돈 조반니〉 〈이도메네오〉 〈마술피리〉, 말러 〈교향곡 제4번〉 등의 음반을 냈고, 이 음반들로 그라모폰, 독일 비평가상 등 유럽 내외의 유수한 음반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1월, 스위스에서 열린 <대지의 노래> 페스티벌에서 임선혜는 한국의 가곡을 불렀다. 페스티벌 10주년 기념으로 세계 각국의 유명 성악가들을 초청해 고국의 노래를 부르도록 꾸민 무대였다. 임선혜는 마지막 날 파이널 무대에 초청돼 ‘산유화’ ‘진달래꽃’ ‘아리아리랑’ ‘고풍의상’ 등을 한국어로 멋들어지게 불렀다. 프로 무대에 데뷔한 지 14년차인 ‘오페라의 여왕’ 임선혜로서도 새로운 시도였다. 앙코르 곡으로 한두 곡 부른 적은 있었지만 무대 전체를 한국 가곡으로 꾸민 것은 처음이었다. 결국 통했다. 임선혜의 유리알처럼 투명하면서도 견고한 음성, 뛰어난 곡 해석력을 바탕으로 표현하는 풍부한 감성은 유럽인의 마음을 녹였다. 임선혜의 무대가 끝나자 관중석에서 기립박수가 터졌다. 페스티벌 측에서는 “이렇게 큰 성공은 처음”이라며 임선혜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가곡 한류’의 가능성을 엿본 순간이었다.

임선혜라는 이름이 아직 낯선가. ‘아시아의 종달새’ ‘바로크음악 스페셜리스트’ ‘야콥스의 뮤즈’… 소프라노 임선혜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홍혜경・조수미・신영옥의 뒤를 잇는 세계적인 소프라노이자, 콧대 높은 유럽 무대에서 프리마돈나로서 단단한 입지를 굳힌 드문 아시아인이기도 하다. 1999년에 데뷔해 고음악계의 디바로 세계무대를 누벼왔지만 고국 무대에 처음 선 건 2006년이다. 다소 늦은 데뷔를 만회라도 하듯 그는 틈나면 부지런히 고국 무대에 오른다. 10월 중순 고양문화재단에서 제작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수잔나 역을 맡은 그를 만났다. 2009년 7월호 <톱클래스> 인터뷰 이후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간 임선혜는 ‘오페라의 여왕’답게 세계 곳곳의 무대를 누비고 다녔다. 2010년만 모차르트 오페라 다섯 편(〈이도메네오〉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 〈가짜 정원사〉)에 출연해 각각 서울, 헝가리, 독일, 유럽투어, 오스트리아 무대에 섰다. 2011년에는 음반 녹음이 많았는데, 출시한 다수의 음반이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뮌헨방송합창단과 녹음한 포레의 〈레퀴엠〉 실황 음반은 독일의 그래미상이라 불리는 에코상을 탔고, 스페인 작곡가 테라데야스의 오페라 〈세소스트리스〉와 헨델의 〈아그리피나〉 주역을 맡아 녹음한 음반 역시 음반상을 수상했다. 최근에 낸 모차르트 〈가짜 정원사〉(세르페타 역)는 출반되자마자 프랑스의 쇼크 드라 뮤직상을 받았다.

국내 무대에도 틈틈이 섰다.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 바흐 페스티벌〉에 르네 야콥스와 나란히 내한해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데 이어, 2012년에는 국내 관객과의 만남을 늘렸다. 빈 슈트라우스 페스티벌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대관령 국제음악회 무대에 섰고, 4년 전부터 이어온 명동성당 〈임선혜의 희망나눔 콘서트〉도 빠뜨리지 않았다. 10월 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대한민국국제음악제〉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일정으로 방한했는데, 11월 초까지 한국에 머물 예정이다.

3년 5개월 동안 임선혜는 확실히 더 깊어졌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은 더 그윽해졌고, 연기할 때의 표정은 더 풍부해졌다. 맑고 청아한 음성은 변함없되, 그 음성 깊숙이 단단한 심을 박아놓은 듯 안정감이 더해졌다. 무엇보다 깊어진 것은 생각이다.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 연습하는 시간을 줄이고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기획과 앞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그는, 음악에 대한 철학을 다져가고 있다. 질문마다 오랫동안 숙고해온 흔적이 역력한 대답을 내놨다.

임선혜는 ‘모차르트 오페라 스페셜리스트’다. 〈피가로의 결혼〉 수잔나 역할도 여러 번 했다. 이번에 맡은 수잔나는 2년 만인데, 이번 무대가 그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다. 국내 성악가들과 꾸리는 최초의 공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외국 배우들 팀에 끼어 있는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한국 사람들과 오페라를 하는 것은 처음이에요. 처음이라 걱정스럽기도 한데 되게 재밌어요. 좋은 사람과 함께하면 공연보다 연습이 더 재밌거든요. 특히 상대 배역인 피가로 역의 김진추 선생님은 예전부터 팬이었어요. 대학교 2학년 때 출전한 콩쿠르에서 독일 가곡을 부르는 걸 보고 팬이 됐죠. 오죽하면 김진추 선생님과 같은 학교인 한양대에 다니는 친구한테 ‘김진추씨 여자친구 있나 물어봐’ 했다니까요. 하하.”

배역 연구에 철저하기로 소문난 임선혜지만 수잔나 연기는 어렵지 않았다. 임선혜 자신의 성격이 수잔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는 “함께 기뻐하고 함께 걱정하는 면이나 재치 있는 면, 신이 많아서 방방 뜨는 면,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을 가진 면 등이 저와 너무 닮았다”며 재밌어 했다.


임선혜의 전문분야는 고음악이다. 고음악은 지나친 기교를 지양하고 바흐나 헨델・모차르트가 살았던 시대의 음악을 재현하는 음악으로, 현재 유럽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굵고 큰 음성보다 맑고 청아한 음성으로 부르는 노래가 많기 때문에 임선혜와 딱 맞다. 임선혜는 신데렐라처럼 데뷔했다. 필립 헤레베헤에게 우연히 발탁돼 다른 소프라노의 대타로 1999년에 데뷔한 이후 르네 야콥스와 열 편이 넘는 작품을 함께했다. 필립 헤레베헤와 르네 야콥스 둘 다 고음악계의 거장인데, 헤레베헤가 콘서트 분야 거장이라면, 야콥스는 오페라 분야 거장이다.

그는 자신을 ‘고음악’에만 옭아매지 않는다. 피츠버그 심포니와 말러 4번을 녹음하기도 했고, 요한 슈트라우스 <박쥐>(아델레 역),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이니올드 역), 현대 작곡가 풀랑의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콩스탕스 수녀 역),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아디나 역) 등도 소화했다.

임선혜가 콧대 높은 유럽 무대에서 인정받는 비결은 뭘까. 티 없이 맑은 고음과 빼어난 가창력도 장점이지만 무엇보다 표현력을 빼놓을 수 없다. 서양인에 비해 작은 체구가 도움이 된다. 157cm의 작은 체격으로 무대 구석구석을 날렵하게 누비며 노래하는 그를 보면 ‘아시아의 종달새’라는 별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큰 눈망울과 온몸으로 쏟아내는 천진하면서도 애교 넘치는 그의 연기에 유럽과 미주 평론가들은 ‘코트(coquette)’라는 단어를 써서 찬사를 보낸다. 표현력의 기본기는 어려서부터 다져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기 연습을 좋아해 혼자 거울을 보면서 표정 연기를 했다고 한다. 일찌감치 단련된 얼굴의 소근육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이날 그는 카메라 앞에서 수백 가지 표정연기를 선보여 탄성을 이끌어냈다. 독서력도 표현력의 탄탄한 기본기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해 잠자리에서 늘 책을 읽었고, 초등학교 때 《데미안》 《부활》 등의 고전을 읽었다고 한다. 책 욕심은 여전해 “사다 놓고 다 읽지 않은 책이 많다”며 웃었다. 사람 또한 그의 표현력에 큰 영감을 준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걸음걸이를 따라 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감정 표현 방식을 연구하기도 한다. 또 하나의 비결은 적응력이다.

“모든 음악가의 꿈은 세계무대에서 1등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1등은 끝이 아니라 프로 무대에서의 시작이죠. 아무리 프로라고 해도 무대에 서는 시간이 하루 최대 4시간이에요. 그 외에는 다른 연기자들과 어울리고 일상생활을 하죠. 이 시간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중요해요. 낯선 사람, 낯선 문화, 낯선 언어를 받아들여야 하거든요. 한국 성악가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에요. 저는 다행히도 낯선 환경을 즐기는 편이에요. 유럽에서 ‘넌 유럽사람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웃음)”

적응력 역시 초등학교 때 다져졌다. 군(軍) 공무원이던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이사 다니느라 초등학교 때에만 네 번을 전학했다. 그러면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낯선 환경에 놓이면 그 지역 특유의 습관과 특징을 관찰한 후 어떻게 해야 그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지를 훈련했다고 한다.

임선혜는 세상에 관심이 많다. 명동성당에서 4년째 희망나눔 콘서트를 이어오고, 부모님이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아이들을 위해 콘서트를 열었다. 외국에서는 북한 아이들을 위한 기금마련 콘서트를 연 적도 있다. 올해 초에는 남수단에 가서 그곳 아이들을 위한 ‘음악 선생님’을 자처했다. 나눔 활동이 부쩍 많아진 것은 그의 오랜 고민의 결과다.

“얼떨결에 프로 무대에 데뷔했지만, ‘음악이 내 삶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남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기 위해서 유명해지고 싶었어요. 유명해지면 그 사람이 하는 일에 힘이 실리잖아요? ‘기쁨과 위로를 주는 음악을 하겠다’는 답을 얻으면서 내 길에 대한 확신이 섰죠.”

5년 전, 임선혜는 고국 무대에서 첫 독창회를 앞두고 걱정이 컸었다. 단 몇 명의 청중 앞에서 노래 부르는 악몽까지 꿀 정도였다. 고국 무대의 행보가 잦아진 지금, 인지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제는 한국에서 저를 알아보시는 분이 꽤 많아요. 맨 얼굴도 한눈에 알아보시고 ‘임선혜씨’ 하세요. 민망하게.(웃음) 외국 무대에서 활동할 때 음악은 그저 직업이었어요. 임선혜라는 이름으로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연기를 잘하면 호평받고, 신문에 나고, 인터뷰하는 게 전부였죠. 하지만 고국 무대에 서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내 이름을 걸고 뜻있는 일을 하면 더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내년에도 그는 세계무대에서 굵직한 행보를 이어간다. 우선 야콥스와 함께 작업한 바흐의 〈마태수난곡〉 음반을 낸다. 이 음반은 그에게 각별하다. 9년 전, 같은 곡을 녹음까지 마친 상태에서 다른 가수로 바꿔 녹음하는 바람에 상처가 됐다. 사과의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당신의 음악이나 노래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내부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콧대 높은 유럽 고음악계에서 인지도 없는 동양인에게 중요한 파트를 맡기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는 세계적 음반사인 하르모니아 문디에서 첫 솔로 음반으로 프랑스 바로크 음반을 낸다. 하르모니아 문디는 스타 개인이 아니라, 음악적 가치를 중시하는 음반사다. 하르모니아 측에서 임선혜에게 먼저 제안을 해왔다고 한다. 임선혜는 “외국에서 활동하다 보니 애국심이 커진다”면서 남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충남 서산에서 전투기(F-16) 파일럿으로 근무하는 제 동생 임창순 소령이 무척 자랑스러워요. 예전에는 ‘나라를 지키는 그대가 자랑스럽습니다’ 같은 표현이 촌스럽게 느껴졌는데, 외국에서는 그 말이 절절하게 나와요. 국력이 제 개인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에도 동생이 우리나라 항공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해요. 확실히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되는 것 같아요. 한국 예술가곡을 외국 음반사에서 꼭 내고 싶어요. 제가 이루지 못하면 후배들이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에 자꾸 소문을 내고 다녀요, 이렇게.(웃음)”

사진 : 김선아
  • 2012년 1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